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첩기념관은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내에 있는 기념관으로, 임진왜란 때 덕양산에서 벌어졌던 행주대첩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투를 진두지휘한 권율 장군의 위대함을 되살리고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행주대첩은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병력과 군사력에서 일본군보다 열세인 환경에 처했음에도 전투를 승리를 이끈 공로는 김시민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고 치열하게 전투에 임했을 테니까.
혹시라도 임진왜란을 이순신 장군과만 연결 지었다면, 이번에는 행주산성을 찾아 행주대첩과 권율 장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떤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우리나라 수군이 임진왜란 때 치렀던 해상 전투를 마르고 닳도록 소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행주대첩은 1593년 2월 12일, 임진왜란 초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전투다. 일본군은 3만 군사를 7개 부대로 나누어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우리 군을 공격해오고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 병사는 겨우 2,300명 정도였다. 10배가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창과 칼을 휘두르고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쏘았다. 화살에 맞아 죽는 일본군은 늘어났지만, 진격만 하고 후퇴하지 않는 인해전술로 우리 병사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빛났던 것은 권율 장군의 지략이었다. 전쟁 당시 장군의 나이는 56세로 노병이었는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고 일본군과의 싸움을 독려하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도망가는 병사와 말을 듣지 않는 병사 몇 명을 칼로 베어 그 자리에서 죽였다. 본인의 투구에 물을 담아 병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일본군은 한양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퇴각했다. 우리 군의 정신력과 의지가 빛난 전투였다.
행주대첩 때 치마에 돌을 담아 던졌다고 해서 행주치마라고 이름 붙였다는 말이 있었는데, 틀린 말이다.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행주치마라는 단어는 사용되고 있었다. 기념관 내 전시된 행주치마 밑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니, 이 부분은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기념비가 자리한 행주산성은 백제 시대에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졌으나, 2017년 조사 결과 산 정상부에 석성이 축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전쟁 당시에는 내성과 외성 밖으로 나무를 엮어 만든 목책을 두르고 화차를 배치하여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이뤄낸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세를 우리 쪽으로 돌린 의미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장군은 사후 ‘충장’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산성 곳곳에는 권율 장군의 승전 기념 유적들이 많이 보인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가 있고,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가 있는 비각, 덕양정, 진강정, 충의정, 충훈정 등이 자리한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 26-1
[전화] 031-8075-4642
[운영] 10:00~18:00(3월~10월)/ 10:00~17:00(11월~2월)/ 월요일 휴무
[요금] 무료
[주차비] 2,000원(승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