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클로스터 시의원에 출마하는 제니 정 과
백림사 혜성스님의 한국인 2세로 살아가는 이야기
: New Faces. Fresh Ideas.
A Talk about Being 2nd generation Korean American.
취재/ 홍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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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얼굴, 신선한 아이디어’ 제니 정
1977년 생 제니 정은 밝고 쾌활한 첫인상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 할 일꾼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20년 이상 클로스터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 곳에서 18년 동안 운영하며 블루클린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고, 또 같은 한인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고, 현재는 어머니처럼 자영업을 하는 중소 상인을 위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처음 제니씨의 가족이 클로스터에 정착 할 당시만 해도 지역에 사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현재 클로스터 시의 전체 인구 중 30%가 한국계 미국인 이지만, 정작 한인을 위한 시의 일꾼으로 한인 시의원은 커녕 한인 경찰조차 단 한 명도 없다. 위급상황시 상황에서 911이나 경찰을 부르면 통역을 하기 위해 시에서는 인근의 한인 목사님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받는 처지라고 한다. 제니씨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장사를 도우면서 주위의 한인의 비즈니스가 침체되는 것이 안타까왔고, 타운의 여러 혜택과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입법기구인 시의회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변의 조언자들로 부터 이 지역의 젊고 새로운 일꾼이 필요하다며 출마를 권유 받았을때 선뜻 수락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다정한 이웃으로 사랑받는 지역주민의 명소로 어머니가 꾸려오신 아이스크림 가게와 어린시절의 추억을 아들 레무스에게도 물려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홈 타운을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결심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가게를 닫기로 했을때 손님에게 안내문을 붙여 문닫는 소식을 알렸더니, 몇몇 단골 학생들은 울면서 서운해 하며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고 기념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실제로 제니씨가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운동을 할때 예전 단골고객들이 제일 반갑게 환영하며 열열하게 지지를 해주는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한다. 비지니스를 하면서 지역의 사랑방 역할과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한 보람으로 제니씨의 선거 운동에 많은 보탬이 된다고 하니, 이 또한 선행이 곧 선업이 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이야기이다. 또 제니씨는 미래의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 지역 문화 그리고 중소상인을 비롯한 중산층이 잘 사는 지역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한 일을 하는 데 열성적이다. 그녀는 이미 중학교때, 브롱스의 리버대일에 있는 유태인 학생이 대다수인 학교를 다녔는데, 그 곳 학생회장 선거에서 ‘너라면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고 좋은 아이디어로 학교와 학생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거야’라는 말에 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인기도 없었던 조용한 한인 여학생이’ 부담없이 여러 학생들과 소통해 가며 이루어낸 성과로 그녀는 부학생회장이 되었다. 일진행 보살은 당시 방과 후 딸을 픽업하러 와서 다른 학부형이 “한국 여학생이 부회장이 되었다더라.”는 말에 나중에 딸에게 물어보니,“엄마, 내가 그 부학생회장이예요.”라고 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제니씨가 아들 레무스를 임신 6개월만에 낳아, 많은 사람과 함께 가슴 졸이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너무도 작고 연약한 아기였던 레무스는 인큐베이터에서 몇 달간 지내야 했었다. 그랬던 아기가 2013년 내셔널 지오그라픽 잡지에 표지모델로 나올만큼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다. 현재 4살이 된 레무스는 어린이 모델로서 유명한 의류회사 갭, 그리고 타겟 등의 모델로 활약하며 ‘가족 중 게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제니씨의 남편 역시 뉴욕시의 중소 사업가를 위한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가족이 모두 낙천적이고 밝아서, 만나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https://t1.daumcdn.net/cfile/cafe/2230BB3455F971FC25)
힘든시기를 사랑과 희망으로 이겨낸 제니 정의 아들 레무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의 표지모델을 했다(좌)
‘어머니 일진행 보살과 불교의 인연’
일진행 보살은 한국에서는 불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어머니 일진행 보살님은 1977년 제니를 임신한 채 당시 시카고에 살던 오빠의 초청으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했다. 제니씨가 아직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때 다시 뉴욕으로 이사 와서 잠시 플러싱과 브롱스에서 살다가 클로스터에 ‘Yogurt Lovers’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인수하고 지역의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웃이 되었다. 약 18년 전 갑작스럽게 남편과 사별하고 처음으로 원각사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불교와의 인연의 시작었다. 당시에 법안스님이 계셨고, 그 후 길상스님, 혜각스님 등을 뵐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게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정작 절에는 일년에 한 두번 정도 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집 가까이에 보리사가 생기면서 더 자주 절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백림사는 3년 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어떤 분의 49재 초재와 다음날에도 또 다른 제사가 겹쳐 당시 공양주이던 최보살이 도움을 청하였다고 한다. 일진행 보살은 별 생각 없이 다만 손이 모자라는 제사 준비를 도우면서 그렇게 백림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가게가 있던 상가 플라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비즈니스를 접게되었는데, 아예 백림사에 공양주로 들어와서 살면 어떻겠냐는 제의에 작년 9월부터 백림사 절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출가 한 남동생 미산스님’
미산스님은 현재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소임을 보고있는데, 스님의 속가 누나가 바로 제니씨이다. 스님은 하와이 무량사에서 2년 간 생활을 하고 한국의 노휴스님을 은사스님으로 출가해 송광사에서 강원생활을 4년간 하고 작년에 비구계를 받았다. 미산스님은 어머니와 함께 무량사에 머물고 있을 2008년 까지만 해도 불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마침 주지였던 도현스님이 한 달간 절을 비우게 되었고, 한 달간 천수경을 염불하라며 도현스님으로 부터 목탁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홀로 성경을 탐독하며 나름의 기독교적 종교관을 갖고 있던 미산스님이 그 한달 동안 목탁 치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후에 마곡사의 전 주지 진호스님이 무량사에 머물면서, 미산스님에게 출가를 권유하였고, 어느날 홀연히 한국의 송광사로 가서 행자생활을 하고 결국 강원을 졸업하였다. 일진행 보살은 오히려 자라면서 제니씨가 더 불교적이었는데, 아들이 그렇게 출가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지금은 불교소식을 통해 전해듣는 미산스님의 소식이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혜성스님과 미래의 한인 정치가의 역할을 논함’
혜성스님은 제니 정의 한인 정치의 참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앞으로 더 많은 한인 정치가가 배출되고 또 많은 한인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소통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만 한다고 강조 하셨다. “미국은 한국의 영원한 우방입니다. 지금 많은 한인이 미국 사회에 정착해서 잘 살고 있는데, 지속적인 고국의 발전,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더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미국의 주류에서, 워싱턴 정계에서 한국과 한인을 위해, 또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일하고, 그런 젊은 정치인을 서포트 해야 합니다.”라고 혜성스님은 말한다. 제니 정의 출사표는 결코 만만하지만은 않다. 지난 10여년 간 클로스터는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으로 단 한 명의 민주당 시 위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실제 등록된 민주당 주민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계의 정치 참여율이 너무 낮은 탓도 있다. 한인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비즈니스와 자녀의 학군때문에 이주 한 학부모는 자신의 가족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제니씨는 말한다. 실제로 제니씨가 선거 운동 차 한인 집을 방문해 문을 두드리며 한국말로 인사를 해도 그냥 문을 닫거나 시간이 없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이 번 년도의 선거는 주정부 차원의 선거가 아닌 지방 시의원 선거만 실시하기 때문에 25년 만의 최악의 투표율을 예견 한다고 한다. 제니씨가 선거 운동 할 때 만난 한인이 멀리서도 손사례 치며 도망을 쳐서 답답하다고 하자 혜성스님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이예요. 관심이 없다는 건 아는 게 없다는 것이고… 자기는 도움을 받은 적도 없으니 지역사회에 돌려 줄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정치에 참여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 다릅니다. 예로부터 반도에 사는 사람은 정치에 밝고 관심이 많다고 했어요. 소수이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습니까. 삶이 윤택해 졌기 때문에 이제는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이에 제니씨는 “클로스터는 정말 살기 좋은 곳 이예요. 우리는 집 열쇠 없이 문을 잠그지 않고도 오랫동안 안전하게 살아오고 있어요. 현재 중소 사업을 하는 한인을 도와 렌트비가 너무 비싸게 책정되는 것을 조절하고 젊은 가족이 타운의 문화 혜택을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커뮤니티 활동을 활성화 시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알리고 더 찾아가는 수 밖에는 없겠죠. 열심히 뛰겠습니다.” 제니씨는 매일 일이 끝난 오후 6시 부터, 가가호호 유권자의 집을 방문하며 이번 선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혜성스님의 당부처럼, 젊고 힘이 있는 한인 정치가를 배출 해서 중산층과 소수계층이 균형있게 잘 사는 건강하고 새로운 지역사회를 꿈꾸며, 클로스터의 ‘새 얼굴,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니 정을 통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제니 정 jannie@closterdemocra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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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