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TwVQFJK0ow?si=ZBimRwMhoigPkHue
#웹에세이
면 회
가을물 드는 저녁
빛바랜 가방 하나를 비탈진 가슴에 안고서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남자는
짧은 한숨 속에 숨겨진 긴 그리움을
짙은 담배 연기로 뱉어 놓고는 덥수룩한
휜 수염 속에 돋아난 지난날을 회상하더니
봄바람에 실졸음 오듯 눈을 감는다
“아버지…. 가지마예”
아내의 가출로 만신창이 된 집을 떠나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다 돌아온 집에서
하루를 전부 낮처럼 술과 함께 보내고 있는 피폐해진 아버지를
그래도 가족이라고 아픔을 배워버린 눈동자로
바짓가랑을 부여잡고 있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의 가슴은 나만 태우다 굳는 촛불처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너한텐 애당초 부모는 없다고 생각혀라”는
말을 하고선 홀로 겨울을 나는 새처럼
집을 떠난 지 벌써 10년하고도 2개월이 흘렀고
빈 거리만 떠돌며 잃어버린 세월을 채워가고 있다는 말만
바람에 실려 오고 갈 뿐이었다
떠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런 시간이 흘러간 자리를 더듬어
해를 숨겨버린 골목을 돌아 빈집을 지나는 바람처럼
걸어 들어온 남자는
녹슨 가구들이 비틀어도 나올 것 없는
아픔들만 놓여있는 공간만 채우고 있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인기척에 빼꼼히 내다보고 있던 여자가
아는척을 하고 나선다
“이게 누구라예..
섭이 아버지 아닌교‘
남자는
어떨결에 봄비에 잠든 낙엽처럼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순돌이 엄마도 잘계셨는교”
“아이고마 무심하구로
그 어린걸 놔두고 이제오면 우야는교
섭이는 오매불망 지아버지 오기만 기다렸는데 ”
“미안합미더 다 지가 못나서리..
근데..섭...이..는...”
가파른 언덕을 밟고 올라선 바람처럼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아버지를 보며
순돌이 엄마는 지나간 날들을 되새기듯
한마디 뱉어놓는다
“저번달에 군에 가심더..
가기전에 행여나 울아버지 오면은
꼭 전해주라꼬 이걸주고 가데예...“
아들이 주고간 편지 한장을 굽어진 손가락에
힘을 주며 읽어 내려가던 아버지의 눈에서는
가시돋힌 핏발이 돋아나더니
곧 허물어진 눈물로 변하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을 따라
그 편지의 끝을 잡고 찾아 간 곳은
아들이 복무한다는 부대 앞이었고
지난 날을 회상하고 있던 남자 앞으로
한 군인이 다가오는걸 보며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걸터앉은 바위에 비벼끄며 남자는 일어선다
“김일병이 만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보내기 싫은 가을을 붙들고 우는 겨울처럼
붉어진 얼굴로 애원하듯 다시한번 말해
보지만 빈 수레 언덕길을 올라가듯
허탈한 걸음으로 걸어온 군인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 뒤 뒤돌아 서고 있다
남자는 내리는 비에
아들에 대한 보고픔을 걸어둔채
바람 속에서 이별을 전한 뒤 노쇠해진
어깨를 옷가지에 애써 감추며 발걸음은
부대와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서쪽 하늘에 노을 그리는 일이 남았다는
핑계로 쉬 넘어가지 못하는 저 태양처럼
아버지의 얼굴은 아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연신 뒤돌아보고 있었다
지난 세월이 준
견뎌야 할 서글픔만으로 채워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애써 감추며
내무반 유리창에서 바라보고 있던
아들의 눈에서도 말하지 못한 깊어진
그리움은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고
봄볕처럼 야위어진 걸음으로 멀어져간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있던 아들은
지금
이렇게라도 눈물 흘리며 아파해야
나중에 덜 아파할 것 같다는 말을
눈물로 대신 전하고 있었다
바람이 닦아놓은 겨울이 머문 지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에 햇살을 끌고 와
가슴에 대어주어도 시린 가슴이 된 아들
앞으로 전해진 전보 한 장
“xx 교도소
xxx 위암으로 사망“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죽기 전 마지막 아들의 모습을
보러 왔었고
아버지는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죽는 그 날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만
바람을 타고 놀다 떨어진 낙엽들이 전해주고 있었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상자 안에는
헤어진 그 날의 시간 사이사이
홀로 남겨진 아들을 위해 모아온 통장과
까맣게 돋아나는 아픔들로
아들에게 써놓은 편지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아들에게만은
눈물 속에 담겨있는 아픔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용서와 기다림의 시간은
끝내 오지 못한 채....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