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무술의 탄생의 출처를 현재 민간협회에서 다르게 주장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문헌과 술기적 접근을 통해서 특공무술의 연구에 노력하고 있는 제 3자를 통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특공무술의 사실화 박노원 의 부탁을 받고 2009년 9월부터 시작하여 특공무술을 술기적 접근으로 연구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경호무도로서 ‘특공무술’의 형성과정에 관한 고찰」, 김은정 2005년 석사논문과 기타 구술에 의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헌적 연구도 같이 병행중이다. 이 연구의 바탕은 아래의 2가지 사항에서 출발한다.
술기적 접근 본 연구를 하고 있는 본인 또한 특공무술을 체계적으로 지도받아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그 술기의 원리이해에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문헌적 접근 현재 특공무술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자들도 기본적인 특공무술 역사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 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면서 가장 위험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그것은 바로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행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문제이다.
특공무술의 두 갈래길 특공무술은 태생적 특성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청와대 경호실을 중심으로 하는 경호무술 성격이 내포된 특공무술, 둘째는 국방무술로 대변되는 군대무술의 특공무술이다. 위 두 개는 국가기관의 한 부분이다. 위 사항은 김은정 석사논문을 탐독하면 어느정도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세하게 다루지 않겠다.
문헌적 접근을 먼저 해보도록 하자. 대한특공무술협회는 1992년에 ‘특공무술’이라는 교본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이 책자는 발행인이 장수옥으로 되어 있고 앞 겉면 저자명 또는 서지사항이 적혀 있지 않았다. 왜 자신이 지은이가 아닐까? 이 사항은 뒤에 국제특공무술연합회와의 소송과도 연관이 있게 된다. 국제특공무술연합회는 2000년 7월 유급자과정 ⅠⅡ, 비디오테입을 특공무술 단체로는 처음으로 영상으로 출판하였다. 이에 대해 김은정 석사논문 p.30에 있는 “2003년 5월에는 국제특공무술연합회가 대한특공무술협회의 「특공무술 교본」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하였는데, 이는 작게는 특공무술 기술도용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여기에 오류가 있어 정정해 본다.
국제특공무술연합회는 특공무술 단체 최초 영상교본을 제작하여 출판하였는데 장수옥이 국제특공무술연합회의 박노원을 상대로 비디오테입 표절시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박노원은 일목요연한 증빙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소송에 대처하였고 그 결과 장수옥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국제특공무술연합회에서는 특공무술의 발전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던 만큼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소송취하를 받아들이게 된다.
2005년 『특공무술의 이해-경호무도의 역할』이 장수옥, 김두현 공저로 해서 출판되었다. 하지만, 이 교본은 1992년도 판 내용에 경호적 측면이 결부된 내용이 첨부된 것일 뿐 더 이상의 술기적 발전은 없다.
2008년 국제특공무술연합회는 “한영대역판 특공무술의 이론과 실기” 교본과 함께 동영상 교본 유급자과정을 출판하였다. 2010년 1월 국제특공무술연합회는 DVD 교본 1단, 2단 과정을 출판하였다.
술기적 접근을 시도해 보자. 항간에 알려져 있는 말대로 606특수부대에 의해 연구 및 체계화 되었던 앨범 다섯 권 분량의 자료가 장수옥에게 넘겨져 그것이 체계화 된 것이 1992년 「특공무술 교본」이라고 한다면 이는 대테러 임무 수행을 골간으로 하는 특수임무 수행을 연구한 그 노고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606부대는 10.26 사태로 더 이상의 술기개발이 중단되었고, 27부대로 개칭된 후 실제적으로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의 경호임무를 수행한 부대였기 때문이다. 개발 당시 특공교육은 경호실 배속부대인 606부대를 주축으로 시작되었지만, 이 후 경호실과 군으로 구분되어 발전된 측면이 나타난다.
군대무술로서의 특공무술은 제5공수여단이 그 주축에 서있다. 장기오 장군이 그 개발의 가운데에 서 있으며,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이 창시자로 주장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특공무술 야전교범(39-0-3) 부록5 ‘특공무술 변천과정’ 내용을 통한 특공무술 개발 박노원의 기여>
1980년 6월 제5공수 여단장이었던 장기오 장군은 특수 군 무술 개발을 위하여 민간사범(현 박노원 회장)을 위촉하여 6개월간 실전 무술교육을 지도하여 25대대 15지역대 군 교관 50여명을 양성하였고, 군부대의 특성에 적합한 기술개발에 경주하여 "단도살상술, 기본치기, 공격수(선수), 방어수(후수), 권총술, 중봉술, AK방어술, 야전삽, 기본형, 특무1형, 특무2형, 대검형, 기합짜기, 낙법 등을 군 특수임무 수행에 적합하게 새로 개발하였다.
1986년 4월 30일에는 육군본부 발행 ‘특공무술 교육참고(21-20-1) 교재가 발간된다. 이 교재는 당시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황인기 대위(3사 출신)가 경찰대학 무도교관으로 있던 박노원 사범(당시)을 찾아 자료 및 기술을 정리하여 발간한 교재이다.
2000년 특수전 사령관은 특공무술을 급소 위주로 연구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장교를 포함한 연구교관들이 부평시 ‘청풍무술원’에서 실전무술 연구 및 교육을 실시하였다.
2005년 특전사령관 지시에 의거 ‘특공무술’ 용어를 재정립하며 원사 허 진 등 58명을 대상으로 대대교관 집체교육을 실시한다.
위와 같은 사항은 특전사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현재 특공무술은 아직 정체성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더 체계적인 연구가 선행된다면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좀 더 밝혀질 것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