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水墨白鷺圖 (수묵으로 그린 백로의 그림)
成三問(이조 문종 때 관료, 사육신)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
窺魚蘆渚幾多時(규어로저기다시)
偶然飛過山陰縣(우연비과산음현)
誤落羲之洗硯池(오락희지세연지)
흰 날개와 긴 발로,
물가에서 고기를 엿본 지 얼마던가,
우연히 날개를 펴고 날아가다가,
잘못하여 왕희지 벼룻물에 떨어졌네.
(羲之 : 중국의 서성인 왕희지를 말함.)
난하사 (灤河祠) - 성삼문
灤=샐 란. 灤河란하=물 이름. 내몽고(內蒙古)에서 발원하여
열하성(熱河省)을 거쳐 발해(渤海)로 흘러드는 강.
當年扣馬敢言非 (당년구마감언비)
그 옛날 말고삐를 잡고 감히 무왕의 잘못을 말하니,
忠義堂堂日月輝 (대의당당일월휘)
그 당당한 충의는 해와 달처럼 빛나도다.
草木猶霑周雨露 (초목유점주우로)
하지만 산천초목 또한 주나라의 비와 이슬을 머금었거늘
愧君猶食首陽薇 (괴군유식수양미)
그대들이 수양산 고사리를 먹은 것조차 나는 부끄럽게 여기노라.
단종을 향한 절개를 지키다 순절한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 선생이
서른살 무렵 세종의 명을 받아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을 만나러 가던 길에,
난하(灤河) 가에 있는 백이·숙제의 사당(난하사/수양묘)을 지나며 지은 시입니다.
훗날 성삼문은 수양대군(세조)이 왕위를 찬탈하자,
백이·숙제조차 주나라의 땅에서 난 고사리를 먹었으니 진정한 절개는 아니라고
농담처럼 말하며 본인은 단식 끝에 처형당함으로써 이 시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게 됩니다.
원문=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 제1권 / 시(詩)
成謹甫先生集卷之一 / 詩
前後朝天 乙丑。先生赴燕。丁卯,庚午。先生考摠管公。
連以副使朝天。先生皆隨行。似爲質漢韻。有朝命也
題水墨白鷺圖
雪作衣裳玉作趾。窺魚蘆渚幾多時。
偶然飛過山陰縣。誤落羲之洗硯池。
先生嘗赴燕京。有人請題白鷺圖。先生走筆。先成二句曰云云。於是出畫示之。乃水墨圖也。遂是之曰。偶然飛過山陰縣。誤落羲之洗硯池。華人驚服。稗官雜記
灤河祠
當年叩馬敢言非。大義堂堂日月輝。
草木亦霑周雨露。愧君猶食首陽薇。
전후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가다 을축년에 선생이 연경(燕京)에 갔다.
정묘년과 경오년에 선생의 부친 총관공(摠管公)이 계속해서
부사(副使) 자격으로 중국에 갔는데, 이때에도 선생이 모두 수행하였다.
이는 중국의 음운에 관하여 물어 오라는 조정의 명이 있었던 듯하다.
수묵화(水墨畫)로 그린 백로도(白鷺圖)에 쓰다
눈으로 의상을 짓고 옥으로 발을 지어 / 雪作衣裳玉作趾
갈대밭 물고길 엿보았나 얼마나 많은 세월을 / 窺魚蘆渚幾多時
우연히 날아서 산음현을 지나다가 / 偶然飛過山陰縣
실수로 왕희지의 세연지에 떨어졌구나 / 誤落羲之洗硯池
선생이 일찍이 연경(燕京)에 간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백로도(白鷺圖)〉에 화제시(畫題詩)를 써 달라고
요청하였다.
선생이 먼저 붓을 들고 두 구절을 짓고 나니,
그제서야 그림을 내서 보여 주었는데 바로 수묵도(水墨圖)였다.
이어서 “우연히 날아서 산음현을 지나다가 실수로
왕희지의 세연지에 떨어졌구나.”라는 나머지 글귀를 지으니,
중국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패관잡기(稗官雜記)》
난하사(灤河祠)
당년에 말고삐 당기며 그르다고 말을 하였으니 / 當年叩馬敢言非
대의가 당당하여 해와 달처럼 빛나더라 / 大義堂堂日月輝
초목도 역시 주나라 우로에 젖은 것인데 / 草木亦霑周雨露
부끄럽게도 그대는 오히려 수양산 고사리를 먹었구려 / 愧君猶食首陽薇
[주-D001] 세연지(洗硯池) :
진(晉)나라 함강(咸康) 6년에 왕희지(王羲之)가 글씨 공부를 하면서
벼루를 씻었던 못이 승천귀종사 선원(承天歸宗寺禪院) 부근에 있다 한다.
《蘇東坡詩集 卷14 氷池》
[주-D002] 당년에 …… 하였으니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북해(北海) 가에 은거하다가
문왕(文王)의 소문을 듣고 나왔는데 마침 문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문왕의 신주(神主)를 수레에 싣고 주(紂)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이에 백이와 숙제가 출정하는 무왕의 말고삐를 당기며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는 것은
인(仁)이 아니니 하지 말라고 간(諫)하였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 한국고전번역원 | 조동영 (역) |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