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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자료입니다.
자료란 이러해야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시네요.
밑반찬은 가능하신 여성분들만 준비해도 되겠습니다.
또 한번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숲과 문화 포항답사20140618-19
<답사지일정>
(6월 18일)
대구동양고전연구소앞 출발 9시30분
오어사 도착 11시30분-13시, 점심 오어사(김밥)
오어사 14시 출발-장기면 초등학교 도착 14시30분
장기면 우암송시열, 다산 정약용 유적지 및 송시열 은행나무
장기면 출발 16시00-경북대학교 수련원 도착 16시30분
구룡포 구시가지 17:00-1800
저녁 19;00
오늘의 이야기 방
(6월 19일)
경북대수련원 조식 오전 8시, 출발 9시
사방기념관(구룡포등대 및 바닷가길) 10시30분 도착
사방기념관 출발 12시
점심후 대구 출발 14시
대구 도착 16시
<오어사 (吾魚寺)>
경북 포항시 오천읍(烏川邑) 운제산(雲梯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이름 가운데 몇 안되는 현존 사찰의 하나이다. 혜공(惠空) ·원효(元曉) ·자장(慈藏) ·의상(義湘) 등의 승려가 기거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변에는 오어호(吾魚湖)라는 깊은 저수지가 있고,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13동의 당우(堂宇)가 세워져 있으며, 자장암(慈藏庵) ·원효암(元曉庵) 등의 부속암자가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8호인 이 건물은 신라 진평왕때 처음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오어사는 원래 "항사사(恒沙寺)라 불리었다고 한다. 신라의 고승 원효와 혜공이 수도를 하다가 법력으로 개천의 고기를 생환토록하는 시합을 하였는데, 두마리중 한 마리가 살아 힘차게 헤엄을 치자, 이 때 살아 움직이는 고기가 서로 자신이 살린 고기라 하여 이 때부터 나 오(吾), 고기 어(魚)를 써서 오어사라 불렀다고 전한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형식의 팔작집이다.
원효대사(617년~686년)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설씨, 법명은 원효, 법호는 화쟁, 초명은 서당이다. 신라 진평왕 39년 압량군 불지촌(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설총의 아버지이다. 젊은 시절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수학하고자 요동까지 갔지만, 고구려군에게 첩자로 몰려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십년 후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 도중 하룻밤을 지내게 된 토굴에서 갈증이 나 토굴 속에 고여 있는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묘지였고 물을 마셨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오한 원효대사는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대오한 후 원효대사는 미친 사람이나 거지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 포교에 들어갔다. 이후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고 그 후 파계하였다. 파계한 후 속복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면서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효대사가 교화한 사상으로는 인간의 원래 본성인 일심으로 돌아가자는 임심사상, 모두가 실제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난다는 화쟁사상,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애사상이 대표적이다.
말년에는 왕궁에서 <금강삼매경>을 강의하였고 <십문화쟁론>을 찬술하였으며, 분황사에서 <화엄경>,<사십회향품소>를 지었다. 원효대사는 신라 신문왕 6년 70세의 나이로 혈사에서 입적하였다. 입적 후 아들 설총이 원효대사의 유해로 소상을 조성하여 분황사에 봉안하였다. 원효대사의 대표적 이야기로는 무덤 속 대오설화(해골물 설화), 철반구중설화, 화엄신장옹호설화 등이 있다. 보물 제1280호인 이 종은 신라 범종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고, 명문(銘文)에는 고려 고종 3년(1216)이라는 조성연대와 종을 만든 책임자인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 및 주조 기술자인 대장 순광의 이름까지 남아있다. 종의 표면에는 보살 모양의 천의 자락을 휘날리는 비천상을 비롯한 섬세한 문양 등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고려 동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995년 11월에 절 앞 저수지공사 도중 발견되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출토된 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과정을 거친 후 1997년7월에 오어사로 돌아왔다.
혜공은 원효대사보다 한세대 앞서 살았던 승려로 범상치 않았던 고승이었다. 원효대사는 여러 경서를 저술할 때 언제사 오어사에 머물고 있는 혜공을 찾아가 물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나타난 오어사는 고승 혜공의 흥미진진한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 유학가기 위하여 운제산 계곡에 원효암이라는 초가를 짓고, 불철주야 열심히 정진하던 차에 혜공선사는 중국에서 부처님의 전업을 이어받은 인가를 받아와서 70명의 대중을 공부시키고 오어사에 거주하던 어느 날 두 사람이 운제산 계곡 맥반석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정진하던 중 혜공이 마음이 동하여 원효대사에게 물었다.
"대사는 중국에 가서 인가를 받아 오려면 부처님의 대법을 이을 수 있는 신통한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법력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세" 그러니, 원효대사가 "그럼, 무엇이든지 법력을 겨루어 보세"라고 해서 명경지수가 흐르는 계곡에 산고기가 노니는데 그 고기를 한 마리씩 산채로 삼켜서 바위끝에 앉아 대변을 봐서 산채로 고기가 나오면 이기는 걸로 했다.
그리고는 팔을 걷어 부치고 계곡에 뛰어들어가 서로 한 마리씩 고기를 삼켰는데 두 마리 고기 중 한 마리는 살아서 나오고 다른 한 마리는 죽어서 나왔다. 그런데 살아있는 고기가 활기차게 상류로 올라가자 그 고기를 보고 두 대사가 서로 떠밀면서 "저 고기가 내 고기야"라는 말에서 오어사라는 말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운제산 원효교는 일명 출렁다리라고도 부르며, 케이블의 인장강도와 주탑 및 상부구조의 휨. 압축강도를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구조적 효율성을 높인 교량형식이며, 오어사 주차장에서 원효암을 연결하는 전체길이 118.8m, 통과폭 2.0m, 주탑높이 15.05m, 주탑사이 길이 82.4m로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또한 케이블과 함께 강재 주탑방식으로 단면을 최적화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가 되었으며, 구조적인 장점 이외에도 쇠줄(와이어)을 감추고 부드러운 재질로 감싸고 있어 외관이 안정감 있고, 상부구조의 형식, 주탑의 형상, 케이블의 배치 등 주변 환경인 오어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 시공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어지 위를 직접 거닐 수 있다는 매력과 함께 기존 어오사를 한바퀴 돌아가는 코스보다는 휠씬 더 나은 산책로를 열어주는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보물 1280호인 오어사 동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8호 오어사 대웅전을 보유한 오어사를 새로운 명품 관광지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출처]오어사-포항 오천읍|
<포항시 장기면 다산 정약용 유배지>
이곳 장기면의 지명은 신라시대 只沓(지답은 해뜰 때 물이 끓어오르는 모습)縣이었는데 고려 현종 때 장기면이 되었으며 1895년 장기군, 1914년 장기면 1934년 지행면, 보향면으로 개칭되었다가 해방이후 只畓으로 신청한 것이 只杏으로 잘못 기재되었다. 아마 행정당국의 한자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 후 지역민들이 잘못된 글자를 고치기 위해 1980년에 이의를 제기하여 장기면(長鬐面)으로 개칭을 요구하였으나 1990년에야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이름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장기면은 전답이 많지 않아 그렇게 부유하지 못해 이곳 사람들은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50여명이 합격하여 행자부장관도 나오고 장기면 출신이 국회위원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 유배되어 온 선비는 경상도 중에서 가장 많은 100여명인 넘는 다고 했다. 그중에 유명한 사람이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다. 송시열은 4년 이상 이곳에서 유배되었고 정약용은 210일정도 유배를 살았다. 정약용이 유배하면서 이곳에서 지은 시가 많이 있다. 장기잡시27수가 있으며 이 시외에도 많은 시가 남아있다.
충효관 밖으로 나와 충효관 입구에서 참석자와 금낙두 장기발전연구회 이사와 같이 장기초등학교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송시열의 비가 세워져있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방 자제들을 교육하였다고 했다.
우암 송시열은 조선조 숙종원년(1675) 윤 5월에 장기현으로 와서 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숙종 5년(1679) 4월 10일 자신이 머물던 집안에 자생한 느티나무를 베어 지팡이를 짚고 죽교에 올라 거제도로 떠났다. 우암이 머물던 집주인 오도전은 우암에게 글을 베워 향교의 훈장이 되었고 士人 徐維遠 역시 끝까지 선생의 문하에 출입하여 훈도를 받았다. 장기초등학교에 있는 은행나무는 우암이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우암이 장기를 떠난 후 29년이 되는 해 장기에 살고있던 吳道宗, 皇甫憲, 李東哲, 韓時愈이 竹林書院을 창건하여 배향했다. 장기인들은 우암을 통해 유학의 진수와 중앙정계의 동향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접할 기회를 가졌고 아울러 궁벽한 海曲이 예절을 숭상하는 유향이 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우암은 장기에서 [朱子大全剳擬(주자대전답의)]와 [二程書分類] 등의 명저를 저술하였으며 많은 양의 시문도 창작하였다(장기충효관, 2014).
송시열의 기념비가 고전적인 갓비석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곁에 있는 정약용 비석은 현대식으로 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그해 3월 9일 이곳 장기고을 마현(馬峴)으로 유배 왔다가 질녀남편인 황사영이 작성한 백서사건의 관련의혹으로 그해 10월 20일 서울로 다시 압송 되었으니 7개월간 이곳에 머물렀던 셈이다. 다산은 이곳에 머물면서 장기고을 백성들의 삶의 모습과 고을 관리들의 목민형태를 글로 남기게 되었으니, 부용정가(芙蓉亭歌), 鬐城雜詩 27, 長鬐農家十章, 兒哥詞, 해랑행, 오적어행, 타맥행 등 130여수가 그것이다. 전하는 시작들은 토속적이면서도 사실적이며 은유적이다. 그밖에도 이아술, 기해방례변 등의 서책도 장기에서 저술하였으나 의금부로 압송과정에서 유실되어 없어졌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대적 어려움을 떨쳐낸 사상가로서 현실참여와 서정을 적절히 표현해내는 문학가로서 정성을 다해 살다간 다산의 혼백이 우리고을 장기에 남아 후세를 경계하니, 장기고을 사람들이 인의(仁義)를 멀리하며, 禮와 智와 信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장기충효관, 2014).
충효관 소책자에는 황사영을 다산 사위라고 적었는데 이는 질녀남편(조카사위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잘못된 명칭이라고 함)로 고쳐야 할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우암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원래 나무는 죽고 세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장기 향교는 조선 태종 5년(1396) 마현리 교동에 처음 창건되었고, 1629년 광해군 11년에 1차 중건하였고 1675년 숙종 1년 또다시 중건하였으며, 1769년 영조 45년 한차례 중수를 하였다. 1785년 정조 9년 마현 구석곡(龜石谷) 현 장기초등학교 자리로 이전하였다가 1922년 현 위치인 읍내리 구장기현 산성의 객관으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장기잡시 (9) 정약용
休放兒童港口漁(휴방아동항구어) 애들은 항구에 가 고기잡게 말지어다
怕他纏著八梢魚(파타전저팔초어) 여덟 발 문어에게 걸려들까 무서워야
年來膃肭逢刁踊(년래올눌봉조용) 근년에는 해구신이 이상하게 값이 뛰어
頻有京城宰相書(빈유경성재상서) 서울에서 재상들이 서신 자주 보낸다네
<구룡포 구시가지>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이주해 형성했던 거주지로 일본 가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일본풍이 그대로 묻어나는 거리로 한 때 유명한 드라마였던 ‘여명의 눈동자’ 촬영장소로 각광을 받으며 소개되었으며 그 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약 470여 미터에 이르는 골목에는 80여 채의 당시 건물들이 남아 있으며, 현재 28채 가옥의 외벽을 보수하고 거리의 도로도 디딤돌로 포장하여 일본식 거리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거리를 걸어가면 ‘구룡포 근대역사관’에 이르기 전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양측에는 작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앞면에는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해방 이후 반일 감정에 의해 모두 시멘트로 덧칠하여 그 이름을 알 수는 없다. 공원 내 우측에는 ‘도가와야스브로’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받침돌을 제외하고도 대략 높이 7~8m, 너비 1.5~2m나 되는 규모이다. 재질은 규화목인데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도가와야스브로’는 일제강점기 이후 구룡포에 정착한 일본인인데 구룡포항을 축조한 장본인으로서 비 앞쪽에 새겨진 비면은 시멘트로 덧칠해져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비석은 1942년쯤 세워졌다고 한다. 공원 맨 위에는 충혼탑과 용왕당이 있다. 공원에서 나와 돌계단으로 내려가기 전 우측으로 가면 일제강점기에 신사로 사용된 건물 자리가 있다. 해방 이후에는 천주교회 건물로 사용되었으나 2007년 이후 철거되어 현재는 그 부지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가옥 중에는 창살에 일본 후지산의 모양을 표현하여 일본식 가옥의 유풍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도 있어 가옥의 전체 외형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가 있지만 각각의 가옥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모습들, 특히 창살의 문양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본가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사방기념공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 66번지에 한국 사방 100주년을 기념해 2007년 문을 연 이 공원은 헐벗은 산등성이를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1975년부터 5년간 연인원 360만 명이 투입되어 총면적 4,500ha를 단기간에 녹화한 전국 최대 규모의 사업 성공지를 보여주는 외부공원과 사방사업 기술변천과 각종 자료를 모아 전시한 실내전시실로 나눠져 동해안 천혜절경과 연계한 관광 및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방기념공원은 그 옛날 60·7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 춘궁기를 넘기기 위하여 사방사업에 종사하며 국토 녹화에 이바지한 사방기술인의 혼과 땀이 깃든 자료를 한곳에 모아 전시한 실내전시실과, 사방사업에 필요한 각종 사업종류를 기념관 뒤편 야산에 실제 시공을 하여 산림복구기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실제 황폐지 복구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복구기술인의 형상을 본 떠 현지에 전시함으로써 마치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전시기법을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문의 : 054-270-5884)
주요시설 : - 사방전시기념관(3개의 전시실과 다목적 영상실),- 야외사방시설(부조, 환조, 디오라마(diorama), 산지사방 등),- 문화유적 전시시설(삼국시대 석실묘, 석곽묘, 유물)
<자동차 주행안내>
☞대구-오어사 소요시간 1시간38분 총거리 98.3km 통행료약 4,000 원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양고전연구소: 9시30분 출발
대구포항고속도로 팔공산IC -포항IC 43분 | 71.3km
포항IC 영일만대로 고속도로 진출 후 16.3km 이동
오천IC 정몽주로294번길 오천 (양북) 방면으로 우측도로 256m 이동
오천IC 정몽주로294번길 좌회전 후 608m 이동
정몽주로 양북 방면으로 좌회전 후 1.0km 이동
정몽주로 운전면허시험장 (오어사) 방면으로 우측도로 3.9km 이동
오어사 11시30분 도착
☞오어사 장기면 출발-장기면초등학교 도착 18.9Km, 40분
오어사주차장 출발 오어로 4.0km 직진
정몽주로 오천 (포항) 방면으로 좌측도로 1.0km 이동
정몽주로294번길 구룡포 (청송) 방면으로 우회전 후 606m 이동
오천IC 영일만대로 구룡포 (감포) 방면으로 좌회전 후 2.0km 이동
세계교차로 장기로 오천 (장기) 방면으로 우측도로 234m 이동
세계교차로 장기로 장기 방면으로 우측도로 11.0km 이동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도착
☞장기초등학교 출발-경북대수련원 도착 14.8Km, 27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마현리
장기로 3.7km 직진 학삼길 학계리 (구룡포) 방면으로 우회전 후 2.8km 이동
동해안로 좌측도로 5.6km 이동 하정삼거리
하정로 구룡포 (호미곶해맞이광장) 방면으로 우측도로 1.9km 이동
하정로 좌회전 후 177m 이동 우회전 후 214m 이동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하정리 경북대학교 수련원
☞경북대학교 수련원-포항흥해읍 사방기념관 64.1km, 1시간 54분
수련원-대보등대박물관-호미등-포항-흥해
동해안로 포항공항 (포항) 방면으로 우측도로 8.7km 이동
형산교차로 중앙로 오거리 방면으로 우회전 후 3.2km 이동
육거리 중앙로 북부경찰서 (세무서) 방면으로 좌회전 후 844m 이동
나루끝길 법원.검찰청 (대구,영덕) 방면으로 좌측도로 10.0km 이동
칠포교차로 칠포로 칠포리 방면으로 우회전 후 3.8km 이동
암각화길 좌회전 후 1.3km 이동해안로 월포 (영덕) 방면으로 좌회전 후 2.9km 이동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 사방기념관도착
☞포항시북구흥해읍오도리 사방기념공원 출발 105.1km, 1시간 38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
경부고속도로
수성구청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