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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선지식 및 명찰순례(제2회)53차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김천 직지사,청암사를 다녀와서(2011.03.13)
0.수양버들 꽃 입망울이 뽀족히 입을 내미는 봄 경칩이 일주일여 지났지만 아직도 이른아침 쌀쌀하면서도 맑은 아침이다. 오늘도 53선지식 행사를 위해 출발하는 회원들은 각자 대중교통 및 개인차량을 이용 속속 도착을 하였다,
0.1호차 ,2호차 인원점검과 저녁 공양에 필요한 국수, 상단 공양물,떡,생수를 몇몇 회원들이 2대의 차량에 분배를 하고, 제일 늦게 뜀박질 하면서 달려온 이희수님,
차량내에서 출발하기전 승용차 열쇠 없다고 동부교육청 주차장까지 허겁지겁 다녀오신 향림 이원우님, 열쇠는 버스내 가방옆에 숨어있었다... 차량은 최종 인원점검을 마치고 출발을 하였다.
-07:15경 1호차46명, 2호차47명 총93명을 태우고 차량은 목적지인 김천 직지사로 출발했다.
0.대구불교대학 53선지식 및 명찰 순례단 단장 장재영
-1호차량 인솔자 김동훈, 집전담당 장주일, 일정소개 김동훈, 안전담당 윤정수, 사찰안내 이원우, 회원소개 박수경, 재무담당 서태교등.....
-2호차량 인솔자 신경순, 집전담당 최영찬, 일정소개 박재기, 안전담당 장춘원, 사찰안내 장건환, 회원소개 이영미, 재무담당 조미양등....
-07:15경 보현사 신협앞 차량은 서서히 출발을 했다.
0.1호 차량 내에서는 오늘 53선지식행사 일정표,사찰안내 유인물과 공양으로 준비한 백설기 떡, 53선지식 명찰, 생수등을 임성조,서태교,윤정수님 참석한 회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었고, 차량은 대구시내 계산오거리를 지나 옛날 명성웨딩자리를 거쳐 침산로 신천대로를 향해 질주를 하고, 차량이 신천대로를 접어들어 곧바로 차중법회에 들어갔다.
0.곧이어 차중법회에 들어갔다.
-1호차 차량내에서는 46학번 정심 장주일님 집전으로 삼귀의례,천수경,예불문,이산해연선사 발원문,관세음보살 정근, 반야심경순으로 법회를 하였다.
-07:55 - 08:10경 칠곡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을 하였다.
-08:10경 차량은 휴게소를 출발하면서 인솔자는 전체인사를 웃음과 박수로서 갈음하고 53선지식 명찰 순례단 단장 청하 장재영님의 인사말씀 이번 제2회 53차 명찰 순례지는 당초 계획에 의하면 전남 부안 내소사에 참배키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제16기 포교사 1차 합격자 오리엔테이션이 명찰 순례일인 3월13일 오후2시부터 김천 직지사 만덕전에서 실시 되는 관계로 부득히 순례지를 김천 직지사와 청암사로 변경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칙이 세워져 있어야 하고, 그 원칙을 지켜 나가는것이 조직을 끌고 가는 제일의 덕목이라 생각 하고 있습니다만,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 또한 53선지식 행사를 년초 작심을 하여 일년간 개근을 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법우님들이 있어 이렇게 김천 직지사로 53선지식 순례 행사 장소를 변경하게 되었다. 라는 사과의 말씀...
전 총동문회장 이대원님은 인사 말씀중에 모처럼 54학번 재학생과 55학번 신입생 후배님들과 동참하여 53선지식 행사에 참여하는것이 좋은 인연으로 생각하고 후배들의 열정적인 불교대학행사에 많은 동참을 권유하였다. 일년여만에 동참한 48학번 전동문회장 오동주님 인사말씀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강을 해주셨다.
-08:30경 안전담당을 책임지는 윤정수님 간단한 안전교육,사찰안내는 오늘 53선지식 홍보국장 윤상철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여, 지난 2월말 일자로 교육공직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향림 이원우님 우리나라에서 가장 외우기 쉬운 숫자로 산 높이로 알려진 황악산은 1111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김천 직지사, 청암사를 세밀하게 사찰에 대하여 안내를 해주셨다.
-09:00경 차량은 어느듯 김천 직지사에 도착을 하였다.
*김천직지사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준령(竣嶺)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그 서쪽 추풍령(秋風嶺)에서 잠시 머물러 관문(關門)을 이루었고,다시 서남쪽으로 웅장(雄壯)한 산세(山勢)를 유지하며 달려와 힘차게 솟아오른 황악산(黃岳山) 동남쪽 산자수명(山紫水明) 한 곳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가 자리해있다. 해발 1,111m에 달하는 황악산은 북쪽으로 충청도,서쪽으로 전라도, 동남쪽으로는 경상도에 연이은 삼도(三道)의 도계(道界)에 접하였으며, 이중심에 눌러 앉은 본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慶尙北道) 김천시(金泉市) 대항면 (代項面) 운수리(雲水里) 216번지이다.
황악산(黃岳山) 의 황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색(色)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직지사는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본사(本寺)로부터 김천까지는 12km이고,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京釜線)을 비롯하여 태백산(太白山), 삼척(三陟)등 동해방면(東海方面)으로도 연결되는 한반도(韓半島) 교통의 요충지이며, 예로부터 길상지지(吉祥之地)로 전해져 내려오는 곳에 직지사는 정좌(定座)하고 있다.
따라서 절의 위치가 산곡(山谷)이면서도 높지 아니하고,야지(野地)인듯 하면서도 산사(山寺)의 풍취(風趣) 가 항상 흘러 넘쳐서 4계절 내내 도량을 참배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잠시 황악산의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면, 최상봉인 비로봉(毘盧峰)에서는 경상, 충청, 전라의 3도를 한눈으로 굽어볼 수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선유봉(仙遊峰)을 비롯하여 천룡봉(天龍峰)과 운수봉(雲水峰)이 있고, 조금 내려와서 절경대(絶景臺)가 있으며, 그 중턱에 운수암(雲水庵)이 있어 승경(勝景)을 이룬다. 운수봉(雲水峰)에서 다시 2km쯤 올라가면 백운봉(白雲峰)이 있고, 그 아래로 만경대(萬景臺)가 펼쳐진다. 다시 남서로 난 능선을 따라가면 망월봉(望月峰)과 함께 신선봉(神仙峰)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위에 형제봉(兄弟峰)은 백운봉과 마주하여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황악산은 대체로 3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능여계곡(能如溪谷), 내원계곡(內院溪谷), 운수계곡(雲水溪谷)이 그것이다. 능여계곡에는 그 옛날 능여 대사(能如大師)가 황악산 계곡의 원천(源泉)을 찾았다는 멱원대(覓源臺)를 비롯하여 많은 대(臺)와 소(沼)가 있고, 두 곳의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능여천(能如泉)과 법수천(法水泉) 등의 약수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본사(本寺)의 초창(草創)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다. 그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전설(傳說)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이는 모두 창건설화와 연관된 직지(直指)의 미화(美化)된 전설에서 유래되고 있지만, 실은 불교 본연의 직지인심(直指人心)을 상징하는 의미로 풀이 될 수 있다. 즉 창건 설화의 직지(直指)와 선가(禪家)의 직지(直指)가 둘이 아니라고 볼 때, 이는 곧 불교의 본질을 나타내는 이름이라 하겠으며, 또한 사명 (寺名)에 불교의 본지(本旨)를 이처럼 극명(克明)하게 나타내는 사찰도 흔치 않으리라 본다.
아도 화상에 의하여 개창된 직지사는 신라시대에 2차에 걸친 중수가 있었다. 그 첫째는 선덕여왕(善德女王) 14년(645) 자장 법사(慈藏法師)에 의한 중수를 들 수 있고, 두번째는 경순왕(敬順王) 4년(930) 천묵 대사 (天默大師)에 의한 2차 중수가 그것이다.
먼저 자장 법사의 중수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고, 오히려 경순왕대의 사실이 보다 자세히 전해진다. 아마 이때는 신라의 국운이 쇄진하여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投降)하기 불과 5년 전의 일이며,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변혁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직지사 사적에 따르면 이러한 시기에 천묵 대사는 본사를 중수하고, 더 나아가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 서사(書寫)하여 신라 조정(朝廷)에 헌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는 현존 유품(現存遺品)이 전해지지 않아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다음에 언급하게 될 금자대장경비(金字大藏經碑)가 이를 입증(立證)하고 있다. 다만 이제 지난날 직지사의 찬란하였던 사격(寺格)을 밝히면서 신라시대에 이미 금자대장경을 제작하였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대장경이라고 하면 해인사(海印寺)의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을 그 대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이미 신라시대에, 그것도 금자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사적기의 내용은 진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구나 이를 접한 경순왕은 어찰(御札)로써 점제(點題, 經名을 쓰는 것)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에 대한 현품이 전래되지 않아 그간의 사정을 잘 알 수 없지만, 왕조(王朝)가 바뀐 고려시대 초기에 본사(本寺)에는 금자대장경이 봉안되었고, 또한 대장당비(大藏堂碑)가 건립되고 있다. 즉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은 직지사의 고승 능여 조사(能如祖師)의 도움으로 후백제(後百濟)와의 불리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직지사는 국가적 비호(庇護)를 받았으며, 이후 능여 조사(能如祖師)의 제자들 역시 대대로 본사를 중흥(中興)하더니 광종 원년(光宗元年, 950)에는 3월 1일부터 약 50일 간 법회(法會)를 개설(開設)하여 경찬회(慶讚會)를 성대히 베풀었다.
그런데 이때의 경찬법회는 금자대장경을 다시 필사한 것에 대한 법회인지, 아니면 경순왕이 점제(點題)하였던 금자대장경을 경순왕의 투항 후 신라 조정으로부터 인수하고 대장당(大藏堂)을 건립한 낙성연(落成宴)인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더욱 짙다. 그것은 신라의 국운이 고려로 이양되는 과도기적 상황과 함께 태조 왕건의 불교신앙과 아울러 능여 조사로 인한 그간의 사정에서 짐작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다 분명한 것은 금자대장당비(金字大藏堂碑)를 새겨 절을 북정(北亭)에 세웠다는 사적기의 내용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에 대한 물적 근거는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실려 있는 직지사 대장당기비(大藏堂記碑)의 탁본(拓本)이며,이는 왕우군(王右軍)의 집자(集字)로서 유명하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직지사는 제 2대 정종 원년(定宗元年, 1339) 정종의 어태(御胎)를 절의 북봉(北峰)에 봉안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고, 이로 인하여 조선시대에도 줄곧 사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는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본사(本寺)에 출가(出家)하여 신묵 대사(信默大師)의 제자가 된 것이 유명하거니와, 이로 인하여 직지사는 배불(排佛)의 그늘 속에서도 사운(寺運)을 유지할 수 있었다.30세에 직지사 주지(主持)가 된 사명 대사는 이후 임진왜란(任辰倭亂)이 발발(勃發)하자 구국제민(救國濟民)의 선봉(先鋒)에서 큰 공을 세웠음은 너무나 유명하다.이렇게 구국(救國) 사명대사의 공로로 인하여 직지사는 조선(朝鮮) 8대가람(八大伽藍)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300여소속사암(寺庵)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리고 직지사의 사세가 가장 흥성했던 시기에는 현재 김천시내 법원이 있는곳을 비롯하여 구화사(九華寺)까지가 직지사의 사유지였으며,뿐만 아니라 상주 통로 우시장(牛市場) 근처의 다리이름이 직지교(直指橋)였고, 그 상류(上流)는 모두 직지사의 영유(領有)였다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그러나 직지사는 조선시대 말엽 국운의 쇠퇴와 함께 그 사운(寺運)을 같이 하여 한때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무엇보다 직지사는 일제시대(日帝時代)사찰령(寺刹令)이 제정되면서 한때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로 전락하기도 하였으나, 광복 이후 50년대에 본산제도(本山制度)가 재편성되면서 본산(本山)으로 승격되어 그 사세를 차츰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 이상은 김천 직지사 안내 책자 및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임 -
-09:00경 직지사 주차장에 도착 회원들은 각자 준비한 공양물을 나누어들고 직지사 금강문을 거쳐 대웅전을 지나 비로전(천불전)에 정기법회 준비를 하고, 인솔자와 청하 장재영단장님은 종무소에 들러 종무소임자에게 오늘 일과를 설명하고 정기법회 장소를 허락을 받아 비로전으로 향하였다,
경내 인근에는 오늘 마침 제11주년 포교사단 행사와 제16기 예비포교사 오리엔테이션 행사관계로 많은 인원이 경내에 들어오고 있었다.
-09:05경 불기2555년 3월13일 대구불교대학 53선지식 및 명찰순례(제2회)53차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김천 직지사 정기법회를 시작하였다.
0.법회는 46학번 정심 장주일님 집전과 청산 윤정수님 도우미로 삼귀의례,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이어서 52학번 야간반 회장인 배병모님의 발원문 낭독을 하였다...발원문을 마치고 53선지식 단장 청하 장재영님의 인사말씀과 동참한 전체 법우님들께 오랜만에 동참하신 48학번 적멸 오동주님을 소개하였다,
오동주님은 인사말씀중에 개인적으로 중대결단이 있어 다소 학교행사에 소홀하였다,차후 많이 동참을 하여 후배들과 동문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인사말씀, 이대원 전 총동문회장님 인사말씀과 청하 단장님은 오늘행사에는 55학번 새내기 후배님들도 동참을 하였다라고 참석한 회원들을 소개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정기법회는 목탁 집전에 108배 대참회를 정성으로 부처님전에 예를 올리고 의식을 마감하고 오늘 행사전 비로전에는 매일 오전10시에 예불이 있는 관계로 점심식사후 일정만 소개를 하고 사홍서원을 끝으로 정기법회를 마감하였다.
-10:15경 정기법회를 마감하고 회원들은 각자 경내를 관람하고 개인기도를 하고 있었고,
대구경북포교사단 동화사 사찰 문화 해설팀장을 맡고 있는 향림 이원우님은 대웅전 법당을 좌우로 하여 대웅전 외곽을 안내를 하고 삼층탑 주위에서 경내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까지 회원들에게 건축물을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11:20경 김천 직지사에는 제11주년 포교사단 기념행사와 제16기 예비포교사 오리엔테이션 관계로 점심공양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오늘 기념식 행사에 사회는 성파 김장수님,집전에는 진성 이석정님, 또한 53선지식 행사에 동참한 대구불교대학 출신 포교사 장건환,서태교,허귀임,진정옥,신경순,김정숙,이영미,장경순님등등 행사장 준비와 행사 도우미를 맡아 해주셨다..
-11:40경 오늘 동참한 회원들은 공양간에서 공양을 하고 몇몇 회원들은 공양간 밖에서 그릇을 깨끗이 세척을 하고 오늘 행사에 참여한 참석자들의 식기를 세척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으나 행사 시간이 너무 지연 되어 회원들은 청암사로 이동 다음 행사 일정이 있어 공양간 뒷 일을 도움주지 못하고 출발을 하였다.
행사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장건환,서태교님이 제일늦게 공양을 하고 차량이 도착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직지사 일주문을 지나 인근 야외 공원으로 이동하면서, 해빛이 따스한 맑은 하늘아래 공원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봄을 만끽하고자 야외로 나왔다.
청하 단장님과 회원들은 공원내를 산책하고 소나무 정원 가장자리에서 환하게 웃으면서기념사진을 한장 한컷 촬영 하였고,임성조님이 준비한 커피도 한잔...
-13:45경 차량은 김천직지사를 뒤로 하고 청암사로 향하였다.
0.청암사로 이동하면서 오늘행사 동참한 인원과 보시자 명단을 서태교님이 소개를 하고,개인소개는 54학번 박수경님이 예쁜 목소리로,처음이지만 예전에 경주 불국사에서 종무소임을 맡아 해준 실력으로 개인소개를 너무 재미있고 차량내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오늘 직지사 행사 도우미로 활약한 서태교님은 행사 시간이 지연되어 차량 출발전 허겁지겁 공양을 하고 청암사로 차량이동 도로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이라 이동중 차량에서 멀미와 음식물이 체하여서 차량내 진땀을 내고 청암사 입구에 도착하자 이내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래도 불연의 도반이라 장경순님,이희수님,오동주님등 여러회원님들이 도움을 주어 안정을 취할수 있었다.
-14:50경 차량은 청암사 일주문 앞에 도착을 하였다.
일주문을 통과하고 계곡을 따라 보행을 하다 우측 산 언저리에는 일반 불자들이 마시면 부자가 되고 스님들이 마시면 욕심이 생긴다고 스님들은 마시지 않는다는 우비천(샘물)에서 한모금 샘물로 목을 축이고 경내로 들어섰다.
*청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58년(신라 헌안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 구산선문 동리산문 개조인 혜철(惠哲:785∼861)이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647년(조선 인조 25) 화재로 소실되자 각성(覺性: 1575∼1660)이 허정(虛靜)을 보내 중건하였다. 1782년(정조 6)에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후 환우(喚愚)와 대운(大運)이 중건하였다. 이후 1897년에 폐사되었다가 1900년대 초에 극락전을 복원하면서 다시 절을 세웠다. 응운(應雲)이 보광전을 건립하다 입적하자, 대운이 완공한 뒤 42수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1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대운이 복원하였다.
건물로 대웅전과 육화전·진영각·정법루·일주문·사천왕문·비각·객사 등이 있다. 이중 대웅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고, 육화전은 옛날에 강원(講院)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또 정법루는 현재 종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유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된 석탑과 부도군, 각종 비석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석탑은 본래 4층이나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층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군에는 각성의 사리탑과 태감(泰鑑)·지성(智性)의 공덕비가 남아 있다. 그밖에 일주문 안의 사적비와 회당(晦堂)비각·대운당(大雲堂)비각 등이 전해진다.
-청암사 보광전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2년(858)에 도선이 세운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절이다.
보광전을 지은 것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 정조 6년(1782)에 고쳐 세운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에 앞서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가 장희빈 때문에 폐위되어 이곳 청암사 극락전에 은거하였는데, 이 때 극락전 서쪽에 인현황후의 복위를 빌기 위해 보광전을 세웠다는 설도 있다. 그 뒤 광무 9년(1905)에 다시 세웠으나 1911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과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을 같이 보이고 있다. 안에는 42수의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벽면에 산신도(山神圖), 독성도(獨聖圖), 신상도(神像圖) 등이 걸려 있으며 상벽에는 불화를 그려 놓았다.
현존하는 전통 건축 가운데 드문 절충식 구성법을 보이고 있어 절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이상은 청암사 안내 책자 및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임 -
-15:10경 청암사에 도착하자 경내 대웅전과 보화루에서 동참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청암사 학인스님께서 사찰을 소개를 하였다.
조용하고 깨끗한 경내를 배경으로 스님의 맑은 목소리가 경내를 청청한 도량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하였고,경내는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빛이 밝혀 주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보광전 관람 인근에는 청암사 학인스님내 공부하는 요사체 입구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스님들의 신발, 청암사 보광전 참배길 주변에는 아직 봄기운이 미력하여 야생화들은 새싹의 입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0.인솔자는 42수의 관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에 참배를 하고 법당 주위를 합장하여 세 번을 돌면서 기도를 하고 몇몇 회원님들은 보광전에서 108배를 하고 보광전 입구 석(石) 좌대에서 삼배를 하는 회원들, 몇년전 가족들과 함께 참배 할때는 보광전 입구 석축 돌 사이에 금낭화를 심어 봄이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6:20경 청암사를 뒤로 하고 일주문 밖에서 보광전 참배를 하고 늦게 도착하는 회원들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오늘 선지식 입담을 나누고 있었다.
늦게 기도를 하고 도착을 한 회원들이 함께하여 오늘 준비한 국수를 때 이른 저녁으로 모두가 맛있게 공양을 하고 주변 정리정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마무리를 하였다.
-16:40경 차량이 출발 하면서 곧이어 회향법회를 1호차량은 정심 장주일님 집전으로 예불문,반야심경,교가,사홍서원,산회가순으로 법회를 마감했다.
-17:00경 법회를 마감하고 잠시 금수면사무소 인근에서 10여분간 휴식을 취하고 차량은 출발을 하였다.
0.차량은 출발을 하면서 오늘 준비한 경품을 추첨하여 대상에는 55학번 윤숙자님이 수상을 하고 모두가 박수로 축하를 하였다.
0.경품추첨을 마감하고 잠시 개인 장기자랑을 먼저 장주일님,청하 단장님,오동주님,이대원님,이원우님,유준희님,임성조님등 생음악 솔로로 열창을 하고 사뭇 차량내에서는 열기가 더해지고 어느듯 차량은 성주 참외단지를 거쳐 왜관 톨게이트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대구방면 북대구 인근으로 달리고 있었다
-18:10경 차량은 어느듯 대구 인근에 접어들었다...
0.1호차 차량 내에서는 오늘 행사전반에 인솔자는 마감을 하면서 53선지식 단장 청하 장재영님 마감인사와 인솔자의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오늘 행사를 마감 하였다..차량은 어느듯 북대구IC를 거쳐 신천대로로 이동 수성교 삼덕동을 지나 시내를 통과하여 반월당 보현신협 앞에 도착...
0.불기2555년 3월13일 대구불교대학 53선지식 행사 하루도 저물어간다...
-18:30경 대구 반월당에 도착했다.
0.오늘 53선지식 행사때는 따사로운 봄 햇빛으로 회원들을 맞이 하였고, 무사히 오늘 순례 행사를 마감한데 대하여 53선지식 동참한 회원들의 원력과 부처님의 가피로 알찬 53선지식 하루였으며, 여법하게 법회를 마쳐준 모든 회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면서 회원들은 각자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글의 흐름상 존칭은 개략 생략한다.....
2011년 03월 16일
덕원德原 김동훈金東勳 기록하다
0.본 순례 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신 단장님, 각실무국장 및 차장님, 사무국직원님들 수고했습니다.
0.보시내역등 자세한 내역이 결산보고를 통하여 공개 됩니다...
0.불기2555년 03월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김천직지사,청암사 53선지식(제2회)53차 행사에 참석한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칭은 생략합니다)
1호차량
장재영,서태교,장주일,허운자,윤정수,50이영미,이윤수,정토야,구자명,김미경,김진철,심태재,백경이,윤숙자,송점열,정영수,김덕임,김경자,허귀임,오귀연,서숙자,전미령,이동희,유준희,박순옥,박명현,최해식,정재윤,박민순,소명운,김종순,김정임,정유진,김증순,김태숙,박수경,임성조,이원우,김명선,송대섭,송점순,이대원,오동주,이희수,장경순,김동훈(이상46명)
2호차량
최영찬,47이영미,장건환,장춘원,박재기,김종숙,김정숙,신경순,정종국,김갑득,조미양,이경태,김동회,김숙기,최부규,오희수,김명숙,유미경,윤견희,강민정,김음순,손병식,배병모,김광홍,진정옥,임차련,윤이경,윤상호,강영열,김재목,문길선,박향자,김명숙,정훈영,배명규,박영옥,유광용,배재상,홍금주,김선영,임옥화,사공순옥,심재경,홍화선,김영준,서영덕,최영옥,(이상4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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