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그 분위기가 사그라들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을 자주 찾던 사람들이 있었다. 학부 시절, 새벽 시간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심야 영화를 즐긴 뒤, 무리 지어 거리의 고즈넉함을 즐겼던 순간들. 지금은 도시에 조금이나마 사람들이 몰려, 24시간 운영 중인 공간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마냥 좋다고 웃고 떠들며 그 거리의 분위기에 젖어들던 순간 말이다. 은은한 가로등의 그 불빛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오목대에 올라가기 전에 자리한 그 정자에 앉아 한창 담소를 나누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전주에 일이 생겨 급작스레 내려가야 되는 순간이 있었다. 하룻밤을 보내기보다는 늦더라도 서울로 돌아오는 게 편했기에, 부모님과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인사를 드리고 집 밖을 나섰다. 내 수중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져왔던 카메라와 50mm 단렌즈가 함께 물려 있었다. 아직, 버스 시간까지는 꽤나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찰나의 고민의 시간을 가진 뒤, 한옥마을로 향했다. 몇몇 상점가들을 제외하곤 많은 곳들이 문이 닫혀 있었으며, 덕분에 전주에 살 때 느껴보지 못했던 분위기를 프레임과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1. 대표 여행지
처음 한옥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했던 건 14살의 일이다. 당시, 중학교에서 운영 중이던 문화유적답사반에 가입했던 나는 처음 경기전, 전동성당 그리고 풍남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접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시작된 관심들은 한국사와 천주교 그리고 사진과 맞닿아 조금 더 오롯이 전주한옥마을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이후, SNS가 활성화가 되면서, 자연스레 전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행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길거리야'의 대중화였다. 블로그와 SNS 게시물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갔던 그 먹거리는 내게 있어 그저 간단한 간식에 불과했다. 전북대 앞에 자리한 학원을 가기 전,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이삭토스트' 정도의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곳은 전주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될 음식으로 손꼽히며, 매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서울에 살면서 전주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베테랑 칼국수'와 함께 종종 듣게 되는 곳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그때 보다 깨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곳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전주한옥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유생 복장을 한 카카오의 캐릭터가 날 반겨줬다. 낮에 그 복작거리던 흔한 소음마저도 단절된 채, 전동성당과 경기전 앞 메인 거리는 가로등 그리고 간판 조명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오래전, SNS에 올라온 어느 사진작가님의 결과물이 떠오르던 순간, 자연스레 그 앞에서 춤을 추던 무용수가 떠올랐고, 그로 인해 그 앞은 훌륭한 무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적절한 빛을 확보하지 못해 순간을 소유하는데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했으나 머리로 기억되던 순간들은 한껏 매력이 담겨 있었다.
경주의 황리단길이 좀 더 발전한다면, 이와 같은 방향으로 그 결을 가져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전주를 올 때, 공주와 부여 대신, 전주를 함께 떠올리곤 하는데,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수도 '완산주' 였다는 것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뿌리가 담겼다는 것 등, 담을 수 있는 그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지금은 이곳이 구시가지로 분류되며, 여행객들을 제외하곤 찾는 이들이 상당 부분 줄어든 것도 사실이나, 잠재된 그 가치를 도시에 접목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부흥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됐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그 고요함은 거리와 맞닿아 한옥마을만의 묘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서울에 자리한 그것들과는 다르게 대다수의 공간이 업장으로 활용되고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전통 그리고 삶의 그 묘한 경계를 찾아가며 마련된 절충안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으며, 오히려 빛이 많지 않아 자연스러움을 충분히 녹여낼 수 있었다. 최근, 지인과 함께 찾은 한옥마을 루프탑 카페는 그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계속 기억에 남는다.
2. 분위기
오목대는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던 곳으로, 그곳까지 이어진 데크 길 다라 부담 없이 올라갈 수 있어 좋았다. 높지 않은 층고와 밀집되어 있던 한옥의 기와는 이곳이 왜 명소인지를 단 번에 알 수 있게 만들어 줬고, 오목대 주변에 충분하지 않던 빛이 오히려 시선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공간이다 보니, 오래전, 이곳에서 시간을 향유했을 양반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놀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즐겼던 장소는 꽤나 달랐을 테니 말이다.
전주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이곳을 찾았을 때, 아무도 없던 이곳에서 소리를 뿜어내던 어느 장인을 우연히 마주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나는 그 전경을 즐기고자 이곳을 찾았지만, 서로를 인지하자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런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조심스레 먼저 인사를 너네며, 괜찮으니 집중하셔도 된다 라는 언질을 드렸고, 그렇게 서로 웃으며 상황을 무마했던 기억이 이곳에 남아 있다. 오목대는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그 대중적인 곳에 남겨진 나만의 기억으로 더욱 그곳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는 건, 매우 소중하면서도 유쾌한 보물이다.
짧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순간을 뒤로한 채, 나는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학부 시절 함께했던 친구와의 만남은 매우 반가웠으며, 버스 시간을 바꾼 뒤, 조금 더 아쉬움을 없애고자 그와의 대화에 열중하고 작별을 고했다.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에 취해 보냈다 순간. 물론 중간에 잠시 비가 내려 돌발상황은 있었지만, 고요했던 순간에 흥미로웠던 요소 정도로 작용했을 뿐이었다. 전주를 떠나 한참을 달린 버스는 휴게서 정차 없이 센트럴에 도착했고, 그렇게 나는 전주에서의 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경기전을 포함해 천주교 성지로도 분류되던 전동성당 그리고 조금 구석진 곳에 자리한 전주향교는 각기 다른 매력들을 자랑했다. 주변으로 그 범위를 넓히자면, 갖가지 창작물 촬영지와 더불어 먹거리도 매우 훌륭했으며, 만약 전주에 살던 지인들이 있다면 더욱 그 순간들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건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니 말이다. 최근, 다녀왔던 가을의 전주 향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웠으며, 조금 더 녹음이 짙어질 때, 구석구석을 자세히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문득 밤거리를 자유로이 거닐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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