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시작된 봄 학기는 16주간이 지난 후 여름이 시작되면서 끝났다. K교수는 채점도 끝나고 이제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생겼다. 해는 점점 더 높이 떠오르고 날씨는 점점 더워졌다. 나무들은 한여름 동안 열심히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들고, 열매를 만들고, 나이테를 크게 한다. 봄은 지났지만 여름에도 산과 들에는 계속해서 꽃이 피어난다. 자귀나무, 배롱나무, 무궁화 등은 여름에 꽃이 피는 나무이다. 땅에서는 여러 가지 이름 모를 풀이 자라나고 풀꽃이 계속 피어난다.
방학이 되어도 K교수는 매일 학교에 나간다. 서울에서 통근할 때도 그랬지만 학교 후문 뒤 수기리에 이사 온 후에도 매일 학교에 나간다. 수기리에서는 걸어서 학교에 간다. 호수 마을 전원주택에서 학교까지는 걷기에 적당한 거리이다. 학교에 걸어가는 중간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 호수 마을 집들은 도시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울타리 대신 철망이나 나지막하고 성긴 나무로 울타리를 했기 때문에 집에 심은 과일나무며, 상추 쑥갓 등의 채소,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꽃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감나무, 대추나무, 포도나무 등이 보이고 나팔꽃, 조롱박, 호박, 수세미 등의 덩굴식물도 보인다.
호수마을을 벗어나면 작은 오르막길이 나오고 커다란 가족무덤이 나타난다. 그 옆으로 동네 사당이 보이고 밤나무 숲을 지나 고갯길을 내려가면 논과 밭이 나타난다. 조금 지나면 다시 밤나무 숲이 나타난다. 숲길을 따라 조금 가면 홍법사라는 아담한 절이 나타난다. 이 절은 조계종 소속 절인데, 주지이신 혜명 스님은 나이가 많으신 비구니 스님이시다. K교수는 혜명 스님과 차를 같이 마시며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홍법사 법당 앞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다. 연못 앞에는 작은 쉼터가 있고 쉼터 기둥에는 분홍빛 능소화가 예쁘게 피어 있다.
능소화는 옛날에는 양반집 뜰에서만 심을 수 있어서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게 되면 임금이 직접 능소화를 머리에 꽂아 주었다고 해서 어사화라고도 불렀다. 능소화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소화라고 하는 궁녀가 임금의 사랑을 받아 빈이 되어 궁궐에서 처소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소화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음모로 임금이 찾아오지 않게 되자 소화는 애타게 기다리다가 병이 났다. 소화는 “담가에 묻혀 죽어서라도 임금을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는데, 담가에 분홍색 예쁜 꽃이 피어나 사람들은 능소화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능소화에 얽힌 슬픈 이야기와는 달리 꽃말은 ‘영광과 명예’라고 한다. 꽃이 떨어질 때에 시들어 변색하지 않고 피어있는 모습 그대로 바닥에 ‘툭’하고 떨어진다. 마치 동백꽃이나 무궁화꽃처럼 말이다. 능소화는 꽃이 피어 있을 때도 예쁘지만 생을 마감할 때도 고운 모습을 잃지 않아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꽃이다.
천불전 앞을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을 혼자 걸어도 K교수는 결코 심심하지 않다. 매일 같은 길을 걷지만 자세히 보면 하루하루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가 있다. 뒷산에는 진달래와 철쭉, 리기다 소나무와 밤나무가 많다. 동물로는 박새와 청솔모, 그리고 까치가 자주 보인다. 그밖에도 가끔 이름 모르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나지만 새가 보이지는 않는다. 한번은 뱀도 보았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산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S대 본관 뒤의 밤나무 동산으로 이어진다. 후문을 지나 연구실까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도착한다. K교수는 그 산길을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조용히 산길을 걸으면서 그저 숲을 바라보고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느낄 뿐이다. 작년에 보니 사계절은 하루 하루 변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산에는 계속 꽃이 피고 진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나오듯이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는 시구는 전원에 살아보니 정말로 맞다는 것을 알았다.
방학이 시작된 후에 서너 번 미녀식당에 들렸는데, 갈 때마다 주인은 서울 가고 없다고 한다. 미스K는 뭔가 바쁜 일이 있나 보다. 종업원 말에 의하면 방학이 되자 손님이 많이 줄었단다. 손님들이 와서 사장님 어디 가셨냐고 매번 묻는데, 서울에 일보러 가셨다고 대답하면 실망하면서 그 다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식당에는 손님이 줄기 마련이다. 손님들은 미녀식당으로 스파게티를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고 미스코리아 얼굴 보려고 왔었나 보다.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K교수는 미녀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종업원이 받더니, 역시 사장님은 부재중이란다. 미스K가 K리조트에 산다는 것이 생각나서 K리조트로 전화를 걸었다. 방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미스K를 미녀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 받은 명함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겨우 통화가 되었다. 미스K는 “요즘 서울에서 바쁜 일이 있어서 파스타 밸리를 많이 비웠어요. 교수님, 미안해요.”라고 말하더니 “모레에는 파스타 밸리에 있을 거에요. 그날 점심 때 만날까요?”라고 먼저 제안을 했다. K교수는 흔쾌히 약속을 하고 이틀을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