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를 마치고서 부대 정문을 나서는 제대군인의 심정은 암울하기만 했다. 낯선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것 같았다.
소속된 곳도,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청년에게 사회는 광활한 바다였고 아득한 황무지와도 같았다. 풋내기 청년은 패기 넘치는 자유인이 아닌 고뇌와 불안을 안고 떠도는 고독한 영혼이었다.
취업은 막막했고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한 선배가“길 위에서 길을 찾아 보라.”며 무전여행을 권했다.
낡은 군용 텐트에 담요 한 장, 한 보자기 쌀과 책 두어 권이 들어있는 초라한 배낭을 꾸렸다. 여행자가 아닌 부랑자의 행색이었다. 빛바랜 청바지에 헌 군화를 신은 청년을 향해 마을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대었다.
동해안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길에는 검문초소가 많았다. 잦은 불심검문에 시달렸고 그럴 때마다 초라한 배낭을 홀딱 뒤집어 몸 뒤짐을 당하곤 했다.
해운대역 앞에서 동해를 향한 첫걸음을 떼었다. 형형색색의 여름옷을 차려입은 피서객들이 붐비는 그곳에서 딱히 정해 놓은 목적지도 없이 수도승처럼 길을 떠났다.
광활한 쪽빛 동해바다를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미끄러져 가는 기차여행은 암울한 가슴으로 길 떠난 청년에게는 사치였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낯선 지방의 푸석한 길에서는 불내가 났고 긴 먼지가 일었다.
혼자서 걷는 무전여행은 쓸쓸했고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이었다.
한 됫박 남짓한 쌀은 사나흘 만에 떨어졌다. 저물어가는 어느 장터 국밥집에서 지친 다리를 쉬면서 마주한 한 그릇 국밥이 눈물겨웠다.
동해안 작은 포구에는 한 줄기 가느다란 해안선에 가난한 삶 걸쳐 놓고 살아가는 따개비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엎드려 있었다. 해풍에 삭은 갈대지붕 위로 매운 가난이 연기처럼 감돌았다. 파도 소리 쓸쓸한 작은 포구는 오영수의 단편소설『갯마을』의 배경 같았다.
한 끼의 밥을 얻기 위해서는 땀 흘려 일해야만 한다. 이 지극히 당연한 진리도 절박한 상황에서 경험해 보지 않으면 산 교훈이 되지 못한다.
오징어 채낚기 낚시를 가는 생면부지의 늙은 어부에게 생떼를 쓰다시피 하여 따라 나간 밤바다는 무서우면서도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늦은 오후. 들숨과 날숨으로 들고 나는 파도 소리가 어부의 짙은 한숨처럼 들려오는 포구에서 배는 한 줄기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갔다.
방파제 끝에 동그마니 서 있는 작은 등대가 고사리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뒤에서 멀어져가는 우리를 배웅했다.
바다에서 바라본 포구는 바다가 앞마당이었고 작은 등대는 마을을 지키고 서있는 장승이자 이정표였다.
수평선 너머는 또 다른 수평선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소실점으로 사라져가는 시야의 끝이었고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이었다.
어부는 땅의 길이 있듯이 바다에도 물길이 있고, 육지의 이정표처럼 배의 항로를 안내하는 항로표지가 있다고 했다.
소나기 지나간 망망대해의 수평선 너머로 빠져드는 낙조의 색채는 처절하도록 장엄했다. 울컥! 알 수 없는 눈물이 솟았다. 자연의 처연한 아름다움은 그토록 서러운 것이었다.
해가 진 바다는 곧장 어둠에 묻혔고 듬성듬성 떠 있는 배들이 집어등 불빛을 환히 밝혔다. 그것들은 오선지 위에서 춤추는 음표들처럼 칠흑 같은 밤바다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일렁였다.
노인은 불빛이 환한 큰 배 근처에서 오징어를 낚아 올렸다.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고요한 밤바다. 세상과 이어주는 것이라곤 라디오 한 대가 전부인 작은 발동선. 어두운 밤바다에서 큰 배의 옆에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었다.
오징어 낚는 손길이 뜸해질 때면 노인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자리를 짚어 주었다.
“뱃사람은 시계가 없어도 북두칠성 꼬리를 보고서 시간을 알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비추어 주는 별 하나쯤은 있어야 해!”
“그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대이고,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나침반이거든!”
“저 수많은 별 중에 자기 별 하나 없다는 것은 참 딱한 일이지!”
“밤하늘을 잊고 사는 사람은 삭막해!”
“여름 바다는 태풍만 불지 않으면 얌전하니까 겁내지 말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자리를 짚어 주는 노인의 곁에서 나는 알퐁스 도데의『별』에 나오는 소년 목동과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를 생각했다.
밤바다는 수시로 긴 물이랑을 그으며 뒤척이곤 했다. 수심에 잠긴 바다가 긴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먼 밤바다는 두렵고도 경이로운 대자연이었다. 그러나 날이 새고 태양이 떠오르면 그늘 하나 없는 작은 발동선 위에서의 시간은 고문 같았다. 쨍쨍한 여름 햇살은 독침처럼 따가웠고 더위와 멀미에 지쳐 기진맥진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밥을 짓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밥물이 넘쳐흘렀고 삼층밥이 되기 일쑤였다.
노인과 나는 그렇게 사흘 밤낮을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자네, 장가는 들었는가?” 노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낚시를 그렇게 하면 안 돼!”
“예?”
“사람이 진중해야지, 질정 없이 오가며 설레발친다고 해서 괴기가 무는 게 아니여!”
어찌 된 셈인지 노인의 낚싯줄에는 건져 올리기 바쁘게 오징어가 무는데 내가 들고 있는 것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잡히는 것이었다.
“내가 평생 해온 일이라곤 이 뱃일 뿐이라네. 그러기에 늘 천직으로 알고서 살아왔지.”
“세상에는 자기가 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벌로 아는 사람도 있지.”
“자기가 하는 일을 천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사고가 잦더라고!”
한두 마리씩 낚아 올린 오징어가 그러구러 어창에 그득해지면서부터 노인의 눈길은 자주 포구 쪽으로 향했다.
귀항 채비를 하는 동안 더 자주 포구 쪽으로 향하는 노인의 얼굴에서 구릿빛으로 그을린 삶의 행복이 묻어났다. 아마도 그 시간쯤, 뭍에서 조바심치며 기다리고 있을 그의 아내도 가슴이 부풀고 있었으리라! 어부와 아내의 무채색 사랑은 아득히 펼쳐진 저 먼 한 가닥 수평선에서 맞닿아 하나의 믿음으로 일렁이는 것이었다.
먼 밤바다에서 발동선의 불빛 한 점이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을 때 그 작은 포구의 등대도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금빛 윤슬이 반짝이는 밤바다에서 만선의 꿈을 건져 올린 어부의 설렘과 조바심치며 기다리는 아내의 사랑. 작은 포구 해안선에 쟁여져 있는 그들 순박한 사람들의 비릿한 삶과 거친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생사의 의미가 숙연했다.
더 이상 길 위에서 떠돌 이유가 없었다. ‘진리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서 돌아섰던 원효대사처럼.
다음날 나는 등대가 있는 방파제 바닥에 퍼질러 앉아 우에무라 나오미의 『안나여 저것이 코츠뷰의 불빛이다』를 읽었다. 그린란드에서 캐나다에 이르는 북극권 12,000km의 설원을 열세 마리 썰매견과 1년 5개월간 달리는 장엄한 드라마에 몸을 떨었다.
긴 세월이 흘러간 지금 그때의 내 초심(初心)은 오랜 화석처럼 희미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투지와 용기를 북돋워 주던 그 작은 포구에서의 추억과 작은 등대에 기대어 읽었던‘코츠뷰의 불빛’은 어제인 듯 새롭다.
그것은 자신의 행로와 목표 지점을 찾기 위해 얼마나 도전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먼 훗날 찾아간 그때의 작은 포구에는 새로 만든 등대가 단아한 자태로 서 있을 뿐 이마의 주름이 물고랑처럼 깊은 노인의 안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등불을 켜 들고 자식을 기다리는 정겨운 어머니 같던 작은 등대와 거센 물살에 떠밀리면서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던 항로표지들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그해 여름, 나는 그 바닷길의 작은 등대에서 내가 찾아야 할 ‘코츠뷰의 먼 불빛’을 환희에 찬 기쁨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