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光復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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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제에서 국권을 회복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 1945년 8월 15일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경축하며 독립정신의 계승을 통한 국가발전을 다짐하기 위하여 1949년 제정되었다. 이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주관 하에 다채로운 광복절 기념행사가 전국적으로 펼쳐지며, 서울 보신각에서는 타종행사가 열린다.
잃었던 국권의 회복을 경축하고 독립정신의 계승을 통한 국가발전을 다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15일이 '독립기념일'로 의결되었으며,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날 독립과 관련되어 의미가 있는 독립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정부 주관 광복절 기념행사가 개최되며, 독립유공자들의 애국 정신을 기리며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타종행사가 보신각에서 열린다. 이밖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축하공연 등이 펼쳐진다.
1952년 광복절 기념식 전경
ⓒ 국가기록원 | CC BY-SA
광복절 노래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1950년 4월 문교부 제정)
이삭빛 교수님 수상작입니다!
첫눈
이삭빛
가을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소리에 그대여, 슬퍼하지 마라.
가을이 깊어져 겨울이 되어서야
네가 내게로 올 수 있나니
그대여!
겨울은 어쩌면 내 생에 가장 빛나는 봄날,
그리움의 주머니에 네 눈빛을 넣고
네가 좋아하는 메타세콰이어 길에
눈송이 같은 미소로 마중 나가 있을 테니,
사랑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청춘으로 내게 와라.
심사위원장 노벨재단 유재기박사/교수 (의장 및 사무총장)
수상을 하시는
- 이삭빛시인은 정인승학글학자 전국글짓기대회 심사위원장 및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동
- 이번 수상 후 유관순 문학상 수석부회장인 심사위원으로 활동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삭빛 원장님 축하드립니다!
역사의식까지 드높이고 있는 이삭빛 시인님, 사랑해요!
제79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제28회 유관순 문학상에 이삭빛시인이 선정됐다. (유관순 열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유관순열사의 정신을 기리기위해 에이펙셀전시관(서래빌딩-세계 3대 투자자로 유명한 짐 로저스가 실제 다녀간 곳) )에서 문학상을 지난 10일 수여했다고 밝혔다.
문학신문사가 주관하고 유관순문학상위원회(심사위원장 유재기박사)가 이삭빛(본명 이미영)시인의 ‘가슴으로 만난 사람은 꽃이다Ⅳ’에 수록된 ‘첫눈’을 수상 작품으로 결정, 수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과 함께 노벨재단, 동양문학, 노벨타임즈, 샤론의꽃 등의 후원으로 노벨생리의학상 후보인 홉킨스대학(29명의 노벨 수상자 배출)출신, 전기엽의학박사『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치료와 해독 어떻게 해야 할까』의 노벨재단 주최로 출판기념회도 이어졌다.
사회는 국용호 전국기자협회 사무총장, 초청 축시로 이삭빛시인이 의역한 사무엘울만의 청춘을 노상근(현석 시활동가1호, 교육학박사)안중근장군(의사)전주기념관 관장과 이삭빛시인이 콜라보로 낭송해 많은 의미를 시사했다는 호평이다.
이삭빛시인은 시치유 시인으로 얼굴없는 천사마을에 천사시를 헌정하며, 국민천사시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또한 이시인의 ‘아들을 위한 서시’가 충남 보령시 시와 숲길 공원에 명시로 선정돼 시비로 설립됐다. 이 공원에는 일제에 항거한 한용운, 윤동주 등 항일 시인을 모신 민족시인 추모 분향단이 설치된 대한민국의 평화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시인의 성지로 광복절을 맞이해 문학상 수상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는 평이 잇따랐다.
또한 이시인은 세계아카데미 학술원에서 명예문학박사로 선정돼 지난 6월에 학위증서를 받았다고 밝히며, 오는 9월에 학위수여식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시인은 현재 (주)리애드코리아 문화사업부 (원장), 한국그린문학(발행인), 국립 노스웨스트 사마르대학NSSU 문예창작(교수), 각종 문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가슴으로 만난사람은 모두 꽃이다와 우분트, 당신은 나의 푸른 마중물 등의 대표시집이 있다.
문학상에는 여성부장관표창, 전북도지사표창 및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한불문학상, 무궁화문학상외 노벨재단예술훈장수훈외 수십개 문학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서정시인이다.
유관순문학상 유재기 심사위원장은 “이삭빛 시인의 '첫눈’은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자연의 변화를 통해, 시인은 유관순 열사의 헌신과 그리움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겨울은 어쩌면 내 생에 가장 빛나는 봄날’이라는 구절은 유관순 열사의 희생이 결국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가져왔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사랑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청춘으로 내게 와라’는 구절은 유관순 열사의 순수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우리 모두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삭빛 시인의 '첫눈’은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는 동시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준다. 이 작품은 유관순문학상의 취지에 부합하는 훌륭한 작품으로, 이 상을 수여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심사평을 말했다.
노벨재단 박수정 여성총재(세계기네스북 보유자)와 최바울 전)서울대교수, 목사는 “역사와 민족을 위해 한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번영을 위해 몸을 바치신 유관순열사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을 선보여 감사하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정신이다.” , “젊은 사람들의 열정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내빈으로 노벨재단 조평열 심의위원장, 강대일 서울대학교 이사, 노상근 안중근장군전주기념관관장, 도범기 국제사진작가 등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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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춘
사무엘 울만(1840~1924)
- 의역: 이삭빛 시인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상태를 말한다네.
그것은 장미 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네.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육십인 그대에게 청춘이 있다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적인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한다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떨어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라네.
열여섯 살이든 육십 살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라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우체통이 간직되어 있다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가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라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라는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스무 살 일지라도
이미 늙은 이와 다름없다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라는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 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라네.
*번역시인이 낭송 할 때 소리음가를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해 기수 서수를 달리해 번역함~ 참고로 번역한 시인은 낭송가이기도 함.
사무엘 울만 (1840년 4월 13일 ~ 1924년 3월 21일)은
미국의 사업가이자 시인, 인도주의자, 종교 지도자였다.
그는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이 가장 좋아하는 시 "젊음(‘청춘’으로 번역 됨)"으로 오늘날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시는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무실 벽에 있었는데, 그는 일본의 최고 연합군 사령관이 되었다.
또한 맥아더가 연설에서 시를 인용하여 미국보다 일본에서 더 잘 알려지기도했다.
1840년 호헨졸렌 헤칭겐에서 유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울만은 1851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차별을 피했다.
울만 가족은 미시시피 주 포트 깁슨에 정착했다. 잠시 남부 동맹 군대에서복무한 후,
그는 미시시피 주 나체스에거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울만은 결혼하고 사업을 시작했고,
도시 알더맨으로 봉사했으며, 지역 교육위원회의 일원이었다.
1884년, 울만은 앨라배마주 신생도시인 버밍엄으로 이사했고, 즉시 도시의 첫 번째 교육 위원회에 배치되었다.
18년간 복무하는 동안 그는 백인을 위해 제공된 것과 유사한 흑인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혜택을 옹호했다.
울만은 수많은 공동체 활동 외에도 회장으로 봉사한 후
에마누-엘 템플(에마누엘 템플(Temple Emanu-El)은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 있는 개혁 유대교 신자들이 모인곳)에서
개혁 유대교도들의 랍비로 봉직하기도 했다.
종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항상 존경받는 울만은 나체스와 버밍엄의
종교적, 교육적, 공동체 생활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은퇴 후 울만은 편지, 에세이, 시를 쓰는 등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열정 중 하나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시와 시적 에세이는 사랑, 자연, 종교, 가족, 친구의 서둘러 생활 방식,
그리고 "젊은"생활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울만이 시인으로서 인기를 끌었다.
맥아더의 영향력을 통해 일본 인들은 "젊음"을 발견하고 시의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되었다.
1924년, 울만은 앨라배마 주 버밍엄에서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버밍엄의 앨라배마 대학교와 앨라배마 주 일본-미국 소사이어티는
버밍엄 사우스사이드 지역에 사무엘 울만 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은 이전 울만 저택에 위치하고 버밍엄에서 앨라배마 대학에의해 운영된다.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Samuel_Ullman
출생: 1840년 4월 13일 독일.(독일계 미국인)
사망: 1924년 3월 21일,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독일출신의 미국인이다.
이시는 78세가 지은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