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일 셋째 날....
호텔을 나서 북백두산으로 이동하는데
오늘도 역시 날씨는 기가 막히다..
주말이라 그런지 어제 서파와는 달리 주차장에 많은 관광버스들이 보인다..
북파산문의 모습이 10년 전과는 많이 다른 듯 하다...
이곳에서도 셔틀버스를 타고 중간 기착지로 이동...
이곳에서 다시 소형승합으로 갈아타고 북백두산까지 올라간다..
예전엔 짚차를 타고 올라갔었는데...
드디어 북백두산에 도착하고..
올라오는 길도 많이 정비가 되었다..
세멘트로 포장도 되었고 가드레일도 설치되어 있어 안전에도 많이 신경을 쓴 듯하다..
북백두산으로 오르는 길...
오른 쪽 A코스 천문봉으로 오르는 길은 공사로 인해 막혀 있다.
예전엔 코스 구분이 없이 그냥 올랐던것 같은데..
어제 서파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제일 앞에 자하봉이 보이고...
어제에 이어 다시 바라보는 천지이건만 또 다시 새로운 감동이 밀려온다..
백두산 천지 주변은 16개의 봉우리로 둘러 싸여 있다.
가장 높은 주봉은 2,750m의 백두봉으로 북한측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봉우리는 향로봉, 청석봉, 백운봉, 차일봉, 제비봉, 천문봉이다.
천문봉 좌측 장군봉에는 북한에서 설치한 케이블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16개 봉우리는 중국측에 6개 북한측에 7개가 있고
나머지 3개의 봉우리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에 놓여있다.
천지 표지판 앞에서 겨우 사진 한 장 남기고...
백두산 풍경중 최고로 꼽히는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한다.
또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길에는 천지를 닮은 작은 호수가 있어 "소천지"라고 불린다.
천지의 수심중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가장 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연평균 기온은 -7.3도, 평균수온은 0.7~11도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얼음의 두께가 1.2m나 된다.
자하봉...
자하봉은 백두산 북쪽, 고준봉 서쪽, 백암봉 동쪽에 있다.
해발 고도는 2,618m이고 천지 수면에서 424.2m 높이로 솟아 있다.
자하봉은 수직으로 높이 솟아 있어 웅장한 기상을 보여 주고 있다.
산봉우리의 조면암질 부석이 자주색이어서 자하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산봉우리는 강한 풍식작용을 받아 풍식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봉우리가 와호봉, 우측으로 백운봉
와호봉은 백두산 화구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와호봉 남쪽은 관면봉과 연결되어 있다.
해발 고도는 2,618m이고 천지 수면에서 424m 솟아 있다.
국경 산봉우리로 천지 안쪽은 북한 지역이며 봉우리 바깥은 중국에 속해 있다.
와호봉 뒤 둔덕의 산봉우리 모양이 백두산 호랑이가 누워 있는 모습 같아 와호봉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와호봉 이야기
와호봉 한 기슭에는 한 모녀가 살고 있다. 딸의 이름은 연희.
어느날 나물을 캐러간 연희는 포수에게 쫓기다
쓰러져 있는 새끼범을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리고 간다.
연희는 '귀염둥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애지중지 기른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연희는 빚 대신 부자집 종으로 팔려간다.
세월이 흘러 연희도 성인이 되고 새끼범도 호랑이로 성장한다.
연희와 귀염둥이는 자주 만나고 그 와중에
연희는 동네 덜먹총각과 사랑에 빠지고 귀염둥이도 이를 눈치챈다.
어느날 밤중 부자놈이 연희를 겁탈하려하자 연희는 집을 뛰쳐 나와 도망친다.
쓰러져 있던 연희를 호랑이는 동굴도 데리고 가고
연희가 눈을 뜨자 옆에는 사랑하는 덜먹총각이 와 있다.
사연은 즉 밤중에 호랑이가 덜먹총각을 등에 태워 온 것이다.
이튿날 아침,
호랑이는 연희와 덜먹총각을 엎고 마을로 내려와 부자놈을 쫓아내고 그 집에 살게 한다.
연희와 덜먹총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고의 재물을 나누어 주고 새 살림을 시작한다.
그 후 호랑이는 늘 앞산에 웅크리고 앉아
연희네의 행복을 빌며 세월이 흘러 굳어져 버린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와호봉이다.
백운봉(2,691m)은 백두산 화구 서쪽과 녹명봉 남쪽에 위치한다.
백두산 화구 환형 산봉우리 중 네 번째로 높으며, 중국 백두산에서 제일 높다.
천지 수면에서는 497m 높이로 솟아 있다.
백운봉 산봉우리는 천지 화구로 경사진 원형으로 평탄하다.
산봉우리에는 흰 부석이 두껍게 쌓여 있고 흰 구름이 항상 떠 있어 백운봉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용문봉
용문봉(2,595.7m)은 백두산 화구 북서쪽, 승사하 서안에 위치하고
천지 수면에서 401.7m로 높이 솟아 있다.
용문봉 동쪽 승사하 서안과 천지 쪽은 수직 경사를 이루어 지세가 매우 험준하며,
냉열작용과 풍화작용으로 화산조면암 돌덩이들이 등산로로 무너져 내려 위험하다.
전설에 의하면 두 산봉우리 사이의 원형 문으로 용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용문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산봉우리 북쪽 경사면은 지질시대에 고온의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식어
물결 모양의 용암평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백암봉 오르는 등로가 막혀있다..
백암봉
백암봉은 백두산 화구 북쪽, 자하봉 서쪽에 솟아 있으며 천문봉 동쪽으로 약 350m 거리에 있다.
해발 고도는 2,640m이고 천지 수면에서 446m 높이에 솟아 있다.
백암봉과 천문봉은 원래 한 봉우리였으나 강한 풍화침식작용으로
봉우리 중간 부분의 화산 부석층이 침식 · 붕괴되어 2개의 봉우리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백암봉을 화개봉이라고도 한다.
북한 방면의 봉우리
좌측부터 쌍무지개봉, 향도봉, 장군봉, 해발봉
우측에서 두번 째 장군봉 옆으로 천지로 내려가는 계단이 실처럼 보인다.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50m)...
장군봉은 백두산 동남쪽, 향도봉 남쪽에 있다.
북한이 측정한 바로는 동해 해수면에서 2,750m 높이로 솟아 있다.
중국의 측정치는 2,749.2m이다. 백두산 화구의 환형 산봉우리 중 제일 높다.
장군봉은 동북아 대륙과 한반도, 중국 동북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장백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며, 장백산맥의 주봉이다.
장군봉의 옛이름은 병사봉, 백두봉이다.
백두봉은 화산으로서 화구 내측 절벽에 버섯 모양의 화산 분출구와
화산 원추체에 용암이 흐른 흔적이 남아 있다.
지난 지질시대의 화산 분출 흔적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산봉우리에는 부석층이 100m 두께로 쌓여 있다.
천지 내벽은 85° 이상의 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외측 비탈 경사는 20~25°이다.
산봉우리로 오르는 도로가 있으며 1989년에 백두다리에 궤도식 삭도 차량길을 건설하였다.
40여분 정도 백두산에서 머물다가 다시 내려온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규모가 커졌다.
우측에 보이는 기상대의 건물도 달라진 것 같고..
좌측이 백암봉, 우측이 북파에서 제일 높은 천문봉..
도로 양옆엔 자작나무의 물결이...
북파 관람을 마치고 장백폭포로 이동..
약 10년 만에 다시 와 보니 웬지모를 반가움이...
이곳에도 제법 정비를 잘 해 놓은 듯 하고..
많은 계단이 새로 놓인 듯 하다..
드디어 장백폭포가 시야에 들어오고...
예전엔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트레킹을 했었다는데
하루빨리 재개되어 북파까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왕이면 북녘땅을 포함해서 천지를 한바퀴 돌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백폭포
높이 68m의 폭포로 천지의 달문을 통해 1km정도 흘러내린 물이
절벽에서 갑자기 수직으로 낙하된다.
2.5m의 폭포 폭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동쪽 폭포 수량이 전체 수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아직도 땅에선 김이 나지만 예전보다 많이 식은 듯한 느낌이다....
이 모습은 10년 전과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앙증맞은 천지괴물...
6월 3일 넷째 날...
호텔에서 출발하여 집안으로 간다...
집안(集安)시는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며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으로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한다.
AD 3년경 고구려 제2대왕인 유리왕이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는데
427년까지 가장 오랜기간(424년) 수도로써 가장 찬란했던 번성기를 누렸던 만큼
1만 여개의 고분과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있어 이곳이 국내성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광개토대왕비, 태왕릉, 장군총 등 고구려의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어
융성했던 시대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호텔앞 통화의 거리 풍경..
집안으로 이동하는 중의 휴게소...
환도산성 입구...
환도산성은 고구려 초기와 중기의 유명한 성터 중의 하나이다.
국내성의 군사 수비성으로 세워진 환도산성은 고구려 시대 두 번이나 수도로 정해져 있어
고구려 역사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환도산성은 평면으로 볼 때 불규칙적이고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삼태기"를 방불케 한다.
둘레는 6947m이다.
성벽의 구조는 자연 지리 환경을 충분히 활용하여 산성으로서의 건축적 특징을 살리고 있다.
환도산성은 주변의 산을 보호벽으로, 곡구를 대문으로, 산중턱을 궁으로 하여
중국 전통의 "풍수지리설"의 이념을 충분히 살렸다.
산성의 방어는 견고하고 성내의 공간은 넓으며 자연이 아름다워
인류의 창의성과 자연과의 완벽한 융합을 자랑하고 있다.
환도산성
고구려 초기와 중기의 수도이고 기원3년에 창건되었으며 최초의 이름은 위나암성이었다.
기원 198년 산상왕이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고, 환도성이라고 명명하였다.
기원 342년 환도산성의 건축물은 전쟁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산성은 불규칙적인 장방형 모양으로 성지 둘레는 6947m이고 성벽은 산세의 흐름에 따라 건축되었다.
성내에는 대형궁전지, 정망대, 수졸거주지 등 건축물이 있고 문지, 저수지, 고분이 있다.
성내의 고분은 산성이 폐기된 후 건설된 것이다.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지키는 존재로 고구려 성도의 특색을 돋보이고 있다.
연지유적
연지는 일명 음마만 혹은 저수지로 불리우며 자연산세에 따라 지어졌다.
원각방형을 나타내며 동쪽 벽의 길이는 35m, 서쪽 벽의 길이는 36.7m,
남쪽 벽의 길이는 37.5m, 북쪽 벽의 길이는 37m, 둘레길이는 146.3m이다.
저수지의 벽은 돌로 쌓였고 보존이 잘 안 된 상태이다.
그 중 남쪽 벽의 동단, 동쪽 벽의 남단은 보존이 비교적 좋은 상태로 현재 높이는 1.8m이다.
철기, 도자기, 수골 등 유물이 발굴되었다.
역사에 기록한 <잉어퇴병>은 이 곳애서 기원했다고 한다.
전망대
전망대는 환도산성내에서 외적의 침입을 지켜볼 수 있는 높은 건축물이다.
이곳은 시야가 넓고 산성을 지켜볼 수 있으며 국내를 멀리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외곽은 돌덩어리로 건축되었고, 안쪽은 두 갈래의 돌계단으로 구성되었다.
길이는 6.7m이고 남북너비는 4.5m이며 현재 높이는 4.5m이다.
수졸거주지
고고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원래 이 유적은 전망대의 수졸을 수호하는 주둔지였다.
전망대에서 북쪽 방향으로 15m 거리에 있고 지세가 평탄하며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남북길이는 약 16m이고 동서너비는 약 9m이며 3줄의 주춧돌이 분포되었다.
밖은 쐐기모양의 석조로 구성되었다.
중국에서 본 엉겅퀴..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장수왕릉으로 간다..
장수왕릉을 장군총이라고도 부른다.
현재까지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석조 구조로 된 이 무덤은
고구려 제20대왕의 장수왕릉으로 기원 5세기에 건축되었다.
무덤은 피라미드형으로 건축되어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미칭을 가지고 있다.
무덤은 방단계단식 석실무덤이며 정방형이다.
무덤 밑변의 길이는 31.58m이고, 높이는 13.1m이다.
무덤 칸은 5층 계단의 중간 부분에 있고,
무덤 윗 부분에는 무게가 50여톤 짜리의 큰 덮개돌을 올려 놓았다.
무덤 위에는 향당(享堂)같은 건축물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의 변두리에 총 11개의 무게가 10여톤짜리의 큰 돌들을 각 변에 세워놓았다.
무덤의 북동쪽에는 여러개의 작은 배총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의 남서쪽 방향으로 200m지점에 제단 유적이 남아 있으며 면적은 5헥타르 정도이다.
장수왕릉의 능원 설계는 완벽하고 석조 건축 공예는 정밀하고 뛰어나서
고구려 시기 석조 건축 능묘의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절세의 능묘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후로 고구려시기 왕릉만한 석조 건축 능묘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고구려 중말기의 왕릉이고 일명 "장군총"이라 불린다.
방형 계단식 능묘는 길이가 31.58m, 높이가 13.1m이다.
계단은 7개이고 22층의 돌로 쌓여있으며 주위에는 11개의 거석이 있다.
묘도구는 5급단계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고 두 개의 석관이 있다.
묘실은 거석으로 봉개되었고, 주변은 석조와 등거리의 원형 구멍으로 구성되었다.
이곳에서 연꽃무늬와당, 불완전한 기왓장, 쇠사슬 등이 발견되었고
묘 위에 건축물이 있으며 능묘의 북쪽은 배총 무덤과 제단이 있다.
장수왕릉 1호동반 무덤
고구려왕족의 묘지이며 장군총의 계단을 방불케 한다.
계단식 묘실이고 규모가 작으며 주위에 무덤을 보호하는 돌이 없다.
위쪽은 돌무덤이고 높이는 4.72m이다.
바깥쪽에 계단이 있고 1계단의 길이는 9.22m이며
묘실은 3개의 거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꼭대기에 거석이 있고 묘실 문은 큰 돌로 봉쇄되었으며
묘실 밖은 조각돌로 깔려있다.
이러한 복고식은 고구려 묘지제도의 다원성을 체현하고 있다.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비 갈림길...
광개토대왕비 입구...
해동 제일의 고비(古碑) - 광개토왕릉비(호태왕비)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 제19대 왕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묘비로
<해동 제일의 고비>라는 미명을 가지고 있다.
기원 414년에 세워진 묘비는 호태왕의 아들인 고구려 제20대왕 장수왕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묘비는 각력응화암으로 만들어 졌고 방추형으로 되어있다. 높이는 6.39m이고 너비는 1.34~2m이다.
비석의 벽에는 한자 예서체로 된 비문이 있는데 총 1775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확인된 한자가 1590여 자이다.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 신화, 초기왕계, 호태왕의 영토 개척 공적, 능묘의 관리제도 등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왕릉비는 기존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문자 기록이 가장 많은 고구려 시기 고고학 자료이다.
광개토왕릉비의 발굴은 중세기 이래 세인에게 잊혀졌던 고구려의 문명 및 중심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확인하였고
동북아 지역 고고학 유적지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인증하였다.
광개토왕릉비에서 남서 방향으로 360m 떨어져 있는 곳에 기원 391년에 세워진 호태왕릉이 있다.
묘지에서 여러 개의 <태왕릉이 산악처럼 견고하고 영원하기를 바란다>라는 문자가 새겨진 벽돌,
명문 구리방울, 그리고 연꽃무늬 와당에 새겨진 연대 및 능묘의 건축 연대를 통해
이 능묘가 바로 호태왕릉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호태왕비)
전각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안에서 사진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집안에서 점심식사 후 잠깐 들린 압록강...
마주 보이는 곳이 북녁땅이다...
중국에서는 유람선이 왔다갔다 하는데 북녁땅은 조용하기만...
북녁의 땅...
조금 당겨본다...
집안에서 단동으로 압록강을 따라 이동...
팽덕회 동상..
팽덕회는 중공군 총사령관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하였다.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
한국전쟁에서 팽덕회의 참모로 있다가 전사했다..
단동에서 압록강 유람선을 타기 위해...
끊어진 다리...
압록강 단교는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의 단동을 이어주는 다리로
한반도와 중국 둥베이 지방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1911년과 1943년 2개가 가설되었는데 하류 쪽에 먼저 개설된 다리는
6.25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어 중국에 연결된 절반만 남아있고
상류쪽의 다리는 1990년 조중우의교라 개칭했다..
끊어진 다리의 북한 초소...
자세히 보니 망원경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압록강 유람선 선착장...
북녁땅...
갈 수 없는 북녁땅을 바라보니 새삼스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농사를 짓는 북한 병사..
가까이...
집의 형태가 거의 비슷비슷하다..
군데군데 보이는 초소...
소도 보이고...
철책너머 북한군 병사가 런링바람으로 삽을 어깨에 둘러매고 가는 모습이 보이고
윗 쪽 길에는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끊어진 다리를 돌아보고...
언듯보기엔 아주 평화로워 보이는데...
당겨본 집들은 환경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비탈진 밭에서 일하고 있는 아주머니
경사가 상당히 심한데 비가 와도 괜찮을 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소형승합과 비슷한 차량이 지나가는데 아주 깨끗하고 새차처럼 보였다.
고기잡는 父子어부...
두 사람 모두 이쪽 방면으론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북녁의 병사들...
아마도 고기를 잡는 것 같다...
중국 방면...
경운기도 아주 새 것이다...
궁금했던 북녁땅을 멀리서나마 돌아봤지만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여전히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기만 하다..
40여분간의 압록강 유람을 마치고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숙소로 이동하는 차창으로 본 중국국민들이 단체로 체조하는 모습...
강 건너 위화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선개국의 단초가 된 위화도를 실제로 보니 역사의 현장에 온 게 새삼 실감이 난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단동다리의 야경...
서둘러 이동하는 바람에 겨우 한 장만 건졌다...
마지막 날은 호텔에서 심양의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은 끝이난다.
첫댓글 산대장님은 역시 대단하셔 우리는 구경하기 바쁜데 언제 이런사진을 다찍고 기록하셨서,산악회원들을 위하여 수고하심을 대단히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쭉~~~~
앞으로도 주~욱 같이 가입시다.. 산행에도 열심히 참여하고..ㅎㅎ
산대장님!~잘 계시죠? ~역~쉬 설명과 더불어 백두산 잘봤습니다~~집사람 이야기만 듣다가 사진을 보니 더 더욱 생동감이 넘치네요 항상 고맙습니다! 화!! 이! 팅!팅! 김봉원 올림
모처럼의 해외산행인데 함께하지 못해 상당히 아쉬웠네...
항상 건강하시고 담 산행때 얼굴 함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