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文·이재명의 민주주의는 北 인민민주주의
글쓴이 : 강량 객원논설위원/ 자유일보
신년 벽두부터 궁지에 몰린 문재인과 이재명의 이상하고 놀라운 정신 세계와 괴변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국민 선전, 선동을 위한 언어 및 상징조작에 넘어갈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없다.
쫓기듯 양산을 방문한 이재명에게 문재인은 친문, 친명이란 계파를 넘어 더불어민주당 내 확실한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함을 강조하는 큰 선물을 내렸다. 여전히 안보 불안이 어떻고 민생고통이 어떻다며 윤 정권을 지탄하는 여러 수작을 부렸는데, 그 중 최고 하이라이트는 뜬금없이 한목소리로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서는 안된다"며 합창한 일이다.
이들 스스로 주권과 안보를 포기하고, 공정과 정의, 법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도적질과 화적질을 벌인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아시타비·내로남불·자화자찬의 의인·민주투사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로 어리둥절한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이들의 반지성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특수한 이념사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건전한 양식과 상식으로 이들의 언어교란 공작을 대면할 경우 언제든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만큼 이들의 정치공작은 아리송하게 착한 척하기에 더욱 섬뜩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이들 공작의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하면, 한마디로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위한 통일전선전술로 귀결된다. 문재인과 이재명이 강조하는 ‘민주주의 후퇴’는 바로 자신들이 원하는 인민민주주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아직도 인민민주주의를 다양한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적지 않다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백두혈통을 숭배하는 인민·민족·민중의 세상과 대한민국 국민·시민·성찰하는 인간의 세상을 대비하면, 차원이 다른 두 세상의 구분이 분명해진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한 위선과 기만의 인지부조화 바이러스를 퍼트려, 국민·시민·인간을 복종시키거나 말살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장점이자 단점은 자유주의 자체가 궁극적으로 다원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얼치기 이념성향들도 얼마든지 수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사회 운영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진보해 왔다.
자유주의 안에는 신에 대한 인간의 초월적 믿음이 존재한다. 시민이 깨어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성찰을 기반으로 선과 악이 교차하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품는 것이다. 가족·동료·사회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연민, 시민사회 내 정의와 공정을 통한 신뢰의 형성, 사적 행위에 대한 객관적 성찰과 이타적 보편주의를 통한 사회적 포용성의 확대 등은, 개인과 신 사이에 초월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쉽게 뿌리내릴 수 없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원인 근대성(Modernity)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개인과 신과의 언약은 개인과 개인 간의 약속, 개인과 사회 간의 신뢰관계로 이어졌고, 결국 여러 형태의 합법적인 계약관계로 사회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이런 사회적 신뢰관계의 발전과정은 사회구성원들이 무정부주의로 가는 것을 방지하고, 개인·사회·국가가 하나로 연결되어 건전한 국가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일제에 저항하는 3·1 독립운동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근대의 문은 종교인들이 가장 먼저 열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내에는 각각 1500만 명의 기독교인과 불자가 존재하며, 여타 고등종교의 신자수도 천만명을 넘어 선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오랜 종교적 전통은 알게 모르게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습속 (Mores)이 되어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이론도 이 습속의 벽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자유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문재인과 이재명의 현란한 사기와 거짓의 바이러스는 가족·사회·국가에 대한 대한민국 종교인들의 믿음과 연민의 벽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