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에 아우르는 축복
성경에서 “영적으로” “영으로” 라는 말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아니다
영으로는 단지 “육으로”의 반대 개념이다
“영으로” 와 “육으로” 라는 말의 의미는 정확히
갈라디아서 5장7절에 나와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갈라디아서( 갈 ) 5장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즉 “영으로는”
성령의 소욕으로 이고
“육으로” 는
“육체의 소욕으로”
이다
한국 교회에서 인기 있게 사용되고 있는”영육에 아울러 축복”이란 인사말이 있다
이 “영육에 아울러 축북” 이란
스스로 성경적 흐름에 모순을 지니고 있다
성령의 소욕이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있고
우리 내면에 항상 두 가지 소욕이 즉
영과 육이 서로 대적 관계에 놓여 있다
또
영은(영의 소욕은) 육(육의 소욕)이 마음에 형성 해 놓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게 방해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서
영육에 아우러는 축복이 가능하겠나?
육의 축복은 세상의 삶의 원리에 의한 측복 이고
영의(영적) 축복은 물과 성령으로 들어 갈 수 있고
우리 가까이 임한(연장된)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에 의한 축복이다
창세기 2장7절에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빚으실 때 그의 영을 코로 불어 넣으셔서 애초부터 성령의 소욕 즉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로 살게 하신 것이다
이후
한 사람 아담을 통하여 육의 소욕(죄성)이 세상에 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면
사람은
육(세상의)의 삶의 원리에서 살던 데서
영의(그 나라의) 삶의 원리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신명기 28장의 율법에 의한 육의 축복은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되고(신명기5장2,3절)
그것도 예수님 오실 때 까지만 유효한 것이다
마태복음( 마 ) 11장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말)한 것(들)은 (세례)요한까지 (유효하)니
심방할 때 목사님들은 신명기 28장 구절들로 교인들을 현혹 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 눅 ) 16장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첫댓글
오늘도 마음의 양식으로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늘 건안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