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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요갱의 신분은 양민이었다고 하며 어느 양반의 첩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양반댁이 역모에 휩쓸려 남편은 역모죄로 죽게 되고 이에 초요갱은 관기로 전략하여 기생이 된다.
이때 평원대군과 운명의 만남이 이뤄지며 평원대군은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 태어난 5번째 왕자이다.
평원대군 나이 18세에 초요갱은 그의 첩이 되었고 초요갱의 나이는 한 살이 더 많았다고 전한다.
초요갱은 평원대군이 소개한 조선의 음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박연의 수제자로 궁중 악무의 전수자가 된다.
그러나 평원대군은 그의 나이 19세에 천연두로 요절하고 초요갱은 두 번째로 사별하는 남자이다.
초요갱(楚腰坑)은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기생 중 단연 1위가 아닐까?
초요갱(楚腰坑)이란 이름은 회초리 초, 초나라 초(楚), 허리 요(腰), 빠질 갱(坑)이다.
허리가 회초리처럼 가늘게 잘 빠졌다는 뜻이 아닌가!
초(楚)나라의 미인은 대체로 허리가 가늘고, 한번 사랑에 빠지면
결코 그녀에게 헤어나질 못한다고 어느 한량이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이였단다.
이쯤되면 허리가 가는 것이 아닌 허리 움직임이 요란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요분질이란 허리 움직임이니 말이다!
이들의 만남은 궁궐 속의 왕자들과 고관대작의 자식들 그리고 지방관료 등과 그 자식들의 넋을 빼앗게 되는 시초가 된 것으로
장안이 떠들썩하게 만든 유명한 기생이었으니 어찌 꽃을 보고 탐하는 벌과 나비가 한 둘 뿐이겠는가!
물고기가 물을 만났다!
궁에 들어 왔는데 세종의 그 많은 왕자들의 눈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잠깐 세종의 후궁들과 왕자들을 살펴보면 재위 32년간 왕비 1명, 후궁 10명, 자녀는 18남 4녀를 두었으니
*소헌왕후 = 장남인 왕세자 이향(王世子 李珦)=제5대 문종(文宗) 등 8남 1녀
1. 영빈 강씨(令嬪 姜氏) 사이 = 화의군 이영(和義君 李瓔),
2. 신빈 김씨(愼嬪 金氏) 사이 = 계양군 이증(桂陽君 李璔) 등 6남 2녀,
3. 혜빈 양씨(愍貞惠嬪 楊氏) 사이 = 한남군 이어(漢南君 李??) 등 3남
4. 숙원 이씨(淑媛 李氏), 5. 귀인 박씨(貴人 朴氏), 6. 귀인 최씨(貴人 崔氏), 7. 숙의 조씨(淑儀 曹氏),
8. 소용 홍씨(昭容 洪氏), 9. 상침 송씨(尙寢 宋氏), 10. 사기 씨(司記 車氏) 등이다.
나랏 일을 잘하는 정치인이 첩과 자손이 많은 것인가? 아니다.
세종을 숭상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의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초요갱!
그녀는 궁에 들어온 후에 세종의 3명의 왕자들과 번갈아가며 정을 통하니
3번쩨 남자는 화의군 이영, 세종과 첫 번째 후궁 영빈 강씨 소생이다.
수양대군 측근의 고변에 의해 단종은 화의군에게 유배를, 초요갱은 곤장 80대의 형벌을 내렸다.
이 사실이 요부 초요갱이 조선왕조 500년의 신록에 16번이나 등장하는그 첫 번째가 사건이 된다.
실록과 왕자들 그리고 고관대작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미모와 재예(才藝)를 갖춘 요염한 여인이었 것 같다.
고관대작들을 상대했기 때문인지 사방지나 어우동처럼 큰 향벌을 받지 안았다는 사실...
4번째 남자는 세종의 6번째 아들인 금성대군 이유이고 금성대군은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고 귀양갔다가 죽는다.
5번째 남자는 좌의정 신개의 3째 아들 신자형이며 초유갱에게 미쳐 날뛰어 안방을 차지하게 한다.
이어서 신자형의 7촌 조카뻘인 안계남이 초요갱을 강탈하기 위해 신자형의 안방으로 들이친다.
궁안의 왕자들이 이미 초유갱과 사통을 하였으니 초유갱을 넘보고 덤벼드는
뭇사내들은 왕자들의 호위무사들에게 발각이 되어서 죽음을 맞이한다.
요부???
초요갱과 관계를 가진 사내들은 대부분 요절을 하니 남자들에게 횡액을 가져다 주는 요부와 같은 존재였을까?
초요갱이 가져다 준 죽음이 아닌 이들 사내들이 불나방처럼 초요갱에 달려들다 불에 타 죽은 것일까?
이후 초요갱이 실록에 등장하는 것은 남이 장군이 반대파 괴수의 애첩였던 탁문아를 범했다가 숙청됐을 때
평양부 관기로 쫓겨간 초요갱이 평양도 도사 임맹지가 초요갱과 정을 통했다 올린 고소 사건 때
평양도 부사 이덕량의 보좌관 박종직(기생 망옥경과), 그리고 소서시(기생)와 사통하려다 거절 당하자
그 어미를 때려 죽인 사건 때 평양관찰사 엄세겸(함로화)의 사통 사건 이후에 초요갱은 실록에서 그 이름이 사라진다.
여기서 잠깐, 당시 기생의 이름으로 각자의 특징을 알 수가 있다.
허리가 가늘어서 ‘초요갱(楚腰坑)’이었다면,
피부가 옥같이 희고, 몸에서 향 냄새가 난다고 해서 ‘옥부향(玉膚香)’.
자하동의 선녀라고 해서 자동선(紫洞仙)..
남이 장군의 기첩 ‘탁문아(卓文兒)’는 글을 잘 지었음에 틀림없고,
”이슬을 머금은 꽃“이라는 뜻의 ‘함로화(含露花)’란 미녀 기생도 있다.
세조는 초요갱을 제외한 4명의 기녀들 신분을 면탈해 주었다고 한다.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 이보와 세종의 서자인 익현군 이관이 나주 기생 옥부향(玉膚香)과 사통을 하였다.
즉, 큰아버지가 사랑한 기생(愛妓) 옥부향과 통정을 하였던 것이다.
"청솔애"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사랑한다“는 닉도 기생 이름일까?
초요갱! 참으로 대단한 여자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 속에 세종 시대부터 3대의 왕조실록에 나왔으니 대단한 여자가 아닌가?
나는 기생들을 좋아한다. 위에 나열한 기생들이 아닌 문기이고 의기였던 기생들을...
(야담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