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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지혜, 2012)
■ 표4
여기, 우리 시단에 ‘이상한 시들’이 당도했다. 우리의 시가 그 외연을 지루하게 확장 중일 때, 김연종의 시들은 그 최전선에서 부르르, 떨고 있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Homo medicus"를 창조해 냈다. 임상의 기록들로 가득한 이 시편들은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서정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막 우리에게 당도한 이 시집을, 한 의사의 임상 기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권태와 불안이 서로 중무장한 채로 각자의 참호에서 두리번거릴 때, 김연종은 그들을 소환한다. 권태는 불안에게 잡아먹히고 불안은 잡아먹은 권태를 다시 토해낸다. 錯亂이자 倒錯이며 궁극적으로 발작이다. 이 살벌한 육박전이 김연종 시의 현장이다. “두개골부터 내장까지 썩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라고 시인이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썩어가는 이유를 알아야한다.
시인이 진단하는 우리 신체의 부패원인은 “에고 기능 장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에고는 안녕합니까? 당신의 에고는 정녕 당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우리입니까? 김연종의 시는 우리가 간신히 찾아낸 해답들을 통째로 뭉개버리면서 거대한 괄호만 남겨 놓는다. 괄호의 앞, 뒤, 왼쪽과 오른쪽, 위, 아래가 모두 공백이다. “치료하면 생존확률 0.01% 방치하면 99.9%의 치사율 사이”가 시인이 제시하는 우리 삶의 공백이다. “Homo medicus” 시인 김연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절박한 그 경고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답을 내어놓아야 하는가. 시인이 필사적으로 그려낸 그 공백에 합당한 언어를 우리가 부여해줄 때 비로소, 우리 시는 한 세계를 개척해낸 새로운 시인 한 명을 온당하게 갖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시인의 고투와 피범벅 육박전의 현장에 당신들을 초대한다. 이제 우리 시도 간신히 ‘의학시’라고 할 만한 시집 한 권을 얻었다.
—박진성 시인
■ 차례
시인의 말 5
1부
닥터 K를 위한 변주 12/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14/슬픈 방독면을 뒤집어 쓴 주치의의 궤변 16/돌팔이 의사의 생존법 17/비만을 치료하는 비만의사 18/눈물 도둑 20/자연과 안락 그리고 동의에 관한 시퀀스 22/죽음 또는 주검에 관한 어떤 기록 24/그는 플라스틱이다 26/尖端喪家 28/청부 살인 30/줄무늬 고양이 31/아나토미 33/닥터 피쉬 35
2부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 38/독백 40/반성 42/'존엄사와 안락사'의 관점에서 주어진 지문을 분석하고 가장 소신 있는 의료행위를 행한 의사를 고르시오 44/알리바이 46/Homo medicus 48/진지한 진찰실 50/버거씨의 금연 캠페인 52/다운 증후군 다우니 53/알츠하이머 달팽이 55/누에 57/조루증을 앟고 있는 조루바 58/권태기 60/그녀가 출렁거린다 62/RBC Life 63
3부
트랜지스터라디오 68/천도복숭아 70/그녀는 진화한다 72/무가당 레시피 74/병든 잎 76/난수표를 읽다 78/남의 논에 물대기 79/트랜스젠더의 꿈 81/간암 말기 간병인 82/무당벌레 83/희망 진술서 85/백양목 87/명의를 찾아서 89/킬러의 고백 91/밀림 속 진찰실 92/유비 쿼터스 94
4부
오! 해피데이 96/외로운 섬 98/ 그린 장례식장 100/안개병동 102/귀머거리 의사와 벙어리 환자 103/알츠하이머와 파킨슨의 동행 104/원조논란 106/명품 장기 백화점 108/간에 기별하다 110/돌팔이 詩社 112/닥터 멜랑콜리 114/인큐베이터 116/대규모 학살을 근거로 한 소규모 학설의 이분법적 고찰 117/히포구라테스 선서 119/진료 의뢰서 120
해설 · 호모 메디쿠스, 그대의 명멸이 두려울지라도·양경언 121
■ 시집 속의 시 한 편
닥터 K를 위한 변주
얼음 심장과 술에 찌든 간으로
그는 오늘도 현장을 재촉한다
블루칼라의
넥타이 같은 청진기를 목에 메고
안경 밖의 세상을 조명한다
버림받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만
시멘트 바닥 같은 흉곽의 동굴에 나뒹굴고
핏기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다물었다
청진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그,
얼어버린 심장과 딱딱한 폐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삶의 지폐가 아니다
실핏줄 같은 병력들을 모아
동맥의 바코드로 정리하고
오늘도 그는 무당처럼
주문을 외워댄다
올무에 걸린 들쥐들이
바르르 몸을 떤다
K가 고양이처럼 발광한다
K가 쓰디쓴 토물을 닦고 있다
K가 흩어진 간을 주워담는다
■ 시인의 말
편집과 강박으로 인한 언어의 반신불수
불면증, 실어증, 기억상실증…
詩를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 얻은 병들이다.
의사시인이라 하기도 하고
시인의사라 하기도 하는
누명 같은 명함.
변방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중심과는 거리가 먼
주변인의 중얼거림일 뿐,
나를 치유하지 못하면서
남을 치유하는 건 가당치 않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처방전만 남발하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바랄 뿐이다.
2012년 봄
의정부 306 보충대 앞에서
김연종
김연종
김연종 시인은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났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2004년 『문학과경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극락강역』이 있고, 제3회 '의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의정부시 '김연종 내과'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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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연종 선생님,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출간을 마음 깊이 축하드립니다. 부디 세상의 모든 아픔을 치유하는 시집으로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어려운 과업에 한 마디 매듭에 노고가 많으셨군요.
꽃 한 송이 올립니다 !
새로운 시집 축하드립니다.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사람의 몸을 치료하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시인의 시집이 기대감을 줍니다.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중들도 형편없지만 의사들도 다는 아니겠으나 영 형편없이 노는 작자들이 많은 시절에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이 요구되는 시절에 귀한 시집을 내셨네요. 귀한 시집 잘 받았습니다. 정독하겠습니다.
축하 마음으로 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격려에 힘을 얻습니다.
귀한 시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하지만 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구하 선생님, 강태규 선생님,양문규 선생님, 김명, 양효숙 선생님, 고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시집 광고 파일 시에문학회 전자주소<sietica2009@hanmail.net>로 보내주세요.
시집 상재 축하드립니다, 김연종 시인님.
귀한 시집 정성껏 탐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