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7】 2
(2) 제6에 들어가는 열 가지 평등한 법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告解脫月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已具足第五地에 欲入第六現前地인댄 當觀察十平等法이니
그때에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제5지를 구족하고 제6 현전지(現前地)에 들어가려면 마땅히 열 가지의 평등한 법을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강설 ; 이제 드디어 금강장보살이 “이미 제5지를 구족하고 제6 현전지(現前地)에 들어가려면 마땅히 열 가지의 평등한 법을 관찰하여야 하느니라.”라고 하여 제6지의 법문을 시작하였다.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法無相故로 平等하며 無體故로 平等하며 無生故로 平等하며 無成故로 平等하며 本來淸淨故로 平等하며 無戲論故로 平等하며 無取捨故로 平等하며 寂靜故로 平等하며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법이 형상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자체가 없으므로 평등하고, 나는 일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이뤄짐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본래부터 청정하므로 평등하고, 부질없는 말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취하고 버림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고요하므로 평등하니라.”
▶강설 ; 마땅히 관찰해야 할 열 가지의 평등한 법이란 일체법이 형상이 없음과 자체가 없음과 나는 일이 없음과 이뤄짐이 없음과 본래부터 청정함과 부질없는 말이 없음과 취하고 버림이 없음과 고요하므로 평등한 것 등이다.
如幻如夢하고 如影如響하고 如水中月하고 如鏡中像하고 如焰如化故로 平等하며 有無不二故로 平等이니라
“또 환영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영상 같고, 아지랑이 같고, 화현과 같으므로 평등하며, 있고 없음이 둘이 아니므로 평등하니라.”
▶강설 ; 또 일체법이 환영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영상 같고, 아지랑이 같고, 화현과 같으므로 평등하며, 있고 없음이 둘이 아니므로 평등한 것 등이다.
菩薩이 如是觀一切法自性淸淨하야 隨順無違하야 得入第六現前地호대 得明利隨順忍이요 未得無生法忍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일체법의 자성이 청정함을 관찰하고, 수순하여 어김이 없으면 제6 현전지에 들어가나니, 밝고 날카로운 수순인(隨順忍)은 얻었으나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은 얻지 못하였느니라.”
▶강설 ; 보살이 이와 같이 자체의 성품이 텅 비어 공하고 관찰하여 수순하여 어김이 없으면 제6 현전지에 들어간다. 밝고 날카로운 수순인(隨順忍)이란 일체법이 형상이 없음과 자체가 없음과 나는 일이 없음과 이뤄짐이 없는 등의 이치는 잘 수순하는 진리이다. 또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불생불멸하는 진여 법성을 인지(忍知)하고 거기에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는 진리의 경지다. 보살이 7지나 8나 9지에서 얻는 깨달음이다.
(3) 연기(緣起)를 열 가지 순역으로 관찰하다
<1> 연기의 상을 총체로 관하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如是觀已에 復以大悲爲首하며 大悲增上하며 大悲滿足하야 觀世間生滅하고 作是念호대 世間受生이 皆由着我니 若離此着이면 則無生處로다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고는 다시 대비(大悲)가 머리가 되고 대비가 더 높음이 되고 대비가 만족하여 세간의 나고 멸함을 관찰하고,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세간에 태어나는 것이 모두 나에 집착한 탓이니, 만일 나를 여의면 곧 태어나는 일이 없으리라.’하니라.”
▶강설 ; 제6 현전지에서는 12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시각으로 관찰하여 살피면서 분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선 12연기의 일반적인 설명을 살펴보기로 한다.
12연기는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유지(十二有支), 십이지(十二支), 십이인생(十二因生), 십이연문(十二緣門), 십이견련(十二牽連), 십이극원(十二棘園), 십이중성(十二重城), 십이형극림(十二荊棘林)이라고도 부른다. 삼계에 대한 미(迷)의 인과를 12로 나눈 것으로서 (1) 무명(無明)은 미(迷)의 근본인 무지(無知)이다. (2) 행(行)은 무지로부터 다음의 의식 작용을 일으키는 동작이다. (3) 식(識)은 의식 작용이다. (4) 명색(名色)은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이다. (5) 육처(六處)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의 5관(官)과 의근(意根)이다. (6) 촉(觸)은 사물에 접촉함이다. (7) 수(受)는 외계로부터 받아들이는 고(苦)와 낙(樂)의 감각이다. (8) 애(愛)는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함이다. (9) 취(取)는 자기가 욕구하는 물건을 취함이다. (10) 유(有)는 업(業)의 다른 이름이며, 또는 소유함이다. 다음 세상의 결과를 불러올 업이다. (11) 생(生)은 이 몸을 받아 남이며, 또는 살아감이다. (12) 노사(老死)는 늙어서 죽음이다.
또 어떤 때는 연기를 해석할 적에 1찰나(刹那)에 12연기를 갖춘다는 학설과, 시간적으로 3세(世)에 걸쳐 설명하는 2종이 있다. 뒤의 뜻을 따르면 양중인과(兩重因果)가 있다. 곧 식(識)으로부터 수(受)까지의 5를 현재의 5과(果)라 하고, 무명과 행을 현재의 과보를 받게 한 과거의 2인(因)이라(過現一重因果)한다. 다음에 애와 취는 과거의 무명과 같은 혹(惑)이요, 유(有)는 과거의 행과 같은 업(業)이니, 이 현재는 3인(因)에 의하여 미래의 생과 노사의 과(果)를 받는다(現未一重因果)라고 한다.
보살이 세간의 생겨나고 소멸함[世間生滅]을 관찰하고는, ‘세간에 태어나는 것이 모두 나에 집착한 탓이니, 만일 나를 여의면 곧 태어나는 일이 없으리라.’라고 생각하였다. 12인연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중생들의 모든 문제는 태어남으로부터 있게 되었고, 태어남은 ‘나’에 집착한 탓이다. ‘나’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면 태어남도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12인연에 의하여 중생들의 삶이 시작하고 끝을 맺으며 다시 끝이 씨앗이 되어 다음의 결과를 가져오고 하는 것이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를 돌 듯 하며 계속하는 사람의 삶과 죽음의 관계를 풀어 본 것이다.
復作是念호대 凡夫無智하야 執着於我하야 常求有無하며
“또 생각하기를 ‘범부는 지혜가 없어 나에게 집착하여 항상 있는 것 없는 것을 구한다.”
▶강설 ; 12인연 중에 맨 먼저 등장하는 무명(無明)의 인연을 밝혔다. 범부들은 무지해서 ‘나’만을 집착하여 항상 있는 것도 구하고 없는 것도 구한다. 이것이 무지무명의 소치다. 과거 생에서부터 ‘나’에 집착하며 살아온 결과가 이번의 생을 맞아서도 이와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무명 속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不正思惟로 起於妄行하야 行於邪道하야 罪行福行不動行을 積集增長하며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고, 허망한 행을 일으키어 삿된 도를 행하므로 죄받을 행[罪行]과 복 받을 행[福行]과 변동하지 않는 행[不動行]이 쌓이고 증장한다.”
▶강설 ; 12인연의 두 번째인 행(行)의 인연을 밝혔다. 바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일체존재의 공성(空性)을 생각하여 어떤 허망한 행도 일으키지 않는다.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이 작용[行]하기 때문에 삿된 도를 행하므로 죄받을 행과 복 받을 행과 변동하지 않는 행이 쌓이고 증장하는 것이다.
於諸行中에 植心種子하야 有漏有取하며
“여러 가지 행에 마음의 종자를 심고, 번뇌[漏]도 있고 취함[取]도 있게 되었다.”
▶강설 ; 3번째인 식(識)의 인연을 밝혔다. 바르지 못한 생각이 여러 가지로 움직이므로 마음의 종자가 심어져서 번뇌[漏]도 있고 취함[取]도 있게 된 것이다. 무지무명이 작동하고 그 작동들이 씨앗이 되어 온갖 것을 의식하고 분별한다.
復起後有의 生及老死하나니 所謂業爲田이요 識爲種이어든 無明闇覆하고 愛水爲潤하고 我慢漑灌하고 見網增長하야 生名色芽하며
“다시 뒤에 있을[後有] 살아감과 늙고 죽음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업은 밭이 되고 식(識)은 종자가 되는데, 무명이 어둡게 덮이고, 애정의 물이 적셔주고, ‘나’라는 교만이 물을 대주므로 소견의 그물이 증장하여 이름과 물질[名色]이라는 싹이 생겨나느니라.”
▶강설 ; 4번째의 명색(名色)의 인연을 밝혔다. 명색(名色)은 이름뿐인 정신과 육근(六根)이 분명하기 이전의 물질이다. 그래서 단순히 이름과 물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