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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토-結繩>,<韓-가위>,언지소(言只所),계림(鷄林)의 어원
* 들어가면서 *
이 글은 약 25page나 되는 긴 글입니다. 그 핵심 된 내용은 신라의 지마(祗摩)이사금 때, ‘언어(言語)를 시각화하고,
쌍 방향적으로 집단적 학습케 하는 학습도구’인 언지(言只)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중간에는 이 ‘언지(言只)의 구조’와 또 그 속에 있는 ‘가림 토-결승(結繩)’이 <꼰-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하는 <한(韓)가위>의 구조에 대해 좌계 나름대로 “이런 구조(構造)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하는 기계(機械), 설계
(設計)적 차원에서 해설이 담겨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상수학에서 말하는 매듭(knot) 및 꼰 끈(blade)이론을 원용(援用)하는 글이 소개되어 있읍니다.
따라서 딱딱하고, 지리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는 글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글은 “원형(原型) 한글 - ‘가림 토’가 ‘발음기호 문자’로써 아시아(Asia)의 민주적 통일에 얼마나
큰 위력을 키졌는가?”를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부득이 한 것이었습니다.
이점 거듭 이해를 구합니다.
* 이상 들어가는 글 마침 *
(참고(參考) :
이 글에 소개한 남당유고 신라부분의 글은 ‘정성일 선생’의 절구(絶句)와 해석(解釋)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절구(絶句)와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 로 표기합니다.)
1. 생명공학과 ‘가림토-결승(結繩)’에 관련된 난해(難解)한 기록.
먼저 이글을 쓰는 계기를 말씀드리고 져 합니다.
좌계는 그동안 ‘정성일 선생’의 부탁을 받고, ‘파사 니사금기’에 대한 해설(解說)을 하여왔습니다
그러다가, ‘청예-수로왕’왕이 ‘파사 니사금기’ 26년조에 등장하는 기사가 결국 무려 4년간에 걸친 배달화백을 통해,
아시아(Asia)를 통일하는 내용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관련된 해설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를 하다가 보니, 자연히 ‘정성일 선생’이 이미 해석을 마친
지마기(祗摩記)를 읽어볼 짬이 없었던 것입니다ㅣ.
그러다가 최근 이 지마기(祗摩記)를 읽어보고 경악할 만한 사료(史料)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남당(南堂) 유고(遺稿)에는 ‘아주 별난 지적-체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해석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료(史料)가
가끔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아시아 천문학’, ‘고대 아시아의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등이 그 사례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하는 ‘아주 별난 지적-체계’는 생명공학과 ‘결승(結繩)-가림토’에 관한 위상수학(位相數學)적인
이해 없이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感)도 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의 기사.
그것은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입니다.
워낙 중요한 사료(史料)인지라, 번호를 붙이고, 하나하나 해석(解釋)과 더불어 해설(解說)을 해보록 하겠습니다.
원문(原文)
1) 四月 上謂言只所聖人曰 “爾神靈乎” 曰 “靈未知也 只言只也” 上曰 “何謂言只” 曰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
2)上曰 “善” 乃賜聖人爵阿飡
3) 先是 有白亥祠 在神林之中 有兩白亥與七鷄爭技 俗傳不可 使外人見之 權妻之不及 寵者多生 私子皆爲於祠主
育爲鷄亥
4) 上幼時 爲(亻+母)所引 常觀其枝 及長護其祠 至是 知其鷄亥 多私宮人 欲誅之 召其聖人試之 聖人不諱直言 上嘉之
乃止遂 以其祠爲言只所
이 기록이 중요한 것은 “계림(鷄林)의 원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민족이 수많은 언어를 극복하고, 어찌 아시아
(Asia)의 세계질서를 주도했는지?” 뿐만 아니라, 신라 초기의 정권(政權)의 향배(向背)를 결정한 대풍파(大風波)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단서(端緖)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장 자체가 워낙 괴상한 내용으로 꽉 차있어서 ‘별난 사전 지적-체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하는 통 알 수 없는 괴상한 문장이 나옵니다.
1) 四月 上謂言只所聖人曰 “爾神靈乎” 曰 “靈未知也 只言只也” 上曰 “何謂言只” 曰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
해석(解釋)
(*) 4월 왕(王)이 언지소(言只所)의 성인(聖人)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신령(神靈) 그 자체로 구나?!”라고 하자,
(성인(聖人)이 대답해) 말하기를, “영(靈)의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지(只)가 지(只)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하기를 “말하는 지(只) (=언지(言只))란 무엇을 말함인가?”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이 답(答)하여)
말하기를 “ ‘말하는 지(只)’란 즉 ‘둘이 아님’(=불이(不二))을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 것 - (즉 그 둘이란) ‘체험(體驗)에 구속되지 않음’과 ‘체험하지 않음’입니다.” 라고 했다. (*)
해설(解說)
위와 같이 ‘직역(直譯)한 해석(解釋)’을 보아도, “도대체 뭘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리숭 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부득이 ‘길고 긴 해설’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지(言只)’ 즉 ‘말하는 지(只)’란 개념입니다.
(좌계는 이 ‘말하는 지(只)’란 발견(發見)하였을 때. “아~ 이럴 수가??? 정말 ‘말하는 지(只)’가 있었단 말인가?!”하고
경악해 마지않았고, “조선선가(朝鮮仙家) 만세!!, 한글 만세!! 가림토 만세!!” 하는 격렬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감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1) 생명공학과 ‘위상수학의 노트-씨오리(knot-theory)
이 언지(言只)라는 것은 고대 아시아(Asia)의 선가(仙家)에서 오늘날 말로 하자면, 생명공학적인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결승(結繩) - 다시 말해 수직(垂直)으로 되어 있는 ‘줄과 끈들을’을 하나의 ‘창문-틀’ 같은 판(板: 이를 위상
수학에서는 블레이드(blade)라고 함)위에 놓고, 이를 꼬은 형태를 말합니다.
즉 수직된 선분(線分)이 ‘가로’의 행(行)으로 놓여 있을 때, 그 상단(上端)이 a1, a2, a3, a4로 되어 있고, 이에 대응
하는 아래의 선분(線分)의 하단(下端)을 b1, b2, b3, b4로 되어 있을 때,
윗 상단(上端)의 아무 선분(線分) 끝과 아래 하단(下端)의 선분(線分) 끝을 ‘뒤트는 것’이지요.
그러면 모양이 a1, a2와 b1, b2를 잡고 뒤틀게 되면 원래 (ㅣㅣ)로 되어 있던 수직(垂直) 선분은 엑스(X)로 됩니다..
또한 b1, b2를 각기 b2, b3자리로 옮기면 결국 원래 (ㅣㅣ )은 (乀乀)로 되겠지요.
그런데 이처럼 선분(線分)이 원래의 자리에서 ‘꼬아진 형태’ 혹은 ‘이동된 상태’로 변하는 것을 위상수학에서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블레이드(blade)’라고 합니다.
- 이는 선분(線分)이 ‘칼날’ 형태로 꼬아져 있는 형태로 군집(群集)해 있음을 뜻합니다. -
(가) 매듭(knot)와 ‘꼰-끈’(blade)의 상호 호환성, 주역(周易)의 효(爻)와의 상관성
(1) 매듭(knot)와 ‘꼰-끈’(blade)의 상호 호환성
그런데, (ㅣ)로 되어 있는 끈의 상단(上端)과 하단(下端)을 이어 붙이게 되면, 결국 (ㅇ)이 되는데, 이를 위상수학자
들은 영(零)-매듭이라고 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매듭이 없다.”라는 뜻인 것이지요.
꼰-끈 (X)를 각기 상단(上端)과 하단(下段)을 연결시켜 놓으면, 무한대 모양 즉 (∞)처럼 되지만, 툭~툭~ 털면 결국
영(零)-매듭 즉 (ㅇ)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클로바’ 모양으로 매듭(knot)을 만들려면, 두 선분(線分)을 두 번 ‘꼬아서’ - 이는 모양으로 가운데에 (8)자
모양이 있고 그 위에 브이(V)자와 ‘브이’가 뒤집힌 (∧)이 결합된 모양이 됨 - 그 윗 부분을 연결 시키면, 결국 ‘클로바’
모양이 됩니다.
이 ‘클로바’모양을 트레포일(trefoil)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듭 점이 가장 적은 3개인 매듭이 되는 것입니다.
매듭 점은 4개, 5개로 늘어나면 날수록 ‘서로 다른 모양의 매듭’이 기하급수(幾何級數)적으로 늘어납니다.
매듭(knot)이란 두 선분(線分)의 교차점이 있는 것을 뜻하는데, 위로 지나가는 선분(線分)을 꼭 주역의 양효(陽爻)
처럼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선분(線分)을 꼭 주역의 음효(陰爻)처럼 위상수학에서는 그리고 있습니다.
이 까다로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환하여 끝이 없는 매듭(knot)을 가위로 잘라서 상단(上端)과
하단(下端)의 형태인 블레이드(blade)판(板)이 여러 개 있는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즉 위의 트레포일(trefoil)은 상하(上下)로 엑스(X)가 3개 놓여져 있는 모습인 것이지요.
X
X
X
이 상단(上端)의 두 끝과 하단(下端)의 2 끈을 이어붙이면 결국 트레포일(trefoil)이 형성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결국 매듭(knot)과 <꼰-끈>판(板)들이 서로 호환(互換)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역(周易)의 효(爻)라는 글자 자체가 이런 선분(線分)을 ‘꼬는-모습’을 상형(象形)한 모습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음효(陰爻)가 매듭(knot)을 그릴 때 밑에 깔려있는 선분(線分)을 표현하는 형식이고, 양효(陽爻)가 밑에 있는
선분(線分) 위로 지나가는 선분(線分)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아직도 위상수학(位相數學)에서 사용하고 있음에 또한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생명공학(生命工學)에서는 염색체, R.N.A, D.N.A가 결국에는 전체적으로
‘2개의 나선형(螺旋形)’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2개의 나선형(螺旋形)’이 바로 ‘꼰-끈’의 형태이라는 것에 착안(着眼)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생명공학이란 것은 매듭(knot)으로 된 수많은 ‘생명-사슬’을 효소(酵素)로 그 ‘꼰-끈’을 잘라서 새로이 ‘꼬아서’
새로운 형태의 ‘생명-사슬’ 즉 매듭(knot)으로 전환시킴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꼰-끈’의 모양이 웅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여와>와<복희>의 두 용신(龍神 -이는 몸이 뱀
으로 되어 있음을 뜻함)에 서로 꼬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결승(結繩)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 아시아(Asia)선가(仙家)에서 <생명의 진화(進化)>를 창조적으로
변형시키는 비밀을 나타내는 그림이었던 것인 겁니다.
이 까다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듭(knot)과 <꼰-끈 판(板)들>이 상호 호환(互換)이 가능하며, 그 가운데에 생명
은 진화한다.”는 것을 선가(仙家) 계통에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딸-아들’의 자녀(子女)를 ‘쌔끼’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습니다. ‘새끼’는 ‘쌔끼줄’ 즉 승(繩)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대의 우리 조상(祖上)들이 ‘생명진화’에 대한 어떤 ‘현묘(玄妙)한 인식체계’가 있는 세계로부터 그 언어(言語)
가 유래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새끼 즉 승(繩)이 꼬여서 새끼 즉 자녀(子女)가 됨을 알았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고대 아시아(Asia)선가(仙家)의 적통(嫡統)이 우리 문화에 ‘뿌리깊게’ 있음을 이 ‘쌔끼’라는 말을 통
해서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블레이드(blade)는 서로 겹쳐져서 연산(演算) 작용을 한다.
그런데 이런 블레이드(blade)를 ‘위 아래’로 겹쳐 놓으면 연산(演算)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나온 ‘X’를 3개 쌓아 놓은 블레이드(blade)에 또 ‘X’를 하나 놓으면 - 이는 두 수직선을 2번 뒤튼
것을 한번 더 뒤튼 것을 뜻하는데, 이처럼 블레이드(blade) 겹쳐놓은 것을 위상수학에서는 “곱한다.”고 함
- 그 내용이 변한다는 것이지요.
즉 3번 ‘X’로 되어 있는 것은 ‘위 아래’의 꼰-끈을 연결시키면 ‘크로바’ 모양의 ‘트레포일(trefoil)이 되지만, 한개의 ’X‘가
더 첨가시킨 것을 ’위아래‘로 연결시켜 매듭(knot)으로 만들었을 경우, ’매듭‘이 풀어져 영(零)매듭 2개가 엉켜있는
모양으로 ’다르게 나타 난다‘는 것이지요.
아처럼 블레이드(blade)판을 여러 개 쌓아놓거나, 혹은 그중에 하나를 빼는 것에 의해서 독특한 연산(演算)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활용해서 새로운 염색체, D.N.A, R.N,A등을 만들어가고, 효소(酵素)로 어떤 블레이드(blade)를 짤라
와서 결합시킨 후 연산(演算)을 하였을 때, ‘바라던 효과’가 일어나는 가를 생명공학자들은 연구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블레이드(blade)를 겹쳐서 여러 개 쌓고, 그 순서를 바꾸는 것’도 끈을 트는 동작과 마찬가지로 연산(演算)
이 되어서 그 값이 - 이는 ‘위아래’를 연결하였을 때 매듭 모양이 다른 것을 뜻함 - 변한다는 것에 일단 유의해야합
니다.
(나) 생명공학(生命工學)과 언어(言語)를 동일시여긴 고대 아시아(Asia)의 선가(仙家)
- ‘가림 토’에 대한 두 가지의 오해(誤解)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고대 아시아(Asia)의 선가(仙家)들이 신기하게도 ‘생명공학’과 언어(言語)를 <완고(頑固)할
정도>로 같은 차원에 두고 있었음이 사서(史書)를 비롯한 고대 서적들을 보면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림 토’이지요.
언어(言語)를 문자(文字)로 나타내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 2가지입니다.
즉 언어(言語)가 뜻하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상형(象形)과, ‘소리’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대별됩니다.
‘가림 토’ 즉 원형(原形)-‘한글’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나타난 ‘소리’를 옮기는 문자 - 다시 말하면 <발음기호(發音
記號) 문자>임에는 확실합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알파벳’을 비롯한 수많은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文字)가 있지만, 한글 만치 ‘소리’를 그 원소
(元素) 별로 철저히 나누어서 재결합시키는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글은 ‘아직까지도’ 없다는데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단고기(桓壇古記)에 나타나는 ‘가림 토’에 대해서 오해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실이 있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가림 토’ 역시 그 구조(構造)를 보면, ‘소리’를 원소(元素)로 나타내어 결합한 양식(樣式)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認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가’라는 글자를 쓸 경우 ‘ㄱ’옆에 ‘ㅏ’를 쓰지만, ‘ㄱ’ 밑에 ‘ㅏ’를 쓰는 등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소리의 원소(元素)가 결합할 때 좌우(左右)로 붙어 쓰나, 혹은 상하(上下)로 붙어서 쓰나 하는 차이만 있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가림 토에도 소리 원소(元素)가 ‘ㄱ’이니 ‘ㅏ’니 하는 것들이 있고, 이것이 합쳐져 있는 형태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가로로 쓰거나, 세로로 쓰거나 아무튼 ‘소리’의 원소(元素)로 나뉘어 진 것을 결합한 형식 가운데 몇 가지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遺蹟)을 한단고기(桓壇古記)를 기록한 사람은 기록(記錄)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런 유적(遺蹟)은 ‘남아있는 일부 흔적’이지, 절대로 ‘고대의 가림 토 전체 체계’를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처럼 언어(言語)를 원소(元素)로 나누어서 재결합하는 패러다임(paradigm)이나 생명공학에서 ‘생명의
사슬’ 즉 매듭(knot)을 여러 겹의 블레이드(blade)의 원소(元素)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가림토’가 문자(文字) 형태로 책(冊)이나, 혹은 금석(金石)에 적힌 형태로 ‘주(主)로 사용’되었으리라고
가정(假定)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假定)은 ‘문자(文字)의 바탕’이 되는 언어권(言語圈) ‘안’에서는 ‘하나의 언어(言語)’를 썼고, 이 ‘하나의
언어’를 문자(文字)로 나타냈으리라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림토’로 된 책(冊)이나, 혹은 금석문(金石文)이 발견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림 토’는 이런 한 가지의 통일된 언어권(言語圈) ‘안’에서 사용되었던 문자가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로 다른 ‘언어권(言語圈)’에 사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언어(言語)를 쌍방향적으로 교류시키기
위해서 만든 형식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를 교류(交流)시키는 방법이 신기하게도 “ ‘끈을 꼬은 형태’ 즉 결승(結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생명공학(生命工學)에서 ‘생명의 사슬’ - 즉 ‘매듭(knot)를 변화시킬 때에, 인간이 아닌 ’돼지‘등에서
염색체, D.N.A, R.N.A 등을 효소(酵素)로 잘라서 ’쌍 방향적으로 교류‘시킴으로써 ’인위적(人爲的)인 진화(進化)‘를
추구하는 현상과 동일한 것이지요.
아무튼 고대 선가(仙家)가 ‘인위적(人爲的)인 진화’를 <다양한 장르>에서 추진해 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불로장생’인 것이지요.
호흡, 섭생, 도인(導引) 등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안에 있는 ‘생명의 사슬’ - 매듭(knot)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연구해서 이를 비밀리에 전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한 개인의 ‘불로장생’ 이외에도 대자연의 기(氣)와 동식물(動植物)의 관계를 통해, ‘인류에게 좋은
동식물’이 탄생하게 하는 방법도 연구되었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기(氣)와 ‘사회현상’이 어찌 교류(交流)해야 ‘세상이 좀더 좋아지는가?”하는 연구도 만만치
않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연구가가 노자(老子)였던 것입니다.
(*) 발음기호로 언어(言語)를 어찌 시각화하는가? 하는 문제 (*)
아무튼 이런 총체적인 인식을 가지고 보면, <‘가림 토’가 ‘하나의 언어권(言語圈)’에서 쓰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끼리에 ‘상대방의 언어를 빨리 습득’하게 하기 위해 ‘상호 교류’란 바탕 위에서 개발되었다.>
는 사고의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원형(原型)-한글>을 ‘블레이드(Blade)’판으로 나타내고, 이를 공중에 ‘매달아서’ 언어를 교류(交流)시키
려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보고, 서로 그 발음을 오거니 가거니 하면서 복창(復唱)하였다는 것이지요.
즉 <발음기호 문자>를 시각화(視覺化)하여 걸어놓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교호적(交互的)으로 복창
하는 신기한 방법을 주로 썼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꼰-끈’으로 된 <발음기호 문자>]를 “아... 이 ‘꼰-끈’은 ‘ㄱ’이다. 그리고 이 ‘꼰-끈’은 ‘ㅏ’이다. 따라서
합치면 ‘가’가 된다.”하는 것을 그런 ‘꼰-끈’ 밑에다 ‘가려주기’ -이는 분별(分別)해 줌을 뜻함 - 위해서 토(吐)를 단
것이 ‘가림 토’라는 것이지요.
“왜 이런 방법을 썼는가?!”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일단 “ 어떤 방식으로 ‘가림 토’를 ‘꼰-끈’으로 하늘에 걸어
두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다) 팔괘(八卦)와 대응이 되는 ‘가림 토’의 원소(元素)
아무튼 이런 블레이드(blade) 즉 ‘꼬아져 있는’ ‘꼰-끈’을 아래위로 다시 이어붙이면, 다시 매듭(knot)이 됩니다.
그리고 한글의 자음(字音)은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의 다섯 ‘소리 원소(元素)’
에 가획(可劃)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순음(脣音)인 ‘ㅁ’에 가획(可劃)하면 ‘ㅂ’이 되고, 여기에 다시 가획(可劃)하면 ‘ㅍ’이 되는 것이 그 예이
겠지요.
그리고 모음(母音)은 기본적으로 ‘ㅡ’와 ‘ㅣ’, 그리고 ‘아래 아’ - 훈민정음(訓民正音) 연구가는 이를 ‘깊은 아’라고
읽어야한다고 함. 왜냐하면, 탄환(彈丸)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소리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함 -의 세 가지 인
것이지요.
따라서 가획(可劃)을 뺀 다섯 가지 ‘소리 원소(元素)’에 세 가지 ‘소리 원소(元素)’를 결합하면, 8가지로 되는데,
‘깊은 아’를 가획(可劃)과 동일하게 ‘꼰 끈’으로 나타내면, 우리는 흥미 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팔괘(八卦)의 형상이 곧 ‘한글의 원소(元素)’를 꼰-끈으로 나타내는 것의 수효와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팔괘(八卦)의 괘(卦)의 원래의 뜻은 ‘매달다, 걸다’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고대 아시아(Asia)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 즉 ‘언어’를 ‘꼰-끈’의 블레이드(blade) 판에 ‘매달아서’ 시각화
(視覺化)시켰던 것이지요.
(주역(周易)의 내용과 일체의 그 구성(構成) 논리는 고대 한국인(韓國人)이 만든 것이라는 것이 좌계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림 토’를 만들고, 사용하였던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단지 그 내용이 주(周)나라에 유포(流布)되었던 것이기에, 후세(後世)에서 ‘주(周)나라 역(易)’이라고 칭했던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언어로 말하자면 주역(周易)은 ‘주(周)나라 계(系)-한국인(韓國人)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1) 손(巽) 괘(卦)의 경우
팔괘(八卦) 가운데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괘(卦)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 손괘는 ‘위’에서 차례대로 이야기하면, 양효(陽爻), 양효(陽爻), 음효(陰爻)가 됩니다.
(전통적 표현으로는 삼구(三九), 이구(二九), 초육(初六)이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이를 ‘블레이드(blade)’로 나타내려면 제 일행(第一行)자리는 비워두고, - “왜 비워두어야하는지?”는 곧
언급이 됩니다. -, 제 이행(第二行), 제 삼행(第三行)자리는 그냥 ‘꼰-끈’을 수직(垂直)으로 쭉 내려버리면 됩니다.
문제는 음효(陰爻)인 제 사행(第四行)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꼰-끈’으로는 양효(陽爻)의 선분(線分) 밑에 깔려서 그 밑으로 내려가는 선분(線分)이 되어야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ㅣㅣ’ 식으로 되어있는 제 이행(第二行), 제 삼행(第三行) 뒤에 별(丿)자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별(丿)자는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내려가는 빗금이고, 이 좌하(左下)가 ‘대응되는’ 자리가 있으려면,
제 일행(第一行)은 비워두어야 제 사행(第四行)에서 ‘뒤의 밑’으로 흘러들어오는 끈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팔괘(八卦)를 ‘꼰-끈’으로 나타내려면, 괘(卦)의 ‘위에서 아래로(top-down)’ 효(爻)를 나타내는 것이 합리
적인 것임에도 유의해야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역(周易)의 효(爻)는 ‘아래에서 위로(bottom up)’ 효(爻)를 나타낸다.
(2) 감(坎) 괘의 경우
‘물’을 상징하는 감(坎)괘는 맨 윗 효(爻)가 음효(陰爻), 그 다음이 양효(陽爻), 맨 밑이 음효(陰爻)로 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용어로는 육삼(六三), 구이(九二), 초육(初六)임)
이를 ‘꼰-끈’으로 나타내려면, 제일행(第一行)은 비워두고 - 이 이유는 곧 나타난다. - 제이행(第二行)의 음효(陰爻)
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일단 ‘끈’을 위에서 수직(垂直)으로 내립니다.
그리고 제삼행(第三行)의 자리에 ‘끈’을 별(丿)자 방향으로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흐르게 하되, 제이행(第二行)
에서 수직(垂直)으로 내린 ‘끈’의 앞쪽 위로 건너서 오게하는 것이지요.
이런 흐름을 하게 되면, 첫머리에 있는 제이행(第二行)은 음효(陰爻)가 되고, 제삼행(第三行)은 양효(陽爻)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똑같이 제사행(第四行)자리에서도 ‘끈’을 수직(垂直)으로 내립니다.
그리고 제오행(第五行)은 양효(陽爻)이기 때문에, 별(丿)자 방향으로 제사행(第四行)에 수직(垂直)으로 내린 ‘끈’의 앞
위로 건너게 해서 ‘비어있는’ 제삼행(第三行)의 하단(下端)으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3) 곤(坤)괘의 경우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는 세 효가 모두 음효(陰爻)입니다.
이를 ‘꼰-끈’판(板) 즉 블레이드(blade)로 나타내려면, 제일행(第一行)은 비워두고, 제이행(第二行), 제삼행(第三行),
제사행(第四行)은 모두 ‘끈’을 수직(垂直)으로 내립니다.
그런데, 제오행(第五行)의 끈을 별(丿)자 방향으로 제일행(第一行)까지 흐르게 하되, 제이행, 제삼행, 제사행의 앞
위쪽으로 건너게 합니다.
그러면 제이행(第二行), 제삼행(第三行), 제사행(第四行)은 죄 음효(陰爻)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처럼 팔괘(八卦)를 ‘막대기’ 형태로 나타날 때에는 3개면 충분하지만,
‘꼰-끈’판(板)으로 나타날 때에는 최대로 곤괘(坤卦)에서 보다시피 ‘다섯 개의 행(五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것이 건괘(乾卦)로써 이는 제일행, 제이행, 제삼행의 ‘끈’을 수직(垂直)으로 내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한글의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이 구성(構成)원소가 8개이고, 나머지는 가획(可劃)으로 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음(字音)하나를 표현하려면, 최대로 5+2=7 즉 ‘일곱 개의 행(行)’이 동원이 되어야함을 알 수가 있는 것입
니다.
뿐만 아니라 모음 하나를 표현하려도 이 역시 최대로 5+2= ‘일곱 개의 행(行)’이 동원이 되어야함을 알 수가 있는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言語)를 <‘발음기호(發音記號)-’꼰-끈‘판(板)>으로 괘(卦)의 원래의 의미 - ’하늘에 걸어두고‘
- 다시 말하여 시각화(視覺化)하려면 상당히 많은 행열(行列)의 블레이드(blade)판(板)이 필요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가림토 미스테리(mystery) - 왜 굳이 고대 아시아(Asia)인 들은 ‘가림 토’를 직접 하늘에 걸지 않았는가?!
이러한 추정(推定)을 하는 것은 ‘가림 토’ 미스테리(mystery)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가림토’는 <발음기호(發音記號)-문자>로써 ‘하늘에 둥~둥~ 띄워놓고’ 쌍방향적으로 보고, 서로가 복창(復唱)
하면서 읽던 언어(言語)-학습기(學習器)였다는 것이지요.
즉 책(冊)이나 금석문(金石文)에 ‘가림 토’로써 어떤 내용을 기록(記錄)하기보다는 ‘그 때 그때’의 언어를 시각화
하면서 서로가 반복 발음함으로써, 언어(言語)를 학습하기 위해서 발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추정(推定)에서 보다시피, 자음(子音)이나 모음(母音)이 기본이 최대 ‘5개의 행열’이 필요하고, 여기에
가획(可劃)하면 최대 2개를 더해서 ‘7개의 행(行)’이 되는데, 이런식으로 하면, 한 문장을 ‘공중에 매달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공간이 필요로 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꼰-끈 형태로 걸어둘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가림 토 모양으로 쓰여 져 있는 것을 그냥 걸어두는
것이 더 간략하고 편하지 않을까?“하는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늘에 ‘가’라고 크게 써 붙일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당시의 기술로써 충분히 가능하였던 것이기에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한(韓)-가위>의 구조로써 상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가림 토 형태> 그대로 글자를 ‘하늘에 띄워서 쌍방향으로 말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아있는 흔적은 오히려 팔괘(八卦)형태로 ‘수많은 행열(行列)’이 필요한 결승(結繩)으로
‘언어를 시각화’한 흔적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즉 ‘언어를 시각화’하는 형식은 ‘가림 토 형식’과 ‘팔괘(八卦)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굳이 팔괘(八卦)-형식으로 ‘언어를 시각화한 흔적’이 많은 이유도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어를 시각화’하는 일을 주도적(主導的)으로 끌고 나가는 사람들은 - 이를 남당(南堂) 유고(遺稿)의 지마기
(祗摩記)에서는 계도(鷄徒)라고 한다. - 이를 선가(仙家)의 우주의 기(氣)를 통한 생명공학과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집단적 언어학습을 ‘같은 패러다임(paradigme)’으로 여기고, 이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
(禁忌)시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의 기(氣)의 교류를 통한 선가(仙家)적 생명공학적 처방(處方)’=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집단의 쌍방향적인
학습>을 동일시 보았을 가능성인 것이지요.
나.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의 기사(記事)의 해석을 위한 준비
1) <‘우주의 기(氣)의 교류를 통한 선가(仙家)적 생명공학적 처방(處方)’=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집단의 쌍방향적인
학습>을 동일시
지금까지 생명공학과 ‘위상수학의 노트-씨오리(knot-theory)와의 관계’ 그리고 주역(周易)과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은 결국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의 난해(難解)하기 짝이 없는 기사(記事)를 해석하기 위한 ‘예비-개념’에 불과
하였습니다.
(*) 다양한 언어(言語)의 교류와 생명공학을 동일시 (*)
즉 그 핵심은 고대 선가(仙家)에서 <‘우주의 기(氣)의 교류를 통한 선가(仙家)적 생명공학적 처방(處方)’=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집단의 쌍방향적인 학습>을 동일시했다는 가정(假定)인 것이지요.
이점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난해(難解)한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의 기사(記事)를 다시 뜯어보기로 합시다.
하여간 모든 언어(言語)는 ‘문법’과 ‘단어’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법’은 전체 문장과의 유기적인 상관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엄리대수에 갔다.” “엄리대수에서는 고주몽이 도하를 했다.” “우리들은 거북이 놓은 다리를 건너서
함께 엄리대수를 건넜다.”라는 세 가지 문장이 있을 경우,
‘나’라는 말이 ‘우리’로 변할 때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영어(英語)를 예로 들면, 단수(單數)가 복수(複數)로 변할 때, 동사(動詞)가 변하는 것 등등은 전부 ‘전체 문장 속’에
서의 변화인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감각 가운데 ‘동시에 여러 것을 파악’하는 것은 바로 시각(視覺)입니다.
따라서 이를 언어를 ‘팔괘 형식’이든 가‘림토 형식’이든 시각화하여 나타내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주의 기(氣)’와 인위적으로 생명공학을 적용시키는 것 역시 ‘그 파급효과가 다방면에 걸쳐 있는’
유기적 상관관계가 많습니다.
따라서 ‘그 모든 상관관계의 흐름을 동시에 파악’하는 시각화가 중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르는 외국어(外國語)를 들으면, 잘 기억 안 되는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시각화시켜 잠시 ‘눈으로 보게 하면서’ 기억을 되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이는 ‘우주의 기(氣)’의 교류를 통한 ‘생명공학의 적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인과관계(因果關係)는 망각하기 쉬운 것인 거지요.
따라서 이를 ‘시각화’하여 잠시 망각하기 쉬운 인과관계를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동일시여길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에 의해서 고대 아시아(Asia)의 선가(仙家)들은 그것이 ‘쌍방향적인 언어학습’이든 쌍방향적인
‘우주의 생명교류’이든 이를 ‘꼰-끈’ 형태로 나태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팔괘(八卦) 형태로 ‘걸어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이 시각화(視覺化) 시킨 ‘하늘에 걸려있는’ 블레이드(blade)판을 보면서, 상대방이 ‘정확한 발음’을
듣도록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이지요.
듣는 사람은 역시 이를 바라보면서 따라서 발음(發音)하면서, 잘 기억이 안 나면 ‘한글 원소(元素)로 된 팔괘(八卦)’
판(板) - 오늘날 위상 수학자들이 말하는 블레이드(blade) 판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되읽는 것이지요.
이처럼 쌍방향적으로 집단적으로 한 참 ‘언어를 시각화’하면서 합창(合唱)하듯이 발음하고- 또한 서로가 청취(聽取)
하게 되면, 결국에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미국(美國)-왜인(倭人?)이 걸어둔 “위 고 투 엄리대수”란 블레이드(blade)판을 보던 고대 한국 사람들은
“아...저말은 우리들은 엄리대수로 갔다.”라는 말이구나“라고 알아듣고, 또 ‘슈메르 왜인(倭人)’이 ”쿠라하 쿠라하“란
말을 한참하면, ”아...저 말은 ‘외쳐라.’, ‘외쳐라.’라는 말이구나.“함을 한참 하다보면 ”알아 듣었다.“는 것이지요.
2) 언지(言只)란 무엇인가?
그런데 지마기(祗摩記) 9년 4월에 보면, 지마(祗摩)이사금과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이 대화하는 것이 나오고
서로 나누는 대화의 핵심은 ‘언지(言只)’ 즉 ‘말하는 지(只)’의 작용에 대해서 입니다.
“도대체 ‘말하는 지(只)가 무엇이지?” “언지(言只)가 뭐야?”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언어를 시각화(視覺化)하는 블레이드(blade)의 모습은 - 여러 문헌을 참조해서 종합해 보면 - 정면(正面)에서
볼 때, ’창문-틀‘ 모양의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 ’끈‘을 끼우는 홈이 이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이 홈에 ‘꼰-끈’들을 여러 행(行: 칼럼(column) 속에 끼워두는 것이지요.
가) ‘꼰-끈’ 자체의 구조(構造) - <한(韓)가위>의 구조(構造)
그런데 이런 ‘창문 틀’ 모양의 사각형의 가로대에 <凹凹凹凹凹凹>으로 되어 있는 홈에 낱낱의 ‘끈’을 끼워 넣게 되는데,
이렇게 끼워 넣는 이유는 그것이 ‘팔괘 형’으로 하든, ‘가림토 형’으로 하든지 간에 ‘언어를 시각화’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보려면 “끈을 밧줄로 한다고 하더라도 잘 보일까?”하는 일차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블레이드(Blade)’ 판(板)을 여러 개 쌓아 올려졌을 때, 그 ‘아래 위’의 ‘꼰-끈’은 일단 연결시키
어야만 연산(演算)이 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ㅣㅣ’모양으로 되어 있는 아래에 또 ‘ㅣㅣ’로 블레이드(blade)가 연결될 때에는 이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선분(線分) 즉 끈의 상단(上端)과 하단(下端)에 각기 ‘갈고리’와 ‘고리’가 있어야만 함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꼰-끈’은 이처럼 수직(垂直)으로 되어 있는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꼰-끈이 뒤틀어져 있는 모양이
별(丿)이나 불(乀)자 같은 모양일 경우, 이를 블레이드(blade)아래 위를 연결시킬 때에 ‘블레이드(blade)’판에서
하중(荷重)을 이기기 위해서 독특한 장치가 필요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옆구리가 터져있는 터널(tunnel)인 ‘가위’의 긴 쪽
바로 이런 면에서 고대에 개발된 것이 <한(韓)-가위>라는 독특한 ‘가위’입니다.
가위는 엑스(X)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한쪽 쇠붙이가 길고 이 긴 쪽의 ‘가위’가 터널(tunnel)모양으로 속이
비어있고 그 안으로 밧줄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터널은 중간에 밧줄이 나갈 수 있도록 ‘옆구리’가 터져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가위’를 오므리면 - 즉 가위를 닿으면 - 그 반대 쪽의 쇠붙이가 ‘ㅓ’자 모양으로 돌출된 것이 있고 이것이
긴 쪽의 가위 속의 밧줄을 밀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가위’를 열면 - 밧줄의 ‘밖’을 에워싼 ‘가위’가 미끄러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위’를 오므려서 닫으면 ‘ㅣ’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밧줄 중간 부분이 ‘ㄷ’자 모양으로 되어 저항을 받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2) ‘갈고리’와 ‘고리’가 모두 ‘경첩’으로 ‘티(T)’자 형으로 되어 있는 구조
그런데 이 ‘밧줄’이 들어가 있는 터널(tunnel)의 끝 부분에는 마치 티(T)자 모양으로 ‘갈구리’와 ‘고리’가 경첩이
달려서 서로 반대형으로 붙어 있게 되는 모양입니다.
구조가 이렇게 되는 것은 이 ‘한(韓)-가위’가 마치 <창문-틀>처럼 생긴 블레이드(blade)가 다음 항목에서 보다시피,
서로 구조적으로 끼워져서 ‘미끄러지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과 관련됩니다.
즉 이럴 때 ‘미끄러져 내려 온’ 블레이드(Blade)의 홈에 끼워져 있는 <한(韓)-가위>의 티(T)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한(韓)가위 머리’에서 ‘갈구리’가 있는 ‘ㄱ’자 부분이 아래에 있는 문창(門窓)-틀 모양의 블레이드(blade) 하단
(下端)에 ‘ㄴ’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고리’에 정확히 걸리게 되어 있는 구조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즉 <한(韓)가위>와 ‘밧줄’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수평(水平)으로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지요.
<ㅏㅡㅡㅡㅡㅡㅡㅡㅓ>
그런데, <한(韓)가위>를 열고 이 밧줄의 길이를 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韓)가위를 열면 가위 속 터널(tunnel)속에 슬라이딩(sliding)하는 여유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전에 <한(韓)가위>를 오므려 닫아놓았을 때에는, 밧줄이 넉넉한 터널(tunnel)속에서 갑자기 꽉 끼는 사태와
동시에 요철(凹凸)의 저항이 많아져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한(韓)가위>를 열어서 그 길이를 줄이고 다시 <한(韓)가위>를 닫고, 그 모양을 수평으로 놓으면 다음과
같아지게 되겠지요.
<ㅡㅡㅏㅡㅡㅡㅓㅡㅡ>
이러한 것은 <한(韓)가위>가 밧줄 양(兩)쪽에 달려있으면서도, 밧줄의 길이가 신축(伸縮)이 자유(自由)스러워서
어떤 때에는 길게 되고 어떤 때에는 짧아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가위’임을 뜻합니다.
(3) 별(丿)혹은 불(乀)로 ‘뒤 튼’ 모습은 현실의 블레이드(blade)판에서는 ‘크랭크(clank)’모양으로 나타난다.
<한(韓)가위>의 머리가 티(T)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암수 즉 ‘갈고리’와 ‘고리’ 양쪽이 모두 붙어있는 이유가 있습
니다.
그것은 블레이드(blade)판(板)에는 ‘끈을 꼬은 결과’ 즉 별(丿)자 모양이나 불(乀)자 모양의 ‘밧줄’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런 끈은 위 아래로 블레이드(blade)판을 연결시키고 행열(行列)의 밧줄을 연결시킬 때, 아래에 걸리는
블레이드(blade)판(板)의 하중(荷重)을 견딜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즉 예(例)를 들어 만(卍)자 ‘꺽을 때’ ‘아래 위’로 하중(荷重)을 주어 당기면 다시 엑스(X)모양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이때 ‘꺽이는 부분’ - 예를 들어서 ‘ㄱ’자 꺽이면 그 꼭지점에서 위로 당겨주는 하나의 ‘밧줄’이 필요하며, 이를 자유
롭게 연결하기 위해서는 ‘고리’와 ‘갈고리’가 필요한 것이지요.
즉 ‘ㄱ’으로 꺽이는 것은 ‘ㅓ’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으며, 이때에는 걸리게 하는 ‘고리’와 거는 ‘갈고리’가 ‘꺽이는
부분’의 머리에 다같이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에 의해서 <한(韓)-가위>는 밧줄을 머금고 그 양쪽에 티(T)자 모양으로 ‘고리’와 ‘갈고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리’와 ‘갈고리’가 경첩으로 되어 있는 것은 ‘구부려서’ 걸거나 걸리게 좋게하고, ‘펴서’ 직선(直選)이되어
하중(荷重)을 견디기 좋도록 하는 목적을 다 이루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4) <한(韓)가위>는 ‘주름살 원통망(圓筒網)’과 연결되는 방사선(放射線) 식의 목(=경(頸)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한(韓)가위 중간에는 방사선(放射線)식으로 ‘고래수염’혹은 ‘대나무 살’등의 재료(材料)가 뻗어나가는
‘목(=경(頸))’이 있고, 그 끝에는 ‘주름살 원통망(圓筒網)’을 결합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름살 원통망(圓筒網)’은 큰 원형 테두리와 작은 원형 테두리가 반복적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망(網)이 있어서 줄이거나 늘리기가 자유스러운 것을 뜻합니다.
즉 한(韓)가위는 이러한 ‘주름살 원통망(圓筒網)’과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이 ‘주름살 원통망(圓筒網)’
만이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십(數十)미터 수백(數百)미터 밖에서도 “아 저 글자는 무슨 글자이다.”는 것을 보이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한(韓)가위의 ‘네 가지 구조’때문에, 결승(結繩)은 자유롭게 ‘말하는 지(只)’ 즉 언지(言只)와 어울려서 미묘
복잡한 ‘꼰-끈’의 블레이드(blade)를 연결하는 연산(演算)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 언지(言只)의 구조(構造)
‘말하는 지(只)’로 지마기(祗摩記)에 그 당시 신라(新羅) 사회서 칭하게 된 까닭은 블레이드(blade)판(板)이 정면(正面)
에서 보면 ‘창문(窓門)-틀’처럼 생기고, 이 모양새가 지(只)의 모양과 흡사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언지(言只)의 구조적 특성을 ‘입체적’인 관점에서 상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여기서 입체적이라함은 바라보는 각도가 정면도(正面圖), 측면도(側面圖), 조감도(鳥瞰圖)의 3차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1) 조감도(鳥瞰圖)에서 본 언지(言只)의 구조
일단 하늘 위에서 아래로 보는 시선 즉 조감도(鳥瞰圖)로 이 언지(言只)를 살펴보면, 그 모양이 마치 ‘ㅗ’자 모양
밑에 비읍(ㅂ‘자가 결합이 되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따라서 마치 ‘보’란 글자처럼 생겼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보’자 구조에서 비읍(ㅂ) 안에 또 다른 ‘보’가 미끄러질 수 있는 ‘활강(滑降)하는 도랑’인 활강구(滑降溝)가
‘ㅗ’ 가 지나갈 수 있도록 ‘ㅂ’의 좌우(左右)에서 밑으로 쭉~ 내려가면서 파져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이런 ‘보’자 모양을 조감도(鳥瞰圖)로 보면 좌우(左右)가 길고 전후(前後)의 폭(幅)이 대단히 좁은 모양새가
되겠지요.
따라서 다음과 같이 아래에서 ‘안는(=포(抱))’자가 위에서 ‘안기는 자’를 미끄러 지게 하는 것이지요.
보
보
그런데 이 위 두 글자 가운데 아래 ‘보’자의 ‘ㅂ’에서 가로로 된 ‘ㅡ’가운데에 한(韓)가위가
지나갈 때 ‘갈고리’로써 걸어들어 갈수 있는 ‘고리’들이 끼어져 있는 홈이 <凹凹凹凹>식으로 나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위 ‘보’자의 ‘ㅗ’부분에는 이 나와있는 ‘고리’들인 ‘ㅇㅇㅇㅇ’를 꿰고 나갈 수 있는 ‘갈고리’가 ‘ㅣㅣㅣㅣ’식으로
되어서 밑으로 흐르면서 빠지는 것입니다.
(2) 측면도(側面圖)에서 바라본 언지(言只)의 구조.
그런데, 이처럼 ‘고리’가 나 와있는 언지(言只)를 측면도(側面圖)에서 바로 보면 측면도 jfyr1;b;bs에서 ‘ㄴ’자 모양
으로 ‘고리’가 나와 있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ㄴ’자를 내민 부동(不動)의 서있는 언지(言只)의 활강구(滑降溝)를 타고, 흐르는 또다른 언지(言只)
에서 ‘갈구리’를 내민 것을 측면도(側面圖)이서 보면, ‘미끄러지는 언지(言只)’의 윗부분에 ‘ㄱ’자 모양으로 나와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ㄴ’자와 ‘ㄱ’자는 모두 경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결합이 되는 순간 ‘미끄러지는 언지(言只)의 하중(荷重)’
이 의해서 단단히 결합하게 되고, 이는 윗 블레이드(blade)와 아랫 블레이드(blade) 즉 윗 언지(言只)와 아랫 언지
(言只) 속에 있는 ‘꼰-끈’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ㅣ’로 연결되면 이는 결국 <한(韓)-가위>의 상단(上端) 머리 부분이 마치 티(T)자 모양으로,
또 <한(韓)-가위>의 하단(下端) 머리 부분이 마치 ‘ㅗ’자 모양으로 되어 경첩이 걸 수 있고, 걸리게 할 수 있는 장치가
해소(解消)되어 밋밋한 ‘ㅣ’자로 변한 것을 뜻합니다.
이는 그 다음에 또 전체 언지(言只)판들을 서로 상하(上下)로 미끌어지게 해서, 결승을 연산(演算)할수 없게 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경첩기능을 회복시켜주는 장치가 언지(言只)에 더 첨가되어야함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한(韓)가위>의 경첩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장치
(가) 측면도(側面圖)에서 바라본 <경첩 기능 회복장치(回復裝置)>
언지(言只)를 측면도로 보면 ‘가로’가 짧고 ‘세로’가 긴 ‘세워둔 직사각형’으로 느껴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워둔 직사각형’ 밑바닥에서 ‘ㄴ’자 모양으로 ‘고리’가 나와 있는 경첩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직사각형 상단(上端)과 하단(下端)에 각기 ‘ㅇ’으로 바싹 붙어서 - 영어(英語)로 말하자면 on과 below
-종심(縱深) 깊게 들어가는 철심(鐵心)이 ‘가볍고 딱딱한 나무 재질(材質)로 되어 있는’ 언지(言只) 속에 반(半) 쯤
파묻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힘의 ‘받침점’이 되면서 회전(回傳)할수 있는 축(軸)이 깊게 심어져 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 힘의 ‘받침점’이 되면서 축(軸)인 철심(鐵心)에 ‘ㅣ’자 모양으로 길게 지레(lever)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측 측면도(側面圖)에서 보면 ‘ㅣ’자 세워둔 ‘지레’를 젖히게 ‘ㅡ’자로 젖히게 되면, 철심(鐵心)은 회전(回轉)하게
되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조감도(鳥瞰圖)로 본 <경첩 기능 회복장치(回復裝置)>
그런데 “이런 지레(lever)를 젖히는 장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조감도(鳥瞰圖)로 보면,
우리는 이것이 왜 <경첩 기능 회복장치(回復裝置)>인지를 실감(實感)할수 있읍니다.
원래 ‘보’자 모양의 언지(言只)의 조감도(鳥瞰圖)에서 ‘고리’들이 끼어져 있는 홈은 ‘ㅂ’자의 가로대인 ‘ㅡ’자 부분에
<凹凹凹凹>로 나있는 것입니다. 철심(鐵心)은 이 <凹凹凹凹>의 밑바닥과 위 꼭대기에 각기 반(半)쯤 파묻힌 상태로
관통(貫通)해서 좌우로 길게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레(lever)를 움직이지 전에는 <凹凹凹凹> 밑, 혹은 위에 <oooo>형태로 있던 것이 지레를 움직인 것에
의해서 갑자기 솟아올라서 <ㅜㅜㅜㅜㅜ>로 나타남을 뜻합니다.
이처럼 <ㅜㅜㅜㅜㅜ>이 올라오게 되면, 한(韓)가위의 경첩은 다시 구부려져서 각기 끼게 할수 있는 ‘고리’와 낄 수
있는 ‘갈고리’를 불쑥 ‘ㅣㅣㅣㅣ’모양으로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4) 좌우(左右)로도 활강(滑降)할수도 있는 언지(言只)
그런데 지금까지 언지(言只)의 구조(構造)는 이것이 서로 ‘보’자 모양을 상하(上下)로 연결되어서 활강구(滑降溝)를
타고 미끌어지면서 ‘그 안(內)’에 있는 ‘한(韓)가위’가 중심이 된 ‘꼰-끈’들을 연결하는 것을 의미했읍니다.
그런데 이런 언지(言只)들이 정면도(正面圖)로 보면 결국 ‘囗囗囗囗’으로 보이는 데, 이들을 좌우(左右)로 수평(水平)
이동할 수 없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언지(言只)를 조감도(鳥瞰圖)로 보면, 이미 말했듯이 ‘보’자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의 ‘ㅗ’자 부분은 결국 ‘갈고리’가 나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측면도(側面圖)로 보았을
때, 상단(上端)에 있는 장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측면도로 보았을 때에는 언지(言只)의 구조는 어디 까지나, 가로가 좁고 세로가 긴 ‘직 사각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직 사각형’의 1/3 되는 지점과 2/3 되는 지점에 홈이 요(凹)로 파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언지(言只)를 좌우(左右)로 이동할 수 있는 대(臺)에는 상하(上下) 2줄로 되어 있는 레일(rail)이 철(凸)
모양으로 나와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언지(言只)를 좌우(左右)로 옮길 때에는 이런 대(臺) 위를 ‘측면(側面)에서 잘 끼워서’ 이동시키면 되는 것입
니다.
그런데 이는 언지(言只)들 상호 간에도 역시 마찬가지 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조감도(鳥瞰圖)로 보았을 때 ‘보’ 자 모양의 언지(言只)에서 ‘ㅗ’자 모양에는 암컷 역할을 하는 요(凹)가 심어져
있다면, ‘보’자 형태의 ‘ㅂ’에서 ‘H’모양으로 나와있는 부분에서는 숫컷 역할을 하는 철(凸)이 각기 심어져 있는 것인
게지요.
라) <한(韓)가위>와 <언지(言只)>의 구조가 뜻하는 것은 ?
결국 이러한 <한(韓)가위>와 <언지(言只)>의 구조가 뜻하는 것은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서 상하(上下) 좌우
(左右)로 언지(言只)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서 종횡무진(縱橫無盡)하게 달리면서(sliding)하면서, <꼰-끈>의
판(板)을 움직일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한(韓)가위는 결승(結繩)을 내부 심(心)으로 해서 그 길이와 각도(角度)를 자유자재로 꺽으면서 조절할 뿐만
아니라, 목(=경(頸))에 마치 옷 입듯이 ‘원통망(圓筒網)으로 색깔을 입음으로써 얼마든지 “아 저건 무슨 글자이다.”
라는 것을 알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한 뒤에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를 비로소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의 기사(記事)의 해석 및 해설
지마기(祗摩記) 9년 4 월 조(條)의 기사는 다음과 갈습니다.
1) 四月 上謂言只所聖人曰 “爾神靈乎” 曰 “靈未知也 只言只也” 上曰 “何謂言只” 曰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
해석(解釋)
(*) 4월 왕(王)이 언지소(言只所)의 성인(聖人)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신령(神靈) 그 자체로 구나?!”라고 하자,
(성인(聖人)이 대답해) 말하기를, “영(靈)의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지(只)가 지(只)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하기를 “말하는 지(只) (=언지(言只))란 무엇을 말함인가?”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이 답(答)하여)
말하기를 “ ‘말하는 지(只)’란 즉 ‘둘이 아님’(=불이(不二))을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 것 - (즉 그 둘이란) ‘체험(體驗)에 구속되지 않음’과 ‘체험하지 않음’입니다.” 라고 했다. (*)
이런 직역(直譯)을 지금까지 우리가 이 언지(言只)의 기능이 <언어의 쌍방향적인 교류를 통한 잡단적 학습기>의
개념, 그리고 <대자연의 기(氣)의 교류를 통한 선가(仙家)고유의 생명공학의 연산(演算)> 이란 실질적인 목표를
의식하고 해석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수가 있읍니다.
그것은 언지소(言只所) 성인과 지마(祗摩) 니사금의 대화의 수준(水準)이 매우 차원 높음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 생명공학의 차원(次元)에서의 해석(解釋)
븍히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의 대답은 오늘날 생명공학자들이 놀라도 “그렇게 본질을 꿰뚫는 이야기를 신라
시대때 이미 말했는가?!”하고 감탄할 내용의 말임을 알수가 있읍니다.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
‘말하는 지(只)’가 (대자연의 기(氣)를 교류(交流)시켜) 발동시키는 것은) 두 세계가 둘로만 그치지 않고 (*) 씨너지
(synergy)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뜻한다. (*)
그것은 진화(進化)에 있어서, 적자생존(適者生存)하기 위해서(*) 체험한 현실에만 구속되지 않는 것 - 이것이 불구험
(不拘驗)의 뜻임 -과 (*)창조(創造)의 본질이면서도 만물(萬物)이 만물(萬物)로 하여금 서로 폐(弊)를 끼치지 않는)
체험할 수 없는 부분의 둘의 세계이다.
나.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쌍방향적인 집단 학습의 차원에서의 해석(解釋)
(1) ‘스키너’와 ‘춈스키’
그런데 이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이 말하는 내용을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쌍방향적인 집단 학습의 차원>에서
하기 위해서는 ‘노얌 촘스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말하는 지(只)’ 즉 언지(言只)와 ‘주름 원통망(圓筒網)’을 입은 ‘한(韓)-가위’가 유기적인 작동을 통해서 그것이
‘일반인’에게는 ‘집단적인 쌍방향적인 언어 학습기(學習器)’이자, 쌍방향적인 언어(言語)의 시각화 장치로써 활용
되었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기(氣)를 교류시키는 생명공학의 차원’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지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집단적인 쌍방향적인 언어 학습기(學習器)’이자, 쌍방향적인 언어(言語)의 시각화 장치인 언지(言只)의
운영을 보고, 지마(祗摩) 니사금께서는 “와~ 이것은 신령(神靈) 그 자체로나!!”하는 감탄부터 나오는 말로 시작합
니다.
소년(少年), 소녀(少女)들이 모여서 수많은 언지(言只)들을 때로는 상하(上下)로 때로는 종횡(縱橫)으로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하게 움직이고, 서로가 모르는 언어를 쌍방향적으로 복창하고는 또 언지(言只)를 쳐다보고,
이윽고 다시 종횡무진(縱橫無盡)하게 언지(言只)들을 움직이는 활동을 끊임없이 하다가,
이윽고 서로가 이런 언지(言只)들의 조작(操作)없이 모르는 언어를 서로 말하고 듣는 현상이 일어나니깐, “이럴수가!!
이것은 신령(神靈)의 작용 그 자체로구나!!”라고 말할 만 한 것이지요.
그러자, 이 말에 대답을 하는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은 “신령(神靈)의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지(言只)와
언지(言只)로써 ‘언어를 시각화(視覺化)하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라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지마(祗摩)니사금께서는 “언지(言只)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이를 대답하는 말의 내용이 오늘날 ‘노얌 춈스키’의 대답과 똑같습니다.
이 ‘노얌-춈스키’는 “‘스키너’가 교육(敎育)이라는 것은 결국 상벌(賞罰)의 반응에 의해서 문법(文法)과 같은 사회적
유기적관계의 법도를 익혀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라는 학설에 대해서 반론(反論)을 편 것이지요.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는 모르는 언어의 체계를 ‘스스로 유기적으로 조합해서 자득(自得)해 내는 자유의 근본이 있다.“
”언어의 본질은 반응체계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득해 내는 언어본능에 의한 자유이다.“라는 철학적 논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인 과다흑치(果多黑齒)는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曰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입니다.
즉 언지(言只)를 통한 ‘언어의 습득’은 ‘둘이 아닌 것’ 즉 불이(不二)에서 발동(發動)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이(不二)란 개념은 불교(佛敎)나 도교(道敎) 계통에서 ‘하나인 동시에 둘’ 즉 일이이(一而二)한 원리에서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할 때 즐겨 쓰는 말인 것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인지(認知)감각에 의해 ‘조합된 정보’에 구속되지 않는 그 무엇과, 아직 체험하지 않는 것을 넘나들
면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즉 언지소(言只所) 성인이 - 이름이 과다흑치(果多黑齒)이다 - 말한 내용과 ‘노얌 춈스키’가 말하는 내용은 그 본질
적인 내용이 똑같다는 말인 것이지요.
모르는 언어를 언지(言只)로써 시각화(視覺化)하여 ‘전체적인 유기적 관계’를 보고 “아!! 저말은 이런 뜻이다.”라는
체험에 구속되지 않은 것과 아직 경험하지 않은 말의 체계나 내용까지도 내면에서 감득해내는 그것이 본질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지마(祗摩)니사금과 과다흑치(果多黑齒)의 대화내용은 이처럼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철학적 내용을 서로
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언어의 시각화’를 통한 쌍방향적인 집단 학습의 차원에서의 해석(解釋)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
“말하는 지(只)‘가 (언어의 시각화를 통해 쌍방향적으로 언어를 학습케 하는 것은) 두 세계가 둘로만 그치지 않고 (*)
씨너지(synergy)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언어의 세계가 체험한 것에만 구속되지 않는 것’ - 이것이 불구험(不拘驗)의 뜻임 -과 체험할 수 없는 것(=언어습득
에 대한 인간내면의 자유) 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의 기사>를 마주 해석해보기로 합시다.
이런 설명을 듣자, 지마(祗摩)니사금께서는 “옳도다!”하고 즉시 언지소(言只所) 성인에게 아찬(阿飡)의 벼슬을
내리는 장면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2)上曰 “善” 乃賜聖人爵阿飡
상(上)께서 말씀하시기를 “옳도다!”하고는 (즉시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에게 아찬의 벼슬을 내렸다.
이런 지마(祗摩)니사금의 결정은 언지소(言只所)를 운영하는 성인(聖人)으로 그 당시 사회에서 존경받던 “과다흑치
(果多黑齒)가 - 언지소(言只所) 성인의 이름임 - ‘언어의 쌍방향적인 학습의 이치(理致)’에 관한 최고의 경지(境地)
에 갔다.”는 인정으로써 벼슬을 내리신 것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 언지소(言只所)의 유래(由來)가 나옵니다.
3) 先是 有白亥祠 在神林之中 有兩白亥與七鷄爭技 俗傳不可 使外人見之 權妻之不及 寵者多生 私子皆爲於祠主 育爲
鷄亥
이 일 이전(以前)에 백해사(白亥祠)가 ‘신성(神聖)한 숲’속에 있었는데,
(*) (여기에는 각기) 칠계(七鷄)와 어울어진 두 백해(白亥)가 기예(技藝)를 다투는 것이 있었는데, 세속(世俗)에 전
(傳)하는 것이 불가(不可)했지만, 외부(外部)인사로 하여금 보도록은 하였다. (*)
(신라 왕가(王家)에서) 권처(權妻)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총애(寵愛)를 받는 여인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궁궐(宮闕) 풍습상 공(公)적으로 공주와 왕자로써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자(私子)들이 이 백해사(白亥祠)의 주인
(主人)이 되었고,
(*) 계해(鷄亥) - 즉 칠계(七鷄)와 어울리는 백해(白亥)의 기예(技藝)을 (소년(少年), 소녀(少女)들에게) 교육(敎育)
시켰었다. (*)
이 해석(解釋) 역시 “해석해 놓아보았자 무슨 말인지?” 통 모르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단 <有兩白亥與七鷄>의 해석이 중요합니다.
이는 백해여칠계(白亥與七鷄)가 하나의 단어(單語)라는 점입니다.
즉 ‘일곱마리 닭’과 어울린 한 마리의 ‘흰 돼지’가 하나의 사물(事物)을 지칭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백해사(白亥祠)란 사당(祠堂)에 모인 소년(少年), 소녀(少女)들은 결국 언지(言只)로써 쌍방향적으로 집단
적인 언어를 습득할 때, 항상적으로 2개의 팀(team)으로 되어 있는 곳에 속해서 공부를 하였던 것이지요.
즉 그 팀(team)이 바로 백해여칠계(白亥與七鷄)라는 것이지요.
아무튼 백해여칠계(白亥與七鷄)로 형성된 팀(team)에 가담하여, 결과적으로 2팀(team)이 되기 때문에, 서로 기예
(技藝)를 경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팀(team)을 구성하는 방식의 명칭이 요상(妖常)스럽게 ‘일곱 닭과 어울린 흰 돼지‘이며, 이들이
수련받는 학교(學敎)인 사당(祠堂)이름이 ’흰 돼지‘를 뜻하는 백해사(白亥祠)라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그런데 이는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 없는 돼지’ 제강(帝江)과 관련이 됩니다.
이는 산해경(山海經) 서산경(西山經)에 나오는데, 거대한 몸뚱어리에 날개가 넷 달리고, 다리가 여섯 개인데, 머리가
없는 돼지인 것이지요.
따라서 이는 전체적으로 ‘통통한 비행선(飛行船)’의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강(帝江)에게 날개가 달렸으니, 이는 ‘하늘을 나는 돼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헬륨 가스’를 넣은 열기구를 언뜻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지(言只)들을 상하(上下)로, 혹은 수평(水平)으로 종횡무진(縱橫無盡)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움직이게
하는 발판이 되는 대(臺)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대(臺)가 ‘하늘에 떠 있으면’ 더욱더 좋은 것이지요. 왜냐? 많은 사람들이 동시(同時)에 관람하기 좋은 곳에
언지(言只)들이 ‘하늘에 걸어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깐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강(帝江)은 신화화(神話化) 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머리 없는 돼지’ 모양 - 즉 ‘뚱뚱한
모양’이 곧 ‘헬륨 개스’가 채워진 열기구(熱器具)를 고대인들이 표현하기 가장 좋은 용어인 것인 것입니다.
즉 백해사(白亥祠)라는 말은 <‘언지(言只)를 걸어두는 ’헬륨 개스‘가 채워진 열기구들이 있는 교육장소’>라는 말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이런 ‘하늘에 둥둥~떠 있는 흰 돼지’ 에 꼭 ‘일곱마리 닭’이 갈이 있어야 하는가?
이 이유 또한 재미있습니다.
언지(言只)들을 상하(上下) 좌우(左右)로 종횡무진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런 ‘흰 돼지’를 하늘에 띄워놓고, 언지
(言只)들을 각기 ‘밧줄’로 매어서 이 ‘흰 돼지’ 옆구리에 ‘도르레’를 장치하고 그 ‘밧즐’의 끈을 지상(地上)에서 끌어
올리고 내리는 조작(操作)에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안정성이 있고, 또한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이 언지(言只)들의 ‘꼰-끈’ 하나 하나 혹은 중요한 작동을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사람이 언지(言只)들 사이로
오르락 내리락 해야합니다.
이처럼 언지(言只)들의 조작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고대에는 연랑(孿朗) 연랑(孿朗)이라했던 것이지요.
연(孌) 혹은 연(孿)에 ‘끈’으로 컴뮤니케이션(communication)하는 의미가 있는 합성어(合成語) 즉 <사(糸)+언(言)
+사(糸>가 항상적으로 들어 있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안전 로프(rope)를 매고, 때로는 번지-점프를 하기도 하는 등의 온갖 기예(技藝)를 부리게 되는데, 결국
자신의 일 결승(結繩)늘 꼬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언지(言只)들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닭은 물을 먹을 때 유난히 고개를 숙였다고 올리는 양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생각건대, 이 칠계(七鷄)는 <거대한 열기구(熱器具) 몸통에 일곱 개의 닭 머리>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앙 몸통에서 ‘헬륨 개스’를 풀무로써 일곱 개의 ‘닭 머리’에 공급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였던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일곱 개의 ‘닭머리’는 계속 방아 찢듯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흰 돼지’에 걸려있는 언지(言只)들 사이에서 ‘꼰-끈’을 변경시키고, 높이 있는 언지(言只)에로 올라가거나,
혹은 멀리 아래에 있는 언지(言只)에 내려갈 때, 연랑(孿朗), 연낭(孌娘)들의 허리에 묶여있는 안전 로프(rope)을
‘닭머리’들이 올리거나 내리거나 할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백해(白亥)는 언지(言只)를 ‘걸어두는’ 역할을 하는 열기구(熱器具) 였다면, 칠계(七鷄)는 이미 걸려있는
언지(言只)의 ‘꼰-끈’ 즉 가림토-결승(結繩)을 조작(操作)하는 것을 돕기 위한 열기구(熱器具)였던 것이지요.
두 열기구는 서로 독립되어 있지만, 서로 돕는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원문(原文)에 백해여칠계(白亥與七鷄) - 즉 더불어 같이 있는 열기구(熱器具)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백해(白亥)나 칠계(七鷄)는 모두 소년(少年), 소녀(少女)들이 타고 있어서, 서로가 긴밀히 신호하면서 이 언지
(言只)와 그 속에 있는 ‘가림토-결승’을 운영하였겠지요.
다시 말해, 언지소(言只所)에서 이런 ‘쌍방향적 언어 학습기’ 혹은 ‘쌍방향적인 언어 시각화 열기구’를 운영하는
노우-하우(know-how)자체는 세속(世俗)에 전(傳)할 수가 없는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국가 기밀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언지(言只)들은 어디까지나 ‘쌍방향적인 언어 학습기’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서로가 쌍방향적으로 익혀
야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 - 신라의 소년(少年), 소녀(少女)들에게 개방할 뿐만 아니라, 참여시키는 것이 절대 필요
하였던 것이지요.
이런 내용을 말하는 것이 사외인견지(使外人見之)라는 것이지요. 만약에 ‘시각화된 언어’를 안보면, 외국어를 빨리
익힐 수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아마도 외부사람들은 ‘언어습득 능력’이 탁월한 소년 소녀와 더불어 ‘약간 멍청하지만, 습득하려고 애를 쓰는 어른’
들도 참여시켰을 겁니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좌계는 이 싸이트(site)에서 3번이나 이미 한 이야기입니다.
(즉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지요.
1. [참조]: 청성산(靑城山)의 용교비행(龍蹻飛行) 수수께끼 -영봉자(寧封子)와 황제(黃帝)
2. (*) 동방천서(東方天書), 바이칼, 빙하기, 곰(熊, gomme)의 깊은 상관성
3. (청개구리 님) 삼한(三韓)-연소자(年少者)들이 탓던 ‘결승(結繩)-조작 연(鳶)’
참고하실 분은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삼한(三韓)-연소자(年少者)들이 탓던 ‘결승(結繩)-조작 연(鳶)’>에는 위지(魏志) -
마한(馬韓)조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상세히 해설하고 있습니다.
1) 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
2) 諸年少勇健者,
3) 皆鑿脊皮, 以大繩貫之, 又以丈許木敠之,
4) 通日糰呼作力, 不以爲痛,
5) 旣以勸作, 且以爲健.
이 해설(解說)을 요컨데, 결승(結繩)을 조작하는 연랑(孿朗), 연낭(孌娘)들이 언지(言只)와 자신의 몸을 백해여칠계
(白亥與七鷄)에 매달아서 하루 종일 ‘쌍방향적인 언어 학습기’를 운영하였음을 관찰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백해사(白亥祠)를 관장하는 사람이 성골(聖骨)에 속하는 신라 왕(王)이 여인(女人)을 맞이하여 낳은
자식 가운데, 권처(權妻)에 이르지 못한 여자(女子)가 주로 맡어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처(權妻)는 기본적으로 신라어(新羅語)와 동시에 외국어(外國語)를 쓰는 여인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신라는 ‘벅수군’을 오로군사(五路軍事)에 두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외국어(外國語)를 쓰는 나라들이
연합해 있는 군대이고, 이를 총괄하여 운영하는 신라에 대해, 이 ‘벅수군’에 참여한 번국(藩國)의 입장에서 ‘종합적인
결정’을 내리는 신라 조정에서 자신의 모국(母國)인 번국(藩國)의 입장에서 그 결정을 필터링(filtering)하기 위해
파견된 여자가 권처(權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중(二重) 언어(言語)를 구사하는 여인이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신라는 주변 번국(藩國)의 소국(小國)들이 ‘벅수군’의 배달어미로 신라 왕(王)의 부인(婦人)이 되는 특이한
제도가 있었는데, 수많은 ‘벅수군’의 배달어미 가운데, 정식(正式)으로 해당 번국(蕃國)의 배달어미로써 임명이
되면 그 명칭이 권처(權妻)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權妻之不及 寵者多生 私子皆爲於祠主 育爲鷄亥’의 원문(原文)이 뜻하는 것은 이들이 번국(藩國)의 외국어를
쓰는 여인이었지만, 권처(權妻)에 이르지 못했지만, 신라왕의 사랑을 받아서 사자(私子)를 낳았을 때, 이를 중심으로
백해사(白亥祠)의 주인(主人)으로 삼았음을 뜻합니다.
이런 ‘벅수군’의 번국(藩國) 출신 ‘배달어미’ - 비록 권처(權妻)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낳은 사자(私子)는 결국 신라의
왕자(王子)와 공주(公主)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자(私子)는 아마도 공자(公子)에 대한 대칭적인 언어로 보입니다.
공자(公子)는 신라 조정에서 왕(王)이라든가 하는 공식적(公式的)인 직책 에 대해서 세습적인 우선권(優先權)을
지니는 지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사자(私子)는 이런 세습적인 우선권(優先權)을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즉 ‘가림토-결승’으로써 외국어(外國語)와 신라어(新羅語)를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권처(權妻)에 이르지 못했지만,
‘벅수군’에서 번국(藩國)의 소국(小國)들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벅수군’의 ‘배달어미’로써 파견된 여자들이 신라왕의
자녀(子女)를 낳을 때, 이들이 이곳 ‘가림토-결승’을 가르치는 백해사(白亥祠)의 주인(主人)이 될 수 있는 특권(特權)
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백해사(白亥祠)의 주인(主人)이 되면, 이들은 계해(鷄亥)를 키울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계해(鷄亥)가 바로 언지(言只)를 하늘에 띄울수 있는 ‘흰 돼지’ 백해(白亥)- 열기구(熱器具)와 이런 ‘백해
(白亥)에 걸려있는 언지(言只)들’을 연랑(孿朗), 연낭(孌娘)들이 그 속의 ‘꼰-끈’을 조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칠계
(七鷄)-열기구(熱器具)를 키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계해(鷄亥)는 신라 고유의 독특한 비유(譬喩)라는 것입니다.
즉 ‘육계해(育鷄亥)’는 절대로 양계(養鷄), 양돈(養豚)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닭과 돼지를 키운다’ 함은 결국 ‘가림토-결승’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키운다는 것 - 더 쉽게 말하자면 언지
(言只)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의외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신라(新羅)의 이칭(異稱)이 계림(鷄林)이라고 칭하는데, “왜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칭하는가?!”함이 드러
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계해(鷄亥)를 키우는 백해사(白亥祠)는 원문(原文)에는 보면 신림지중(神林之中) - 즉 ‘신성(神聖)한 숲 가운데
있다.’고 소개되어 있읍니다.
‘계해(鷄亥)를 키우는 신림지중(神林之中)’의 약어(略語)가 결국에는 계림(鷄林)이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언지(言只)로써 서로 다른 언어(言語)를 쌍방향적으로 교류시키기 위해서 <칠계(七鷄) 열기구를
띄우는 신성(神聖)한 숲(=림(林))이 있는 나라>가 계림이라는 것이지요.
이제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의 기사 마지막 문단(文段)을 마주 해석해 보기로 합시다.
4) 上幼時 爲(亻+母)所引 常觀其枝 及長護其祠 至是 知其鷄亥 多私宮人 欲誅之 召其聖人試之 聖人不諱直言 上嘉之
乃止遂 以其祠爲言只所
(*)왕이 어렸을 때, <여자 선생님(?)>이(*) 이곳으로 끌고 와서 항상 그 기예를 관람하였는데, 오래도록 그 사당을
보호하였었다. (*) (언지소(言只所) 성인(成人)과 직접 대화하기 까지 (*) (언지(言只)를 계해(鷄亥)로써 운영하는
바를 알아왔는데, <사적(私的)으로 왕(王)을 시봉하는 많은 궁인(宮人)들>이 - 이것이 다사궁인(多私宮人)임 -
이를 책(責)하였다.(*) (이에) 그 곳의 성인(聖人)을 불러 시험하였다. 성인은 직언하기를 기피하지 아니하여 왕이
그것을 기뻐하였고 (*)이에 머물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 사당(祠堂)을 언지소(言只所)라고 칭하게 되었다.
먼저 원문(原文)의 (亻+母)에 대해서는 ‘정성일 선생’께서 사전(辭典)에도 안 나오는 글자라고 하셨는데, 이 글자가
(女母) 즉 ‘여자 선생님’의 오기(誤記)나 이체(異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장차 신라 왕이 될 지마(祗摩)가 ‘어머니’와 어릴 때 늘 들렸다면, 이곳의 주인(主人)인 과다흑치(果多黑齒)
-이는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을 뜻함 -와 일찍부터 아는 사이였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마(祗摩)께서 신라왕이 되기 이전에, 여러 외국어(外國語)를 공부하던 시절 - 그 가르키는 ‘여자-선생님’이
이 언지소(言只所) 즉 백해사(白亥祠) 출신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지마(祗摩) 왕자(王子)는 “당신은 어찌 그렇게도 외국어에 능통하냐?!”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백해사(白亥祠) 이야기를 듣게 되었겠지요. 그래서 이 ‘여자 선생님’과 미복(微服)으로 몰래 이 백해사(白亥祠)에
와서 ‘가림토-결승(結繩)’으로써 쌍방향적으로 집단적 학습을 하는 것을 늘 관찰(觀察)하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왕(王)이 되어서 까지도, 늘 미복(微服)으로 이처럼 백해사(白亥祠)에 다녀오자,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지요.
그것은 궁인(宮人)들 가운데, <왕(王)에 대해서 개인적인 시봉을 드는 사람들> - 이들이 사궁인(私宮人)들이 반발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어디로 가셨는지? 또 가셨다면, 당연히 그곳에서 보고(報告)를 해야 하는데, 왕(王)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보고(報告)도 없자, 이윽고 ”왕(王)이 백해사(白亥祠)를 출몰한다.“는 것을 알고, ”왕(王)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報告)를 궁궐에 안하는 백해사(白亥祠)의 주인(主人)을 벌(罰)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 앞에 지마(祗摩)이사금은 ‘비밀리에 언지소(言只所)에 들락거리는 것’을 이제는 공식화(公式化)시킬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해서 백해사(白亥祠)에 가서 정식(正式)으로 왕(王)의 왔음을 공지(公知) 시킨 상황에서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을 불러서 대화한 것이 위 <9년 4월 조(條)의 기사>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지마(祗摩) 이사금은 과다흑치(果多黑齒)라는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을 만나기 까지 이미 언지(言只)
라는 <언어-학습기>를 통해 언어를 시각화(視覺化)하면서 쌍방향적으로 언어를 집단적으로 학습(學習)하는 것에
대해 ‘열열한 애호가’로써 연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至是 知其鷄亥’로 들어나는 것인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이 백해사(白亥祠)에 대한 정책적 후원과 보호를 왕(王)으로써 해 왔음도 <장호기사(長護其祠)>로써
이미 해 왔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지마(祗摩) 이사금은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을 만나기 이전(以前)에 이미, “언지(言只)를 사용해서
언어를 쌍방향적으로 집단적 학습하게 하는 그 효과의 중요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열열한 후원자 및
팬“이었던 셈인 것이지요.
그런데 자기자신을 시봉하던 사궁인(私宮人)들이 문제삼자. "이 기회에 언지(言只)의 운영에 관한 궁금증을 다 풀어
버리고, 이 언지소(言只所)운영을 후원하는 것을 공식화하자.“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걸과, 대화가 있었는데, 과다흑치(果多黑齒)는 직언(直言)으로 왕의 이 ‘학술적인 질문’에 대해서 수준높은 대답을
해주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왕(王)은 흡족해하면서 ‘공식적으로 머물기에 이르른 것(=乃止遂)’인 것이지요.
즉 대놓고, 언지(言只)의 운영에 대해서 공부하고, 또한 이곳의 성인(聖人)인 과다흑치(果多黑齒)와 대화를 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왕(王)이 궁(宮)을 떠나서, 어떤 특정한 장소(場所)에 머무를 때의 그 장소(場所)에 대한 칭호가 변한다는데
있읍니다.
궁궐(宮闕)이 아닌 곳에 ‘오랫동안 왕이 머무르면서 정사(政事)를 볼 때’ 이를 이궁(離宮), 혹은 행궁(行宮), 혹은
행재소(行在所)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백해사(白亥祠)의 경우에는 ‘언지(言只)가 있는 행재소(行在所)’라는 뜻으로, 언지소(言只所)라고 칭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는 사료(史料)로써 엄청 중요한 것이지요.
왜냐?
언지(言只) - 즉 ‘가림토-결승(結繩)’으로 언어를 시각화(視覺化)시켜 쌍방향적으로 집단적 학습을 시키는 것을 “계해
(鷄亥)를 길렀다.”고 표현하고, 또 이처럼 언지(言只)를 통해 집단적으록 학습하는 무리를 계도(鷄徒)라고 불렀음이
드러나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계해(鷄亥)를 육성하는 교육기관이 신림지중(神林之中)에 있었기에>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 불렀음이
드러난다는 면에서 이는 무척 중요한 사료인 것입니다.
즉 신라(新羅)는 - 나아가 삼한(三韓)에서 뿌리를 내린 고구리, 백제의 관경삼국(管境三國)은 일반 천독(天毒)들에게
‘언어의 장벽(障壁)’을 넘을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과 노우-하우(know-how)를 이미 지니고 있었던 문명이었다는 것
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문명이 과연 있었겠는가?
계림(鷄林)을 지닌 문명이 과연 인류 역사상에서 고구리, 백제, 신라 이외에 있은 적이 있었겠는가?!
지나치게 위대한 문명을 <우리 고대사>가 지니고 있어서, 역사 연구가 힘든지도 모르겠다는 샘각을 하게 되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언지소(言只所) 성인(聖人)인 과다흑치(果多黑齒)가 일으킨 이상한 사건들이 지마(祗摩) 이사금과 일성
(逸聖) 이사금때의 가장 중요한 사건임이 드러납니다.
위대한 언어 - 한글을 지닌 역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신기한 사건들인 것이지요.
pyramid 문명과 ‘언지(言只)’- 출발지인 비지국(比只國)인 한반도(韓半島)
(참고(參考) :
이 글에 소개한 남당유고 신라부분의 글은 ‘정성일 선생’의 절구(絶句)와 해석(解釋)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절구(絶句)와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 로 표기합니다.)
1. ‘말하는 지(只)’ - 언지(言只)에 관련된 고대사
‘말하는 지(只)’가 있었고, 이의 운영하는 ‘신성한 숲’을 계림(鷄林)이라고 칭했음을 뜻하는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 기사는 그동안 모호(模湖)했던 몇 가지 고대사의 문제를 해명해 줍니다.
(이 ‘말하는 지(只)’에 대해서는 이 곳에 <[南堂] 생명공학,<가림토-結繩>,<韓-가위>,언지소(言只所),계림(鷄林)의
어원>의 제목으로 실려 있는 글이 있습니다.)
가. ‘가림토-결승(結繩) 경연(競演)대회’의 두 팀(team)의 공주(公主)의 정체?
그 첫째는 신라에서 8월 ‘한 가위’때의 중요행사에서의 ‘가림토-결승 경연(競演)대회’를 하는 두 팀(team)을 이끄는
신라 공주(公主)의 정체가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9년 조(條)에 보면, 7월16일부터 8월 15까지의 ‘길삼 내기’ 대회가 나옵
니다.
- 이하 삼국사기의 관련 기록을 옮김 -
왕(王)은 진한(辰韓)6부를 정(定)한 후에, 이를 두 편으로 가르고, 왕녀(王女)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당(偏黨)을 만들었다.
7월 16일(=기망(旣望))으로부터, 날마다 일찍 육부(六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직마(織麻))를 하였는데, 밤 열시쯤
(=을야(乙夜)에 일을 그만 두었다.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다소(多少)를 살피게 해서, 진 편에서는 이긴 편에
사례(謝禮)하게 했다.
이때 모두 노래와 춤, 온갖 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했다.
이 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서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만났오?!(會蘇) 만났오?!(會蘇)” 했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웠음으로 뒷사람이 이 소리를 인연으로 해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했다.
- 이상 삼국사기 관련기록 옮김을 마침 -
(이 기록에서의 ‘길쌈놀이’는 ‘길쌈놀이’가 아니라, 결국 ‘가림토-결승(結繩) 경연대회’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르는 외국어(外國語)를 말하는 무리를 놓고, 두 팀(team)이 언지(言只)로써 누가 뜻이 통해서 “먼저
만나는가?”하는 게임(game)을 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불과 ‘한 달’(7.15 ~ 8.15)만에 듣도 보도 못한 언어가 어느 정도 통해서 ‘한(韓) 가위 날’에 ‘먼저 만나기 게임(game)’
을 벌렸다는 것은 놀라운 기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내용에 대한 해석학적인 글은 이미 이 싸이트(site)에서 <[계속] 가배(嘉俳)의 비밀: ‘가림토-결승(結繩)’의
경연(競演)대회>라는 제목으로 올린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실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때 등장하는 두 팀(team)을 이끄는 신라 공주(公主)의 정체가 확실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마기(祗摩記) 9년 4월 조(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權妻之不及 寵者多生 私子皆爲於祠主 育爲鷄亥
- “권처(權妻)에 이르지 못했지만, (신라 왕의 은총(恩寵)을 받아 탄생한 많은 사자(私子)들이 전부 백해사(白亥祠)
의 주인(主人)이 되고, (이들이 언지(言只)를 하늘에 걸고, 운영하는) 계해(鷄亥)를 육성(育成)하게 하였다.”
위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私子 (*)皆(*) 爲於祠主>에서 ‘모두’를 뜻하는 개(皆)란 용어가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이 사자(私子)들의 ‘어머니’는 비록 신라의 4 번국(藩國) ‘안’에 가입(加入)한 소국(小國)들의 ‘벅수군’의 ‘배달어미’
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까지나 신라 왕(王)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소국(小國)의 ‘벅수군 배달어미’가 사자(私子)를 낳으면, 공주(公主)이거나 왕자(王子)이거나 간에 죄다
백해사(白亥祠)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문(漢文)은 유난히 단복수(單複數)가 구분이 안 됨을 고려하면, 이 백해사(白亥祠)의 규모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다 백해사(白亥祠)를 지녔으니, 그 규모가 어마 어마했던 것이지요.
또한 이들이 ‘가림토-결승’을 움직일 때에는 항상적으로 백해여칠계(白亥與七鷄)로 두 팀(team)을 나누어서 함도
지마기(祗摩記)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리니사금 9년 조에 등장하는 가배(嘉排)날의 경연대회 - 나중에 진 팀(team)이 회소(會蘇)! 회소
(會蘇)! - 이는 “만났오?! 만났오?!”의 향찰(鄕札)로 보임 - 라고 한 게임(game)을 이끄는 신라 공주(公主)가 결국
이 백해사(白亥祠) 출신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라 왕의 사자(私子) - 그들이 공주(公主)이든 왕자(王子)이든지 간에 죄다 ‘하나의 백해사(白亥祠)’를 지녔으니,
이 백해사(白亥祠)들이 있는 지역을 국제적으로 계림(鷄林)이라고 칭할만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쌍방향적으로 언어(言語)를 시각화(視覺化)’하기 위해서는 신라어(新羅語)가 아닌 외국어(外國語)를 쓰는
사람들이 들락거릴 필요가 있는데, 이들이 모국(母國)으로 돌아가서 이 백해사(白亥祠)가 있는 지역을 계림(鷄林)
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나. 운남성 암각화
그런데, 이처럼 ‘가림토-결승’의 흔적이 문헌(文獻)으로 등장하는 것은 위지(魏志) 동이전 한전(韓傳)의 다음과 같은
기록입니다.
1) 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
2) 諸年少勇健者,
3) 皆鑿脊皮, 以大繩貫之, 又以丈許木敠之,
4) 通日糰呼作力, 不以爲痛,
5) 旣以勸作, 且以爲健
(이에 대한 해석과 해설은 이 싸이트(site)에 <삼한(三韓)-연소자(年少者)들이 탓던 ‘결승(結繩)-조작 연(鳶)’>이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즉 신라(新羅)라는 나라가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던 기술’이 신라시대 때에 이르러 최고도로 발달하였음을 뜻합니다.
또 이러한 삼한(三韓)의 뿌리에서 나온, 고구리(高句麗)와 백제(百濟) 모두 같은 기술-체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가림토-결승(結繩)’으로 언어를 시각화하면서 쌍 방향적으로 집단적으로 학습하였던 학습기
- 즉 언지(言只)가 나타나는 <최초의 흔적>은 언제부터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운남성(雲南省)의 암각화에 이 언지(言只)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암각화는 면각(面刻)으로 되어 있는데, 머리 위에 ‘패인애플’비슷한 꽃이 핀 제사장(祭司長)이 2줄로 된 언지
(言只)들의 수평(水平) 행열(行列)을 높이 들고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직접 두 손으로 들어올린 언지(言只)는 ‘속이 비어서’ 면각(面刻)이 안 된 - 따라서 그림
에서는 ‘흰 모양’으로 나타남 - 사각형이 8개 있습니다. 따라서 ‘속이 꽉 차서’ 면각(面刻)이 된 사각형이 9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마치 ‘하늘에 둥둥~ 띄워있는 언지(言只)’가 있는데 ‘속이 빈’ 사각형이 4개 속이 꽉찬 부분이 5개
있습니다.
속이 차고 비고 하는 것이 교호(交互)적으로 나타난 모습으로 암각화(岩刻畵)에는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앞에 사람들이 2줄로 서 있는 모양새가 나옵니다.
제사장 바로 앞줄에는 (암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좌측(左側)에 세 사람이 오른 손을 들어서 제사장과 수신호
(手信號)를 하는 모양새가 있고, 그 우측(右側)에는 세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이 세 사람 밑에 신기하게도 ‘밑줄’이
그려져 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암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밑줄 그어진 사람 가운데, 맨 좌측에 있는 사람이 오른 손으로
긴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우측의 두 사람은 손을 허리에 올려놓고, 뱃심을 주어 큰소리를
하는 듯한 모양이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역시 한 줄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네 사람이 밑줄이 그려져 있읍니다.
(암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맨 좌측의 사람은 오른 손을 들어 제사장과 수신호(手信號)를 하는 모습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허리에 손을 올려서 ‘뱃심을 주어’ 큰소리로 복창(復唱)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제사장 입장에서 2번째 줄)에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사람 가운데, 맨 좌측의 사람은 제사장 다음
으로 큰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독특하게도 허리에 손을 올려서 ‘큰소리’로 복창(復唱)하긴 하지만,
제사장(祭司長)을 바라보지 않고, 뒤돌아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뒤돌아져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은 ‘다리(足)’의 모습이 (∧)처럼 그려져 있는데, 그의 발바닥을 뜻하는 선(線)이
왼쪽 다리에서 (>)으로 꺽여져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운남성(雲南省) 암각화를 학자들은 ‘청동기 시대’로 파악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린 그림인가?!”에 대해
서는 오리무중(五里霧中)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청동기 시대’때 삼한(三韓) 사람들이 언지(言只)를- 즉 쌍방향적인 집단적 언어 학습기 -활용
해서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재미있는 관심(關心)을 끄는 그림은 언지(言只)를 보지 않고, 등을 돌려서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는 ‘언지(言只)를 안보고도 복창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의 모습이 제사장(祭司長) 다음으로 크게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반드시 외국어(外國語)를 습득해야할 중요
인물’인 듯 합니다.
즉 브이. 아. 피(V. I. P)인 것이지요.
이 암각화가 뜻하는 것은 ‘가림 토-결승(結繩)’체계가 청동기 시대 때 암각화로 운남성(雲南省)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가림 토’는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혹 이 운남성(雲南省) 암각화의 그림이 있고, 스캔(scan)할 수 있는 기구가 있는 사람은 ‘답 글’로 이를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 ‘언지(言只)’의 종주국(宗主國)인 비지국(比只國)
그런데 “이러한 언지(言只)를 계속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이끌어온 나라가 어디인가?”하는 문제를 거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던 비지국(比只國)
그 나라가 바로 비지국(比只國)으로 보입니다.
비(比)는 ‘모방하다.’, ‘본뜨다’인데, 따라서 비지국(比只國)은 ‘모방(模倣)해야할 언지(言只)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는 한자(漢字)로 보았을 때의 ‘뜻풀이’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이 비지국(比只國)이 ‘대가야’, ‘대왜(大倭)’, 대한국(大漢國)등으로 언급되는
현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파사기(婆娑記) 30년 8 월 조(條)의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八月 比只與多伐草八作亂 命虹盧加樹討平之 比只太子宝日戰沒 次子朱日自召文還主和 其弟靑裔奔于金官
8월 비지(比只), 다벌(多伐), 초팔국(草八國)이 난(亂)을 일으켜 홍노(虹盧)와 가수(加樹)에게 명하여 평정하였다.
비지(比只)의 태자 보일(寶日)이 전쟁 중에 사망하고, 둘째 주일(朱日)은 스스로 소문(召文)으로 돌아가 주인이 되어
화친을 청하고, 셋째 청예(靑裔)는 금관(가야)로 도망쳤다.
그런데 이 세 왕자가 정견모주(正見母主)의 아들로써 이들이 ‘대가야’라는 지역에 있었음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위 파사기(婆娑記) 30년 8월 조(條)는 이 ‘대가야’라는 말과 동일하게 비지(比只)를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지(比只) 태자 보일(寶日)은 어찌되었고, 차자(次子)인 주일(朱日)은 어찌 되었고,
그 동생인 청예(靑裔)가 어찌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대가야=비지국(比只國)>이라는 것입니다.
‘대가야’ 지역은 오늘날 만주, 한반도, 및 일본열도 전부인 것으로 사서(史書)를 비교 검토해보면 드러나는데,
물론 이 ‘안’에는 수많은 소국(小國)들이 있겠지만, 그 종주국(宗主國)은 분명히 비지국(比只國)임이 상기 파사기
(婆娑記) 30년 8월 조(條)에 의해서 확실해 지는 것이지요.
이 비지국(比只國)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원래 한반도(韓半島)에 자리 잡았던 비지국(比只國) 자리에 관경삼국
(管境三國)을 - 고구리, 백제, 신라를 뜻함 - 잘못된 사학(史學)의 영향으로 옮겨오게 되자, 이 비지국(比只國)의
유물(遺物)이 전부 삼국(三國)의 유물 - 나아가 원삼국(原三國)이란 해괴한 이름의 유적(遺蹟)으로 변해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현 한반도(韓半島)에 자리 잡은 비지국(比只國)의 유물(遺物) 가운데, ‘가림토-결승
(結繩)’을 운영하기 위해서 있었던 유물들이 발견이 된다는 것입니다.
2) ‘농경문 청동기’란 유물(遺物)
그것이 ‘대전시 괴정동(槐亭洞)’에서 출토된 <농경문(農耕紋)-청동기(靑銅器)>입니다.
길이 13.5 센치 밖에 안 되는 이 청동기는 방패형(防牌形)으로 되어 있는데, 그 속에 ‘긴 깃털’을 머리에 꽂은 남자가
벌거벗은 채로 성기(性器)를 꼿꼿이 세우면서 ‘따비’로서 땅을 파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청동기(靑銅器)입니다.
그런데 이 농경문(農耕紋)-청동기(靑銅器)는 윗부분에 ‘못’을 박을수 있는 구멍이 6개 뚫혀 있고, 그 밑에는 ‘고리’가
달려있는 꼭지인 뉴(鈕)가 있는 모습입니다.
이 농경문(農耕紋)-청동기(靑銅器)들은 구조적(構造的)으로 볼 때에, 결국 긴 가로 막대에 수평(水平)으로 일정한
거리로써 못(=정(釘)을 박고, ‘달려 있는 고리’를 통해서 언지(言只)를 끌어 올리는 ‘걸리는 고리’ 역할을 한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백해(白亥)란 ‘열기구’에 언지(言只)를 매달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로 막대’가 있는 시설물(施設物)에
언지(言只)를 매달 수도 있는 것입니다.
3) 배목(拜木)과 연차(奱車)
한자(漢字)에 ‘절하다’라는 뜻의 배(拜)란 글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손 수(手) 변(邊) 옆에 가로 막대가 4개 있고, 이를 관통하는 수직(垂直) 기둥이 하나 있는 모양입니다.
이를 ‘신속히 흐를 <후>’라고 하는데 완전히 사어(死語)가 되어서 ‘아주 큰 자전(字典)’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 글자
입니다.
(봉(丰)은 가로막대가 3개임, 그리고 이는 ‘풀이 뾰족하게 내미는 모습’이란 뜻임.)
즉 고대(古代)에는 이런 <후>란 언지(言只)들을 가동할 수 있는 대(臺)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 밑을 지나갈 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대화하게 할 수 있는 신성(神聖)한 건축물’이란 뜻에서 손을 모아서 절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한자(漢字)의 배(拜)란 글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나무 구축물을 굳이 이름 붙이면 <배목(拜木) - ‘절해야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농경문(農耕紋)-청동기(靑銅器)는 이런 <배목(拜木)>에 수평으로 못을 통해 ‘박혀 있던 것’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역할은 물론 ‘언지(言只)를 끌어올리고 내리기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그림으로 나경(裸耕)이 그려져 있는 이유는 ‘쌍 방향적으로 언어를 시각화하면서 집단적인 학습’은
‘언어(言語)끼리 섹스(SEX)’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식물(植物)이 자라날 수 있도록 땅을 가는 것과 흡사함을 유감
(遺憾)시키기 위해서 였던 것이지요.
의외(意外)로 이런 배목(拜木)은 오래 동안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즉 거대한 마차(馬車) 위에 이런 배목(拜木)을 싣고 다니는 특수한 마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련>이라고 하는데 - 글자 상부(上部)에 <糸言糸>가 있고, 그 밑에 <車>가 있는 글자입니다.
구개음화(口蓋音化) 시키면 결국 이런 차(車)를 <연차>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왜 이 <연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모르는 ‘외국인’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이 <연차>들이 대거(大擧)등장하여 서로
연결되어 - 이를 련(奱)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연결해서 이룬다’는 것임. - 쌍 방향적으로 언어를 시각화하면서
집단적인 언어의 학습에 들어가는 ‘잊혀진 풍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 <연>이란 글자 즉 ‘상부(上部)에 <糸言糸>가 있고, 그 밑에 <車>가 있는 글자’가 지원이 안 되어서 연(奱)으로
대신해 연차(奱車)라고 썼음)
아무튼 이런 모든 ‘가림토-결승(結繩)’의 종주국(宗主國)은 현 한반도의 나라 비지국(比只國) 즉 ‘모방하여야하는
언지(言只)의 나라’이었던 것입니다.
한반도에 들어섰던 나라가 <대한국(大漢國)=대가야=대왜(大倭)=비지국(比只國)>임을 분명히 하는 것도 아시아
고대사(古代史)를 바로잡는 중요한 초석(礎石)이 된다고 봅니다.
왜냐?
그것은 ‘중국대륙’에 아시아 세계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삼한(三韓) 사람들이 이 한반도에 주로 피신해 있다
가, 다시 화백(和白)과 신시(神市)를 중심으로 하는 순방체제를 재공급하는 기지(基地)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지국(比只國)은 ‘아시아(Asia)인에게 <르네쌍스>의 항상적인 거점’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비지국(比只國)을 바탕으로 뻗어나간’, 고구리, 백제, 신라를 오히려 ‘비지국’ 강역 ‘안’에 집어넣으니깐,
‘고대사(古代史)의 지리(地理) 비정(比定)’이 온통 자멸(自滅)적 현상을 띠게 되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멸(自滅)이란 관경삼국(管境三國)인 고구리, 백제, 신라의 모태(母胎)가 되는 비지국(比只國)을 그 자식-뻘
인 관경삼국(管境三國)이 ‘같은 지역’ 안에 들어와서 충돌을 일으키는 살모사(殺母蛇)적 현상을 일으킴을 뜻합니다.
아무튼 <대가야=대한국(大漢國)=대왜(大倭)=비지국(比只國)=한반도(韓半島)에 자리 잡은 나라>를 확고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4) ‘농경문 청동기’와 나경(裸耕) - 지(只)의 비(雨)가 내리기를 기원(祈願)
그런데 이 ‘농경문 청동기’안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 벌거벗고, 따비로써 땅을 파는 모습 -보고, 민속학자 및 고고
학자들이 나경(裸耕)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이조참판 유희춘(1513~1577)이 남긴 ‘미암 (眉巖·유희춘의 호)선생집’에는 ‘입춘나경의(立春裸耕議)’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는 미암 선생이 함경도에서 유배생활을 했을 때 목격한 이 지방의 풍속을 적은 글 중 하나로, ‘입춘날 홀딱 벗고
밭을 가는 풍속을 논한다’라는 뜻입니다.
아무튼, 미암 선생은 이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입춘 나경은) 먼 변방의 비루한 풍속에서 나온 것이다. 지식인들은 이를 해괴하게 여기지만 백성들은 즐거워한다.
매년 입춘 아침에 지방관 앞에 모이게 한 뒤 관문(官門) 길 위에서 나무로 만든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게
하여 심고 거두는 형태에 따라 한 해를 점치고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다.
이때 밭을 가는 자와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옷을 벗게 하여 차가운 기운을 몸에 닿게 하니, 이 얼마나 해괴한가?
(이 제도가 시행되는 이유에 대해) 관에 물으면 백성의 풍속이라 하고, 백성에게 물으면 관에서 시킨 일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나경(裸耕)의 풍속은 원래 기우제(祈雨祭)의 한 형식인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천지(天地)간의 섹스(sex)현상으로 운우(雲雨)를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비(雨)가 안 오면, 여인(女人)들이 낮은 산(山) 위에 오르게 해서, 홀딱 벗고 춤을 추게 한다던가, 남자들이
홀딱 벗고 땅을 판다든가 하는 행위로 운우(雲雨)가 내리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즉 비(雨)와 ‘비나이다. 비나이다.’할 때의 ‘비’의 기원(祈願)은 밀접한 상관이 있고, 이는 나경(裸耕)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지(比只)의 어원(語源)이 한글로는 “지(只)의 비(雨)가 내리기를...”기원하는 말의 축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즉 ‘비지국’의 순수한 한글의 뜻은 ‘지(只)의 내림에 대한 기원(祈願)’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농경문(農耕紋)-청동기 이외에도 ‘대나무 형태’에 ‘고리’가 달려서 배목(拜木)에 지(只)를 걸어서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게 하는 비지국(比只國) 유물(遺物)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 고고학(考古學)에서는 “저런 형태의 유물(遺物)은 어떤 용도로 쓰려고 제작된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용도는 생각 안하고, 그 안에 있는 무늬만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 고고학계에는 지나치게 심합니다.
그래서 용도만 정확히 밝히면, 세계적인 유물(遺物)로 존경을 받는 것이 많음에도, ‘안타깝게도’ 이를 자랑할 줄
모르는 괴상한 전통이 있게 된 것이지요.
라. 피라미드(pyramid) 문명의 공통점 - ‘가림토-결승(結繩)’ - 큐프(quipu)와 앙크(Ank)
그런데, 한반도가 비지국(比只國)이었고, 이는 ‘대가야’, ‘대한국(大漢國)’의 이칭(異稱)이었음을 인정하고,
또 이 한반도에 고인돌이 전세계의 70 % 이상이 있고, 나아가 즙안의 피라미드(pyramid)가 12,000개 있음을 기억하면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피라미드(pyramid) 문명에는 ‘가림토-결승(結繩)’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림토-결승’이 선가(仙家)에 의해 ‘생명공학’과 깊은 연관관계에서 발달되었음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나오는 앙크(Ank)를 유념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암수를 구분하는 기호는 - <화살표>와 <거울 모양>이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그려져 있는 앙크(Ank)를
보고, 서구 학자들이 인용(引用)한 것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앙크(Ank)는 꼭 <한(韓)-가위>에 ‘고리’와 ‘갈고리’가 있어서 서로가 걸고 블레이드(blade)를 움직이는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실제 벽화에서 이집트 피라미드(pyramid) .벽화에서 “생명을 주었다.”라는 그림은 전부 이런 앙크(Ank)를 한 무더기
를 주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잉카 문명에서는 큐프(quipu)라는 이름의 결승(結繩)을 쓰고 있었지요.
다시 말해 모든 거석문명에는 <생명공학> <가림토-결승(結繩)>적인 현상이 - 다시 말하면 <지(只)에 대한 기원
(祈願)>이 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반도의 비지국(比只國)이 있었다.”는 것은 세계 피라미드(pyramid) 문명의 시원(始原)이었을 가능성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리 멀리까지 나가기 용이한 것도, 일찍이 이 비지국(比只國)에서 ‘고래’와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대화하고, ‘고래’에 고삐-걸이 수술을 해서 고래들이 끄는 선박을 타고 나갔을 개연성이 큰 것이지요.
(좌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