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만끽한 가을…전북 고창으로 떠난 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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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부안면 안현마을 뒤편의 국화동산에 가을꽃인 국화가 활짝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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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 하면 흔히 봄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꽃은 봄에만 활짝 피는 게 아닙니다. 가을에 만개하는 꽃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가을꽃 중 하나가 국화입니다. 노랗고 하얀, 풍성한 숱의 국화꽃은 겨울이라는 '소멸'로 가는 길목에 다시금 우리의 의지와 감성을 두드립니다. 국화 하면 누구나 이 시를 떠올릴 겁니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누구나 이 시 하나 정도는 외울 법한 '국민시'입니다. 시가 노래한 국화를 느끼기 위해 '국화의 고장' 전북 고창으로 가을여행을 떠났습니다. 하고많은 국화의 고장 중 왜 고창이냐고요? 물론 국화를 대표 상품으로 내건 지역은 전국에 많습니다. 국화 상업재배의 시배지이자 꽃을 대량 생산하는 마산은 대표적인 국화의 도시입니다. 전북 익산과 충남 서산, 충남 홍성, 충북 청주 등지에서도 요즘 국화축제가 한창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창으로 간 것은 이곳이 '국화 시인' 서정주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고창군은 서정주를 내세워 '국화의 고장'임을 대대적으로 자랑합니다.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이 만들어졌고, 시인의 생가도 복원했습니다. 시인의 고향이자 작품 속에서 많이 언급된 질마재 일대에 둘레길을 만들어 도보여행을 즐길 수도 있게 했습니다.
고창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국화마을입니다. 고창 부안면 안현마을에는 대규모의 국화동산이 만들어져 활짝 핀 국화를 원 없이 볼 수 있습니다. 또 이곳은 집 담벼락이며 지붕이 온통 국화로 그려진 국화 벽화마을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국화마을로 '가을 꽃놀이'를 떠났습니다. 국화꽃 향기에 흠뻑 취해 국화동산을 돌아다녀 봅니다. 언덕 곳곳에 설치된 시비의 시를 읽으며 문학산책을 합니다. 국화마을에서 국화를 실컷 봤다면 고창 선운사의 단풍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선운사의 단풍은 고창 가을여행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선운산을 가득 물들인 단풍 사이를 거닐면서 우수에 젖어봅니다. 아! 정말로 가을이 왔나 봅니다.
# 지금 고창은 '미당 시집(詩集)'의 한 페이지
- 안현마을 3만㎡ 국화동산 노란 물결
- 담벼락엔 동네 어르신 담은 벽화가…
- 걷다보니 서정주가 나고 자란 질마재
- 여러 작품서 묘사된 풍경과 마주쳐
- 선운사 초입 1㎞ 울긋불긋 단풍비도
가을꽃 국화를 보러 전북 고창으로 향했다. 고창 부안면의 국화마을을 거닐고 시인에게 영감을 준 질마재길을 걸었다. 단풍잎이 가득한 선운사에서 가을을 만끽하고 세계문화유산인 고창 고인돌 유적과 사적인 고창읍성도 둘러봤다.
■국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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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 풍천장어 정도로 알려진 전북 고창이 여행자들의 순례지가 될만큼 유명해진 건 국화마을 덕분이다. 고창군 부안면의 안현 질마재 신흥 등 3개 마을이 일명 '국화마을'로 불린다. 국화동산이 꾸며져 있고 미당 서정주(사진) 선생의 시문학관과 생가, 국화꽃길 등이 서로 인접한 3개 마을에 조성돼 있다. 특히 국화동산과 국화 마을벽화로 유명한 안현마을은 고창여행 중 반드시 둘러볼 곳에 꼽힌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화사한 국화 마을벽화가 눈에 띈다. 지붕과 벽면에는 노랗고 하얀 국화꽃이 만개해 있다. 국화벽화는 2006년 정부 지원을 받아 조성됐다. 국화꽃뿐 아니라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를 아예 벽면에 새겨놓기도 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담긴 벽화도 곳곳에 있다. 모두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이다. 시에서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고 묘사한데서 착안해 누님 같은 동네 어르신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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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안현마을은 '내 누님같은' 동네 어르신의 얼굴을 벽화로 꾸몄다. |
벽화거리를 지나 방문자센터를 거쳐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면 국화동산에 다다른다. 3만3000㎡(1만 평)의 국화밭과 6만6000㎡(2만 평) 규모의 구절초밭이 펼쳐져 있다. 노랗게 활짝 핀 국화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은 한 폭의 그림이다. 국화밭 곳곳에는 미당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미당의 친필로 새겨진 '국화 옆에서'를 비롯해 '영산홍' '매화' '목단꽃 피는 오후' 등의 시가 여행자의 눈길을 잡는다.
국화동산을 보고 질마재 마을의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으로 내려갔다. 취재차 들른 지난달 28일에는 마침 '2014 질마재 문화축제 및 미당 문학제'(10월 24~11월 3일)가 열리고 있었다. 미당 시 읽고 댓글달기, 백일장 대회, 미당 시 이야기, 미당 시화전 등의 문학행사는 물론 창극공연 전통민속놀이 등이 진행됐다. 잠시 공연을 관람한 뒤 시문학관으로 들어갔다. 시문학관에는 미당의 생애와 친필원고,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눈에 띄는 건 친일 논란의 시·소설과 논란에 대한 시인의 '변명'도 함께 전시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시를 통해 그냥 하늘의 뜻에 따른 '종천친일파(從天親日派)' 정도라고 해명했다. 그의 변명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쩌랴. 그의 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걸. 딜레마다.
■질마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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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시문학관 |
세상일 고단해서 지칠 때마다/ 댓잎으로 말아부는 피리 소리로/ 앳되고도 싱싱히는 나를 부르는/ 질마재. 질마재. 고향 질마재
소나무에 바람소리 바로 그대로/ 한숨 쉬다 돌아가신 할머님 마을/ 지붕 우에 바가지꽃 그 하얀 웃음/ 나를 부르네. 나를 부르네
도라지꽃 모양으로 가서 살리오? 칡넌출 뻗어가듯 가서 살리오?/ 솔바람에 이 숨결도 포개어 살다/ 질마재 그 하늘에 푸르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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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생가 |
서정주의 시 '질마재 노래'다. 선생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질마재를 여러 작품에서 녹여냈다. 시문학관 인근 질마재 마을에는 미당 생가가 초가로 복원돼 있다. 생가에는 국화꽃밭을 함께 조성해 놓았으며 초가집 안에는 그가 생전에 쓰던 종이며 타이핑 기기 등이 보존돼 있다. 질마재를 걸으며 시인의 감성을 느껴볼 수도 있다. 고창군은 질마재길을 조성해 도보여행 코스를 만들었다.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라는 이름의 총 4개 코스를 조성했는데 이 중 질마재길은 3코스다. 선운사 인근의 풍천을 출발해 미당시문학관, 소요사, 연기제, 꽃무름쉼터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총 11.64㎞ 코스다. 걷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미당시문학관 인근 질마재 신흥 등 마을 곳곳에 설치된 석조 조형물이 눈에 띤다. 서정주 선생 작품 속 캐릭터를 묘사한 조형물들이다. 미당 생가 인근에 조성된 도깨비집은 미당의 유년기 자서전 '도깨비 난 마을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도깨비집 한쪽에는 '웃돔샘'이라는 우물이 있다. 3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샘물로, 시인은 여기서 시상을 얻어 '우물'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선운사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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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입구. 초입길 1㎞ 단풍이 장관이다. |
질마재길을 잠시 걸은 뒤 고창 선운사로 향해보자. 알록달록 선운산을 수놓은 색색의 단풍을 보며 고창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선운산도립공원 내 위치한 선운사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조선시대 행호극유 스님이 크게 중창했다. 정유재란 당시 모두 소실됐지만 광해군 때 다시 중건됐다. 선운사 대웅보전(보물 제290호), 대웅보전 내 3개의 부처상(보물 제1752호), 성보박물관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등을 통해 사찰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다. 사찰 내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은 천연기념물이다. 천년고찰 자체도 좋지만 가을 단풍이 가득한 1㎞ 길이의 절 초입길을 걷는 것은 더욱 운치있다. 단풍잎을 밟으며, 단풍비를 맞으며, 걷는 숲길은 메말랐던 우리의 감성을 다시 살찌운다.
■고창 고인돌 유적과 고창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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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
고창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 양식인 고인돌로도 유명하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2000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창 죽림리,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447기나 되는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구역으로는 가장 큰 군집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고인돌이 이렇게 대량으로 밀집해 분포한 것으로 보기 드물다는 평가다.
형태도 탁자식 변형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으로 다양해 고인돌의 형성과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적지를 직접 보려면 고창고인돌박물관 앞에서 내린 뒤 700m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시간에 맞춰 탐방열차를 타고 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유적지 입구에 위치한 박물관도 들러보자.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우리 선조의 생활상과 무덤 양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입장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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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 선생의 생가 |
고창 읍내 위치한 고창읍성(사적 제145호)은 조선 단종 때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한 자연석 성곽이다.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성으로 규모가 16만여 ㎡(5만 평)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성내에는 3개의 문과 6개의 작은 성이 있고 조선시대 관아시설도 복원돼 있다. 고창읍성 앞에는 머리에 돌을 인 여성 형상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답성놀이'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윤달에 머리에 돌을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어 예로부터 지역민들이 답성놀이를 해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 고창읍성 바로 앞에 있는 판소리의 전설 신재효 선생의 생가와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조선 혁명가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도 들러볼만 하다.
# 비타민E가 '펄떡펄떡' 풍천장어 잡숴봐, 기운이 '벌떡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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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장어 구이. |
전북 고창에 여행을 왔다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 풍천장어다. 풍천장어는 고창의 특산품이다. 풍천(風川)은 지명이 아니라 바람이 많이 부는 하천이란 말이다. 선운산도립공원 인근에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인천강이 흐르는데 이곳을 풍천이라고 한다. 풍천장어는 이곳에서 잡은 민물장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에서 산란된 장어는 민물로 올라와 7~9년 정도 성장하다 다시 바다로 가는데 회유 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 지점에 머문다. 풍천장어는 이때 잡힌 것이다. 풍천장어 골목은 풍천지역인 선운산도립공원 앞에 대거 포진해 있다. 여러 곳 중 어느 곳을 가도 고소하고 담백하며 비타민E가 풍부한 풍천장어를 맛볼 수 있다. 고창읍내에도 청보리수산(063-561-5525) 등 풍천장어를 파는 식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