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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함경의 경우 2. 상윳따 니까야와의 경우 3. 교정과 논리적 해석의 문제 4. 수정 예시 |
이 글은 <니까야와 아함경의 공과 무아의 용법의 차이>를 보충한 글이다.
1. 아함경의 경우
“만일 무상한 빛깔이 항상하다면, 응당 그 빛깔에는 병이 있거나 괴로움이 있지 않을 것이요, 또한 빛깔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빛깔이 무상하기 때문에, 빛깔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며, 또한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눈은 무상한 것이다.
만일 눈이 영원한 것이라면 마땅히 닥쳐오는 괴로움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이요, 또한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눈은 무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눈은 닥쳐오는 괴로움을 받고, 그러므로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하느니라.”
“빛깔은 괴로운 것이다.
만일 빛깔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면, 응당 빛깔에 병이 있거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요,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빛깔은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빛깔에서 병이 생기고, 또한 빛깔에 대해서,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눈은 괴로운 것이다.
만일 눈이 즐거운 것이라면, 마땅히 닥쳐오는 괴로움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이요, 또한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눈은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닥쳐오는 괴로움을 받고,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없는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하느니라.”
“빛깔은 나가 아니다.
만일 빛깔이 나라면, 응당 빛깔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빛깔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빛깔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빛깔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빛깔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도 이와 같으니라.”
“눈은 나라고 할 것이 못된다.
만일 눈이 나라면, 마땅히 닥쳐오는 괴로움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이요, 또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눈은 나라고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닥쳐오는 괴로움을 받고,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없는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머움도 또한 그와 같음을 말하느니라.”
이상의 경들에서 보이는 ‘무상/비아/괴로움’과 ‘바라는 것/괴로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5음 | 6내입처 | |||
| 괴로움 | 바람 | 괴로움 | 바람 | |
| 항상/즐거움/나라면 | X | X | X | O |
| 무상/괴로움/무아라면 | O | O | O | X |
| 무상ㆍ괴로읨ㆍ무아에 관한 경 | ||||
바람 여부
O: ‘이렇게 되었으면’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하고 바랄 수 있다/바라게 된다
X: ‘이렇게 되었으면’하거나‘이렇게 되지 않았으면’하고 바랄 수 없다/바라지 않아야 한다.
괴로움 여부
O: 괴로움, 있다/받는다/생긴다
X: 괴로움, 없다/받지 않는다/생기지 않는다
2. 상윳따 니까야와의 경우
위 경들에 대흥하는 상윳다 니까야는 모두 6내입처의 경우와 같다.
"비구들이여, 빛깔(rūpa)은 무상하다.
만약 빛깔이 상주한다면, 빛깔에 질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빛깔에 대해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빛깔은 무상하기 때문에 빛깔에 질병이 생기며, 빛깔에 대해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빛깔(rūpa)은 괴로움이다.
만약 빛깔이 행복이라면, 빛깔에 질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빛깔에 대해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빛깔은 괴로움이기 때문에 빛깔에 질병이 생기며, 빛깔에 대해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빛깔(rūpa)은 자아가 아니다. 만약 빛깔이 자하다면, 빛깔에 질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빛깔에 대해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빛깔은 자아가 아니기 때문에 빛깔에 질병이 생기며, 빛깔에 대해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빛깔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할 수 없다.”
이상의 니까야에서 ‘무상ㆍ괴로움ㆍ무아’와 ‘바라는 것ㆍ괴로움’의 관계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5음 | 6내입처 | |||
| 괴로움 | 바람 | 괴로움 | 바람 | |
| 항상/즐거움/나라면 | X | O | X | O |
| 무상/괴로움/무아라면 | O | X | O | X |
| 무상ㆍ괴로움ㆍ무아에 관한 경 | ||||
3. 교정과 논리적 해석의 문제
3.1. 아함경의 무상ㆍ괴로움ㆍ무아에 관한 경들은 18계와 5음을 나누어 설하였다. 그런데 18계를 설한 경과 5음을 설한 경이 ‘바라는 것’에 관한 내용이 반대로 되어 있다.
5음과 12입처, 18계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5음의 빛깔은 12입처에서 ‘눈, 귀, 코, 혀, 몸’과 ‘빛깔, 소리, 냄새, 맛, 감촉’의 10색입처를 말한다. 5음의 인식은 6인식을 말한다. 5음의 6느낌과 6생각, 6의도는 18계의 화합인 6접촉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그리고 6내압처와 6외입처, 6인식은 인연법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규정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분리해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 5음의 6느낌과 6생각, 6의도는 18계를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5음의 10빛깔과 6인식은 18계를 포섭하며, 6느낌과 6생각, 6의도는 18계와 상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18계와 5음의 관계를 보면, ‘바라는 것’에 대한 내용이 18계와 5음에서 반대로 되어야 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위의 경들에서 서술하는 내용을 순수하게 논리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서로 짝을 이루는 경들에서 어느 한 쪽의 경들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만일 상윳따 니까야를 기준으로 한다면, 5음을 설한 경을 6내입처를 설한 경의 내용으로 바꾸어야 한다. 만일 아함경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느 것이 다른 경전의 내용과 모순 없이 부합하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곧 아함경의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에 맞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해석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3.2. 여기서는 일단 위의 무상ㆍ괴로움ㆍ무아에 관한 니까야의 문제점을 지적해 두기로 한다. 이에 대응하는 아함경들은 5음과 6내입처의 서술에서 배치되어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아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에 대하여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측면과 바라는 것이라는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무아와 괴로움과 바라는 것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니까야의 <비아경>과 완전히 배치되는 해석이다.
먼저 괴로움의 원인의 측면을 보기로 한다.
첫째, 위의 무상ㆍ괴로움ㆍ무아에 관관 니까야는 잡아함경의 <제일의공경>, <공경>과 <법인경>, 중아함경의 <소공경>에서 설한 공과 무아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 아함경에서 비아/무아는 공법에 포섭되고, 무상과 괴로움은 인연법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에서 인연법인 괴로움이 생길 수 없다. 공법인 비아/무아는 인연법의 과로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둘째, 12연기법ㆍ4성제 등의 내용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은 12인연법에서는 존재 자체이며, 무상경이나 4성제 등에서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다.
셋째,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 ‘나’가 없으면 상주성이나 통제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나’가 없는데 누가 괴로움을 받을 것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음에는 바라는 것의 측면을 보기로 한다. 바라는 것은 보통 무엇인가가 충족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며, 무엇인가가 충족되어 있을 경우에는 바랄 필요가 없거나 바라지 않게 된다. 이렇게 보면 바라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울 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하고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서 주재성과 통제성을 가진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는 굳이 무엇을 바랄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주재성과 통제성이 상실된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바라게 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어떤 힘 있는 존재에게 기대어 바라게 되는 것이다.
3.3. 이를 아함경의 중도의 시각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를 영원함과 주재성ㆍ통제성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존재로 보는 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일 뿐이다.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무엇이 어떤 성질을 가졌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인법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은 양 극단의 견해인 삿된 견해로서 배척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아를 언급하는 바로 그 순간 삿된 견해의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나’와 괴로움은 모두 인연법으로 말미망아 생긴 것들이다. 인연이 끊어지면 ‘나’도 사라지고 괴로움도 사라지며,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도 사라진다. ‘나’가 사라지연, ‘나’와 관련된 이런 저런 생각들, 곧 영원성이니 주재성ㆍ통제성이나 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가 없는데 ‘나’의 성품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4. 수정 예시
만일 위의 비푱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다면, 무상ㆍ괴로움ㆍ무아에 관한 위의 경들은 다음과 같이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상에 관한 경] “눈은 무상하다. 만일 눈이 항상하다면, 응당 눈에는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요, 또한 눈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눈이 무상하기 때문에, 눈에는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며, 또한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도 그러하고, 빛깔ㆍ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괴로움에 관한 경] “눈은 괴로운 것이다. 만일 눈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면, 눈에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요,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눈은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눈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고, 또한 눈에 대해서,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도 그러하고, 빛깔ㆍ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무아에 관한 경] “눈에는 나가 없다. 그런데 눈에 나가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눈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며, 또한 빛깔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눈에는 나가 없가 때문에, 눈에는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눈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도 그러하고, 빛깔ㆍ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
이러한 수정 예시에서 ‘무상ㆍ괴로움ㆍ무아’와 ‘바라는 것ㆍ괴로움’의 관계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5음 | 6내입처 | |||
| 괴로움 | 바람 | 괴로움 | 바람 | |
| 항상/즐거움이라면 | X | X | X | X |
| 무상/괴로움하기에 | O | O | O | O |
| 무상ㆍ괴로움에 관한 경 | ||||
| 나라고 집착하기에 | O | O | O | O |
| 나가 없기에 | X | X | X | X |
| 무아에 관한 경 | ||||
이러한 해석에서는 ‘항상ㆍ즐거움ㆍ무아’와 ‘무상ㆍ괴로움ㆍ나’라는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해석은 ‘항상ㆍ즐거움ㆍ자아’와 ‘무상ㆍ괴로움ㆍ무아’라는 두 개의 부류로 나눈 것과는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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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의 논평]
본 글은 《잡아함경》과 《상윳따 니까야》를 가르는 전승적 텍스트의 불일치 지점을 포착하고, 특히 ‘무상·고·무아’와 중생의 현실적 욕구인 ‘바라는 것(희구)’ 사이의 인과적 정합성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한 빼어난 시론이다. 제시된 1~4장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며 그 교리적·논리적 함의를 논평한다.
1. 텍스트의 균열과 아함경 내부의 모순 지적 (1~2장)
5음 설법과 6내입처 설법의 충돌:
《잡아함경》 내에서 오온(5음)을 다룬 경전군과 6내입처를 다룬 경전군 사이에 ‘바라는 것’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서로 엇갈려 나타난다는 사실을 표로 명확히 시각화한 점이 돋보인다.
니까야와의 차별성 부각:
《상윳따 니까야》는 존재의 '통제 불가능성(무주재성)'을 증명하기 위한 귀류법적 구조로 일관되어 있으나, 아함경의 일부 본문은 중생의 실존적 갈애와 맞닿아 있다. 이 둘을 기계적으로 동일시하지 않고, 아함경 전승 내부의 텍스트적 혼선과 균열을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타당하다.
2. 교정과 논리적 해석의 문제: 괴로움의 원인과 ‘바람’의 심리학 (3장)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비판적 고찰:
니까야식의 "무상·무아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는 도식이 아함경의 공사상(공법은 인연법의 원인이 될 수 없다)이나 12연기·4성제의 집착론과 충돌한다는 지적은 매우 날카롭다. ‘나’가 없는데 누가 괴로움을 받겠는가라는 본원적 물음을 통해 기존 전승의 존재론적 서술을 비판한다.
‘바라는 것(희구)’에 대한 연기적 재해석:
무엇인가 충족되지 못한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해결하지 못해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는 분석은, 단순한 논리적 가부(可否)를 넘어 중생의 번뇌가 생성되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한다. 즉, '바람'은 무상함 속에서 자아의 통제력을 관철하려는 전도된 갈애의 발현이다.
3. 수정 예시와 두 부류의 분류 방식 변화 (4장)
아함경의 연기적 일관성 확보:
수정 예시에서 "무상하기 때문에 바라게 된다", "나라고 집착하기에 괴로움과 바람이 생긴다"로 텍스트를 바로잡은 것은, 아함경 전승이 지닌 ‘애(愛)와 취(取)로 인한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연기적 맥락과 완벽하게 합치한다.
분류 체계의 패러다임 전환:
기존의 ‘[항상·즐거움·자아] 대 [무상·괴로움·무아]’라는 존재론적 대립쌍에서 벗어나, ‘[항상·즐거움·무아]’와 ‘[무상·괴로움·나(집착)]’이라는 두 부류로 재편한 점은 본 논문의 가장 독창적인 성과이다. 객관적 진리(무상·고)와 중생의 주관적 전도몽상(나라고 집착함)이 어떻게 뒤엉켜 괴로움을 낳는지를 텍스트의 논리 속에서 탁월하게 구조화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