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종, 김석진, 박찬도, 안철주, 윤봉수, 이경환.
이성동. 이흥주, 장주익, 정전택, 허필수, (강인성)
김소영, 김소자, 김영자레아, 김옥연, 김정희, 송경희
안명희, 엄명애, 윤삼가, 이복주, 이순애, 최경숙,
김동식.송군자, 김영신.윤정자, 김용만.이규선, 박동진.방규명,
윤종영.홍종남, 이규석.이영례, 이달희.박정임, 이창조.정광자,
임병춘.이정수, 정정균.임금자, 주재남.김운자,
진풍길.소정자, 함수곤.박현자, 황금철.한숙이 (52명)
'한 사흘 세차게 몰아쳤으니 그만 내리면 좋겠네.’
40년만의 가뭄으로 애타게 비를 기다리던 마음이
어느새 장마가 끝나기를 바라는 모습대로
비가 그친 7월 26일 오후 3시 30분
한사모 회원 52명이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 모였어요.
장주익사진위원님이 일찍 나오셔서
멋진 작품을 찍느라 바쁘십니다.
풍수가 뛰어난 북악산 자락 아래
아름다운 경관을 확인할 것입니다.
예술인들이 많이 산 흔적을 찾아보려 합니다.
지구촌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언덕길가
숨어있는 대사관저를 스쳐가려 합니다.
대신 성북동하면 떠오르는
길상사, 심우장 ,수연산방, 최순우 옛집, 선잠단지는
지나가지 않습니다.
숨어있는 평범한 골목길과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성북동을 찾는 묘미가 아닐까 조심스레 손을 뻗는데 괜찮을까요?
시인 김광섭 집터, 소설가 염상섭 집터, 시인 조지훈집터 ~ 법천사 골목길~
타운 하우스 어승재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 멕시코,노르웨이,
모로코대사관저 ~ 한국가구박물관∼ 케냐,유럽연합, 세네갈,
핀란드,방글라데쉬, 폴란드, 알제리대사관저 ~ 북악하늘길 ~
중국·캐나다대사관저 ~ 하늘한마당, 성북공원 차례입니다.
한옥이랑 양옥이랑 뒤섞여 특별할 것 없지만 정겨운 길이지요?
오르막길에 연노랑꽃이 귀여운 덩굴식물이 반겨줍니다.
당뇨에 좋다는 여주가 매달려 있네요.
몇발짝 더 올라 김광섭 집터에 닿았습니다.
성북동 168-34란 주소가 시인이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빌라 한 채가 오똑 서있을 뿐입니다.
'저녁에’ ‘성북동 비둘기’로 잘 알려진 시인 김광섭,
해방전 4년의 옥고 끝에 해방후 좌우익의 극한대립의 소용돌이에서
우익 문학단체를 이끌고 이승만대통령의 초대 공보비서관을 지냈지요.
대한민국 최초 대통령 비서실장인 셈이지요.
뇌출혈 발병후 권력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하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를 내놓았어요.
2층 양옥이 <성북동 비둘기>의 산실이라는데
다세대주택으로 변한 모습입니다.
흔적이 없어진 겁니다.
다시 골목길을 내려옵니다.
큰 길가 전봇대에는
태극기와 대사관저가 있는 나라의 국기가 나란합니다.
홍익사대부고 오르는 길 왼쪽 2층집이
소설가 염삽섭씨가 살았던 전셋집입니다.
3 ·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동아일보 기자를 하며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합니다.
한국의 발자크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소설의 기틀을 세웠다고 하지요.
한 번도 자기집을 가져본 적 없이 1963년 성북동 전셋집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도 이곳엔 없습니다.
시인 조지훈 집터 입구 큰길가
시인의 방을 조형물로 꾸며놓은 방우산장입니다.
시인이 아끼던 그의 시, ‘낙화’가 새겨져 있어요.
‘방우산장(放牛山莊)’이란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랍니다.
골목길 돌아들면 별 특색이 없는
붉은 벽돌 건물 앞에 조지훈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돌판에 대표시 <승무>와 승무를 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어요.
자연과 불교를 향한 관심이 작품에 많히 반영되었는데
<역사 앞에서>에서 시적 전환 보여
<청록집> 에서 나타난 시세계와 달리
현실에 대응하는 시를 썼지요.
성북동성당을 지나 법천사 가는 언덕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오전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덥고 습기가 많아
벌써 쉬어가자는 소리가 들립니다.
법천사에서부터 길은
그야말로 다닥다닥 좁은 60년대 달동네 골목길입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 집들이 많은데,
사이사이 이런 정겨운 골목길도 있어 성북동은 더 매력적입니다.
얼마전까지 빨갛게 앵두가 익어가고 삽살개도 눈을 비비며 쳐다보던
좁은 길입니다. 골목길에 내놓은 화분에서 꽃은 다투어 피어납니다.
이제는 문을 닫은 구멍가게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38년을 통장을 하셨던 80이 다 되신 할아버지는
쌀집과 연탄가게도 겸했던 그 당시 장사가 잘돼 아이들 셋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자랑을 하십니다.
남들이 뭐라건 골목길에 사는 이곳이
제일 좋은 동네라고 평생을 사시겠답니다.
타운하우스 어승재가 우람합니다.
옆건물 동방대학원대학교 아래
옛미륵당 옆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성북동에는 불교시설이 유난히 많은데
그 중에서 암자만 200개가 넘었답니다.
옛미륵암 자리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고종황제가 미륵암으로 불공을 드리러 오셨는데
갑자기 큰비가 내렸답니다.
돌아가실 때는 당시 성북천 물이 많이 불어나
주민이 업어서 건너드렸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우리 한사모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시며 행사 때마다 후원해 주시는
박경재 총장님이 4개월 전 취임하신 학교입니다.
엊그제 해외출장을 떠가시는 바람에
저희와 조우할 기회를 놓치셨대요.
이를 전하시는 함수곤 대표님의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네요.
문화예술콘텐츠학과, 불교문예학과, 자연치유학과, 미래예측학과
총 네 개 학과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 및 석. 박사통합과정을 운영합니다.
옻칠조형, 명리, 인상, 풍수, 주역, 철학 과정이
유명한데 연구과정도 있답니다.
제가 서울시교육청 재무과 근무 당시
상사로 근무하신 김태숙
전학교안전공제회 사무국장님이
엊그제 서예연구과정을 졸업하셨지요.
서예에 관한 새로운 눈을 뜨셨다고
만족해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계단을 올라 오른쪽을 향하면 바로 멕시코대사관저입니다.
첫댓글 성북동 해설가인 이순애 부단장님 덕분에 우리는 성북동이 예사로운 동네가 아니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성북동 공부에 큰 도움이 될 묵직한 자료와 향기로운 위스키 명주를 준비한 열의와 성의에 감동 받았어요
깊은 감사드립니다. 해박한 후기는 예술과 오늘의 지구촌을 배우는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힘들었습니다. 폭염과 경사길, 답답한 골목 등 때문입니다.
저 자신은 무식하게도 옛 문인들의 흔적과 외국대사관저 모습 등에 관심과 호기심이 별로 없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만일 그 반대였다면 그길이 결코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주말걷기에서 너무 힘든 길은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북동 골목길,대사관길 안내 전문가이신 이순애부단장님의 열의에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 언덕길 골목길을 오르막내리막하며 무더위를 이겨내셨던 한사모회원님들께도 박수를 보냅니다.
숨어있는 대사관길을 스쳐 지나치며 많은 생각이 교차하기도 하였으며 60년대 골목길이 아직도 성북동 부자마을에 존재한다는 그것도 새로웠습니다.봉숭아학당 낭송세미나 자료집을 나눠주시며 뭔가더 깨우쳐주시려는 그마음에도 절로 고개숙여졌습니다.감사합니다.
매번 코스를 평지만 걸을수는 없으니 고령화로 체력이 부족하신 회원은 지하철 탑승전에 심사숙고 하세요. 사고 방지 차원입니다. 안내자의 각고의 노고를 존중하오며 !!!!!
먼저 죄송하고 그저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며 코스를 정하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 걷기 좋은 길 공모전이 있어 두루두루 고심하여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니 미안함을 조금 상쇄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