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청년 앞에 부부가 섰다.
“잘 자란 네가 자랑스럽구나. 인생의 2막 출발에 축복을 보낸다. 넌 우리 삶에 찾아온 순간부터 완벽한 아들이었어. 이제 계획했던 꿈을 모두 이루렴.”
아들을 껴안는 어머니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난다.
영화 〈라이언〉은 인도 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꼬마 ‘사루’는 어느 역에서 형을 찾다 갑자기 떠나는 기차에 얹혀 캘커타까지 사흘이나 떠밀려 갔다. 다섯 살 꼬마가 만난 도시는 무법천지였지만, 다행히 고아원에 입소했고 운 좋게 호주로 입양되었다. 호주의 어머니는 사루를 따뜻이 껴안으며 말했다.
“환영한다. 얘야, 얼마나 힘들었니? 언젠가 마음이 안정되면 네가 누군지 전부 말해주렴. 난 너의 기억까지 입양했으니 다 들어줄게.”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는 인도의 기억을 잊고 잘 자라서 ‘멜버른대학’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이다.
토론 수업 중 기억의 밑바닥에 저장되어 있던 꽃 ‘젤라비’를 만났다. 그것이 만발해 있던 들판이 떠오르며 고향과 가족이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힘든 막노동을 하던 엄마와 형, 여동생이 눈에 선하다. 그들을 찾고 싶지만, 자신을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 준 호주 어머니를 생각하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모든 걸 잊고 공부에만 집중하려 해도 고향은 머릿속 깊이 들어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방황 소식에 걱정하다 앓아누운 양모를 찾아간 사루는 자신을 키우게 된 사연을 듣는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불행했던 그녀는 죽을 결심을 했다. 그때 홀연히 아시아 빈국의 아이들이 의식 속에 떠오르기에 그들을 돌보는 게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해 줄 것 같았다. 결혼해도 자식을 낳지 않고 부모 잃은 아이를 데려다 키울 생각으로 뜻이 같은 청년과 결혼했다. 덕분에 멋진 아들 사루를 얻었다며, 너를 키우며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고 한다. 잘 자란 너를 생모도 봐야 하니 꼭 찾으라고 응원까지 해준다.
힘을 낸 사루가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 아득한 인도로 갔다. 밤낮 가족을 찾으려고 매달리자 꿈에 엄마와 형과 기차가 보이며 노랑나비가 그를 인도했다. 구글어스를 통해 이십 년 전의 기차 속도로 캘커타에서 이삼 일간 달려 도착할 수 있는 도시를 알아냈다. 집요하게 기억을 조합해 옛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동네를 뜨지 않고 사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여 년 만에 만나 반가움으로 끌어안은 가족들은 보는 내 가슴까지 벅차게 했다. 형은 그와 헤어지던 날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다. 꿈에서 사루를 인도하던 노랑나비가 형의 영혼인 셈이다.
호주 어머니는 인도의 가족을 찾은 것을 알고 극 축하하며, 인도 어머니와 만나 감사의 포옹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어머니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혼자 자식을 키우며 시부모와 함께 사는 이가 있었다. 결혼해서 딸을 둘이나 낳고 살던 남편이 당신 아버지와 마음이 맞지 않는다며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남편이 가출해 버린 시집살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가장이 되어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돌아와 밥하고 빨래하며 애들을 키웠다. 명절 때에야 들르는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지만, 운명이란 생각으로 견뎌야 했다. 절대 집을 떠나는 법이 없는 달팽이처럼 자식을 집 같이 짊어지고 살았다. 몇 년 후 아들을 얻었다. 온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 키웠더니 흐트러짐 없이 자라 억울한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었다.
칠 남매 중 딸이 넷인 우리 자매는 키가 큰 편인데 넷째는 몸이 왜소했다. 매사 언니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무슨 일이든 먼저 하지 않고 따라 하게 되었다. 그런 점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막내의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 시합을 앞둔 그에게 갔다.
“선생님이 출발 종을 들고 하나, 둘 하면 바로 뛰어라.”고 말해줬다.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출발한 막내는 그 시합에서 일등을 했다. 출발선에 설 때마다 엄마의 말을 생각하고 그대로 했더니 선생님으로부터 출발 반응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매사에 준비된 사람으로 허둥대지 않고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잘 놓여 있는 눈에 익은 물건을 비추는 불빛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벽 어디에서나 뒷마당 모퉁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엄마는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조금 후 불안해하며 당신 얼굴을 살피면 빙긋 웃었다. 별일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마음 놓고 동무들과 소꿉놀이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집을 떠나 부산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주말에 아무리 서둘러도 경주역에 도착하면 사방이 깜깜한 밤이었다. 우리 동네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 불국사 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박물관 앞에서 내려 허허벌판을 반 시간이나 걸어야 한다. ‘무서워서 어떻게 가나…’ 차를 타고 가면서도 마음을 졸였다. 버스가 정차하고 조심스레 땅을 밟는데 저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굴까 눈을 크게 뜨면 “야야, 인자 오냐?” 말하는 건 어머니였다. 반가움으로 뛰어가는 가슴이 뜨거웠다. 내가 올 것 같아서 엄마는 한 시간 전부터 나와 기다렸다고 했다.
사회의 권세 중에서 어떤 것보다 큰 것이 어머니의 힘이다. 항상 자식을 위해 파수꾼이 되어주는 분이다. 자식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무서운 것들보다 앞질러 와서 그것을 막아 준다. 그래서 어머니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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