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길거리에서 만난 인도 신
박경선
내게 있어 인도는 특별한 나라였다. 십 년 전(2012년)에 네팔과 라오스에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그 국경 근처에 있는 인도를 그리워해 왔다. 인도에만 가면 신비한 영감적인 온기를 온몸으로 느낄 것만 같은 막연한 설렘으로 그리움을 키워왔다.
드디어, 올해 2023년 10월 26일 결혼기념일에 맞춰 십 년 만에 ‘북인도 4박 6일’로 떠날 날을 잡았다. 인간의 눈이 바깥쪽으로만 뚫려 있어서 바깥쪽만 보고 살았지만, 인도에 가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눈이 뚫릴 것만 같은 기대감이 컸다.
1. <계단식 우물과 인디아 게이트와 갠지스강>
2023년 10월 26일(목)
<별에서 온 얼간이> 촬영지인 계단식 우물을 찾아갔다. 주인공 피케이의 목에 달고 있는, 우주로 돌아갈 열쇠를 벗겨 가려는 사람도 안 보였고, 아침 햇살 속에 사람들은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108계단을 내려다보며 사진 찍기를 즐겼다. 나는 계단 한쪽에 앉아서 ‘여행은 내 창작의 집이다.’는 일본 소설가 가와바디 야스나리의 말을 생각했다. 2019년 3월 미국 맨하튼에 세워진 조형물 벌집 모양의 <베슬(The Vessel)>도 이런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고 한 걸 보면, 이 계단 끝에 커다란 선박이 대기하고 있다가 수중 궁궐로 여행객들을 실어갈 것만 같았다. 여행하며 해보는 내 상상이 만들어 낸 선박에 타고 인디아 게이트를 찾아갔다. 세계 1차 대전 때 참전한 용사 위령탑이 파리 개선문 모양을 본떠 지어져 있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전쟁의 이슬로 사라져간 용사들의 영혼을 위해 그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니, 그 기도는 하늘에 닿게 올려야 했다.
저녁에는 갠지스강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찾아갔다. 인도의 장사꾼들은 사람이 복잡하게 다니는 길가에 앉아서 저마다 신을 만날 재물을 팔고 있었다. 쌀을 길가에 한 줌씩 놓고 파는 사람, 갠지스강 강물을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파는 사람, 주황색 꽃 등잔 ‘디아’를 놓고 파는 사람 등, 신은 이 가운데 어떤 제사 선물을 받고 좋아하실까? 신이 받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4km나 되는 계단식 목욕 시설에서 목욕재계하며 전생과 이생의 업이 씻겨 내려가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하늘의 붉은 해가 물에 담겨 어둠이 내리자, 갠지스강의 화장터 앞에 장작 위에 시체가 올려지고, 그 위에 다시 불이 짚어져 시체가 타는 모습이 불꽃으로 날렸다. 흰두교도들을 비롯한 주변 불교국가 사람들의 장례 의식이란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지만, 만들어진 인간은 자기만의 신을 다시 만들어 살다가 죽음마저 기호에 맞는 신에게 의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믿는 신만은 나를 불태우는 신이 아니라 평온하게 품에 안아주는 신으로 행복한 상상을 해보았다.
2. <녹야원>
10월 28일(토), 부처님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 녹야원(사슴뜰)을 찾아갔다. 정원에는 2500년 전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의 종자가 거대한 뿌리로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최초의 설법지라는 신성한 의미가 있는 이곳에서 결혼 48주년 기념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부부로 연을 맺어 서로에게 한 점 부끄럼 없이 신의를 지키며, 무탈하게 잘 살아왔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의 현수막을 보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는 일행에게도 축복 있기를 빌었다. 실내로 들어가 프레스코화만 봐도 ‘생로병사’를 일찍이 깨치고 부처의 길을 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쌍한 중생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는 날까지 덕을 베풀며 살기를 비노니.’
3. <꾸뜹 미나르와 간디 박물관>
10월 29일(일).
꾸뜹 미나르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식이 혼합된 높이 72.5m의 5층 석탑이다. 꾸뜹왕이 마지막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후 이슬람 승전 기념탑을 세워 경전의 코란 경구로 600년간 통치하며, 힌두교 건물을 무슬림 종교로 희석해 만들었다니, 힌두교도들에게는 치욕의 시간이었겠다. 이집트 피라미드들을 보러 갔을 때도 피라미드가 지어진 고왕국 당시에 후대 왕들이 선대 왕들의 피라미드에서 석재를 약탈해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무릇, 권력자들이, 역사와 종교와 문화의 공적까지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걸 보면, 자기 애를 버릴 수 없는 나르시시즘의 끝에 인간의 본성이 머물고 있는 걸까?
간디 박물관으로 옮겨갔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가 이루어 낸 일화가 시물레이션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유색인이라고 기차에서 끌어내려지는 장면, 영국군에게 반기를 들고 인도인도 소금을 생산하겠다고 평화적으로 투쟁하는 장면, 아무리 풍족하더라도 하루 한 시간은 차르카(인도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자기 손으로 돌려 자기 옷을 만들자며 물레를 돌리는 장면이 위인의 큰 생각으로 담겨왔다.
4. <타지마할 사원과 내가 만난 신>
10월 30일(월)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화려한 타지마할을 찾았다. 사자 한 왕이 아내 문타즈 마할을 전쟁터에도 데려 다녔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자,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서 22년에 걸쳐 2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의 노동력을 들여 신처럼 군림하며, 완성한 묘지 성격의 사원이란다. 후에 아들들은 공사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왕위 계승 다툼을 벌이며 아버지를 아그라 성에 유폐시켰다. 그 후, 신처럼 살았던 사자 한 왕은 건너편 아그라 성에 갇혀 하얀 거탑 타지마할을 건너보다 숨졌다니, 신이 아닌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저지르는 비화가 허무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아소카 대왕이 인도 대륙을 정복하며 전쟁의 끔찍함을 느껴 비폭력과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 원리로, ‘누구도 즐거움이나 슬픔을 주지 않으며, 자기 행동만이 그 열매를 가져온다.’는 정신적 평등으로 사람마다의 삶을 평화롭게 해주었다니 감사한 인물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비행기를 타러 델리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바나나를 샀다. 이름도 모르고 함께 지낸 일행에게 감사의 인연으로 바나나를 돌리며, 가이드에게는 그간의 수고와 칭찬을 편지에 담아 마이크를 들고 읽어주었다. 여행객으로 바치는 감사의 편지가 가이드에게는 자긍심과 보람을 쌓는 데 보탬이 될 테니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을 감으니,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 신들이 눈에 밟혔다. 코브라에게 피리를 불며 춤추게 하던 인도의 노 악사! 모스크바 거리를 방황하며 떠돌다가 우주 과학자의 눈에 띄어 혼자 우주로 실려 갔던 라이카를 닮은 강아지들! 자석 그림을 팔러 다니길래, 엄마 아빠는 뭐 하시냐 물었더니 ‘no Father, no Mather!’ 하는 대답에 가슴이 먹먹해지던 그 꼬마! 인도에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숨어서 이들을 지켜보고 계실까? 내 가슴에 담긴 신들에게 축복 있기를 빌며 먹먹한 가슴으로 인도를 떠나왔다. 인샬라!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