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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이사야-28 일어나 빛을 발하라(이사야 60장 1-3절)
성경 말씀은 이사야 60장 1절에서 3절까지 봉독합니다.
[이사야 60장]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서가 이제 결론 부분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60장 들어서면서 시온을 깨우시는 하나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또 오늘은 드릴 말씀의 제목에 60장 1절 첫마디를 제목으로 삼고,
[이사야 60장]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빛을 발할려면 우리 안에 빛을 발하게 되는 어떤 동력이 있어야 될텐데, 이 빛이라는 것을 놓고 좀 진지하게 생각할려면 꽤 많은 시간이 갈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말하는 빛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고 물리가 아니고 진리의 빛, 어떤 생명의 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중에 상당 부분이 시적인 기법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은 문자대로 해석하기 어렵고 문자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본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서 이해해야만 되는 그런 부분이죠.
우리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해서 자다가 일어나서 랜턴가지고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물리적인 빛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빛은 그런 빛이 아니라, 진리의 빛 혹은 생명의 빛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안 다니는 사람에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굴이 밝고 빛이 나는, 그런가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얼굴이 어딘가 아무리 화장을 해도 어둡고 목욕탕에서 방금 나왔는데도 더러워 보이고..
그런 것 잘 모르시죠.
우리 고향 동네에 점하는 분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목욕재계하는데 더러워.
뭐가 더러운지 모르겠는데 영적으로 상종하기 싫을 만큼 더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얼굴에 아무런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둠과 빛을 두고 말할 때 아마 기쁨은 빛이 되겠죠.
정말 은혜와 진리가 넘쳐서 기뻐하는 모습은 빛이 될 것이고, 아무 은혜도 없고 진리도 없고 소망도 없고 이렇게 해서 어두워지면 그것은 어둠이 되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속에 진리가 있고 그 은혜와 진리에 응답하는 삶이 있어서 어떤 기쁨이 있으면 그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반면에 믿음도 없고 소망도 없고 사랑도 없고 그저 집에 가면 싸우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이러면 기쁨도 없고 빛도 없고 얼굴이 캄캄한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 다음치고라도, 일반 사람들도 여성들인 경우에 보면 가정생활이 원만한 가족관계가 원만하고 또 남편의 사랑을 받는 그런 여성들에게는 얼굴에 기쁨이 있고 빛이 있죠.
맨 그저 근심 걱정 이런 것에 찌들려 있으면 아무리 화장을 해도 빛이 안 나요.
기쁨이란게 속에서 나와야지 밖에서 아무리 뛰고 굴리고 밀양아리랑을 부르면서 ‘왜 이리좋노 왜 이리좋노’ 해도, 억지로 기뻐해볼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나오는 진리로 말미암는 기쁨 생명력이 넘쳐서 나오는 기쁨과 다르다는 거예요.
그런 세상 향락을 아무리 추구해도 안 기쁘니까 억지로 기쁘게 해볼려고 해도 그것은 속에서 나오는 기쁨이 아녜요.
그래서 여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할 때 빛이란 것은 은혜와 진리로 말미암아서 그 사람 속에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있고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이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광채, 그런 진리의 광채가 나오게 된다는 건데, 이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베푸셔야 그런 광채가 나는 거예요.
여러분 모세가 자기 얼굴에다가 무슨 광채나는 기름을 발라서가 아니라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진리를 가지고 내려오는데 그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리고 스데반의 얼굴이 돌에 맞는 순간에도 일그러져서 오만상이 찡그린것이 아니라 얼굴이 해같이 빛이 났다는 겁니다.
사도바울 같은 경우도 외모는 그렇게 못생긴 사람 같은데, 그의 얼굴이 때로는 천사이고 때로는 사람이더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도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그런 광채가 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할 때, 이 빛은 은혜와 진리로 말미암는 그런 빛을 말씀하시는 거죠.
..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래서 그 빛을 일단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다가, 다시 말해 시온성에 그 빛을 비추어서 거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빛이 예루살렘에서 반사되어서 온 세상에 비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지금 이사야서 60장에 말씀하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비로소 만방에 비춰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실 때 마태복음 5장 14절이죠.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는 것이 아니고 등경위에 두어서 비취게 하는 것처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비취게 하는 그 빛이 온 세상 만방에 이방에까지 저 지리산 골짜기까지 제가 살던 신작로 끝나는 동네까지 다 비취게 한다는 겁니다.
제가 얼마전에 강원도 쪽에 갔다온 적이 있었는데, 정선 영월 평창 그야말로 산중에 대명사죠.
더 올라가면 인제 원통 거기가면 하늘에 별이 50개밖에 안 보인다고 하니까 얼마나 골짜기가 좁은지..
그런데 그런 골짜기에 인가도 별로 안 보이는데 예배당이 있는 거예요.
지나가면서 참 감동이 되었어요.
정말 하나님께서 강원도 산골짜기에 그런 양들 찾기 위해서 거기도 다 은혜의 시온소를 세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이 가버렸는데, 예배당은 남아가지고 저기 주일날 예배가 드려지는가?
인가도 없어요. 별로 없는 곳인데, 집 몇집 보고 그냥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빛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이면 우리 한반도가 땅끝이고, 땅끝중에 마산은 땅끝중에 땅끝이죠. 해변까지 왔으니까..
그야말로 땅끝까지 비췬것이고, 저 지리산 골짜기까지 그 광채가 비취게 한 거죠.
..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세상은 갈수록 제가 볼 때 어두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란 것은 어두워진다는 것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는 것이고, 광채는 진리와 생명으로 빛이 나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더 칠흙같이 어두워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두울 때 빛은 더 밝게 빛이 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볼 때, 이럴 때일수록 정말 우리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은혜와 진리의 빛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빛을 발해야 되는 시대가 아니냐?
그런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4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여러분 은혜든지 진리든지 다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은혜가 있고 진리가 있는 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제가 예수님 덕분에 이런저런 나라를 더러 여행을 해보게 되는데, 은혜와 진리가 있는 곳, 그 곳에 정말 재물도 모이고 예술도 거기에서 꽃을 피우고, 반면에 굉장히 찬란했던 문화를 가지고 있던 그런 세계 4대 문명발상지라도 거기 은혜가 없고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으니까 사람들의 눈동자에 빛이 없는 거예요.
한번 여러분 제말 듣고 있다가 이 다음에 한번 여행을 해 보시면 기독교 나라 아직도 예배가 드려지고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정상적으로 집례되고 그런 곳에 가면 도시나 사람이나 다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의 얼굴에 광채가 나요.
반면에 이슬람권을 가서 보면 뭘 바라보고 있는지..
눈이 아무 촛점도 없고 눈동자가 다 풀어져 있는 거예요.
잘 아시는 대로 여러분 이란이라는 나라를 2003년도에 갔었는데, 그 이란이라는 나라가 옛날에 페르시아 제국 그야말로 인도로부터 이디오피아까지 127개국을 홀로 통치할 정도로 그 영광스러웠던 옛날 페르시아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보면 불쌍할 정도로 못살고 어둡고 돈이 없어서 집을 짓다가 그만 둔 집이 온 길가에 마치 폭격 맞은 것처럼 널브러져 있는 거예요.
같이 갔던 권사님 한분이 세상에 집을 짓다가 저걸 짓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딱하겠는가 하면서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울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 비참하게 삽니다.
여러분 한 때 바벨론 제국을 구가했던 바벨론 제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거기도 맨날 얻어터지고 맞고 깨지고 부서지고 엉망이 되어있잖습니까?
거기 조금 더 가면 오스만트루크 옛날 터어키, 오스만트루크 제국이 굉장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데 가서 보면 정말 터어키도 못 삽니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자원과 기후와 풍토와 이런 것을 가지고 이렇게 못사는 것도 정말 기적이다.
40대 50대 남자들이 도시에 길가에 다 나와 섰어요.
뭐하러 나왔는지 보니까 그냥 서서 길에 쭉 서서 차가 오는 것 다 봐. 또 가는 것도 보고..
이윽고 봤어요. 일부러.
하루종일 보는 거야. 아무 목적도 없고 일도 없고.. 그렇게 은혜와 진리가 없는 곳에는 사람들 얼굴이 어둡고 생활도 어둡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권에 가보면 잘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부귀영화가 그야말로 극에 달해가지고 거의 왕자처럼 살고 있는가 하면, 반면에 온 국민들은 거의 거지처럼 살고 있어요.
이스라엘 땅에서도 이스라엘을 사람들이 사는 데는 그야말로 낙원처럼 꾸며져 있는데 바로 옆에 베들레헴이라든지 여리고라든지 아랍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보면 예수님 때와 똑같애요.
여러분 예수님의 설교중에 한번의 중풍병자를 들것에 들고 와서 지붕을 뜯고 달아내렸다고 하죠.
우리 같으면 지붕을 뜯고 기와를 벗기고 서까래 걷어내고 어떻게 그 밑에 예수님 앉아 있겠나. 도저히 우리 지붕을 생각하니까 엄두가 안나는데, 가서 보니까 간단해요.
그냥 토담을 쌓아서 나무 몽둥이 걸쳐놓고 그 위에다가 천막 같은 것을 했으니까, 천막 들치면 바로 예수님 보이는 거야. 아무 때는지..
그래서 금방 달아내릴 때 있어요.
입구로는 못 들어가니까.. 여리고에는 아직도 그런 집이 있습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더 퇴보했어요.
그래서 정말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는 곳에는 지금도 그렇게 못살고 어둡습니다.
여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온다’ 했는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이만큼 한국사람이 잘 사는 것도 사실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학교가 들어오고 교회가 들어오고 병원이 들어오고 하면서 유아사망률도 많이 떨어지게 되고 이렇게 산 것 아닙니까?
불과 한 100년 되는데 100년 중에서도 기독교 문화가 이렇게 문명전체가 정착된 것은 6.25동란 이후에 한 40-50년 이 50년 만에 200배나 더 잘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200배..
이런 것은 이 세계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우리끼리 살고 여기 있으니까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 몰라서 그렇지.
온 세계를 여행을 해보면 제가 보기로는 세계에서 한국사람이 제일 잘 살겁니다.
먹는 것도 제일 좋은 것 제일 많이 막고 제일 많이 남기고..
입는 것도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제일 고급스러운 입고 신발도 화장품도 제일 많이 소비하고, 자동차도 사람이 별로 체격도 안 크면서 평균 크기가 미국 다음으로 우리가 커요. 자동차도.
여러분 이탈리아 같은 데 잘 사는 줄 아세요?
가서 보세요.
티코 절반만한게 즐비합니다.
티코는 중형차예요. 진짜입니다.
티코 절반만한게 그 안에서 사람 네사람이 나오는데, 사람 네사람이 차보다 큰것 같애요. 저기서 어떻게 나오냐. 시트로엥이라고 하는 차가 있는데, 그렇게 살고
프랑스가 여러분 잘 사는 것 같애요?
물가가 댑다 비싸고 그 30년 40년 된 차가 굴러가요.
우리 같으면 폐차장 가서 죽고 또 죽어서 흔적도 없을 차인데, 그 본넷 뚜껑이 삭아서 그 안에 엔진이 다 보여.
그대로 굴러가요.
우리가 상상외로 잘사는 거예요.
옷도 제일 품질 좋고 싸고..
같이 갔던 분 중에 한 분이 목사님이 사위가 잘 살아서 돈을 줬다 하면서, 런던에 갔을 때 런던포그 아주 유명한 브랜드죠.
바바리를 하나 샀는데, 60만원이야. 우리 돈으로. 한국에서는 2만 5천원 짜리야.
내가 말은 안했는지만 내것 2만 5천원짜리 내것과 그 60만원짜리 옷을 비교했는데 내게 훨씬 더 좋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잘 사는게 아니고 진짜 우리가 너무 너무 잘 사는 거예요.
전자 제품도 한국게 단연 최고죠.
지금은 백악관부터 시작해서 중동까지 전부 한국것이 다 들어가고 일본것 다 뜯어내고 한국것 집어넣습니다.
휴대폰도 한국것이 제일 많죠. 안 그런가?
여러분 미국가면 중소기업을 가지고 있을 정도가 되어야 휴대폰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사람들은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 많습니다.
가지고 있어도 우리 같으면 1000원만 주면 사는 것 그런 것을 자기들은 상당히 비싸게 사서 겨우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어도 얼마나 불편하느냐?
한 나라의 주를 경계를 넘어가면 안 통해요.
주 경계를 넘어가면 주 안에만 국내이고 주를 벗어나면 외국이예요.
미국이 살기 좋은 나라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이 세금도 제일 낮고 아직은..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없어요.
자유롭기로 말하면 대통령을 물고 흔들어도 아무도 말하는 사람 없어요.
이렇게 자유롭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나라이고, 그런 나라가 한국이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은 여기 살기 힘드니까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세요.
가보면 미국에 이민가서 한국사람만큼 살려면 직장 두개 세개 안 가지면 이만큼 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은 한국에 목사님들이 세계 어느 목사님보다도 설교를 열심히 해요.
기도도 열심히 하고 심방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를 섬기는데 목사가 한국목사가 최고입니다. 그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어요.
대부분 다른 나라 목사님들은 주일낮 예배 설교 딱 한번합니다.
그리고 심방도 잘 없어요.
그저 상담도 상담소 보내버리고 하는데, 그러니까 교회가 잘 안되고, 한국은 그래도 이렇게까지 물질주의가 팽배한데도 교회가 이만큼 유지되고 아직도 신학교가 4:1 5:1 6:1이예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거예요.
6절입니다.
6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8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정말 진심으로 은총을 받으면 물질적인 것도 자연히 따라와요.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물질을 추구하면 물질도 도망가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버리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가 영혼이 정말 영적인 질서가 바르게 될 때, 범사가 잘 되기도 하고 강건하기도 하고 다 따라오게 되어있는 거예요.
10절,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훼파된 것을 과거로 기록한 부분이 10절과 15절에 나오는데 봅시다.
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것은 BC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을 말하는 거죠.
..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12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13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4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이런 것이 제2이사야서의 후대 기록설을 증명하는 구절들이죠.
예루살렘 멸망을 전이라고 전에 일어났던 것으로 이야기 하는 거죠.
..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16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17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예루살렘의 어두운 날이 다 지나간다는 말이죠.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런 것이 어떻게 이게 갑자기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갑자기 그저 바벨론이 함락되면서 메대 페르시아를 통합한 고레스왕이 와서 이 일을 갑자기 이루어 내는 거예요. 갑자기..
61장입니다.
[이사야 61장]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이것이 예표로 이루어졌던 것은 바벨론에 포로되고 갇힌자를 다 놓아주는게 되는데, 이것이 완전히 이루어진 모습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누가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이 본문을 말씀하시면서 이 말이 너희에게 완전히 이루어졌다 했던 말씀이죠.
그래서 다시 말하면 이 61장에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예수님까지 동안에 이루어질 일을 압축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바벨론 포로에서 육체가 포로되고 자유를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놓여 나왔지만 그 정도 해방은 완전히 해방이 아니라는 거죠.
제가 가끔 광복절때 드렸던 말씀이고 3.1절 때 말씀을 드려왔는데, 우리가 일본사람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완전히 해방된 것이냐?
그것으로는 해방이 아니죠. 그것은 해방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고, 진정한 참 자유 참해방이라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함, 예수님을 믿어서 죄로부터 완전 자유해야만 참 자유죠.
그런 것처럼 61장에 있는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정말 완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
줄을 그으시고, ‘은혜의 해’가 보통 ‘희년’을 말합니다.
50년 마다 도래하는 해를 은혜의 해라고 말하죠.
..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신원이라는 것은 억울한 것을 풀어준다는 뜻인데,
..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들은 오래 (70년 동안)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고향땅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고레스 칙령이 나가지고 고레스부터 캄비세스 2세, 그리고 다리우스 히스타페스 1세, 그리고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 1세, 아하수에로까지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 이런 말씀들이 그 당시에 온 세계에서 가장 복받는 나라처럼..
오히려 페르시아 제국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뭐든지 해야 되는..
스룹바벨이 돌아올 때라든지 에스라가 돌아올 때 느헤미야가 돌아올 때 보면, 페르시아 황제와 일곱모사와 큰 고관대작들이 전부다 예물을 모아서 에스라에게 들려보내주는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이방들이 와서 성벽을 중수하고 그런 영광스런 일이 문자대로 다 이루어졌거든요.
그 중에 있었던 사건들이 에스더서 사건을 보면 하도 아하수에로 왕과 에스더 때문에 유대인들이 기세등등해가지고 유대인들에게 좀 설만하게 하면 죽여버리고 하는 이런 자유가 주어지니까 유대인이 되는 사람이 많았어요. 이방인중에서..
그렇게까지 유대인의 영광이 수치 대신에 배나 받았어요. 내가 보니까 배나 더 받았어요.
수치 당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셨던 이야기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를 보면 이런 것이 문자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10절입니다.
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그래서 전에는 버림받은 여인 홀로 된 여인처럼 그렇게 되었던 시온성이 다시 신부처럼 보물로 단정함 같이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70년 동안 황무지가 되어있지만, 다시 거기에 하나님의 얼굴을 은혜의 영광의 광채가 시온성에 비칠 때는 그 광채가 세계 만방을 비추게 된다.
그런 비젼을 말씀하시 거죠.
여러분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을 떨고 할 때는 바로 절망으로 곤두박질하게 만들어버리고, 이스라엘이 절망할 때는 또 비젼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래전에 읽은 책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인간들과 반대편에 서 있다는 거야.
우리가 낙심하고 ‘나는 아무 것도 못하겠다’ 하면 ‘너는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덤비면 ‘너는 아직 안돼’ 그러는 거예요.
그런 책을 오래전에 제가 읽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애요.
여러분 모세가 뭘 하겠다고 덤비니까 사고만 치고, 도망가서 낙심천만했잖아요.
못하겠다고 늙어서 아무 낙도 없고 못하겠다고 할 때 이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감이 잘 안나시는 것 같애.
뭘 하겠다고 기고만장할 때는 너는 아직 멀었어, 안돼. 그러는데요, 나는 이제 아무 낙도 없고 나는 끝장났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이제 너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두고 사도바울이 내가 부득불 자랑한다면 내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이 오히려 크게 나타난다는 거예요. 내가 약하니까..
내가 20밖에 안 되니까 하나님이 80를 채워가지고..
자기로 충만했을 때는 하나님이 바울속에 들어갈 틈이 없으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정말 약해지고 못하겠다고 싶을 때 그 때 내가 약할 그 때 곧 강함이라.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시온산이 70년 동안 황무지가 되었으니까 아무 소망도 없고, 점점 바벨론이 눌러붙을 그런 생각을 하니까 그럴 때에 오히려 희망을 불어넣고 굉장한 비젼을 제시하는 거예요.
우리 성도님들도 못한다고 못하겠다고 할 때 그 때가 일할 때 이니까 낙심하지 말고,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거의 다 앞발 뒷발 다 들고 포기하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뭘 하겠다고 막 기고만장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 자신이 내 힘 내 수단 내 재주 내 능력으로 이런 것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손들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 약한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크신 뜻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70년 동안 황무지가 되어있는 시온산을 깨워서 빛을 발하라 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때로는 낙심되고 좌절하고 할 때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그 은혜의 생명을 빛을 비출 때, 우리가 다시 땅에서 움돋는 새풀처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에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우리를 통해서 열방에 발생하게 하시고, 생명의 말씀 은혜와 진리의 광채가 우리 샤론교회를 통해서 온 어두운 세상에 두루 비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