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에서 출발한 시내버스 종점이 말죽거리(양재동)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의 얘기를 더 보탠다. 그 시절 명동에 본사가 있던 어떤 대기업의 입사동기 열댓명이 월급날이면 월급봉투를 들고-그 시절에는 통장 입금이 아니라 누런 봉투에 월급을 현금으로 담아 주었다-명동에서 아무 버스나 타고 무조건 종점까지 회식을 하러 갔다. 종점 근처 허름한 식당에 자리 잡으면 월급의 10%를 판돈으로 걸어 놓고 한 사람이 판돈을 쓸어갈 때까지 고스톱을 쳤다. 그날의 승자는 회식비를 지불하고 남는 돈으로 근처 땅을 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같이 간 동료들의 훈수와 평가, 식당 주인의 귀띔이 구매 기준이었다. 월급명세서라는게 없던 시절이었으니 집에는 월급을 10% 깎아서 얘기하고 저지른 범행(?)이었다. 그렇게 사놓은 땅이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요즘 세상에 그런 우화같은 일이 가능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세월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땅, 즉 집터를 장만하는 것은 어쩌면 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이 품고 있는 세월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끈기있는 사람은 앞으로 품을 세월을 사는 것이고 성질 급한 사람은 이미 품은 세월을 사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세월을 바라보는 직관은 필요하다.
집나간 개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설 명절이다. ‘개뼈다귀 같은 고향’이라고 외면했던 내 고향에 세월을 기다리는 숨은 보물단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집터를 찾지 말고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을 먼저 둘러보는 것도 좋은 집터를 장만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발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그곳에 심어야 하는 법,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