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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의정부 좋은나무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쵸코
예배회복-친밀함과 예배
신명기30장에 하나님이 복이시라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그 어떤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복입니다.
[출애굽기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1.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는 영으로 presence입니다. 문자대로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곳에)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재에 대한 성경의 표현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무소부재(無所不在)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개인적인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두 번째 표현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18:20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세 번째, 시편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 중에 기뻐 거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거하신다”는 말을 다른 성경에서는 “좌정 하신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좌정한다는 표현에 과거에 왕에게 주로 썼던 표현이었습니다. 이 의미는 단순히 함께 있겠다는 애기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왕의 신분으로 왕의 통치권과 왕의 권세로 임하시겠다는 애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마디 표현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언어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자체가 사실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오른팔로 붙드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의 오른팔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은유적 표현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언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함께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5:12-14 “12-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 서 있다가 13-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 구절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할 때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내용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임하시는 모습을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구름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14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하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 ‘영광’이라는 단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광’ 이라는 단어를 하나님 편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건물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교회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거처를 삼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 위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 그분의 영광으로 인해 그분을 더욱 알게 되고 그분을 더욱 알아감으로 더욱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40:34,35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구름과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4-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이사야6:3,4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스랍들과 하나님 주위에 있던 천사들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위의 두 곳 모두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영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임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임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임재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여 거하셔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통로가 뭐냐? 바로 예배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임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그러한 예배가 실제적으로 우리 가운데 드려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전혀 개념이 없고 그런 임재에 대해서 어떠한 사모함도 없으며 그래서 전혀 하나님과의 교제 열리지 않는 그러한 예배가 우리 가운데 상당히 많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는 놀라운 은혜들이 있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고후3:18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우리들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화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봄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우리 가운데 많은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적인 치유, 육신적인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비쳐지고 경험되어짐으로 마음속의 미움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변화 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가운데 있던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되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1.하나님을 추구하는 예배
특히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또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그리고 하나님 자신만을 구하는 것이 참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2.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3.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
2.하나님과 친밀함의 예배
그리고 오늘은 네 번째로 하나님과 친밀함의 예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친밀함이란 호6:3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알자”는 히브리어로 “야다”입니다. 이 “야다”는 “여호와를 알자”라고 할 때뿐만이 아니라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야다”란 단어를 씁니다. 부부가 관계를 통해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아가는 것처럼, 전에는 남이었지만 부부가 되어서 자기의 허물을 다 보이기도 하고 남이 모르는 비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처럼 이런 것을 하나남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친밀함이라고 말합니다.
존 윔버목사님은 이 친밀함을 네 가지로 정의하셨는데
1)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것
2)깊은 자신의 마음을 보이는 것
3)가장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4)항상 서로 교감하는 것
즉,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가장 깊은 마음을 보이는 것, 즉 나의 모든 수치라든 나의 깊은 속까지 숨기지 않은 것, 가장 가까운 관계 형성하고, 언제든지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예배드릴 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를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성도들의 관심은 하나님과 친밀함이 아니라 자기의 문제해결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복들에 온 관심이 있습니다.
3.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한 요소들(하나님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십시오)
예배와 개인이 하나님과 갖는 친밀한 관계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한 구체적인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갖는 개인적인 교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절대로 친밀함이 열리지 않습니다.
예)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우리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말귀는 알아듣겠는데 실제 삶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또 믿는다고 하는데 막상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이 전혀 나의 힘이 되지 않아요. 도리어 돈이 힘이든지, 좋은 자동차, 넒은 아파트, 좋은 직장, 높은 지위가 힘이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이 실제 우리의 힘이 되려면 먼저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이 비춰져야 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 먼저 비춰져야 합니다. 그때에야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우리의 눈이 하나님께만 고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이 선명하게 비춰지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요소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아무리 훌륭한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여도 실제 삶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가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는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도 우리와 똑 같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수시로 기지셨습니다.
마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눅9:28,29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눅5:15,16 “15-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 주님과 갖는 개인적인 시간은 필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에 의한 삶, 오직 은혜에 의한 삶,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서는 삶 등을 이론적으로 정확히 알아도 이 삶을 실제로 살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운전교습 배우듯이 하는 것 같습니다. 운전학원에서 강사로부터 “빨간 신호등에는 서십시오, 파란불이 들어오면 가십시오” 이렇게 교습을 받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론시험에 100점 받으면 운전을 잘하는 것처럼 여깁니다. 여러분 아무리 필기시험에 100점을 받아도 그것을 운전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운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실제로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마치 결혼생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거나 성경공부를 통해 이론적으로 많이 알게 되면 그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혀 신앙생활을 실제로는 시작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실제로 설교를 통해, 성경공부를 통해 배웠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전 필기시험을 만점 받았다고 해서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려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님과의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신앙생활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의한 삶이 어떻다고 아무리 이론적으로 배워도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교제를 갖지 못하면 믿음에 의한 삶은 살지 못합니다. 마치 ‘장롱면허’처럼 말입니다. 운전면허는 땄는데 한 번도 운전을 안 해본 사람처럼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실제로 주님과 공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은 필 수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다른 일이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지셨습니다.
이렇게 하십시오. 믿음에 의한 삶을 배웠다고 합시다. 그런데 주님이 인식되질 않아요. 믿음에 의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주님이 인식되는 것인데 주님이 도무지 인식되지 않습니다. “뭐야, 왜 내겐 주님이 인식되지 않는 거지? 귀에 들리는 거야? 눈으로 보는 거야? 속이 상합니다.
주님은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서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통해 인식되는 분이 아닙니다. 이럴 때에는 주님이 인격체로 인식되어질 때까지, 믿음에 의한 삶이 경험되어 질 때까지 빛이 비추어질 때까지 주님께 기도해야합니다. 매어달려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 시간에 필요한 첫 번째 요소 - 경배
개인적인 경배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 예수 하나님의 공의 - 하나님의 사랑을 선명하게 보여주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예배함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앉자마자 주시옵소서 이것도, 저것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죽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초점을 문제에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봐야 하는데 문제만 보고 있는 갑니다. 마치 청구서를 제출하는 식으로 기도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할 것은 “우리 아버지”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형성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게 필수가 찬양과 경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청구서 내미듯이 나아가지 마시고 예배하며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예배함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전 하나님이 좋아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주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세요.”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함으로 나아가십시오. 찬양함으로 나아가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인하여 찬사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분께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가십시오. 찬양과 경배가 이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 선명하게 비쳐올 때까지 찬양과 경배를 드리십시오.
처음에는 잘 안 될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주님이 임재해 주시기 시작하며 임재를 경험할수록 더욱 쉬워집니다.
처음에는 터널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이 주님을 부르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만 주님이 인격체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을 부르지만 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막막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십니다. 마치 태양이 구름 위에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 잘 안된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알기 원하고 그분을 사랑하길 원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기 원하고 사모하고 열망하게 될 때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곧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고 그분의 숨결이 느껴지면 순풍에 돛단배처럼 경배 가운데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분이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과 개인적 시간에 필요한 두 번째 요소 - 말씀
먼저 찬양을 드리시든지 말씀을 먼저 읽으시든지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전에 말씀을 읽거나 찬양을 통해서 경배 가운데 들어가면 기도할 때 훨씬 유익할 것입니다. 말씀은 발에 등불이고 양식이며 생명의 떡입니다. 말씀을 정해놓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분량을 읽지 않더라도 읽으신 후 기도하시면 좋습니다. 아면 ‘오늘의 만나’ 같은 묵상 책자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 시간에 필요한 세 번째 요소 - 중보기도
찬양과 경배 그리고 중보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한 가장 중요한 두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란?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넘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짐으로 경배와 말씀과 중보기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과 더 친밀함이 열리게 되어 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친밀함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의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보게 할 것입니다. 이때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