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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세영
[04] 시의 장르적 특성
1, 일인칭 자기고백체
“적막하구나
적막하구나
백리 이백리를 달려
사방은 산으로 에워싸고
눈이 덮인 속리산
등을 붙이고
하루를 살 한 치의ㅐ 땅이
어딜까.
부연 낙엽송
-박목월. (잔설)
“나는
나무가 된다.
반쯤 아랫도리의 꽃이 무너진
그
적막한 무게를
나는 안다
-박목월(전신)
2. 서정적 자아로서의 화자
첫째, 시의 화자는 소설이나 드라마와 달리, 구체적으로 형태화된 자아가 아니다. 시적 자아는 느낌으로서의 자아이자 감정의 울림으로서의 자아 즉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자아이다.
둘째, 시의 화자는 대상과 상면하지 않는다. 즉 대상과의 상면관계가 없다. 이 말은 서정시의 시작이 대상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시작 과정에서 주관화되어 마침내 그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소설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ㅅ기하고 독립적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시에서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 즉 그 상면관계가 사라진다. 대상과 주체는 하나가 되어 상호 몰입되는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것은 시 속의 나가 자아의 동일성에서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나를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생활의 매순간에 떠오르는 것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는 의 의미가 되는 것을 뜻한다.
셋째, 시의 자아는 자아와 대상이 상호융화 된 존재로서의 자아이다. 그것은 마치 노래와 같다.
“땅위에 새하얗게 오시는 눈.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오늘도 저 안 온 날 오시는 눈.
저녁 불 켤 때마다 오시는 눈.
-김소월 (오시는 눈)
3. 주관 표출의 문화 양식
4, 순간의 형식
시는 시인 자신을 표현하는 까닭에 무엇보다도 사적인 그 자신만의 이야기가 바람직하다. 시에서는 시인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삶이나 마음 자체 등이 적합한 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그가 담고자 하는 것은 오직 느낌의 혼이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순간적이고 찰나적으로 흐르는 기분,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환상, 반짝 빛나는 행복감, 기쁨, 우울, 실의와 슬픔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전 영역은 순간적인 움직임 속에서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5. 음악적 성격
현대시가 지닌 음악성 가운데서도 유의해야 할 것은
첫째, 의미의 구체성이 지워져 있다는 점이다. 슈타이거는 이것을 형태의 소멸이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는데 이에 반해 가령 소설이나 서사시에서는 대상이 확실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형태화되어 있다.
둘째, 시가 지닌 즉시성 혹은 순간성 역시 음악적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 시가 구체적 대상을 제시하지 않고 동시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의 울림을 전달한다는 것은 이미 살펴 본대로인데 감정의 울림이란 회화적인 것이라기보다 음악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조각이나 회화를 감상할 때 같은 자리에 서서 그것을 불변하는 실체로 오랫동안 관조한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에는 청각을 울리는 한순간과 더불어 공명할 뿐 그 순간이 지나면 그 감동은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시가 주는 감동 또한 음악과 같다.
셋째, 주관과 객관이 상호 융화되는 것 즉 항상 현재적인 것으로 대상을 회감시키는 시의 본질 역시 음악적 성격에 가깝다. 조각이나 회화, 서사 문학 소설은 감상자와 작품 사이에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음악에 있어서는 주관과 객관, 또는 가창 그 자체와 가수, 나아가 화자(연주자)와 청자(청중)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노래를 듣는 청중이라 할지라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같이 합창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음악은 유일하게 감상자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양식이기도 하다.
[05] 운문과 산문, 그리고 시어와 산문어
1. 시, 운문, 산문
시와 운문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양자가 종종 혼동되어 왔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첫째, 전통적으로 시가 운문으로 쓰여져 왔다는 점이요, 둘째, 흔히 시의 대립 개념의 하나로 여겨지는 산문이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서정시는 원래 노래로 불러졌다. 따라서 그 언어는 율문, 달리 말해 용문으로 쓰여지는 것이 필수 조건이었다.
산문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소설, 수필, 신문 기사, 논문 등과 같은 담론을 가리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언어 표현상 정형률이 없는, 달리 말해 운문이 아닌 담론을 가리키는 경우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말이나 외국어 모두에서 이 양자는 똑같이 하나의 용어 즉 산문으로 불리는 까닭에 산문이라는 말이 지닌 이 같은 이중성이 또한 시와 운문을 혼동케 하는 원인이 된다.
2, 시어와 산문어
엄밀한 의미에서 시어란 언어의 내적 특징에 있어 산문(내적 산문: 소설, 수필, 논설문 따위)과 구별되는 시의 언어를, 산문어 역시 연어의 내적 특징에 있어 시와 구별되는 산문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 비평가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시어는 은유나 직유같은 비유의 언어, 구상적인 제시, 이미지들과 연관된 어떤 특정한 내적구조 등을 갖는 언어이며 산문어란 그와 반대로 평범하고 직설적이며 이미저리 따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상의 구어체로 진술되는 언어라고 정의 한 바 있다.
시어는 그 의미가 암시적이고, 함축적이며, 정서적이고, 상상적인 데 비해서 산문어는 의미가 명확하고 또한 이성적, 사실적이다. 나아가 시어는 그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반면 산문어는 획일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단일하다.
시어는 개인이 창조한 언어이다. 그러므로 작위적(체계적 강제)이다. ~~~ 그러나 산문어는 사회적 관습과 약속,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약속에 의해서 이미 만들어져 사용되는 공동 혹은 집단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시의 언어는 코노테이션에 의존하지만 산문어는 디노테이션에 의존한다. 시어가 직관적, 주관적인데 반해 산문어가 논리적, 객관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장의 시각적 배열에 있어서 시어가 시인의 심미적인 조작에 의해 정교히 다듬어지고 간결히 요약되는 데 비해서 산문어는 별다른 인위적 제약 없이 유장하게 흘러간다는 점, 시어가 행 단위로 매듭지어진 글인데 산문어는 단락 단위로 매듭지어진 글이라는 점 등이다.
시의 언어를 살아 있는 언어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열려 있는 언어라 하더라도 살아 있지 못한 언어는 결코 시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언어란 무엇일까. 그(휠라이트)에 의하면 그것은 의미론적 긴장을 갖는 언어이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 즉 유기체의 본질적인 속성은 삶을 위한 투쟁과 갈등에 있는데 삶을 위한 투쟁과 갈등을 간단히 압축시키면 삶의 긴장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고 그 삶의 긴장의 언어적 반영이 바로 의미의 긴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산문어의 영역
[06] 시란 무엇인가
1. 문학의 분류
2. 시란 무엇인가
3) 이미지, 은유, 상징 등에 의한 형상화
시는 물론 철학이나 종교가 아닌, 예술의 한 장르이다. 따라서 단순히 세계가 지닌 총체적 진리를 관념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시가 될 수 없다. 미학적 형상화라는 또 다른 요소가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시가 관념적, 추상적인 진술이 아니라 구상적, 감각적 진술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물론 시의 공간적 측면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미지, 은유, 상징에 의한 언어적 형상화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가령
①내 마음은 슬프다
②내 마음은 벌레 먹은 능금이다
의 두 진술이 있다고 하자. ①은 시적인 진술이 될 수 없다. 비록 감정이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지 않고 그 진술 역시 감정에 대한 진술이지 그 자체로 감정적 진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슬픔이라는 감정의 사실 보고 혹은 감정이라는 개념의 언어적 전달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②는 그렇지 않다. 시인 자신의 특별한 감정적 반응이랄까, 시인에게 환기된 감정 바로 그 자체가 형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②가 시적 언어가 될 수 있는 비결은 시인이 상상력을 통해서 자신이 체험한 바 그 정서적 반응을 은유적으로 형상화시킨 데 있다고 할 것이다.
4) 일인칭 시점의 자기 독백체 진술
시는 시인이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한다. 1인칭 시점의 내가 나에게 말하는 어법이다. 그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3인칭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나 무대상의 등장인물들이 2인칭 시점으로 서로 이마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드라마와 달리 시만이 지닌 고유한 어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5) 현재 시점의 진술
시는 그 시제가 현재이거나 현재 진행형이다. 즉 ~~~했다 혹은 ~~~할 것이다가 아니라 ~~~했다. ~~~하다 , ~~~이다의 시제이다. 그것은 시가 대상에 대한 순간의 깨달음이나 순간의 만남에서 얻어진 의미를 그 순간 기술하는 문학 양식이기 때문이다.
6) 짧은 길이의 함축된 진술
시의 요체는 의미의 함축과 암시성에 있다. 따라서 특별히 장시를 쓰려고 의도하지 않는 한 그 길이는 적당한 한도 안에서 짧아야 한다. 진술이 길면 그만큼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그에 비례해서 의미는 느슨해지거나 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술이 길어진다는 말은 세 가지 뜻을 지닌다. 첫째, 문자 그대로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요, 둘째, 장시를 쓴다는 뜻이요 셋째, 이야기체를 쓴다는 뜻이다.
[07 시적 진실
1. 사실과 진실
사실과 진실은 자주 혼동되는 듯하다. 그러나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은 인식 대상이 드러내 보여주는 어떤 객관적 양상이다. 달리 말해 인식 대상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그 무엇이다. 이에 반해 진실은 대상 그 자체만의 속성이 아닌, 대상과 인식주체(주관)가 협동해서 만들어낸 어떤 의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은 객관성을 띠고 있지만 진실은 어느 정도의 주관성을 띤다. 최소한 진실은 순수하게 객관적이지만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주관이 대상과 협동해서 만들어낸 의미를 진실이라고 한다면 진실이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당연히 인간의 삶, 나아가 인간의 가치관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사랑이라든가 연민 같은 감정 역시 피타고라스정리나 만유인력의 법칙에 못지않는 나름의 위대한 진리라 할 수 있다. 다르다면 전자가 주관적, 비논리적인 데 반해 후자는 객관적, 논리적이라는 사실 뿐이다. ※ 그런 의미에서 소설도 허구이지만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길을 건너려는데
건너 편 길가에서
소나타가 급정거를 한다.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피하려다가
넘어지고
젊은이가 쓰러진다
피자 헛이 쏟아지고
길바닥에 흩어지는
피자조각들~~~(중략)“
-어떤 시창작 교실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위 글은 구체적 풍경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시적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장르적으로는 시라 할 수 없다. 거기에는 다만 어떤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뿐, 어디에도 상상력에서 촉발되는 시적 진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젖꼭지만 까맣게 말라붙은 어머니 가슴처럼
쩍쩍 금이 간 결마다 귀를 대 본다.
되직하게 풀 먹여 바싹 말린 이불 호청 서걱이는 소리
꽉 조였던 슬픔의 좁은 솔기 터지는 소리 들린다.
햇볕을 착착 아귀 맞게 접어 놓고
수천 번 다듬이질로 갈 무리할 줄 알았던
그 시절은 이미 전설이 되었고
없어진 그늘 자리 같은 서늘한 기운만 남았다.
완벽한 오체투지
세상에 젖지 않고 마를수록 저렇게
가볍게 자기를 던질 수 있음을 본다.“
-이인원. <장작>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시에 제시된 장작은 일상의 장작과 달리 어머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말라비틀어진 장작개비 속에서 어머니의 마른 젖가슴을 상상하고, 땅바닥에 내 던져져 있는 장작개비 속에서 자식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한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을 본다. 그러므로 이 시의 장작은 사실로서의 장작이 아닌 진실 -사랑과 헌신-로서의 장작이다.
2. 감정적 진실과 이성적 진실
시도 어떤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과학과 동일하다. 다만 다르다면 그 진실의 유형이 다를 뿐이다. 즉 과학은 이성의 영역을 탐구한다. 그러나 시는 감정의 영역을 다룬다.
그러므로 누구나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 세계 혹은 사물이 지닌 과학적 진실이 아닌 비과학적 진실 즉 모순되고 불합리하지만 총체적이면서도 인생론적인 어떤 진실을 찿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시는 오로지 감정적 진실만으로 쓰여 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적 진실과 이성적 진실의 적절한 융합 혹은 조화 속에서 쓰여 진다.
3. 시와 총체적 진실
총체적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으로 요약 된다.
첫째, 감정적 진실이다. 예를 들어 “밤하늘에 둥근 달이 밝게 떠 있다”고 하는 것은 이성적 진실이다. 그러나 “신이 듣는 하늘의 귀”라고 말하는 것은 감정적 진실에 속한다.
“하늘은 가끔씩 신의 음성에겐 듯 하얗게 귀를 기울이는 낯달을 두시었다.” -서정춘. <귀>
훌륭한 시는 단일한 감정이나 긍정적 감정만으로 씌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복잡한 감정 -때로 적대적일 수도 있는- 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둘째, 상상력에 토대한 주관적 진리이다. 감정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적 진실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구는 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과학적 진실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동일한 의미로 박용하나 시적 진실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그것도 각자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셋째, 직관적 진리이다. 순간적인 인상 혹은 돌발적인 깨달음을 통해 얻어진 진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거기에는 어떤 분석적 사유도, 비판적인 성찰이나 추리도, 인과의 원리도 없다. 마치 선수행자가 어느 순간 돈오(頓悟)의 경지에 들 듯 그렇게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는 진실이다.
[08] 시의 원리
1. 현대 시론의 견해
시란 총체적 진실을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 등으로 짧게 함축한 언사이다. ~~~시를 구성하는 삼대 축은 ①총체적 진실에 대한 언급. ②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 등에 의한 형상화. ③운율 등에 의한 음악적 언어 표현 등 세 가지로 요약 된다. 문제는 이 삼요소가 어떤 원리로 결합하여 어떻게 한편의 완성된 시를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1) 신비평
2) 구조주의
시는 공간적이다. 내용을 시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직관적 깨달음에 관한 성찰이니 서술할 내용 자체가 없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에는 세계에 대한 동시적이며, 전체적인 한순간의 반영만이 있을 따름이다.
3) 기호론
2. 분석의 예
1) 신비평적 접근
[09] 시의 언어
1. 존재와 현존재
2. 존재와 언어
3. 언어화와 말하기
4. 시의 언어와 일상 언어
[10] 이미지와 시의 네 가지 요소
1.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
2.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미지란 우리의 마음에 어떤 감각적인 영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체의 언어적 진술이다. 이미지를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의 재생으로 보는 심리학적 정의도 여기에 있다. 기억이란 우리의 마음속에서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어떤 시간과 공간을 전제한 구체성, 즉 한편의 그림으로 떠올려지는 영상을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우리의 마음속에 감각적 영상을 환기시킬 수 있는 기능은 추상적인 언어 즉 추상어가 아니라 오로지 감각적인 언어 즉 구상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더 압축해 말한다면 현실적 언어 행위에 있어서 이미지란 간단히 구상어로 표현된 언어라 할 수도 있다.
가령 ‘내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와 ‘내 이상은 물거품이 되었다’라는 두 개의 진술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전자에는 이미지가 없으나 후자에겐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전자는 결합된 단어들이 모두 추상어로 되어 있지만 후자에는 ‘물거품’이라는 구상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진술을 듣는 청자의 입장에서 전자는 단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정보 전달로 그 소임을 다하지만 후자는 마음의 스크린 속에 바다나 호수 혹은 폭포의 물이 거품을 일으키면서 덧없이 사라지는 어떤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3. 이비지의 분류
1) 감각에 따른 분류
시각적 이미지: 색채나 형태 즉 시각을 환기시키는 이미지. ‘장미’, ‘구름’,노랗다‘ 등
청각적 이미지: 소리 즉 청각을 환기시키는 이미지. ‘운다’, ‘짖는다’, ‘천둥소리’, ‘철석철석’, ‘살랑살랑’ 등.
후각적 이미지: 냄새 즉 후각을 환기시키는 이미지. ‘향기롭다’,‘ 냄새 나다’, ‘박하향’ 등.
촉각적 이미지: ‘단단함’,‘부드러움’,‘차가움’ 등. 촉각을 환기시키는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 맛 즉 미각을 환기시키는 이미지. ‘달다’,‘쓰다’,‘고소하다’ 등.
형태 윤곽적인 이미지:P '평평하다‘,’둥굴다‘ 와 같이 대상의 모습을 환기시키는 이미지.
정적인 것과 동적인 이미지: ‘서 있음’,‘앉아 있음’,‘걸음’,‘달림’ 등 대상의 상태를 환기시키는 이미지.
2) 대상의 인지 과정에 따른 분류
3) 통사 구문에 따른 분류
4) 비유어와의 관계에 따른 분류
①비유적 이미지: 비유를 겸하고 있는 이미지, 가령 ‘교실은 한 떨기 꽃밭이다.’ ‘누구나 가슴에 별 하나 안고 산다.’와 같은 진술에서 꽃밭이나 별은 은유이자 동시에 이미지이다.
②묘사적 이미지: 비유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의 순수한 이미지. 다만 마음 속에 어떤 감각만을 환기시켜준다.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박목월<청노루>)
4.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와 상관성
이미지와 은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미지는 마음의 눈 혹은 마음의 귀에 어떤 감각이나 형상을 환기시켜 주는 진술이다. 따라서 그것은 꼭 비유를 통할 필요가 없다. 은유 역시 꼭 이미지를 겸하지 않아도 된다. 은유는 어떤 개념이나 사물을 보다 신선하고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다른 사물로 전이(환치)시키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은유에 있어서 본의나 매재도 반드시 구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추상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혹은 구상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의미 전이 시키는 은유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가 공유한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 모두 과학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은유는 과학의 추상적, 개념적, 논리적인 언어를 배제하며, 이미지 역시 과학과 철학의 세계를 기피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양자의 관계는 첫째, 이미지이자 은유인 영역(이미지와 은유가 중복된 영역, 즉 비유적 이미지. 예;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다.-이육사<절정>), 둘째, 순수 이미지만의 영역(은유는 없고 오직 감각만을 환기시킨다. 예;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박목월<나그네>). 셋째, 순수 은유만의 영역(감각의 환기는 없고 오직 비유만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추상어로 된 은유. 예; 진정한 영원은 순간이다.)이 그것이다.
[11] 은유, 제유, 환유
1. 수사어의 분류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아이러니 등은 보통 비유어로 취급되어 왔다.
2. 은유의 본질 그리고 치환은유와 병렬은유
어떤 대상을 지시하여 이야기할 때 그것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을 통해 대신하는 언술 방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래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물과 이를 대신하는 사물의 양자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바로 그 의미의 넘겨주기이다. 만일 이 양자 사이에 그 의미의 넘겨주기가 없으면 본의로서의 사물과 매재로서의 사물의 결합은 불가능한 까닭에 이는 은유 구성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양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 같은 의미의 넘겨주기를 간단히 의미의 전용 혹 전이라 부른다. 그리고 바로 이 의미 전용의 결과 본의는 매재로 환치 혹은 대치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은유란 원관념과 보조관념 그리고 이 양자를 맺어주는 의미의 넘겨주기 즉 의미의 전이 등 세 요소로 만들어진 수사법이라 할 수 있다. 가령 누가 ‘달은 하늘의 등불이라’고 했다 하자. 거기에는 물론 본의로서의 태양과 매재로서의 등불, 그리고 태양을 등불로 대신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어떤 의미 전이가 있으므로 은유가 된다.
그렇다면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서의 의미의 전이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이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의미의 어떤 유사성 때문이다.~~~따라서 은유의 토대는 한마디로 유사성에 대한 의미의 전이라고 할 수 있다.
“뭇 군중 속의 이 얼굴들의 환영
촉촉이 젖어 검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들“ -에즈라 파운드. <지하철 역에서>
첫행 즉 ‘뭇 군중 속의 이 얼굴들의 환영과 둘째 행 즉 ’촉촉이 젖어 있는 검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들‘을 동시적으로 대응, 병렬시키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3. 비유사성 속의 유사성
본의와 매재가 공유한 의미의 유사성에는 수많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시인은 그 시작(詩作)의 관점이나 상상력의 저항에 따라 무엇이든 은유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은유들의 미학적 혹은 철학적 가치들까지 항상 동일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것은 훌륭한 은유가 되고 어떤 것은 천박한 은유가 된다. 어떤 것은 너무도 직접적이어서 하나마나한 은유가 되고 또 어떤 것은 너무 엉뚱해서 난해한 은유가 된다.
비유사성 속에서의 유사성에 의한 두 사물 간의 의미전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의미의 긴장이라는 개념이다. 유사성이 지나치거나 혹은 유사성이 없는 본의와 매재의 결합보다는 비유사성 속의 유사성을 지닌 본의와 매재의 결합이 한결 팽팽한 의미의 긴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4. 은유의 두 가지 형식
은유라는 명칭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직유, 은유, 제유, 환유, 활유 등을 모두 총괄해서 지칭하는 넓은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직유, 제유, 환유, 활유 등과 등가를 이루는 좁은 의미이다.
5. 은유의 발생
6. 은유의 분류
은유의 분류는 첫째, 철학적 측면과 언어학적 측면으로 나누고, 둘째, 그것을 다시 여러 유형의 하위 그룹으로 나누는 방법이 보편적이다. ~~철학적 측면의 경우엔 ①종/류에 의한 구분(‘여기 배 한 척이 서있다’,‘일만 가지나 되는 덕행’), ②생명체/ 비생명체에 의한 구분(산의 이마‘), ③사고 영역에 의한 구분(’대지는 눈을 뜨고‘) ④지배적 특성에 의한 구분 등이 있다.
7. 제유와 환유
[12] 상징과 신화
1. 상징의 범주
‘잔디밭에 쳐진 비닐 노끈’이 단지 하나의 감각적 사물이 아니라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정보전달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상징의 세계에 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이 전제된다.
첫째, 어떤 관념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직접 언술하지 않고 항상 다른 표시로 대신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의미는 간법화, 내면화되어 암시적, 주술적 효과를 야기시킨다.
둘째, 그 표시는 항상 어떤 형상성(사물로서의 가시성) 띠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상징은 감각적이다.
셋째, 의미적 요소와 그것을 내면화시킨 어떤 표시의 양자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전자는 정신적 영역, 후자는 물질적 영역(표시가 항상 가시적 사물이어야 하는 까닭에)에 속하므로 모든 상징은 또한 이 두 영역의 매개물로서 존재한다.
상징은 한마디로 정신적 영역인 기의를 형상적 영역인 기표에 매개시켜 어떤 무한의 세계를 암시하는 기호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 기호와 상징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는 길을 건너서는 안 되지만 파란불이 들어오면 건너가도 된다. 이렇게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교통신호는 빨간불, 파란불과 건너갈 수 없음, 건너갈 수 있음이라는 두 가지 체계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전자를 기표, 후자를 기의라고 한다.
3. 문학과 상징
첫째 은유의 경우 매재와 본의가 될 수 있는 것들로는 관념적인 것(비가시적인 것)이든 구체적 사물(가시적인 것)이든 아무 상관없다. 그래서 수사학에서는 심지어 은유를 ①추상적인 것(관념적, 비가시적인 것)을 구상적인 것(구체적 가시적인 것)으로, ②구상적(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나누기조차 한다. 그러나 상징의 경우 본의 (기의)는 항상 관념 매재(기표)는 항상 구체적인 사물이어야 한다. 상징은 비가시적인 관념을 가시적인 사물로 환치시키는데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가시적인 것을 매개로(혹은 가시적인 것을 통해서)해서 그 너머의 비가시적인 관념의 세계를 암시하는 언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모든 상징은 일차적으로 은유화의 과정을 거치거나 그 자체 은유의 일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어떤 특정한 것만이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은유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둘째, 은유는 일회적이지만 상징은 반복적이다. 반복성은 상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어떤 체계나 텍스트 심지어는 어떤 특정한 문화적 콘ㅌ게스트 안에서 항상 반복된다. 예컨대 시인이 ‘희망’이라는 관념을 ‘하늘’로 비유시켰다고 하자. 만일 그것이 한 텍스트 내에서 일회성이나 일회성에 가까운 빈도로 그친다면 은유의 차원에 머물렀다고 보지만 반복해서 등장할 경우 상징이라 한다.
셋째, 상징은 항상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한 텍스트 내에서 반복 등장하는 매재로 ‘하늘’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이 어떤 경우는 희망을, 어떤 경우는 그리움을, 어떤 경우에는 좌절을, 어떤 경우에는 슬픔을 표상한다면 여기에 일관성이 있다 할 수 없고 따라서 그 각각은 당연히 은유의 차원에서 끝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반복되는 모든 경우에 있어 하늘이 항상 희망을 암시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단 그것을 상징이라 해 둔다.
넷째, 상징은 공간적으로는 무한성을 시간적으로는 영원성을 보여주려 한다. 즉 개개의 가시적인 사물을 통해, 혹은 그 가시적 사물을 넘어 그 속에 숨겨진 어떤 무한하고도 영원한 관념세계-그것을 플라톤의 이데아라 생각할 수 있는-를 암시하는 것으로 특정지어진다.
4. 상징과 신화
상징은 기본적으로 은유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한성과 영원성을 추구하고, 과거적인 유산을 반복하며, 비가시적인 어떤 신비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궁극적으로 신화를 지향한다.
1) 한편의 시에 있어서 지배적 이비지
2) 사적 상징
사적상징은 한편의 시 작품 안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는 이미지나 은유라는 범주를 벗어나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 일관성 있는 의미로 순환 반복되어 나타나는 상징을 일컫는 말이다.
3) 조상 대대로의 상징
소속된 공동체의 다른 시인들도 함께 공유한 것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낸 상징이다.
4) 문화 수용의 상징들
5) 원형상징 혹은 원형
문화적 차이나 문화권을 넘어서 온 인류에게 보편적, 일반적으로 상상되거나 통영되는 상징.
[13] 역설
1. 개념
시어의 특질이 무엇인가~~~비평가 브룩스가 주장하는 ‘역설’이라는 개념이다.
역설이란 상반되는 둘 이상의 이미저리나 관념이 하나로 수용되어 보다 높은 차원 세계로 그 모순을 초극시킨 진술을 뜻한다. ~~~역설의 본질적 요소들로 경이, 아이러니, 모순 등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