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이호아에서 온 편지
허 병장은 나트랑에 있을 때를 돌아보며 투이호아로 나오게 된 것을 참으로 행운으로 생각하며 즐겁게 지냈다.
일이라야 가끔씩 오는 한국군 차량을 검문하는 것이었다. 미군 차는 GI MP가, 월남 차는 월남 경찰이 검문하고, 나머지 시간은 삼국 언어 대화장이었다. 그리고 근무가 끝나고 자유로운 시간에는 가끔 마을로 나가 마(ma)의 집에 가서 차를 얻어 마시며 놀다 오기도 했고, 시간 여유가 많을 때에는 퀴논 비행장 스탠드바에 가서 미군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부라운 대위와 친하게 되어서 장교 클럽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기도 했다. 부라운 대위와 만나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마의 집은 허 병장이 참모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전달하고 달러를 받아 오고 또는 뭔지는 모르지만 물건을 받아오기도 하는 집이었다. 마는 50대 후반의 전형적인 주부 모습의 인상 좋은 여인이었다. 허 병장은 어머니처럼 그녀를 따랐고, 마 역시 허 병장을 아들처럼 대했다. 형처럼 따르는 고등학생 정도의 뚜엉(Tuong)이라는 아들 녀석이 좋은 말동무가 되었다. 더러는 화홍(Hoa hong)이라는 스물 댓 살 정도의 딸도 슬쩍 비쳤지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마는 딸이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는 변 하사도 자주 드나드는 눈치였다. 그는 관내 순찰이라는 명목으로 투이호아 전역을 바람난 수캐처럼 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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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병장은 파월하자마자 나트랑에 있는 십자성부대 헌병참모부에 배속되었다.
그는 병무행정 착오로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군에 입대하였다. 한 동네에서 지질이도 가난하게 살던 죽마고우 지순명이도 같은 운명이었다. 나이만 좀 어리면 어떻게 하든지 군인에 입대하여 월남에 가 가지고 돈을 벌어 오고 싶다던 그도 틀림없이 파월하였을 것인데, 입대 후 서로 다른 병과를 받고 헤어졌으니 알 길이 없었다.
허 병장은 어쩌다가 헌병 병과를 받게 되어, 나이 어린 상급자들에게 시달리는 군인 생활이 힘들어서 월남 파병을 지원했다. 사실 이미 세 살 된 어린 딸이 하나 있는 지아비로서 군 복무 의무도 때우고, 웬만한 하급 공무원 봉급 정도의 급료를 받아서 아내에게 보낼 수도 있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참모부에는 작전계와 조사계가 있었다. 허 병장은 작전계에 앉게 되었다. 이미 몸에 맞는 치수의 정글복과 정글화가 준비되어 있었고, 상의와 모자에는 병장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허 병장이 계급장을 들여다보며 당황해 하고 있으니까 앞자리에 있는 조사계 서 병장이,
“그 덩치에 그 나이에 어떻게 일병을 달고 헌병 업무를 봅니까?”
하며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허 병장은 당황하면서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한국에서는 몇 번째 동생뻘 되는 녀석도 제가 병장이라고 허 일병 허 일병 하면서 반말로 대하던 분위기를 생각하며, 파월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작전계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폼 잡고 뻐기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허 병장은 혼자 속으로, 아니 어떻게 내게 이런 멋진 업무가 배당되었는가, 한번 멋지게 해 보자, 이런 마음으로 밤을 새우면서까지 일을 열심히 했다. 원래 행정 업무를 좋아하는데다가,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에는 열정을 다하는 성격이어서 그는 그 일을 매우 즐기면서 나날을 보냈다. 입대 전에 공무원을 하면서 남들은 엄두도 못 내는 타자를 배웠고, 학교 다닐 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혼자서 열심히 회화 공부를 했던 것도, 생각지도 않게 파월 후에 아주 요긴히 써먹게 되었으니, 허 병장으로서는 헌병참모부 작전계의 적격자였다.
처음 얼마 동안은 새롭고 재미있는 일에 심취하여 피곤도 모르고 일했다. VIP 에스코트 업무는 가끔 있는 일이니까 별게 아니었다. 박스 검열 업무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출장을 나가야 하는 업무였다. 일주일 동안 수집된 검사 품목 검사와 정리, 항공대에 헬기(헬리콥터) 신청, 이러면 참모와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가서, 넓은 연병장에 진열된 몇 백 개의 박스들 하나하나를, 그 박스의 주인 되는 병사 입회하에, 규정 외의 물품이 있나를 검사하는 일이었다. 무기류나 TV 또는 냉장고 등의 전자제품은 적발되면 모두 압수였다. 30도가 넘는 한낮 땡볕의 연병장에서 일반 사병들로부터 하사관과 장교들을 상대로 몇 시간씩 승강이를 벌이며 박스를 뒤적여 검사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온 몸이 땀범벅이었다<계속>
첫댓글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