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도움의 선택 :냉정한 이타주의
“ 나라에서는 늘 힘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저처럼 죽으라고 주말까지 일하고 밤에도 일이 생기면 나가야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월급날이면 영락없이 야멸차게 세금을 가져가요. 내가 나쁜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에서 나랏돈 받아서 놀고먹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고 나에게서 갈취해간 세금으로 저런 사람들을 준다고 생각이 들면 박탈감이 들어요.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빠지게 하는 짓 같아 마음이 이유 없이 속상한데 이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에게 또 내가 너무 야박한가 싶어 그런 상황이 되면 마음이 안 좋아요.”
이런 말을 하신 분은 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세금 한번 미룬 적이 없는 분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많은 사람이 한 두 번 즈음은 들었던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사람을 도와주고 상부상조하는 문화는 오래전 인간의 문화 발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로 있었던 사회 공동체 행동이다.
한 실험에서 1, 2를 선택하게 설정하고 1은 먹이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신도 먹을 수 있고, 2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혼자 먹는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사람(아이)과 침팬지를 실험하였다. 물론 1을 선택 하든 2를 선택 하든 먹는 양은 같다는 전제이다. 그런데 사람은 나누어 주는 선택을 하는 반면에 침팬지는 나눌 줄을 모르고 자신만 먹이를 먹는다.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에 주변 사람과 나누며 사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은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회적 습성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 출발로 보여진다. 사실 요즘은 조금 다른 양태로( SNS로 공유) 나타나지만, 본질은 나눔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눔의 정의에 있어 이러한 행동을 선택하게 된 과정은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나눔으로 언젠가는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세금은 지속해서 나가는데 시간이 지나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 없게 되자 자신이 하는 행위에 의미가 희석되고 더 나아가서는 걷어간 세금이 공정하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게 된다.
복잡하지만 여기에는 중간에 간섭하는 요인들이 있어 이 문제는 단순하게 설명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간섭은 정치적 방향으로 정책 수립 시 서비스 대상 선정을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예로 한번 수급 대상으로 결정되면 도움을 통한 재활을 염두에 두기보다 쭉 이어지는 수급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직무능력을 평가하고 독립 일상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지원은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가는 국민의 삶의 평균치에 있다고 본다. 극과 극의 차이 사이에 평균치를 유지하는 국민의 숫자다.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우리들의 요구는 늘어간다. 차, 집, 편리함 등을 위한 가전제품까지 점차 늘어나는 필요 요구들을 충족하기 위한 자원이 더 필요해진다는 점이다. 생존 욕구에서 이제는 안정적인 삶의 욕구로 이동했고 이러한 안전감 위에 성취감을 느끼고 만족하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자 한다.
위에서 표현한 냉정한 이타주의 (윌리엄 맥어스킬저 :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자신이 선택할 때 상대에게 이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독이 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기부 문화에 관한 사례들을 말하는데 진정한 아프리카의 도움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진다. 교육지원, 일상생활 습관 변화를 유도하는 반복적인 공익 광고, 현금 지급 등을 두고 무엇이 도움이 필요한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겠는지 묻고 있다. 지원은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을 때 효과가 배가 된다. 반대로 지원이 오히려 의존을 만들고 무능력 상태를 지속하게 한다면 지원은 역기능을 만들지 않을까 한다.
우리 주변에는 서로 나눔으로 배가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부터는 지혜로운 기부와 편안한 마음의 납부가 좀 더 나은 세상에 일조 되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