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관찰자, 혹은 이미지의 모험가
<처녀의 샘> <희생>의 스벤 닉비스트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순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잊게 된다. 렌즈를 통해 눈앞에 펼쳐진 작은 세상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카메라와의 만남은 내게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주었고, 순수한 빛을 갈구하는 나의 노력은 더해갔다.”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느낌을 바르게 해석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이 촬영감독의 소임이라 여기던 스웨덴 출신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는 이같은 철저한 자기집중 위에 영화의 삶을 세웠다.
근 30년 동안 그와 작업 해온 잉그마르 베리만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립지 않지만, 그와 함께 작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라고 자신의 시각이 되어준 닉비스트를 회상한다.1998년 <셀리브리티> 촬영을 끝으로 실어증으로 영화계를 은퇴하고, 이제는 초로의 노인으로 묻혀 지내는 스벤 닉비스트의 모습 뒤로 어릴 적 영화에 대한 호기심에 충만한 작은 소년이 오버랩된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버지는 영화를 보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고 아들이 영화관에 가는 것을 엄하게 금했다.
그러나 한번 각인된 스크린에 대한 미련은 신문배달을 하여 모은 돈으로 8mm 카메라를 장만하는 열성을 낳았고, 이후 이탈리아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기사 생활을 시작으로 한 영화와의 인연은 53년 <톱밥과 금속조각>에서 베리만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당시 이 둘이 이루어낸 강렬한 색채의 흑백 화면과 빛의 사용은 그 자체가 도전이자 용기를 필요로 하였으며, 평단의 달갑지 않은 시선 또한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빛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실험정신은 모더니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외침과 속삭임>(1974), <화니와 알렉산더>(1984)로 두번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닉비스트의 화면은 단순함에 그 기반을 둔다. 최소한의 빛과 최소한의 색으로 사실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화면 어디에서도 복잡한 조명이나 필터나 렌즈를 이용한 테크닉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다. <겨울 빛>의 촬영 당시, 실제 교회에서 5분마다 시시각각 바뀌는 빛을 관찰하여 그 빛을 스튜디오에 세운 교회세트에 반영한 일례는 철저하게 빛을 연구하여 자연광의 효과를 내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 스웨덴의 음산한 숲에서 전망 좋은 경관에 이르기까지 그가 구가하는 화면은 이미 촬영에 들어가기 몇달 전부터 치밀하게 사고된 빛의 탐구에 연원한다.
유독 배우의 얼굴에 관심을 두는 촬영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미디엄 숏을 배제하고 대담하게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배우들의 심리상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번쩍거리는 조명 대신 부드럽고도 풍부한 그만의 빛은 인간 영혼의 깊은 곳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애정과 관심으로 세밀하게 빚어낸 화면은 함께 작업을 한 배우들이 그와의 작업을 기쁘게 회상하게 만든다.
물론, 베리만과의 강렬한 인상으로 100여편이 넘는 또다른 그의 작품을 간과할 수는 없다. 우디 앨런, 로만 폴란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필립 카우프만, 리브 울만에 이르기까지 그는 70년대 이후 스웨덴 안팎의 활동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독창적인 영상으로 한번 그와 작업을 한 감독은 또다시 그와의 작업을 기대하였다고 하며, 이는 10여분에 이르는 도입부의 롱테이크가 돋보이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서부터 화려한 촬영감각으로 브룩 실즈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루이 말의 <프리티 베이비>, 쇼비즈니스계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흑백화면을 구가한 우디 앨런의 <셀리브리티>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최근 그의 유려한 영상세계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잉마르 베리만과 스벤 니크비스트>(Light Keeps Me Company, 2000)가 아들 칼 구스타프 닉비스트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그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의 인터뷰로 조망된 79살 노장의 어깨 위에 걸린 훈장은 휘황찬란한 조명도 세인의 찬사도 아닌, 자연의 빛을 좇아 한길 영화에 바친 구도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소리없는 색채이지만 큰 울림을 자아낼 수 있는 힘, 그건 바로 빛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셀리브리티>(Celebrity, 1998) 우디 앨런 감독
<사적인 고백>(Enskilda Samtal, 1996) 리브 울만 감독
<사랑 게임>(Something to Talk About, 1995년) 라세 할스트롬 감독
<라이프세이버>(Mixed Nuts, 1994) 노라 에프런 감독
<온리 유>(Only You, 1994) 노먼 주이슨 감독
<하버드 졸업반>(With Honors, 1994) 알렉 케쉬시안 감독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 라세 할스트롬 감독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1993) 노라 에프런 감독
<채플린>(Chaplin, 1992) 리처드 애튼버러 감독
<옥스>(Oxen, 1991) 스벤 닉비스트 감독
<뉴욕 스토리>(New York Stories, 1989) 우디 앨런, 프랜시드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감독
<범죄와 비행>(Crimes and Misdemeanors, 1989) 우디 앨런 감독
<또다른 여인>(Another Woman, 1988) 우디 앨런 감독
<프라하의 봄>(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8) 필립 카우프만 감독
<희생>(Offret, 1986)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신의 아그네스>(Agnes of God, 1985) 노먼 주이슨 감독
<스완의 사랑>(Un Amour de Swann, 1984)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
<즐거운 농장>(Cannery Row, 1982) 데이비드 S. 워드 감독
<화니와 알렉산더>(Fanny Och Alexander, 1982) 잉마르 베리만 감독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81) 밥 라펠슨 감독
<허리케인>(Hurricane, 1979) Jan Troell 감독
<집시들의 왕>(King Of The Gypsies, 1978) 프랭크 피어슨 감독
<가을 소나타>(Hostsonaten, 1978) 잉마르 베리만 감독
<프리티 베이비>(Pretty Baby, 1978) 루이 말 감독
<테넌트>(Le Locataire, 1976) 로만 폴란스키 감독
<고독한 여심>(Face to Face, 1975) 잉마르 베리만 감독
<마법 피리>(Trollflojten, 1975) 잉마르 베리만 감독
<외침과 속삭임>(Viskningar Och Rop, 1972) 잉마르 베리만 감독
<정열>(En Passion, 1969) 잉마르 베리만 감독
<페르소나>(Persona, 1966) 잉마르 베리만 감독
<겨울 빛>(Nattvardsgasterna, 1963) 잉마르 베리만 감독
<침묵>(Tystnaden, 1963) 잉마르 베리만 감독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Sasom I En Spegel, 1961) 잉마르 베리만 감독
<처녀의 샘>(Jungfrukallan, 1960) 잉마르 베리만 감독
<톱밥과 금속 조각>(Gycklarnas Afton, 1953) 잉마르 베리만 감독
빛을 향한 뜨거운 입맞춤 : 비토리오 스트라로 (Vittorio Storaro 1940 - )
이탈리아 출신의 촬영감독입니다. 역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는 거장의 파트너로서 커리어를 키웠었죠. 지옥의 묵시록에서 보여줬던 잿빛 화면과, 딕 트레이시의 컬러풀하던 화면 역시 그의 솜씨입니다.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면, 그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수많은 수식어들을 보실수 있을겁니다.
대표작으로 베르톨루치와 작업한 <거미의 계략 La Strategia del ragno>,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Ultimo tango a Parigi>, <1900년>, <마지막 황제 Last Emperor, The> 등이 있구요. 앞서 언급한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웨렌 베이티와 작업한 <레즈 The Reds>, <딕 트레이시 Dick Tracy>, <불 워스 Bulworth> 등이 있습니다.
재밌는건 닉비스트와 스트라로의 필모중 89년작 뉴욕 스토리가 겹치는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우디 엘런, 프란시스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세명의 거장이 한편씩을 찍은 세편짜리 옴니버스 영화인데요. 한편의 영화에서 세명의 거인을 만나는것도 화제였지만, 연출이 아닌 촬영에서도 닉비스트와 스트라로라는 거인을 만날수 있었던 영화로 많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좁은 영사실 한구석에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소리가 차단된 영사실에서는 이미지만으로 스토리를 이해해야 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마당에 구형 영사기를 설치해주셨고 동네녀석들과 찰리 채플린 시리즈를 봤는데, 역시 스크린에 전달된 이미지만이 전부였다. 그때의 기억은 이후 내 삶에 강한 울림을 형성하였다. 영사기사였던 아버지는 내게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투영하였고, 빛은 어느덧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화두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워런 비티, 이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을 떠올리면 우리는 먼저 강렬하고 거침없는 그들의 영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영상의 배후엔 빛으로 글을 쓰는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지옥의 묵시록> <레즈> <마지막 황제>로 세 차례 아카데미상 수상, 98년 칸영화제 촬영부문 기술공헌상, 2001년 미국촬영가협회 평생공로상 수상. 1940년 로마에서 태어나, 1970년 영화계에 입문한 뒤 펼쳐진 스토라로의 이력은 아마도 한사람의 촬영감독이 이를 수 있는 성취와 영예의 최대치에 접근할 것이다.
사진사 노릇을 하던 18살의 스토라로는 자신이 이탈리아 영화촬영기술학교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평생 작은 사진관에서 운전면허증 사진이나 찍으며 보내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입학기준치에는 모자란 나이였음에도 시험에 응시한 그는 자신의 영화촬영에 대한 의지를 피력함으로써 당당히 입학허가를 받는다. 이 시기에 접한 포크너, 카라바조, 모차르트, 렘브란트에 이르는 대가들은 정신적인 스승으로 자리잡아 촬영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형성해준다.
이후, 자신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베르톨루치와의 만남으로 그는 본격적인 촬영감독으로의 항로를 내닫는다. <거미의 계략>의 공동 작업 이후 이 둘의 결합은 <순응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마지막 황제> <리틀 부다>등의 수많은 걸작을 낳았으며, 평소 존경해오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의 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기존 할리우드의 촬영방식과는 다른 스토라로의 독특한 색채는 당시 기획에 불과하던 <지옥의 묵시록>의 촬영을 제의 할 정도로 코폴라에게 강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애초 코폴라는 고든 윌리스와 <대부>에서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터라, 스토라로는 일시에 그 제의를 거절한다. 한번 같이 작업을 한 감독과 스탭은 그에게 서로 설명이 필요 없는 하나의 언어를 가진 공동체라는 원칙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윌리스가 자신보다는 그가 이 영화의 촬영에 적임자라 생각해서 제의했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후에야 비로소 작업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의 존재인 빛과 어둠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폴과 잔느가 춤추는 장면은 빛으로 통일된 색채를 부여하려는 스토라로의 이같은 의도가 잘 드러난다. 무도장의 불빛이 발하는 짙은 선홍색은 열정과 환상에 쌓인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며, 다양한 빛의 속성을 고려한 조명과 셋트의 구성은 탱고의 선율과 조화되어 강렬하게 관객에게 각인된다. 한올한올 빛을 꿰어 맺어진 화면들은 촬영 전 셋업에만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불평을 자아낼 정도로 치밀하며 꼼꼼하게 구성된 그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레즈>와 <딕 트레이시> <불워스>로 스토라로와 호흡을 맞춘 워런 비티는 “만일 그가 장님이 된다고 해도 그와 함께 작업할 것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에게는 촬영기술로 이룩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첨단 기술인 유니비지움을 개발해내고도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현상소의 신형고속기계 대신 로마 현상소에서의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은 촬영가도 음악가나 미술가처럼 하나의 창조자임을 일깨워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근 그는 자신이 지금껏 연구해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저서를 출판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등 촬영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빛을 향한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그에게 카메라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그려내는 펜이자 조화와 리듬을 갖추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사구>(Dune, 2000) 존 해리슨 감독
<미르카>(Mirka, 1999) 라키드 벤하즈(Rachid Benhadj) 감독
<탱고>(Tango, 1998)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불워스>(Bulworth, 1998) 워런 비티 감독
<택시>(Taxi, 1996)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리틀 부다>(Little Buddha, 199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딕 트레이시>(Dick Tracy, 1990) 워런 비티 감독
<뉴욕 스토리>(NewYork Stories, 1989) 우디 앨런, 프랜시드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감독
<터커>(Tukur: The Man and His Dream, 1988) 프랜시스 코드 코폴라 감독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사막 탈출>(Ishtar, 1987) 일레인 메이 감독
<피터 대제>(Peter the Great, 1986) 마빈 J. 촘스키, 로렌스 실러 감독
<레이디호크>(Ladyhawke, 1985) 리처드 도너 감독
<마음의 저편>(One From the Heart, 198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레즈>(Reds, 1981) 워런 비티 감독
<루나>(La Luna, 1979)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1900, 1976)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 197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가정부 이야기>(Malizia, 1973) 살바토레 삼페리 감독
<신봉자>(The Conformist, 1971)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거미의 계략>(La Strategia del Ragno, 197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Giovinezza, Giovinezza>(Youthful, Youthful, 1970) 프랑코 로시 감독
<수정 깃털의 새>(L’Uccello Dalle Piume Di Cristallo, 1969)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로비 뮐러 (Robby Müller 1940 - )
빔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의 음울한 화면을 만들어낸 촬영감독 입니다. 빔 벤더스의 촬영 파트너이며,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도 그의 촬영 솜씨를 볼 수 있죠. 최근에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들도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어둠속의 댄서가 보여줬던 그 현란한 화면들이 그의 작품입니다.
<어둠 속의 댄서> <파리 텍사스>의 로비 뮐러
재미없는 이미지와의 투쟁
촬영감독 로비 뮐러에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2000)는 전통적으로 촬영감독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은 곧 그를 매료시켰고, 흔쾌히 이 도전을 받아들인 뮐러는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촬영을 선보인다. 지난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셀마의 푸른빛 환상은 뮐러의 세례를 받아 스크린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기찻길 뮤지컬 장면의 경우, 장비일체를 프레임 바깥이나 건초더미, 나무 뒤로 숨기고 100대의 카메라를 설치하여 촬영이 진행되었다. 카메라를 트레일러로 연결하였고 그 안에 20대의 모니터가 있었는데, 이 20대의 모니터가 각각 다섯번만 형태를 조절하면 100대의 카메라가 담고 있는 이미지 모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네마스코프 렌즈를 사용했기 때문에 카메라에 비친 이미지는 굴절돼 있는데도, 모니터의 간단한 내부조작은 그 이미지를 본래의 모습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철저히 계획된 시스템의 통제 한 호흡으로 처리된 뮤지컬 장면은 비욕의 음울한 음색과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영혼을 울릴 촉매제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다.
<어둠 속의 댄서>의 영상은 고도의 테크놀로지와 정교한 시스템의 산물이지만, 이 영상의 지휘자 로비 뮐러가 가장 최근까지도 흑백 화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고전주의자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빔 벤더스의 함께 한 일련의 문제작들에서 로비 뮐러는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모노톤의 미장센이 빠르고 화려한 색채 영상보다 훨씬 강렬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음을 입증했다. 라이 쿠더와 함께, 결핍의 심연과 상실의 상처를 화면에 여백에 담아낸 로비 뮐러는 빔 벤더스의 진정한 미학적 동반자였다. 그러나 또한편 로비 뮐러는 현존하는 촬영하는 감독 가운데 디지털로 대표되는 첨단 테크놀로지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1940년 네덜란드 태생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뮐러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조국인 네덜란드로 돌아와서이다. 작가, 뮤지션, 화가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영화학교에서 정식적인 교육을 받게 되고, 졸업 뒤 독일에서 어시스턴트 카메라맨으로 촬영생활을 시작한 그는 당시 어시스턴트 감독으로 일을 하던 빔 벤더스와 만난다. 이때 벤더스의 데뷔작이기도 한 <알라바마>를 촬영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벤더스와의 만남은 마치 인물의 머릿속에나 들어간 듯 그려낸 <파리, 텍사스>의 황량한 풍광으로 뇌리에 새겨진다. 그러나 ‘벤더스의 카메라맨’이라는 꼬리표가 내심 우습게 여겨졌던 그는 이후 여러 감독들과 다양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점차 넓혀나간다.
이즈음 벤더스를 통해 알게 된 짐 자무시와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다운 바이 로>의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의 영상은 그를 수식하는 하나의 수식어가 된다. 필요 이상의 정보를 배제한 채 작품 자체의 스토리에 주력하게 만드는 흑백의 세계는 뮐러를 사로잡았다. 색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회색을 총망라한 듯한 <데드맨>에서 뮐러의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영상은 한껏 도드라진다. 이후 라스 폰 트리에와 함께 작업한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뮐러는 자연스러운 빛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하였으며, 필름으로 찍고 다시 비디오로 전환하고 그것을 다시 필름으로 인화하는 방식의 시도를 한다. 벤더스와 함께한 디지털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다시 한번 촬영감독으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면서 결국 <어둠 속의 댄서>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인 디지털과 전면적으로 조우한다. 언제나, 그는 쉼없이 도전하고 모험했다.
그럼에도 정작 뮐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조건은 스토리이다. “촬영을 못해도 좋은 이야기는 전개될 수 있지만, 아무리 촬영을 잘했다 하더라도 실패한 영화를 구제할 수는 없다.” 촬영에 임하는 그의 태도 또한 이것과 멀지 않다. 함께 해나가는 영화작업에서 자신의 역할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겸손함이 바로 그것이다. 첨단의 기술에도 변하지 않는 기본기는 촬영의 달인으로 오늘을 사는 그의 신념이자, 철학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24아워 파티 피플>(24 Hour Party People, 2002)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
<톰과 제시카>(My Brother Tom, 2001) 돔 로세로 감독
<인 더 붐붐 룸>(In the Boom Boom Room, 2000) 바버라 코플 감독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2000) 라스 폰 트리에 감독
<고스트 독>(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 1999) 짐 자무시 감독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1999) 빔 벤더스 감독
<섀터드 이미지>(Shattered Image, 1998) 라울 루이즈 감독
<탱고 레슨>(The Tango Lesson, 1997) 샐리 포터 감독
<브레이킹 더 웨이브>(Breaking the Waves, 1996) 라스 폰 트리에 감독
<구름 저편에>(Al di la delle nuvole, 1995)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빔 벤더스 감독
<데드맨>(Dead Man, 1995) 짐 자무시 감독
<돼지가 날 때>(When Pigs Fly, 1993) 사라 드라이버 감독
<형사 매드독>(Mad Dog And Glory, 1993) 존 맥노튼 감독
<세상의 끝까지>(Until the End of the World, 1991) 빔 벤더스 감독
<도시와 옷에 놓인 공책>(Aufzeichnungen zu Kleidern und Stadten, 1989) 빔 벤더스 감독
<미스터리 트레인>(Mystery Train, 1989) 짐 자무시 감독
<작은 악마>(Il Piccolo diavolo, 1988)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빌리버스>(The Believers, 1987) 존 슐레진저 감독
<술고래>(Barfly, 1987) 바벳 슈로더 감독
<커피와 담배2>(Coffee And CigarettesII, 1986) 짐 자무시 감독
<다운 바이 로>(Down By Law, 1986) 짐 자무시 감독
<롱샷>(The Longshot, 1986) 폴 바텔 감독
<늑대의 거리>(To Live And Die In L.A., 1985)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보디 록>(Body Rock, 1984) 마르셀로 엡스타인 감독
<파리, 텍사스>(Paris, Texas, 1984) 빔 벤더스 감독
<리포 맨>(Repo Man, 1984) 알렉스 콕스 감독
<트리처스>(Tricheurs, 1983) 바벳 슈로더 감독
<데이 올 래프트>(They All Laughed, 1981)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허니서클 로즈>(Honeysuckle Rose, 1980) 제리 스캇츠버그 감독
<세인트 잭>(Saint Jack, 1979)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미스터리>(Mysteries, 1978) 폴 드 루사네 감독
<유리 천장>(Die Glaserne Zelle, 1978) 한스 쥐센도르프 감독
<왼손잡이 여자>(Die Linkshandige Frau, 1977) 피터 행크 감독
<미국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 1977) 빔 벤더스 감독
<야생오리>(Die Wildente, 1976) 한스 쥐센도르프 감독
<시간이 흐르면>(Im Lauf Der Zeit, 1976) 빔 벤더스 감독
<빗나간 동작>(Falsche Bewegung, 1974) 빔 벤더스 감독
<도시의 엘리스>(Alice in den Stadten, 1974) 빔 벤더스 감독
<주홍 글씨>(Der Scharlachrote Buchstabe, 1972) 빔 벤더스 감독
<패널티 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Die Angst Des Tormannes Beim Elfmeter, 1971) 빔 벤더스 감독
<도시의 여름>(Summer In The City, 1970) 빔 벤더스 감독
<죠나단>(Jonathan, 1970) 한스 쥐센도르프 감독
<알라바마>(Alabama: 2000 Light Years, 1969) 빔 벤더스 감독
<토엣>(Toets, 1968) 팀 톨른 감독
뤽 베송과 호흡을 맞춘 티에리 아보가스트
코폴라, 우디 앨런과 작업을 많이 했던 고든 윌리스도 대가 반열에 드는 촬영감독.
어둠에 대한 집요한 연구 : 고든 윌리스
1972년 할리우드는 전설적인 흥행성공 앞에서 영화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기대치 않은 수확을 거둬들인다. 마피아를 소재로 한 식상한 각본에, 적은 예산으로 고용한 젊은 제작자와 배우로 꾸려진 이 달갑지 않은 프로젝트는 개봉 9주 만에 533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거두는 기염을 토해냈다. 단순히 폭력의 세계만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은 영화의 진정성에도, 냉혈한 모습과 인간적인 면을 두루 갖춘 대부의 내면을 훌륭히 소화해낸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도, 이 모든 것을 조율해내는 코폴라의 탁월한 연출력에도 이미 영화의 성공은 내재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입부의 어둠 속에 그려진 돈 코를레오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하면서도 위엄있는 마피아 대부의 이미지는 뛰어난 연기, 탁월한 연출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분위기를 창출하는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손길은 이미 그곳에 맞닿아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촬영감독’이라는 수식이 무색지 않은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 그의 영화인생은 뜻하지 않은 사이 이루어진다. 불황으로 워너브러더스의 분장사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촬영장을 드나드는 사이, 아역 배우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영화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영화계 사람들과의 친분과 평소 가졌던 사진에 대한 관심은 군복무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뒤 광고계의 카메라 조수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아람 아바키안의 <종말>의 촬영을 맡게 된다. 극영화는 처음인지라 딱히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그간의 다큐멘터리와 광고작업으로 쌓은 실력은 다소 미숙했던 첫출발임에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특별한 기교없이도, 효과적으로 사용된 광학효과와 아름답게 그려낸 영상으로 그는 촬영에 대한 자신감과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촬영감독으로서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는 것은 물론 <대부> 시리즈를 함께 작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의 만남 이후이다. ‘암흑의 왕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어둠에 대한 그의 탐구는 집요하다. 등장인물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건 일쑤이고 더러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장면에 이르기까지, 심도가 깊어 화면의 특정부분을 살리기 어려운데다가 디테일이 살지 않는 어두운 화면은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마뜩치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장면 자체가 하나의 연기가 될 수도 있기에, 때로 배우의 표정을 살리는 것보다 장면의 분위기 연출이 의미전달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밝음과 짝을 이루어 더욱 극명하게 살아나는 어둠의 효과는 작품 곳곳에서 포착된다. <대부>에서의 밝은 결혼식과 어두운 방 안의 대비는 선과 악이라는 내적 감정선을 따라 유유히 흘러들어가며, 영화의 주조를 이루는 황금색 톤과 어우러진 성공적인 화면 창출은 이후 영화계의 전형이 된다. 77년 <애니 홀> 이후 콤비를 이룬 우디 앨런과의 일련의 작업은 이전의 장중함과는 다른 화면으로 또 한번 그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흑백필름과 시네마스코프방식으로 뉴욕의 도회적 정서를 그려낸 <맨하튼>과 낡은 흑백필름의 분위기를 재현해낸 <젤리그>의 영상은 실험성과 독창성을 기반으로 전천후 촬영감독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제작자와 감독들은 앞다투어 함께 일할 것을 청했고, 앨런 파큘라, 제임스 브릿지, 허버트 로스 등과의 지속적인 작업이 이어진다.
작품이 이룩해낸 이러한 성과와 달리, 애석하게도 아카데미는 한번도 그의 화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극적 요소가 없는 다분히 일상적인 코미디의 영상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할리우드의 시각 탓도 있지만, 작품 외적인 사교활동에 중요한 본질을 잃을 수 없다는 그의 외골수적인 성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었다.
그는 직접 연출한 영화 <윈도즈>로 그는 연출자로서의 역부족을 시인했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훗날 그가 세인의 바람대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가치를 둔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으로 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촬영준비에서 후반작업에 이르기까지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는 철저한 완벽주의와 현장 통솔에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가 말하는 좋은 영상의 조건은 외적인 풍족함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창의적인 정신이다.
이화정/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데블스 오운>(The Devil's Own, 1997) 앨런 파큘라 감독
<맬리스>(Malice, 1993) 해롤드 베커 감독
<대부 일대기>(The Godfather Trilogy: 1901-1980, 199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의혹>(Presumed Innocent, 1990) 앨런 파큘라 감독
<대부3>(Maio Puzo’s The Godfather Part III, 1990)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재회의 거리>(Bright Lights, Big City, 1988) 제임스 브릿지 감독
<환상의 발라드>(The Pick-up Artist, 1987) 제임스 토박 감독
<머니 핏>(The Money Pit, 1986) 리처드 벤자민 감독<퍼펙트>(Perfect, 1985) 제임스 브릿지 감독
<카이로의 붉은 장미>(Purple Rose Of Cairo, 1985) 우디 앨런 감독
<젤리그>(Zelig, 1983) 우디 앨런 감독
<내 사랑 시카고>(Pennies From Heaven, 1981) 허버트 로스 감독
<스타더스트 메모리스>(Stardust Memories, 1980) 우디 앨런 감독
<윈도즈>(Windows, 1980) 고든 윌리스 감독
<맨하탄>(Manhattan, 1979) 우디 앨런 감독
<컴즈 어 호스맨>(Comes a Horseman, 1978) 앨런 파큘라 감독
<애니 홀>(Annie Hall, 1977) 우디 앨런 감독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1976) 앨런 파큘라 감독
<명탐정 하퍼2>(The Drowning Pool, 1975)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
<대부2>(Maio Puzo’s The Godfather Part II, 1974)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암살단>(The Parallax View, 1974) 앨런 파큘라 감독
<대부>(Maio Puzo’s The Godfather, 197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콜걸>(Klute, 1971) 앨런 파큘라 감독
<리틀 머더>(Little Murders, 1971) 앨런 아킨 감독<주인님>(The Landlord, 1970) 할 아쉬비 감독
<주인님>(The Landlord, 1970) 할 애슈비 감독
<사랑>(Loving, 1970) 어빙 커쉬네르 감독
<이웃 사람들>(The People Next Door, 1970) 데이비드 그레네 감독
<종말>(End of the Road, 1970) 아람 아바키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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