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한자어 뜻 몰라 문장 해독
못하는 현상
한글로만 표기된 동음이의어 한자… 뜻 구분 못해 의미상 혼란 일으켜
◇'義士(의사)·醫師(의사)' '陣痛(진통)·鎭痛(진
통)' 구분 못 해
44년 동안의 한글 전용 교육이 낳은 '한자(漢字) 문맹(文盲)' 현상이 급기야 사회적 불통(不通)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의미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층일수록 '한자 문맹' 현상이 심각해 세대 간 소통 단절까지 빚어지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의사(義士)를 의사(醫師)로 알고 '그분은 어느 과목을 진료하셨느냐'고 묻는가 하면, '야스쿠니 신사'의 신사(神社)를 '신사 숙녀'의 신사(紳士)로 잘못 아는 일이 그 예다.
최근 '한국 경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만큼의 이유'라는 책을 써서 '한국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했다'는 말을 들은 일본인 미쓰하시 다카아키(三橋貴明)조차 "한국에선 '방수(防水·물을 막음)'와 '방수(放水·물을 흘려보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불통' 현상이 전문가 집단까지 포함한 각 분야에서 심각한 오해와 오류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학 병원의 A 교수는 "요즘 젊은 의사들은 '임신부가 진통(陣痛)을 한다'고 할 때의 '진통'과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鎭痛) 주사를 놓으라'고 할 때의 '진통'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주부 B씨는 최근 가수 이승기와 윤아의 열애설이 보도되자 중학생 딸에게 "어떻게 감쪽같이 이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 사람들 그러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하고 반문했다. 알고 보니 '연예인(演藝人)'을 '연애인(戀愛人)'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전의 4년제 대학 주간(週刊) 영자 신문이 발행 업무를 맡은 '주간(主幹) 교수'를 'Weekly Professor'로 쓴 일도 있다.
◇ "어휘 무너지면 사고 체계 무너질 수도"
작문 숙제를 채점하던 경기도의 고교 교사 C씨는 아프리카 기아(饑餓) 문제를 소재로 쓴 한 학생의 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린이들은 며칠 동안 굶주리는 애환을 겪고….' '애환(哀歡)'이란 '슬픔과 기쁨'이란 뜻인 걸 몰랐기 때문에 나온 문장이었다.
얼마 전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 사이에 '체벌'의 범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진 일이 있다. '손들고 서 있기'나 '운동장 돌기'를 체벌에 포함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체벌(體罰)'의 뜻이 '몸에 직접 고통을 주는 벌(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논란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신체적 체벌'이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쓰인다.
지금처럼 한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환경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오해와 혼란이 더 번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본지가 2010년 서울 지역 5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1%가 지문을 읽고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말의 70%를 차지하는 한자어의 뜻을 몰라 문장을 해독하지 못하는 '독해불능(讀解不能)'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이병선 부산대 명예교수(국어학)는 논문에서 "기능(技能·기술상의 재능)과 기능(機能·하는 구실이나 작용), 출가(出家·집을 떠나감)와 출가(出嫁·시집을 감)처럼, 한글로만 표기된 한자어는 동음이의어 구별이 불가능하다"며 "한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력과 탐구력을 약화시키고, 어휘 체계의 붕괴로 사고(思考) 체계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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