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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2015) -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 정장진
79세 할머니 메르타 안데르손은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에 산다. 요양소의 원칙은 8시 취침, 간식 금지, 산책은 어쩌다 한 번만. TV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감옥에서는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 준다는데…. 이렇게 사느니 감옥에 가는 게 낫겠다며 분개한 메르타 할머니는 요양소 합창단 친구들을 꼬드겨 감옥에 들어가기 위한 범죄를 계획한다.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노인들은 감옥에 들어가 꿈꾸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좌충우돌 강도단의 이야기! 노인들의 진짜 모험이 시작된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이은 스웨덴산 특급 베스트셀러!
★2015년 이탈리아 프레미오 로마 픽션상
★웃긴 게 범죄라면 유죄! ─ 본니에르스 북 클럽
★경쾌하고 너무 웃기는 한탕! ─ 「인디펜던트 선데이」
★유머, 뛰어난 대사, 아이러니와 따뜻함이 있는 책. 쉽게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반영도 있는 즐거운 탐정 코미디 ─ 『프로 펜시오네렌』
본의 아니게 완전 범죄를 저지른 노인 강도단의 진짜 모험이 시작된다!
은행털이에 나선 79세 할머니 메르타 안데르손과 네 명의 노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머러스한 범죄 소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사회가 노년층을 취급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은 우리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같은 주인공들이 강도단을 꾸려 자신만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 나가고자 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8시 취침, 간식 금지, 산책은 어쩌다 한 번 뿐인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에서 사는 메르타 안데르손. TV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감옥에서는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 준다는데, 이렇게 사느니 감옥에 가는 게 낫겠다며 분개한 메르타 할머니는 요양소 합창단 친구들을 꼬드겨 강도단을 결성한다.
노인 강도단의 리더 메르타와 강도단의 브레인 오스카르, 전직 선원 베르틸, 암산의 여왕 안나그레타, 그리고 스티나까지 다이아몬드 요양소에서 함께 사는 이 다섯 노인들은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을 누구도 의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국립 박물관에서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을 훔친다. 그림값 천만 크로나를 받으면 돈을 잘 숨겨 두었다가 그림을 무사히 돌려주고, 감옥에서 나오는 대로 돈을 찾아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를 꿈꾼다.
노인들은 훔친 그림 위에 수채 물감으로 콧수염을 그려 넣어 싸구려 모작으로 위장한 뒤, 호텔의 인테리어인 척 호텔방에 숨겨 둔다. 그러나 그림값으로 받은 돈 중 절반을 폭풍우 통에 잃어버리고, 설상가상으로 그림까지 사라진다.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없게 된 노인들은 무작정 경찰서에 찾아가 자신들이 범인이라며 감옥에 보내달라고 자수하지만 노인들의 말을 믿어주는 경찰이 한 명도 없는데……. 이들은 사라진 돈과 그림을 다시 찾고, 감옥에 들어가 꿈꾸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이은 스웨덴산 베스트셀러로, 역사 소설, 어린이책, 유머, 에세이집 등 여러 장르에서 18종의 책을 펴낸 작가 카타리아 잉엘만순드베리 특유의 깊은 통찰력과 기발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탐정 소설의 광팬으로 완벽한 범죄 실행을 위해 체력 단련실을 드나드는 메르타, 항상 좋은 옷을 차려입고 다니며 유행하는 최신 몸 관리 방법들을 다 알고 있는 스티나 등 등장인물 각각의 특징을 상세하게 그리며 노인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대신 요양소에 격리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거나 힘도 욕망도 없는 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낙엽 지는 인생 황혼기를 맞은 그들이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내며 즐길 권리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저자(글)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저자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Catharina Ingelman-Sundberg는 1948년 스웨덴에서 의사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15년 동안 수중고고학자로 지냈으며, 호주의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스웨덴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역사 소설, 어린이책, 유머, 에세이집 등 여러 장르에서 18종의 책을 펴냈다. 1999년에 역사 소설로 라르스 비딩상을 수상했다. 이 책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로 2015년 이탈리아 프레미오 로마 픽션상을 수상, 깊은 통찰력과 기발한 유머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79세 할머니 메르타와 네 명의 노인 친구들이 주인공인 유머러스한 범죄 소설로, 사회가 노년층을 취급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은 노인들이 《강도단》을 꾸려 자신만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 나가고자 하는 내용을 담았다. 작가는 이 《노인 강도단》의 리더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메르타가 자신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스웨덴에서만 40만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40개국에 번역되어 영국, 독일, 이탈리아, 노르웨이, 캐나다 등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번역 정장진
역자 정장진은 1956년에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국제 로타리 장학금을 받아 파리 제8대학에서 20세기 소설과 현대 문학 비평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문학 평론가와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루브르 조각전? 학술 고문으로 전시를 기획하며 도록을 집필했다. 2000년에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겸임 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평론집 『문학과 방법』, 『두 개의 소설, 두 개의 거짓말』, 『영화가 사랑한 미술』 등이 있으며, 역서로 다니엘 라구트의 『예술사란 무엇인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예술, 문학, 정신분석』, 마리 다리외세크의 『암퇘지』, 장 자끄 상뻬의 『뉴욕 스케치』 등이 있다. 2011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장기 인문학 명저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해 『사랑과 서구문명』을 번역한 바 있으며, 2011년 고려대 안암 캠퍼스의 최우수 강의에 수여되는 석탑강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1년간 주간 ?법보 신문?에 《수보리 영화관에 가다》 제하로 영화 칼럼을 연재했다.
프롤로그
노부인은 한 손으로 보행기를 움켜잡고, 단호한 모습을 갖추려고 하면서, 지팡이를 바구니 옆에 걸었다. 이제 막 은행을 털려고 하는 79세의 노부인일수록 당당함이 필요하다. 몸을 곧게 세우고 모자를 푹 눌러 이마를 가린 채 노부인은 은행 문을 열었다. 칼오스카르사에서 제작한 보행기에 몸을 기댄 채 노부인은 천천히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 문을 닫기 5분 전이었으며 세 명의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올리브유를 발라 기름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행기는 아직도 조금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한 용역 회사의 청소 수레와 정면으로 충돌한 이후, 보행기의 바퀴 하나가 늘 말썽이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많은 돈을 담을 수 있도록 보행기에 큰 바구니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시 쇠데르말름 출신인 메르타 안데르손은, 사람들의 눈을 끌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주 평범한 색으로 골라 산 외투를 입고 약간 앞으로 몸을 숙인 채 걸어갔다. 평균보다 조금 큰 키의 메르타는 굳이 말하자면 통통한 편이었지 뚱뚱한 몸매는 아니었고, 신발은 혹시 도망을 쳐야 할 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어두운 색의 조깅화를 신고 있었다. 굵은 핏줄이 선명한 두 손에는 오래된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고 흰머리는 챙이 넓은 밤색 모자를 푹 눌러써서 대충 가리고 있었다. 목에는 형광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혹시 사진이라도 찍히는 경우, 이 형광색은 주변의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과다 노출시킴으로써 얼굴의 주요 특징들도 사라지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는 조심조심하느라고 그런 것일 뿐, 이미 입과 코는 모자만으로도 충분히 가려져 있었다.
예트가탄 가에 있는 이 작은 은행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은행들 중 하나였다. 창구는 하나밖에 없었고 벽도 아무런 특징이 없었으며 잘 닦아서 반질반질한 바닥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작은 탁자 위에는 돈을 불리는 방법과 유리한 대출 상품을 소개하는 광고 브로슈어들이 놓여 있었다. 메르타는 그 브로슈어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브로슈어를 만드신 제작자들이여, 난 훨씬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네!〉 메르타는 긴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면서 주택 담보 대출과 주식형 펀드 상품을 광고하는 포스터들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따져 보는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정을 하려고 해도 손이 자꾸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메르타는 주머니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사탕을 먹는 것은 의사들이 주의를 주곤 했던 좋지 않은 습관이긴 했지만, 치과 의사들 입장에서는 권장할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말릴 필요가 없는 습관이기도 했다. 〈밀림의 포효〉라는 이상야릇한 이름도 그렇지만, 이 감초를 소금에 말려서 만든 사탕은 오늘 같은 날에는 딱 제격이었다. 또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다고 칭송하는 메르타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없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대기자 전광판의 벨이 울리자 한 40대 중반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창구로 갔다. 그의 볼일은 금방 끝났고 이어 다음 차례인 청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 차례는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였는데, 창구 앞에서 계속 뭐라고 투덜대면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메르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렇게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했다. 아무래도 오래 있다 보면 메르타의 행동거지들이 눈에 띌 수밖에 없고 또 다른 특징들이 그녀의 신분을 드러내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면 정말 곤란했다. 돈을 인출하러 은행에 온 평범한 노부인으로 보여야만 했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한다, 메르타가 할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창구 직원은 깜짝 놀라겠지만…. 메르타는 「다겐스 인두스트리」지에서 오린 신문 쪼가리를 찾으려고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신문에 따르면, 은행털이는 은행 측에 실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고 한다. 바로 그 기사를 오려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기사 제목은 〈이것은 완벽한 은행털이!〉였다. 메르타가 지금부터 저지르려고 하는 은행털이는 바로 이 신문 기사의 제목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것이었다.
창구에 앉아 있는 마지막 손님의 일이 끝나자, 메르타는 보행기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생 동안 메르타는 흔히 말하듯이 누구에게나 신뢰감을 주는 잘나가는 여자였다. 학교 다닐 때는 반장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 은행을 터는 범죄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노년을 꾸려 나가야만 했다!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아름다운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같은 합창단의 노인 친구들과 함께 〈빛나는〉 제3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한마디로, 이 인생의 늦가을에 조금은 흥청망청 살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 손님인 그 사나이가 답답하게도 꺼냈던 서류들을 챙기느라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마침내 메르타의 번호가 떴다.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메르타는 창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평생 쌓아 온 좋은 평판과 존경이 이제 한순간에 먼지처럼 날아갈 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이 날도둑놈들이 활개를 치는 사회에서 79세의 노인 메르타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뭐가 있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대로 죽어 가든지 아니면 적응을 해서 살아가든지…. 메르타는 이제까지 늘 적응하는 타입으로 살아왔다.
마지막 남은 몇 걸음을 옮기면서 메르타는 주위를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피면서 창구 앞에 섰다. 지팡이를 집어 카운터에 올려놓고 머리를 끄덕여 창구 직원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메르타는 신문에서 오려 낸 기사 쪼가리를 내밀었다.
〈이것은 완벽한 은행털이!〉
창구 여직원은 신문 쪼가리를 읽은 다음 눈을 들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뭘 도와 드릴까요, 손님?」
「3백만 크로나를 내놔, 얼른!」
창구 여직원은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돈을 인출하시겠다는 거죠?」
「아니야. 당신이 가서 돈을 가져오란 말이야,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 연금은 아직 입금이 안 됐어요. 매달 중순경에 들어와요. 아시겠어요, 할머니?」
메르타는 일이 꼬여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일들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양상을 보이곤 한다. 그러면 계획을 수정해서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 메르타는 외투를 벗어서 창구 여직원의 코앞에 대고 마구 흔들어 보이다가 창구 옆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계속 소리쳤다.
「어서, 서두르란 말이야! 내 돈 3백만 크로나를 내놔!」
「하지만, 연금은 아직….」
「내가 말한 대로만 해. 3백만. 그걸 갖다가 여기 내 보행기 위에 놓으란 말이야!」
창구 여직원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 남자 은행원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그중 한창 일할 나이인 한 남자 직원은 남자답지 않게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다른 한 직원은 너무나도 잘생긴 미남이어서 메르타는 순간 눈앞에 그레고리 펙이나 케리 그랜트가 나타난 줄로만 알았다. 바로 이 미남 직원이 메르타에게 말했다.
「우리가 부인의 연금을 관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하신다면, 여기 제 옆에 있는 이 직원이 차를 한 대 불러 드릴게요. 그걸 타고 집에 돌아가세요.」
메르타는 창살이 쳐진 창구 너머를 힐끗 바라봤다. 방 한구석에서 창구 여직원이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 다음번에 와서 은행을 털어야겠군.」 메르타는 외투를 집어 들고 오려 낸 신문 쪼가리도 집었다.
모두들 메르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도 문까지 배웅해 주었으며 택시 타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심지어 보행기를 접어 택시에 실어 주기까지 했다.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로 가세요.」 메르타는 손을 흔들어 은행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택시 기사에게 행선지를 일러 주었다. 〈어쨌든,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메르타가 예상했던 대로 됐다.〉 보행기를 밀고 다니는 한 노파가 다른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을 한 것이니까. 메르타는 주머니를 뒤져 다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는 노래 한 곡을 흥얼거렸다. 그녀가 세운 계획이 성공을 거두려면 합창단 단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벌써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그 친구들의 도움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함께 은행을 털자고 불쑥 말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 꾀를 내서 그 노인네들을 속일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꺼림칙했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후일 모두들 인생을 바꿔 주어서 고맙다고 메르타에게 감사해할지 누가 알겠는가?
메르타는 멀리서 울리는 윙윙 소리에 이어 세게 쳐대는 종소리에 그만 잠에서 깼다. 눈을 뜬 메르타는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잠시 의아했다. 아, 맞아. 노인들을 위한 요양 시설이지. 이렇게 남들 다 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무언가를 꼭 먹는 사람은 〈갈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베르틸 엥스트룀밖에 없다. 갈퀴는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넣어 놓고는 늘 깜빡하곤 했다. 메르타는 일어나 보행기를 밀고 부엌으로 갔다. 약간 숨을 헐떡이며 메르타는 전자레인지에서 플라스틱 포장에 담긴 작은 만두와 뻘건 토마토소스가 뿌려진 스파게티를 끄집어내면서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불이 들어와 있는 창문이 몇 개 보였다. 길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부엌을 갖고 있다. 옛날에는 이 요양소에서도 노인들이 각자 작은 개인 부엌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설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면서 새로 온 주인이 이 개인 취사 시설을 없애 버렸다. 경비 절감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 주식회사가 이 노인 요양소를 인수하기 전만 해도, 삼시 세끼 식사는 요양소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질 좋은 여러 음식들이 뿜어내는 음식 냄새가 식당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공동실을 가득 채울 때면….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메르타는 하품을 하며 싱크대 위로 몸을 숙였다. 거의 모든 것이 나빠졌다. 너무나도 한심해져서 종종 메르타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꿈을 꾸곤 했다. 꿈이었지만 얼마나 멋졌던가. 꿈을 꾸기 시작하면 메르타는 이미 꿈속의 장소에 가 있곤 했다. 은행도 그녀가 꿈꾸던 곳들 중 한 곳이었다. 마치 무의식이 주인이 되어 마구 명령을 내리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 같았다. 메르타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불의에 맞서 반항을 하곤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에도 불합리한 조치나 조직 배치가 나오면 언제나 반대에 앞장섰다. 하지만 여기, 노인 요양소에 들어온 이후로는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변해 버렸을까? 국민들이 자기 나라 정부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킨다. 여기서도 혁명을 일으켜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어쩌면 조금 멀리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소동을 한 번 더 일으켜서…. 메르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메르타는 〈거의 언제나,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메르타는 이 믿음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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