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6일
본격적인 여행 첫날인데 여독이나 시차 적응 문제를 생각해서 관광 일정은 준비해 놓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움직일 만하네. 그럼 일정을 만들어야지. 일단 최고의 랜드마크부터 가 보자. 폰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예약(2시)해 놓고 오디오가이드를 내려받아서 대충 예습. 한국말로 하는 가우디투어를 많이들 하는 모양인데, 뭐 세부사항은 좀 모르면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오디오가이드로 대신했다.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아니 세계 건축사에서도 우뚝한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짓다가 완성을 못하고 후계자들이 이어받아 100년째 짓고 있다는 그 대단한 성당을 내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느낌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영어로 sacred family 우리말로는 성(스러운) 가족인데 예수와 부모(마리아와 요셉)를 아우르는 표현이란다. 가톨릭에서 마리아를 중시하다 보니 요셉도 대접을 좀 받는 모양이네.
저녁에 수퍼에서 사다 놓은 재료들로 아침밥을 해서 먹고 느즈막히 출발. 큰길 쪽으로 나가는데 조그만 광장이 나온다. 분수가 작동하지 않는 분수대가 있고 주변에 가로등이 보인다. 야, 이거 오래된 거 같은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않아 구글 검색을 해보니, 광장 이름은 플라사 레알이고 가로등이 가우디 작품이라네? 나중에 더 실감하게 되지만 이 동네는 발길 닿는대로 유적이고 예술 작품이다.
인도가 차도보다 넓은 람블라스 거리를 설렁설렁 올라가다 만난 보케리아 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식을 파는 시장? 정육점이 많고 채소 가게도 있으니 관광객 전용은 아니긴 하다. "이건 흑돼지, 저건 멧돼지" 한국말이 귀여워서 이베리코 하몽이란 것을 먹어보고 (소금에 절인 날 돼지고기라는데 그냥도 먹을 만하네?) 엠파나다(만두 비슷한 것)도 사서 맛을 보고(이건 그닥 땡기는 맛이 아닌데?).
숙소에서 걸어가면 40분 걸린다고 했으니 이제 절반쯤 왔을까? 싶은 즈음에 카사 바트요를 만났다. 가우디가 지은 연립주택?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고개를 젖히고 감상하고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도 고개를 빼고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다가, 내부 관람은 뒤로 미루고 사그리다를 향하여 전진.
사그리다가 보이는 곳에서 시간도 맞출 겸 고픈 배도 달래줄 겸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먹은 빠에야. 빠에야가 짠 경우가 많다고 들어서 걱정을 했는데 짜지 않고 맛도 좋다. 스페인 음식과의 첫 만남은 성공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외부를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쪽은 정문이 아니네. 반대쪽으로 돌아가 탄생의 문으로 입장해서 내부를 구경하고 2시 반 예약시간에 맞춰 탑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제법 피곤하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성당 문을 닫는다며 쫓아낸다. 3시밖에 안 됐는데 왜 벌써 닫는 거야? 4시까지 여는 걸로 알고 왔는데 공지도 없이 일찍 닫아도 되는 거야? 지하에도 볼거리가 있다던데... 항의도 못하고 그대로 쫓겨나고 말았다.
시간이 넉넉하니 한 군데 더 가봐야지. 가까운 곳에 있는 성 파우 병원까지 걸어갔다. 100년 전에 지어진 (가우디도 일부 참여함) 유서 깊은 병원으로 지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일단 외모 감상에 주력했다. 예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