대학원 2016년 1학기 2회.MP3
장소: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1층 세미나실 일시: 2016년 3월 15일(화,오후 1시 15분~ ) 강사: 곽준(묘원 법사님)
교재 : 사념처 명상의 세계(도서출판 행복한숲 刊)
교재 55쪽~
1. 연기란 무엇인가
연기란 원인과 결과입니다. 이 세상에 원인과 결과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르면 모르는 연기로 살고, 알면 아는 연기로 삽니다. 완전하게 알면 연기로 살지 않고 연기가 끊어집니다.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것을 원인으로 그만큼의 결과를 받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지혜가 있는 것을 원인으로 그만큼의 결과를 받습니다. 최상의 지혜가 있으면 최상의 지혜를 원인으로 그만큼의 결과를 받습니다.
무명으로 시작된 연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해서 그만큼의 과보를 받아서 불행하게 삽니다. 지혜로 시작된 연기는 지혜로운 행위를 해서 그만큼의 과보를 받아서 행복하게 삽니다.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서 시작된 연기는 모든 욕망이 끊어져 다시 태어나는 행위를 하지 않아 윤회가 끝납니다.
인간의 삶은 이상의 세 가지 중에서 하나에 속합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으로 인해 괴롭게 살 것인가, 지혜로 인해 즐겁게 살 것인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다시 태어나지 않고 모든 괴로움을 끊을 것인가, 하는 세 가지 삶의 선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며 여기에 누구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는 오직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그 결과를 받습니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그렇다면 괴로움도 자신의 선택이고, 즐거움도 자신의 선택이고, 괴로움이나 즐거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므로 여기서 수행을 해야 할 당위성이 생깁니다. 수행의 실천 여부에 따라 세간의 괴로움과 출세간의 해탈이 결정됩니다.
사실 위빠사나 수행의 지혜의 단계는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지혜는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입니다. 이 두 번째 지혜의 단계가 연기법을 아는 지혜입니다. 그런 뒤에 현상을 바르게 아는 지혜가 계발됩니다. 이때의 현상을 바르게 아는 지혜가 무상, 고, 무아입니다. 그러므로 연기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없으면 다음 단계인 현상을 바르게 아는 지혜가 계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대의 모든 붓다는 연기를 발견한 뒤에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해탈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연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일으킨 원인에 따라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연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연기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붓다는 연기를 발견한 것이지 연기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붓다가 연기를 발견하기 전에도 이미 이러한 연기의 흐름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붓다는 이러한 연기의 흐름을 알아 과감히 그 흐름을 제거하는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서 연기로부터 탈출했습니다. 우리가 연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괴로움뿐인 삶에서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해탈의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
모르면 번뇌에 당하고, 알면 번뇌에 당하지 않습니다. 지식은 생각으로 알기 때문에 번뇌에 당하지만 지혜는 실재를 알아서 번뇌를 소멸시키기 때문에 번뇌에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모르는 마음에서 아는 마음을 계발하여 지혜로 연기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질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르는 마음은 어리석음이고 아는 마음은 지혜입니다. 물이 맑으면 물속이 훤히 보이듯이 마음이 맑으면 사물의 이치가 훤히 보여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연기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이 아닌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명상을 해야 합니다.
빨리(pāli)어는 붓다가 사용하신 인도의 민중언어입니다. 연기(緣起)를 빨리어로 빠띠짜사무빠다(paṭiccasamuppada)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연기 또는 조건에 의해 발생함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인과 결과, 인연, 인과응보, 과보, 조건, 윤회라는 말은 모두 연기를 뜻합니다. 연기를 영어로는 의존적 발생의 법칙(Law of Dependent Origin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원인에 의존하여 결과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특히 윤회를 빨리어로 삼사라(saṃsāra)라고 하는데 이는 원인과 결과에 의한 순환, 생사, 상속, 흐름, 지속이라는 뜻으로 연기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석서에서는 “네 가지 이해하기 어렵고 가르치기도 어려운 법이 있는데 이것이 진리(眞理), 중생(衆生),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조건(條件)이다”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최고의 지혜를 가진 성인이 아니면 완전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중생은 마음이 있는 모든 생명을 말하는데 이것을 유정(有情)이라고 합니다. 재생연결식은 한 생을 시작하는 최초의 마음입니다. 조건은 연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포함된 연기법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해 연기를 알 뿐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자의적 견해가 개입되면 그만큼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오직 경전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입니다. 경전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분열이 생기면 진리가 훼손됩니다. 그러면 바른 가르침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설명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서는 경전과 주석서와 스승의 가르침과 자신의 수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수행이 없으면 바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상의 조건이 모두 다 중요하지만 반드시 수행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귀한법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