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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 좀 아십니까?
세상물정의 비밀과 거짓말 속으로 뛰어든 탐정 사회학자의 모험!
◈ 세속을 살아가는 월급쟁이 사회학자, 삶의 평범성을 고민하다
혼자 사는 싱글남 사회학자로서 1인 가구 문제를 사려 깊고 섬세하게 다룬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펴내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과 지지를 얻은 노명우 교수가, 이번엔 세속을 살아가는 사회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며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썼다.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 노동자 교수로서 스스로가 평범한 세속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누구나 살면서 겪는 세상 경험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채집하고 궁리하며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시도했다. 이론을 파고들며 지식을 과시하거나,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과 고민은 외면하고 사회학을 위한 사회학에 매몰된 기존 학계의 관습과 언어에서 벗어나, 세속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좇는 사회학자 노명우의 작업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 세상물정의 비밀과 거짓말 속으로 뛰어든 탐정 사회학자의 모험
“당신의 삶은 세계의 사건 중 한 조각이 아니라 세계의 사건 전체”라는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개인들의 구체적 삶의 절실함과 생생한 경험을 이해하려 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세상 경험에 대한 자전적 사회학이자, 자기도 모르게 이미 세속의 사회학자였던 세상 사람들의 경험을 아울렀다. 노명우 특유의 민감한 감수성과 비판적 시선으로 포착된 세상물정의 사연과 이야기는 스스로 그 비밀과 거짓말을 드러내며 아름답고도 추한, 선하고도 악한 세속의 풍경을 보여준다. 노명우는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한 세상물정 속으로 뛰어들어 그 사연의 실타래를 찾아보려는 탐정 사회학자가 되어, 고통·회의·기쁨·사랑·의심·기대·분노·질투 등으로 버무려진 삶의 미로에서 ‘좋은 삶’의 길을 찾고자 한다.
◈ 화려하고 음울한 세속의 파노라마, 냉혹한 리얼리티와 마주하는 용기
상식, 명품, 프랜차이즈 등으로 시작되는 세상물정의 이야기는 불안, 종교, 이웃, 성공, 수치심, 취미, 섹스, 자살, 노동, 게으름, 인정, 개인, 죽음 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화려하고도 음울한 세속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에 대해, 똑같이 욕망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는 평범한 사람이자 사회학적 훈련을 받은 학자의 시선으로 그 이면의 의미를 짚어내고 그 속에 담긴 냉혹한 리얼리티를 마주한다. 노명우는 노련하고 섬세한 일급 감별사의 솜씨로 세상물정을 요리하고 해부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리얼리티를 드러낸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주인공 가수 로드리게스의 노랫말을 인용해 세상물정의 비정한 풍경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며, 냉혹한 리얼리티를 마주할 때라야 고통과 불행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상처와 불행은 개인의 잘못이나 팔자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며, 그 차가운 현실과 대면할 때 상처받은 사회가 비로소 치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세상물정을 영리하게 사는 방법, 좋은 삶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
사회학자 노명우가 세상물정을 헤아리는 것은 더 ‘좋은 삶’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얽혀 있는 세상만사에 각자의 욕망과 편견과 오해와 판타지를 투사해 해석한다. 이런 각자만의 색안경을 벗겨내고 우리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명우는 보들레르와 벤야민이 선취했던 ‘산책자’의 시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성찰하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 삶의 문제적 장면들을 다룬다. 더 잘살기 위해서, ‘좋은 삶’을 얻기 위해서는 권모술수와 이해타산이 얽힌 처세술이 아니라, 선한 의지로 충만한 소박한 방어의 삶을 사는 착한 삶이 아니라, 영리하고 지혜롭게 세상 이치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사회학적 통찰과 상식의 세계를 중재하는 헤르메스가 되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으로부터 비판적 성찰을, 버밍엄학파의 문화연구로부터 동시대에 대한 민감한 촉수의 필요성을 배운 노명우 교수는 세상물정의 만다라가 펼쳐지는 상식의 세계와 사회학적 통찰을 연계하고 중재하는 헤르메스를 자처한다. 세상물정에 대해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물론, 그람시(상식)?베버(종교)?마르크스(노동)?베블런(명품)?벤야민(기억)?라이히(섹스) 등 고전적인 사회학적 통찰을 베이스로, 보드리야르(소비)?부르디외(취미)?하버마스(여론)?버틀러(남자)?벡(불안)?손택(죽음) 등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을 참고하고, 리처(프랜차이즈)?주커먼(종교)?퍼트넘(이웃)?호네트(인정) 등의 문제의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해 상식의 세계에 다리를 놓는다. 이러한 헤르메스의 다리를 통해 세상물정의 복잡한 속사정은 그 의미를 드러내고 비로소 우리는 미로 같은 세상에서 길을 낼 수 있는 지도를 얻게 된다. 이 책은 그동안 축적된 사회학적 통찰과 범속한 상식의 세계를 아울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준다.
추천사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판은 적당한 가까움을 유지해야만 한다. 냉소주의는 실천적 전망이 없을 때 생기는 거니까. 그래서 심장 박동 소리, 향수 냄새, 그리고 땀 내음이 나는 적당한 가까움을 두는 비판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얼마나 아찔한 모험인가. 방심하는 순간 세속적 비판은 현실이란 자장에 끌려 좌초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노명우라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런 아찔한 모험에 뛰어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 이제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란 배를 타고 세속이라는 리얼리티를 항해하며 우리 삶을 음미해보도록 하자. _ 철학자 강신주
주요 내용
세상물정의 25가지 속사정을 알려 드립니다!
1부 세속이라는 리얼리티
1부에서는 상식/명품/프랜차이즈/해외여행/열광/언론/기억/불안/종교 등의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세속이라는 리얼리티의 풍경을 그린다. 화려한 세속의 풍경 뒤에 감춰진 리얼리티를 드러내며 우리 삶에 대한 성찰로 안내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글인 「상식의 배반, 양식의 딜레마」는 상식과 양식의 역설적 관계를 다루며 저자가 이 책에서 세상물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살고 상식적인 세상을 꿈꾸지만 ‘부자 되기’의 상식이 모두를 지배할 때 사회적으로 몰상식한 풍경이 펼쳐지고, 상식은 이렇게 우리 삶을 배반하곤 한다. 이런 상식을 교정하고 계몽하고자 하는 양식은 엄격하고 훈계하는 말투를 사용하여,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상식 앞에서 무력하다. 따라서 양식을 설파하는 지식인들보다 상식을 이용하는 보수정당과 광고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감옥에 갇혀 ‘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는가’의 문제의식으로 상식과 양식의 관계에 몰두한 그람시의 생각을 떠올리며 상식의 허구와 양식의 공허함을 성찰한다.
2부 삶의 평범성에 대하여
2부에서는 이웃/성공/명예/수치심/취미/섹스/남자/자살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고민한다. 누구나 영위하는 일상 속 문제적 장면을 포착해 아름답고도 추한, 선하고도 악한 세상물정의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나 홀로 고스톱」은 이웃은 무엇이고 더불어 사는 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에서 커뮤니티가 무너지고 홀로 볼링을 쳐야 하는 미국인들의 고립된 초상을 그려냈다면 노명우는 한국사회에서 커뮤니티가 이해관계를 매개로 한 패거리 문화로 기능함을 지적하고, 부동산 유목민으로 살며 정주의 안정감을 박탈당하고 공동체 형성이 무망한 한국인들의 쓸쓸한 살풍경을 고민한다.
3부 좋은 삶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
1부와 2부에서 세속의 풍경과 삶의 평범성을 궁리하고 난 후 3부에서는 좋은 삶을 열망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고민을 제안한다. 세상 이치를 알아야만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 연작으로 구성된 「임금노동의 운명」 「노동과 게으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노동과 게으름의 미덕과 악덕을 가려주던 이솝우화 속 이야기를 비틀어 노동과 게으름의 의미를 파고든다. ‘노동’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중세 영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 모두에서 슬픔, 고통 등을 의미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노동하는 인간의 슬픔을 연민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생계를 볼모로 한 임금노동의 운명에 사로잡혀 있음을 통찰하고 임금노동자들의 연대를 제안한다. 또 게으름을 찬양한 베짱이를 인터뷰하며 노동의 미덕을 훈육한 이솝과 자본주의의 교훈을 논박하고 노동시간 축소를 통해 좋은 삶을 도모해보자고 제안한다.
[교보문고 제공]
하지만 대학이 더 이상 사회의 특별구역도 아니고 학자가 대학이라는 기업화된 조직에 고용된 임금노동자의 처지에 가까워지면서 얻게 된 가능성도 있다. 이제 학자들은 성소가 아니라 세속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존재로서 자기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카데미라는 성소 속에서 보호받던 과거의 학자들은 갖지 못했던 보편적 삶에 대한 감수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_ 6쪽
사회학자가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세상에 대한 견해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정말 많았다. 술집에서 사람들은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우친 세상 이치를 주고받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도배하고 있는 수다 속에 담긴 사람들의 경험과 통찰력은 사회학자를 즉석 인터뷰어로 만들어 주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삶에 대한 근심 어린 걱정과 진지한 이야기 속에서 빛나는 통찰에 매료된 사회학자는 혼자 세상과 마주하는 승용차 운전을 포기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고집했다. 술집과 카페, 그리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엿들을 수 있는 세상 사람들의 대화는 그 어떤 사회학적 텍스트보다 생생하게 날 것 그대로 우리의 세속 풍경을 증언하고 있었다. (…) 그렇기에 이 책이 완성되는 동안 술집과 카페와 버스와 지하철에서 지나쳤던 무수히 많은 ‘여러분’은 이 책의 숨겨진 공저자이기도 하다. _ 7~9쪽
이 책은 한 사회학자의 세상 경험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자, 자기도 모르는 채 세속의 사회학자였던 세상 사람들의 경험이 하나로 묶이는 공간이다. 사회학자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세속으로의 잠행을 통해 채집한, 이미 자신도 모르게 ‘자전적 사회학자’였던 사람들의 경험을 각각 씨실과 날실로 삼고 사회학 이론의 도움을 받아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태피스트리를 짜는 제작자이고자 했다. _ 8~9쪽
좋은 삶은 삶의 주인의 오래된 습관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좋은 삶은 착한 삶과 동일하지 않다. 착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바보’는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모독하지 않는 소박한 방어의 삶을 사는 것이지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좋은 삶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선한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현실은 선한 의지만을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그 사람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의 현실적 삶은 좋은 삶이라기보다, 빈한한 삶에 가깝다. _ 17쪽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교활해서는 안 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영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우리는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그리고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 좋은 삶은 그래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요구한다. 좋은 삶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능숙히 사용해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_ 18쪽
좋은 삶을 기대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은 삶의 무시무시한 리얼리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먹고 자란다. (…) 세상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추하고, 사람들은 선한 만큼이나 악하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있지만,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세속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삶의 리얼리티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라는 환등상의 등불을 끄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유토피아적 희망, 소박하게 말하자면 ‘좋은 삶’에 대한 기대는 약간은 가슴 쓰라린 세상의 리얼리티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_ 20쪽
‘부자 되기’는 IMF 관리체제 이후 상식과도 같은 목표이다. 부자 되기는 소박하고 상식적인 희망이다. 하지만 소박하고 악의 없는 상식적 희망도 악마적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개인은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 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겠다고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이과생들이 기초과학을 멀리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 의사만 되려 하고, 모든 의사 지망생이 성형외과 전문의를 선택하는 상황은 상식에서 분명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몰상식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 각각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_ 25~26쪽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은 분명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