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김진규의 외로운 귀양살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는 기사환국(1689년)으로 인해 거제도에서 약 5년간 고독한 유배 생활을 보냈던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의 거제도 유배문학 중에 ‘외로운 귀양살이와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읊은 4편의 한시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에 수록되어 있는 ①칠언절구 1편과 칠언율시 1편의 「섣달 그믐날 밤(除夜)」, ②오언율시 「외로운 베갯머리(孤枕)」, ③칠언율시 「가을밤(秋夜)」, ④오언율시 「가을밤(秋夜)」을 차례대로 제시하겠다. 이들 작품은 고립된 섬이라는 공간적 단절감 속에서 저자가 느낀 절절한 외로움, 혈육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복귀에 대한 염원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저자의 유배지 심정과 감정의 핵심을 3가지 주제로 묶어 분석할 수 있다.
먼저 (1) 단절된 시공간이 주는 극도의 고독감과 신세 한탄을 들 수 있다. 유배지에서의 시간과 계절의 변화는 저자에게 긍정적인 희망보다는 쓸쓸함과 세월에 대한 무상감을 먼저 가져다준다. 칠언절구·칠언율시의 「섣달 그믐날 밤(除夜)」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그믐날 밤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명절이지만, 저자는 타향이자 변방인 거제도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며 늙어가는 처지를 한탄한다. 남들은 새해의 희망을 노래할 때, 멀리 떨어진 배소에서 홀로 맞는 시간의 변화는 유배객의 절망감과 고립감을 극대화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어 오언율시의 「외로운 베갯머리(孤枕)」는, 밤이 찾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 밀려오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외로운 베개'라는 시어 자체가 홀로 남겨진 저자의 처량한 처지를 직설적으로 대변하며, 밤의 정적 속에서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유배객의 단절감을 생생하게 드러내었다. 두 번째 (2) 가을밤의 쓸쓸함과 깊어지는 향수(鄕愁)를 서술했다.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은 동양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나그네의 시름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최고의 장치다. 칠언율시·오언율시의 「가을밤(秋夜)」 2편은,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가을밤, 저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이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본다. 차가운 가을 기운은 유배지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고향집과 정든 이들을 향한 정서적 조바심을 더욱 자극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귀양살이 속에서, 가을의 조락(凋落)하는 이미지는 자신의 꺾인 정치적 처지와 맞물려 더욱 깊은 비장미와 향수를 자아내었다. 세 번째 (3) 가족(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복귀를 염원했다.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던 당시, 그의 형 김진구는 제주도에, 삼촌 김만중은 남해도에 유배되어 있는 등 가문 전체가 큰 풍파를 겪고 있었다. 고로 4편의 시 전반에 깔린 감정은 단순한 개인적 외로움을 넘어, 흩어진 혈육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절절한 통곡에 가깝다. 바다로 가로막힌 거제도라는 유배지에서 소식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는 고립감 속에서도, 저자는 언젠가 이 기나긴 밤이 지나고 임금의 은혜를 입어 고향으로 복귀하여 가족들과 평화롭게 재회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결국 죽천(竹泉)의 이 작품들은 유배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느낀 시간적 번민(除夜), 공간적 고독(孤枕), 계절적 쓸쓸함(秋夜)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기록이다. 저자는 절망적인 고립감과 슬픔을 숨기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애절한 시어로 토로하며, 고향을 향한 변함없는 향수와, 선비로서의 고결한 내면적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1) 다음 ‘支’ 운목의 칠언절구 1편과 ‘蕭’ 운목의 칠언율시 1편으로 구성된 「섣달 그믐날 밤(除夜)」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유배지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인생의 무상함과 유배지에서 맞이한 제야의 쓸쓸함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낸 한시다.
○ 내용인즉, [칠언절구]에선, 작가는 섣달 그믐날 밤에 한 해가 저무는 것을 '친한 친구와의 이별'로 비유했다. 떠나가는 해(시간)에게 이별의 술잔을 건네며, "우리 인생에서 이 시간(또는 젊음)을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라고 자문한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을 담았다.
[칠언율시]에선, 저자 김진규는 숙종 연간의 문신으로, 치열한 당쟁 속에서 거제도 등 변방으로 유배 생활을 겪었다. 이 시는 바로 그 유배지(객리, 천리 타향)에서 섣달 그믐날 밤을 맞이하며 지은 것이다. 거친 풍랑(정치적 시련)으로 형제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어머니와 아내의 소식도 알 길이 없다. 평소에는 유배지의 외롭고 차가운 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지만(寒宵永), 한 해의 마지막 밤인 오늘만큼은 떠나가는 해가 아쉬워 잠들지 못하고 밤을 새우는 '수세(守歲)'의 풍습을 지키며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 밤(除夜)」**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칠언절구(七言絶句)] ‘支’ 운목, 평기식.
年光忽去不遲遲 한 해의 시간은 더디지 않고 홀연히 가버리니
卻似親朋遠別離 마치 친한 친구와 멀리 이별하는 것만 같구나.
欲把一杯相餞問 한 잔 술을 잡고 서로 전송하며 묻노니
此生能有更逢時 이번 생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가 있으려나.
又 [칠언율시(七言律詩)] ‘蕭’ 운목, 측기식.
客裏無心效頌椒 나그네 신세라 초주(椒酒)를 바치며 축수할 마음도 없는데
孤燈相伴意蕭條 외로운 등불만 나를 동반하여 마음이 쓸쓸하구나.
一年行逐三更盡 한 해는 어느덧 밤중(삼경)을 따라 다해가고
千里空添兩鬢凋 천리 타향에서 부질없이 양쪽 귀밑머리만 시들어 가네.
海外風濤兄弟散 바다 밖 거친 풍랑에 형제들은 흩어졌고
天涯音信母妻遙 하늘 끝 고향의 어머니와 아내 소식은 멀기만 하구나.
愁人每恨寒宵永 수심 깊은 이 몸은 매번 차가운 밤이 길다고 원망했거늘
此夜慇懃坐到朝 이 밤만큼은 은근한 마음으로 아침까지 앉아 밤을 새우노라.
[주1] 송초(頌椒) : 새해를 맞아 장수를 기원하며 초주(椒酒, 산초나무 열매를 넣은 술)를 마시는 세시 풍속을 말한다. 작가는 유배 신세라 그런 새해 축하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주2] 음신(音信) : 먼 곳에서 전하는 소식(消息)이나 편지(便紙).
2) 다음 ‘尤’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외로운 베갯머리(孤枕)」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한시는 유배지의 쓸쓸한 가을밤에 느끼는 외로움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 내용인즉, 이 글은 5언율시의 전형적인 구조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을 따르고 있다. 앞부분(1~6구)에서는 밤바람과 조각달 등 유배지의 차갑고 쓸쓸한 가을 밤 풍경을 묘사하고, 뒷부분(7~8구)에서는 꿈속에서라도 고향에 머물고 싶어 하는 시인의 주관적 정서를 집약하여 여운을 남겼다. 김진규는 숙종 대의 문신으로 정치적 격변 속에 유배 생활을 겪었다. 이 시는 단순한 가을밤의 감상이 아니라, 정치적 좌절과 유배객이라는 실존적 고독감이 '늦가을의 차가운 밤'이라는 배경을 통해 절제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된 명작이다.
「외로운 베갯머리(孤枕)」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孤枕殊方客 외로운 베갯머리 타향의 나그네는
殘燈永夜愁 가물거리는 등불 아래 긴긴밤 시름겨워하네.
如何悲遠謫 어쩌다가 먼 곳으로 유배 온 것도 슬픈데
又是屬窮秋 하필이면 또다시 늦가을을 맞이했는가.
滿地凉風起 땅에 가득 찬바람이 일어나고
遙空片月流 먼 하늘에는 조각달이 흘러간다.
荒雞莫催曉 거친 들의 닭들아 새벽을 재촉하지 말아라.
歸夢要遅留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속에 더 머물고 싶구나.
[주1] 수방객(殊方客) : '풍속이 다른 먼 지역의 나그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유배당한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
[주2] 잔등(殘燈)과 영야(永夜) : ‘꺼져가는 등불’과 ‘끝없이 긴 밤’은 유배객이 느끼는 외로움과 시간의 지루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주3] 궁추(窮秋) : 가을의 끝자락인 '늦가을'을 뜻한다. 계절의 조락(凋落) 분위기가 시인의 쓸쓸한 처지와 결합되어 슬픔을 심화시켰다.
[주4] 만지(滿地)와 요공(遙空) : 땅 가득 부는 찬바람과 먼 하늘의 조각달은 시인의 외로운 내면을 대변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바람은 차갑고, 달은 홀로 떠 있어 고독감을 더한다.
[주5] 황계막최효(荒雞莫催曉) : 들닭이 울어 새벽이 오면 꿈에서 깨어나 냉혹한 유배지의 현실로 돌아와야 하므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애절한 심정을 담았다.
[주6] 귀몽(歸夢) : 현실에서는 갈 수 없는 고향(또는 한양)을 꿈속에서나마 가고 싶은 간절한 향수와 그리움을 집약한 단어다.
3) 다음 ‘蒸’ 운목의 칠언율시 「가을밤(秋夜)」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늦가을 밤에 병석에 누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지은 작품으로, 불교적 명상과 은일(隱逸)의 정서가 깊게 묻어나며, 고요한 성찰과 세속을 벗어나고픈 갈망을 피력했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가을밤이라는 시간적 배경 속에서 작가의 내면적 성찰과 은거에 대한 갈망을 정조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1~4구]에선, 가을밤의 고요함과 병석의 쓸쓸함을 묘사했다. 작가는 가을밤에 조용히 기대어 앉아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 고요함이 마치 수행하는 스님과 같다.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외로운 등불 하나를 두고 밤을 지새우는 모습에서, 육체적 병고와 함께 고독감이 묻어난다. [5~6구]에선, 현실과의 거리감과 은거의 부끄러움을 드러냈다. 시끄러운 정치적 풍진 속세와는 이미 멀어졌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던 완벽한 자연 속의 삶(구학서지)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현실 정치에서의 고뇌나 유배 생활 등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7~8구]에선, 불교적 사유를 통한 초월적 삶을 꿈꾼다. 마지막 구절은 매우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다. 예전에 접했던 불교의 가르침(조계의 물)이 여전히 내면에 남아 있어, 꿈속에서조차 시원하고 깨끗한 폭포수가 되어 쏟아진다. 이는 속세의 번뇌와 가을밤의 쓸쓸함을 씻어내고 정신적인 초월과 정화를 이루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을 보여준다.
**「가을밤(秋夜)」**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翛然隱几此心澄 안석에 초연히 기대니 이 마음 맑아지는데
幽寂渾如在定僧 그윽하고 고요함이 온전히 삼매(선정)에 든 스님 같구나.
卧病深秋聞落葉 깊어가는 가을 병으로 누워 낙엽 떨어지는 소리 듣고
端居永夜伴孤燈 단정히 앉아 긴 밤 동안 외로운 등불을 벗 삼네.
風塵身世甘相弃 풍진 세상(속세)의 신세는 서로 기꺼이 버렸으나
丘壑栖遅愧未能 자연에 깃들어 사는 일은 아직 서투르니 부끄럽구나.
曾飮曹溪一勺水 일찍이 조계의 물 한 국자를 마셨더니
夢中寒瀑尙層層 꿈속에서도 차가운 폭포가 여전히 층층이 흘러내리네.
[주1] 소연(翛然) : 얽매임 없이 자유롭고 초연한 모양.
[주2] 은궤(隱几) : 안석. 벽에 기대어 앉을 때 쓰는 방석 같은 기구
[주3] 재정승(在定僧) : 잡념을 끊고 깊은 명상(선정)에 든 스님.
[주4] 단거(端居) : 자세를 바르게 하고 조용히 지냄.
[주5] 풍진(風塵) : 바람과 먼지, 즉 복잡하고 시끄러운 속세를 비유.
[주6] 구학서지(丘壑栖遅) : 언덕과 골짜기(자연)에서 한가롭게 지냄.
[주7] 조계(曹溪) : 선종(禪宗)의 성지이자 불법(佛法)을 상징. 여기서는 불교적 진리나 깨달음을 뜻함.
4) 다음 ‘陽’ 운목의 오언율시 「가을밤(秋夜)」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더운 바다 같은 세상에도 가을이 돌아오니, 초가집에 새로운 서늘함이 생겨난다’로 시작하는 이 한시는 저자가 유배지 거제도에서 느낀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다.
○ 내용인즉, 저자 김진규는 숙종 시기 서인 세력의 핵심 인물로, 기사환국 등 치열한 당쟁 속에서 유배 생활을 겪은 거제도의 쓸쓸한 가을밤을 배경으로 지었다. [전반부(1~4구)]에선, 계절의 변화(가을)에 따른 유배지의 풍경을 서늘한 바람, 대나무 소리, 맑은 이슬 등으로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후반부(5~8구)]에선, 유배객의 내면을 다루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다 깨어난 뒤, 적막한 방안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슬픔을 '풀벌레 소리'에 투영하여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가을밤(秋夜)」**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炎海亦秋回 더운 바다 유배지에도 가을이 돌아오니
茅屋生新凉 초가집 방안에 새로이 서늘한 기운이 감도네.
叢篁動風響 대나무 숲은 바람 소리에 뒤흔들리고
蔓草澄露光 덩굴 풀에는 이슬 빛이 맑게 빛나네.
窓間孤客卧 창가에 외로운 나그네 홀로 누워
故園歸夢長 고향 집 가고파 꿈속을 길게 헤매었네.
覺來四壁靜 꿈에서 깨어보니 사방의 벽은 고요한데
虫聲滿空床 풀벌레 소리만 빈 침상에 가득하구나.
[주1] 염해(炎海) : 남쪽의 ‘무더운 바다’를 뜻하며, 유배되었던 거제도를 상징한다.
[주2] 총황(叢篁) : 빽빽한 대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