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현상
대봉 스님은 숭산 스님에게서 전법게를 받은 외국인 제자다.
현각 스님처럼 미국인이다.
계룡산 무상사에서 대봉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붓다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붓다는 내게 ‘당신은 누구인가?
(Who are you?)’라는 의문이었다.”
대봉 스님은 유대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유대교 회당에도 다니곤 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낯설지 않았나?
“‘매우 명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명쾌했나?
“인간의 본성은 퓨어(Pure)하고,
클리어(Clear)하다고 했다. 그게 명쾌했다.”
-무엇이 퓨어이고, 무엇이 클리어인가?
이 물음에 대봉 스님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번화를 꺼냈다. 분홍색 폴더폰이었다.
“이 휴대전화를 보라. 순수한 본홍색(Pure pink)이다.
그래서 ‘퓨어’다.”
-그럼 ‘클리어’는 뭔가?
“전화기의 순수한 분홍색 겉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전화기의 몸체를 꿰뚫어 본질을 보는 거다.”
-세상 사람들도 저마다 휴대번화를 보지 않나?
“맞다. 사람들은 모든 걸 보고 있다. 그러나 꿰뚫어 보진 못한다.
왜 그런가. 생각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당신이 무언가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Holding something in your mind.) 그게 바로 집착이다.
집착을 가진 사람은 꿰뚫어 보진 못한다. 본질을 보지 못한다.”
분홍빛을 띠고 있는 전화기는 ‘현상’이죠.
그게 비어있음을 보면 ‘본질’입니다.
내 안에서 짜증이 올라오면 ‘현상’이죠.
그 짜증이 비어있음을 보면 ‘본질’입니다.
그래서 짜증이 올라와도 “아, 이게 비어있구나.
그러니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연기가 와서
나를 때리는 것과 같구나!”라고 알면 본질을 보는 겁니다.
짜증이 생겨도 그 짜증에 휘둘리지 않게 되죠.
그래서 현상과 본질을 동시에 보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그렇습니다.
자유롭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짜증나는 마음에서 ‘짜증’만 볼 때는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그런 짜증이 창고에 가득 가득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짜증이 ‘비어 있는 짜증’임을 알면
비로소 마음의 창고도 비워집니다.
쌓을래야 쌓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나를 보는 것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만 보고, 그 속의 ‘아버지’는 보지 못했을까요.
예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 안의 아버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습니다. 현상만 보았기 때문이죠.
그 속에 깃든 본질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퓨어’와 ‘클리어’를 함께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좀 어렵다고요?
그래도 오늘 하루 묵상하기에는 참 좋은 주제가 아닌가요?
- 백성호 -
첫댓글 깊히 참회합니다 _()_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이해할지 몰으겠서요
제가 아직 부족한것이많아서
그런가봅니다
죄송합니다
참 순수한 보살님
그 때묻지않은 순수함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화낼 일이 점점 줄것 같아요
옴 감사 감사 사바하 _()_
금강경에도 마음 비워라 집착하지말라고 하지만 속세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가장 어려운 숙제인걸요.
끝까지 부처님을 따라가 볼수밖에 래생에 또 래생에도~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이아침 여여함을 공부 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