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33-42절. 가마리엘의 중재. 요약설교
33절.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1. ‘율법교사’란 유대교의 두 종파 사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 중에서 힐렐학파의 시조격인 힐렐(가말리엘의 할아버지)과 시므온(가말리엘의 아버지), 가말리엘을 이어져서, 주후 80-118년에 살았던 가미리엘에 이르기까지 모세 율법에 충실하려고 했던 유대교 종파의 서기관들과 율법교사들을 가리킵니다.
가말리엘 같은 율법교사는 천여명의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었으며, 500명은 모세 율법을 연구했고, 500명은 헬라의 지혜를 연구하여 탈무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헬라의 시들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aker.
‘가말리엘’은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공회의장은 아니었으나, 당대에 가장 존경 받는 유대인 교사였고(most famous Jewish teacher), 역시 유명한 율법 교사인 힐렐(Hillel)의 손자였으며, 사상이나 성품이 온건한(moderate)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 대한 처벌에 대해서도 온건한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이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유명한 사람은 탈굼 학교 옹켈로스(Onkelos the Talgumist)와 사울인데, 이 사울은 나중에 예수 믿고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행 22:2-3)
이 가말리엘은 기독교 전승기록(Clementine Recognition)에 의하면, 나중에 그의 아들들인 아힙과 니고데모와 함께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AD 70년이 되기 전에 AD 62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Baker
2. 가말리엘은 베드로와 요한을 밖으로 내보낸 연후에 저들에게 말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은 여러 사람과 같이 있을 때에는 말을 바로 할 수도 없고, 내 잘못을 인정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형제가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동생 앞에서 형을 때리면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하면 죽어도 안 합니다.
그러나 엄마와 큰 아들이 일대 일로 단둘이만 있을 때에는 엄마가 아들에게 잘못했다고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합니다.
하지만 동생이 옆에 있어서 자신이 매 맞는 것을 동생이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즉 베드로와 및 사도들이 서 있는 그 앞에서 대제사장이 '가말리엘 당신 말이 옳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밖에 나가게 한 것입니다.
35절.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절.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이 ‘드다’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역사 기록이 없습니다.
37절.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갈릴리인 유다는 갈릴리 동부 골란 지역 가말라(Gamala in Gaulantis) 출신이고,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유대고대사 18권 1장 1절)
이 갈릴리 유다는 로마군대에게 파멸 당했으나, 그 후로 이 사람의 독립운동을 이어받아서 소위 ‘열심당원’(the Zealots)이 생겼습니다. (행 1:13, 마 10:4) <유대전쟁기 2권 8장 1절>
이 열심당원들 중 도망간 사람 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열심당 시몬(Simon the Zealot)이라고도 하고, 가나안인 시몬이라고도 하는 사람입니다. (마 10:3, 눅 6:16)
38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이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의 지도자로서 부활을 믿었고, 참 신중한 사람이었는데, 당시 같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나 아래마대 요셉과 같이 나중에 기독교에 복중한 허다한 종교지도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행 6:7).
이전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중생의 말씀을 들었고(요 3:1-6), 공회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내버려두라고 충고했고( 요7:50-51), 아리마대 요셉은 대제사장 가야바와 공회의 행위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눅 23:51)
이 가말리엘이 예수교에 대해서 신중하고 관대했던 것은 소년 예수님이 12세쯤일 때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대담할 때, 아마도 가말리엘이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눅 2:46).
39절.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신중한 유대교 교사인 가말리엘의 주장대로, 유대교 지도자들은 신흥 기독교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음부의 권세가 예수님의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마 16:18).
이처럼 예수님의 교회는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기원을 갖고 설립된 자연종교들 즉 불교와 유교와 회교가 예수님의 교회를 결단코 이길 수 없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는 이교도들의 압박과 공격에도 굳굳하게 살아남았으며, 오히려 이교도를 정복해버렸습니다.
40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율법교사 가말리엘이 관용론을 주장하여 만장일치로 산헤드린 재판이 가결되었지만, 반바리새파인 사두개파 사람들이 사도들을 채찍질하는 형벌을 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채찍 형벌을 당하셨고( 요 19:1), 나중에 바울도 다섯 번이나 이 형벌을 당했습니다( 고후 11:24).
이 채찍은 두 가닥의 가죽끈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가죽끈에는 동물의 뼈나 톱니 같은 쇠가 달려 있어서, 전갈 채찍이라고도 불리어졌습니다(왕상 12:12).
그렇지만 ‘채찍질’이란 형벌은 사형과 같은 중형이 아니고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해당한 형벌이었습니다.(The punishment was for minor offenses).
이 채찍질은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 말씀한 대로, 40에 하나 감한 채찍질이었습니다.
이 채찍질은 살갗이 찢어지고, 가끔 죽기도 하는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 설교 -
1. 유대인 지도자들이 살기등등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 바로 그때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바리새인 교법사가 나서서 지혜로운 말로 사도들을 죽이지 못하게 만류합니다.
이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믿기 전 스승이었습니다(행22:3).
히브리 문헌에 보면 <힐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율법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한 말은 「탈무드」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온 유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힐렐의 손자가 바로 가말리엘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가말리엘을 힐렐 만큼이나 유명하고, '율법의 영광'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이 가말리엘은 다른 랍비들 보다 더 존경을 하려고 ‘라반’이라고 불렸습니다.
가말리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아"라는 말로 말문을 엽니다.
"여러분"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들아"라고 말한 것은 선민의 특권과 영광을 내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먼저 선민의 긍지를 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니 소홀히 처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라는 의식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36절)"라고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방법입니다.
즉 히브리 사람들은 추상적 이론이나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언제나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가말리엘이 본문에서 예로 들고 있는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입니다.
(1) 그 첫 번째 예가 바로 '드다'라고 하는 사람에 관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드다는 BC 4년에 죽은 사람입니다.
드다는 자칭 메시아라고 나서서, '나는 여호수아의 후예로서 여호수아처럼 이 민족을 구할 것이다. 맨발로 요단강을 건너게 해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로마의 지배에서 유대나라를 기적적으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사람의 수가 약 사백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다가 로마 병사와 싸우다가 주전 4년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흩어져 없어졌습니다.
(2) 가마리엘이 든 두 번째 예는 갈릴리인 유다입니다.
이 유다도 자칭 메시아로 나섰지만, 로마 군사와 싸우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구레뇨가 수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있을 때 사람이었습니다.
수리아 지방 총독 구레뇨는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서 주후 6년에 식민지 백성들의 호적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갈릴리 사람 유다가 나서서 대항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만 세금을 바칠 것이지, 그 누구에게도 세금을 내지 못한다'라는 말로 선민의식을 고취해서 로마에 대항했습니다.
이것은 로마 정부에 대항하는 혁명 운동이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로마에 대항하다가 결국 잡혀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역시 유다를 따르던 무리들이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유다의 독립운동을 이어받아서 소위 ‘열심당원’(the Zealots)이 생겼습니다.
(3) 이 두 사건에서 본 대로 주동자가 없어지면 추종자들이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말리엘은 스스로 메시야라고 주장한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으니, 가만두어도 따르는 무리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39절)
즉 예수 메시아 운동이 하나님의 뜻이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되고, 이것이 인간적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광적인 운동이라면 이제 없어질 때가 되었으니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가말리엘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베드로와 사도들을 협박하고 때려서 풀어주었습니다.
3. 그런데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사도들을 풀어주기로 결정하고서도 사도들에게 채찍을 가했습니다. (40절)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의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고 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42절.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방금 매를 맞고 나왔고 유대인들의 위협을 잘 알면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증언하기를 쉬지 아니했습니다.
참 아름답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성령 충만하고 아름다운 신앙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