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상설교(13)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
마태복음 5장 13-16절/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첫 번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들의 주께로부터 받은 ‘천국을 소유한 복’에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여덟 가지를 들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팔복’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이는 여덟 가지의 복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주님을 따름으로 그들이 받은 복인 주의 나라인 천국을 소유함이 그들에게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여덟 가지를 들어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복을 선언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천국이 너희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난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을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누구인지, 곧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누구인가를 두 가지를 들어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부연 설명을 붙이셨습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라구요. 예수님이 이처럼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면서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아무 데도 쓸모없게 되어서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소금을 비유로 들어서 말씀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이 자신을 따름으로써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긍휼이 여김, 의에 주리고 목마름, 마음의 청결함, 화평케 함,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로 있어서 예수님의 나라인 천국이 그들의 것인 복에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팔복에서 선언되고 있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하여 ‘제자는 세상의 소금’이요, ‘제자는 세상의 빛’이란 원리 속에다 두십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시고 또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실 때 제자들이 그 소금과 빛의 주체인 것에서가 아니라 세상의 소금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자로 있는 것에서 예수님과 같은 소금이라는 것이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은 자인 것에서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소금과 빛의 주체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소금이시며 예수님이 빛이시므로, 그분과 함께 하는 제자는 그 속에 그분의 형상이 있는 자이니 그 또한 소금으로 빛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를 ‘세상의 소금’으로 비유하시며, 또한 ‘세상의 빛’으로 비유하시는 것은 이것이 지니고 또한 드러내는 ‘맛’과 ‘밝힘’의 특성을 가지고 설명하시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소금’과 ‘빛’은 앞서 팔복에서 선언되고 있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 있다‘, ’온유한 자는 복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 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 있다‘를 선언한 ’예수님‘과 그분이 선언한 ’복‘인 ’천국‘입니다. 곧, ’예수님과 그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예수님이 그들의 주이시며 그의 나라가 그들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소금과 빛을 들어서 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드러내어 모든 사람이 소금인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알게 하시고 빛을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소금을 가지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그것이 지닌 특성인 짠 맛으로 음식에 들어 있는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말이죠. 소금이 그 맛을 잃어 아무런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는가 하면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인 천국을 세상에 드러내는 자로 있는 것에서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다만 짓밟히게 될 뿐입니다. 소금이 결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죠. 우리가 맛이 나지 않는 소금을 먹어 본 일이 없는데, 소금이 그 맛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금이 아니고 다만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흙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논리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서는 그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 애통하는 자이며, 온유한 자이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며, 긍휼히 여기는 자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이며, 화평케 하는 자이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이며, 이렇게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있는 예수님과 그분이 선언한 복인 천국을 그들을 보는 자들에게 보여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빛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산 - 언덕 - 위에 있는 동네가 집집마다 불을 밝혀 둠으로 그 동네가 감춰지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고 누구나 불을 밝힌 그 등잔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비추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산 위에 있는 동네가 감추어 있지 않게 그 존재를 드러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심령이 가난함으로 있고, 애통함으로 있고, 온유함으로 있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있고, 긍휼히 여김으로 있고, 마음이 청결함으로 있고, 화평케 함으로 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음으로 있는 것에서 오직 주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에 있음을, 그래서 예수님과 그분이 선언한 복인 천국을 그들을 보는 자들에게 보여 알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여덟 가지인 ’심령이 가난한 너희는‘, ’애통하는 너희는‘, ’온유한 너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너희는‘, ’긍휼히 여기는 너희는‘, ’마음이 청결한 너희는‘, ’화평케 하는 너희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너희는‘, 그래서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따르는 너희는‘ 소금과 빛과 같아서 그 맛을 잃거나 그 빛을 감추어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그 맛을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산 위에 있는 동네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맛을 보고 또한 그 빛을 보고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착한 행실’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소금과 빛을 가지고 “너희는 너희가 지닌 그 맛으로 모든 사람에게 소금의 존재 드러내 알게 하고, 너희는 너희가 지닌 그 빛으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산 위에 있는 동네의 집집마다 밤에 불을 밝혀 온 방 안을 환하게 비추는 빛의 존재를 드러내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를 소금처럼 짠 맛을 지닌 자가 되어서 온 세상을 딱 간이 맞는 맛있는 음식처럼 만들고 또한 빛처럼 빛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서 온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과 그리스도인으로 맡아서 할 수 있는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어떤 한 도시를, 또는 나라를 악한 죄가 없는 깨끗한,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 가야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의 이해를 사회악을 지배할 수 있는 것에다가 둡니다. 부패한 사회를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로 만드는 것에 그리스도인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부패된 세상을 더 이상 부패되지 않게 하려면 소금이 그 맛을 잃어서는 안 되며, 빛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러는 한에는 세상의 부패를 멈추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동화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에서 한 나라와 지역의 복음화를 말하며, 한 도시나 동네의 성시화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 사회의 악과 죄가 멈추게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져서 사회를 지배하면 세상은 밝은 세상이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니, 소금과 빛의 사람으로 여기에 걸맞게, 여기에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우는지요. 즉 맛을 잃은 소금으로 있고, 불을 밝힌 등잔을 됫박으로 덮어 가리우는 일을 하는지요. 이것은 사람들이 우리의 그러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복음을 증거하는 데 두지 않고서, 그래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섬기게 하는 것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무리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 불빛을 됫박으로 덮어두고 감춤으로써 산 위에 있는 동네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하는 등잔이란 있을 수 없는데,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해나갑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며 그만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금이 지닌 그 맛과 불을 밝힌 빛 - 팔복 -이 나타내는 그 밝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자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보내신 일을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제자들이 나타내 보임으로써 사람들이 보게 하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게 하시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자신이 주로 섬기는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드러내는 일을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증거하여 이것을 드러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받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하신 그 소금과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에서 사람들이 그 착한 행실을 보게 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라는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구속의 대업을 이루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라고 약속하시고 또한 그 약속을 오순절에 성령강림하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가 있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금의 맛을 나타내지 못하고 빛을 발휘하여 나타내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며,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을 염려하여 다 도망쳐 흩어졌으며,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은밀히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성취가 있은 후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자신 안에 그들을 두시고 권능을 행해 나가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온 세상에 생명의 주가 되심을 전하는 증인으로 있었습니다. 이 증인이 되는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팔복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하여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혀 있음으로 부터 나오는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 긍휼히 여김, 마음의 청결함, 화평케 함,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나 그 즐거움에 있는 영의 사람으로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스러워하였으며,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인즉 또한 그와 함께 받는 고난을 당연시 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한 대로 증인인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과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시며 자기 앞에 그분의 나라가 놓인 사실로 인해 그것을 바라보며 그 즐거움을 인하여 자기 몸을 쳐 복종케 하고 오직 영으로만 살아감에 있는 것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란 말씀이 의미하는 예수님의 제자된 정체성을 보게 되며 그 진정성을 알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