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수분리 성당
1. 본당 설립 이전
장수 지역 신앙의 역사는 1850년경,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사목방문을 했던 곳으로 처음 등장했다. 1866년 병인박해 이전에는 수분리에 이춘경 이라는 신자가 살고 있었고, 그 주변 지역에도 여러 호의 신자 집이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 후에는 전라도 신자들뿐 아니라 전국의 신자들이 이 지역으로 피난하여 많은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식 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장수 지방의 공소는 1883년부터 나타난다.
1915년, 경남 함양본당의 이상화 신부와 진안 어은동본당의 김양홍 신부는 두 본당 인접지역의 전교블 위해 중간
지점인 장수 수분리에 사제가 쉬어갈 강당과 침실을 건축하기로 했다. 그후 수분리 공소 축복식은 1918년 11위 8일
드망즈 주교 때 거행되었다. 주보는 성 스테파노있다.
2. 수분리 본당 신설
1926년 5원 30일에 신설되있고, 초대 주임에 김필곤 바르나바 신부가 부임했다. 2대 주임 석종관 바오로 신부 때는 소화학원을 설립해 학생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3. 본당의 번동
3대 김동육 신부 때인 1937년, 본당을 장수읍으로 이전했고, 4대 하한주 신부 때인 1946년에 다시 수분리로 이전
했다. 그 후 남원본당 관할이 되있다가 장계본당이 설립되면서 장계본당 공소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977년 장수읍에 본당이 설립되면서 장수본당 관할 공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분리 성당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6칸의 초창기 한옥성담 양식으로 2005년 6월 18일 국가 등록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되있고, 2013년 4위 13인 해제 보수하여 축복식을 했다.
자료출처 | 호남교회사연구소
지료설명 | 이영춘 신부(호님교회사연구소 소장)
수분리노인정/수분리마을회관에 도착 주차하고 수분정 우측 이정표가 있어 찿기 쉽다.
십자가의 길 기도 14처
늦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풍경을 상상해 본다.
뜬봉샘에서 솟아 흘러내린 물이 마을을 지나면서 한줄기는 금강의 원류가 되고 또 다른 한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하여 수분리라 하였다고 한다. 뜬봉샘은 수분공소 뒷산을 오르면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