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된지 10년이 지났지만,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은 물론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강정마을회와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는 27일 오후 2시 제주 세계 평화의 섬 지정 10주년을 맞아 '동북아, 한반도 그리고 제주의 10년,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 남을 것인가'를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동아시아의 질서와 평화'을 주제로 강연했고, 고창훈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제주 세계 평화의 섬 10년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토론자로는 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 김정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회장, 김평선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실장,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소연씨 등이 참석했다.
27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열린 '제주 세계
평화의 섬 지정 10주년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
◆ 고창훈 교수 "제주4.3치유 국제사회 인증...강정평화대학원 설립"
발제에 나선 고창훈 교수는 '평화의 섬'이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제주4.3의 완전한 해결과 강정마을의 민군박합항 건설 갈등이 해소돼야 한다는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고 교수는 4.3의 해결을 위해 "32개항의 청원문의 내용을 소개, 미국 의회에 청원해 제주4.3 치유의 한미공동위원단을 구성, 국제적 해결의 근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념 갈등으로 결부지을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고 교수는 "강정마을의 평화를 말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제2의 4.3이라 말한다. 그만큼 강정문제 해결에 국가가 개입하고 탄압했던 부정한 상황이 재현되고, 강정마을이 무참하게 무시당하고 탄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라며 해군기지 갈등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강정마을의 평화를 보호하고 계승하는 취지로 가칭 '강정평화국제대학원'을 마을 내에 설립하고, 마을과 제주대 연구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주도와 중앙정부에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이 대학교를 UNEP와 같은 UN환경기구화 하는 정책을 추진해 '환경과 평화'를 융합해 나갈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위성곤 의원 "해군기지 갈등해소 선행...평화사업 제주만의 고민 필요"
위성곤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강정 해군기지 설치 문제와 관련해 "과거부터 제주에 군사기지를 만들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고, 도민들은 많은 저항을 해왔다. 모슬포 군사기지에 저항헤 도민들이 승리했지만, 이를 뛰어넘어 국가는 다시 해군기지를 도민 합의 없이 추진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위 의원은 "평화의 섬 선포 10주년이 됐는데 과연 정부에서 주장하는 평화의 섬과 우리가 하고 있는 평화운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민했다. 명확히 정리하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라며 "강정마을 싸움이 없었다면 평화의 섬 양상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평화운동은 거의 대부분 강정 현장에서 이뤄졌다. 주민들의 아픔을 함께한 것이 평화운동으로 진행돼 왔다"며 "이 문제와 더불어 4.3문제로 발생된 평화의 문제를 어떻게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 그 기억을 함께 공유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위 의원은 "제주 4.3에 대한 역사적인 정리가 끝났는데 일부 극우세력들이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4.3을 흔들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는 평화운동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의원은 "평화사업에 대한 제주만의 고민을 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준비되고 있는 4.3평화상이 어렵게 싸우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27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열린 '제주 세계 평화의 섬 지정 10주년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
◆ 고권일 부회장 "해군기지 사업과 '평화의 섬' 양립할 수 있나"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동북아시아 지정학적 역학관계, 구조방식 등은 사실 제게는 다가오지 않는 얘기다. 개인이 봤을때 민주주의의 완성, 개인으로서의 자아실현, 내적충돌과는 거리가 먼 문제"라며 강정마을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했다.
고 부회장은 "해군기지 문제를 겪으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너무나 많이 생겼다. 지구상에서 어떤 역사를 봐도 권력이 민중들에게 돌아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라며 "그간 국가는 폭력으로 구성됐고, 권력을 실체화 시키는 수단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섬에 대해 "지정학적 위치와 변방이라는 특징 때문에 지배자의 속성에 의해 주물러졌다. 토호세력은 저항하는 세력으로 남지 않고 오히려 권력과 결탁해서 민중을 탄압하는 구조를 보여왔다"고 진단했다.
고 부회장은 "제주도에 군사기지가 들어온다는 문제는 굉장한 폭력을 받아왔던 환경을 봤을 떄 제주도민들에게 아픈 부분"이라면서 "해군기지는 사업추진 방법 자체가 평화적이지 못했다. 절대다수의 주민들의 뜻이 왜곡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도 제주도는 과거 조선시대 못지 않게 통제받고 실험대에 오르는 '모르모트' 신세"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사업을 진행했고, 국회 부대조건조차 무시한 사실만 봐도 과연 해군기지 사업이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 있겠나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제주도민 스스로 평화의섬 주민이라고 고취될 수 있는 교육활동이 세대에 구분 없이 폭 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해군기지도 결국 소멸돼야 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명제로 둬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 "도덕적이지 못한 해군기지...제주가 '평화의 섬' 자격이 있나?"
제주대학교에 재학중인 김소연씨는 "평화의 섬이 잘 진행됐는지 나름대로 점수를 매겨봤는데, 10점 만점 기준으로 5점을 줬다. 점수를 준 경위는 '시작이 반'이라는 옛 말 때문이고 나머지는 전부 0점 처리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강정마을 문제에 대한 진실과 화해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싸움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한국이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편가르기에 속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문제를 짚었다.
김씨는 "지나가는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사실은 강정 해군기지가 들어섬에 있어 도덕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진상조사의 취지나 의의는 적합하지만 진작 진행됐어야 할 일이었고, 실효성이 있는가도 상당한 의문이 든다. 진상조사 이뤄진 다음에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평화의 섬' 자격이 제주에 주어질 수 있겠나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패권국 이해관계에 끼어있는 상황이다. 평화라는 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갖는 것이지 어디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이 '수단'으로 남을 것이냐 '주체'로 나아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말미에 그는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인용해 "대단한 재단사가 만든 옷을 임금님이 입으니 사람들은 모두 옷이 보인다고 했다"며 "대단하신 분이 대단하신 이유로 평화의 섬이 지정됐다고 했는데, 정녕 평화가 보이는지 묻고 싶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밖에 토론자로 나선 김정임 제주여성농민회장은 고향인 서귀포시 대정읍의 사례를 들며 모슬포 공군기지 투쟁 과정을 생생히 설명, 강정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평선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실장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제주4.3을 제대로 성찰했는지에 대해 되돌아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