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커가는 즐거움 / 최종호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지 36년이 다 되어 간다. 교장으로 승진한 지도 6년째다. 정년퇴직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문해력 강의와 컨설팅을 이례적으로 많이 다닌다. 같은 주제로 준비하는 일이 많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홀히 준비할 수 없다. 원고를 들여다볼 때마다 보충할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고 중복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집중하다 보면 목 디스크 증세가 도져 어깨도 아프고 팔까지 저린다. ‘강의 횟수를 줄여야 하나!’ 후회도 하지만 행복한 고민이다. 교장은 현장감이 떨어지기에 교사들의 연수에 강사로 선호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잦은 출장으로 오히려 직원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니까.
문해력의 중요한 요소인 읽기 유창성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10년도 넘었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대체로 글을 잘 읽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유창성이 학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창성을 키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문제 풀이 위주로 부진아를 지도하였다. 이런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아 부진아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학기초의 부진아가 학기말에 구제되었다가 신학기가 되면 다시 부진아가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부진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승진을 앞두고 후배의 권유로 광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업 방법 연수를 받게 되었다. 강사는 수업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쓰고, 전국적으로 강의도 많이 하고 다녔던 분이라 익히 알고 있었다. 퇴직 후에도 일본의 수업 명인들을 초청하여 통역도 하고, 직접 수업을 보여 주는 모의수업 강의도 많이 하여 그 명성이 높은 분이었다. 평생교육원 강의 내용 중에 읽기 유창성 즉, 음독(音讀) 시간도 있었다. 소리 내서 읽는 활동이 왜 중요하고, 반복해서 읽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1분에 몇 음절을 읽어야 하는지 등을 들으며 유창성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특히, 일본의 서점에는 읽기 관련 책이 한쪽 면을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연구가 미미해서 관련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이론으로만 강의해서 지도할 실제 자료는 없었다.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었기에 발령받은 학교에도 틀림없이 학습 부진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1·2학년 읽기 유창성 자료를 먼저 만들었다. 시간도 부족하고, 의욕만으로 쉽게 나올 수 있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감 선생님, 우리 학교에 학습 부진아가 많습니다.” 부임 인사 때 교장의 말이다. 학업 성취도가 낮아 ‘학력 향상 중점학교’로 지정되어 예산도 많이 받아놓았다고 했다.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그럴 것이라고 말했더니, 신기한 듯이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또, 그런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었다. 읽기 자료를 만들어 지도하면 될 것이라고 했더니 성질 급한 여교장은 출근 첫날부터 채근하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교무실에 들어서며 “교감 선생님, 그 자료 다 만들었어요?”하는 것이었다. 부임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러실까,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하면 나오는 것으로 아나, 교감으로서 행정 업무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일이 많았지만, 교장의 재촉이 일주일을 넘어서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결국 3~6학년 담임에게 부탁하여 바쁘게 ‘음독 고개’라는 자료를 마련했다. 물론 교장의 성화에 못 이겨 급하게 만드느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6개월 만에 그 교장은 광주 인근으로 전근 갔지만 전교생 읽기 유창성 지도는 계속하게 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약 10분 동안 지도하도록 지도 시간이 교육계획에 넣었다. 읽기 실태를 알려고 4월에 진단평가를 하고 분기마다 담임이 평가해서 제출하게 했다. 그해 최종 평가는 12월에 내가 교실에 들어가서 했다. 정확하게 평가하여 실태를 알고, 아이들 개개인의 읽기 실력도 파악하려는 것이다. 첫 해에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듬해부터는 서서히 성과가 나타났다. 계속 추진하니까 교사들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포에서 부임한 교장은 아이들이 학예회에서 사회를 보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창성 지도 효과를 제대로 인정해주었다. 그때가 부임한 지 2년 반쯤이 지난 시점이다. 그해 졸업생은 겨우 네 명이지만 중학교에 진학하여 상위권에 들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깨가 으쓱했다. 가까운 도시로 간 한 아이는 1·2등을 겨룬다고 했다. 오로지 유창성 지도만으로 나타난 결과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작지만 강한 학교 즉, 강소학교야!’ 나중에 확인했는데 내가 떠난 지 몇 년이 흘렀어도 이 시책은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노력과 꾸준한 실천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교장으로 승진해서 간 학교에도 부진아는 여러 명 있었다. 담임에게 ‘음독 고개’로 지도해 보라고 권유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학교속의 문맹자들’을 읽었다. 저자는 중학교 국어 교사를 하면서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이해 못 하는 아이들을 보고, 읽기 능력을 기르려고 특별반을 만들어 보충 교육을 했다. 그 과정과 결과를 진솔하게 얘기하고 있으며 학교 안에 숨은 문맹자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담았다. 이후 청주교대로 자리를 옮기게 된 저자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교사 연수까지 추진했다. 내용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개별화 교육 방법이었는데 나도 참여했다. 다른 연수와 달리 가르치며 배우는 5회기의 실행 연수였는데 안타깝게 기초과정에 머무르고 말았다. 청주에서 보성까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내 학교 경영 철학 중의 하나는 교직원과 동반 성장이기에 전문성을 더 이끌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주에서 ‘느린 학습자 개별화 교육 공부 모임’을 이끄는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우리와 같은 과정의 연수를 받았지만 6개월 먼저 수강했고, 수강 시간도 과정에 맞게 확보하여 공부했다. 기초 과정 이후에 발음 중심 접근 방법의 전문가에게 연수를 받아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이 외지다 보니 강사 섭외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접근성이 조금 나은 광주문화초등학교로 장소섭외를 마치고 6회기에 걸쳐 토요일에 연수를 개설했다.
문해력 기초 과정과 심화 과정을 마친 선생님들의 전문성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부진아를 가르치며 배운 느린 학습자 개별화 수업 방법을 강의해 보아야 정리도 되고 한층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배 교장에게 부탁해서 같이 공부한 선생님들이 강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뒤이어 내가 새로 옮긴 근무지에서 두 번째 연수를 추진하여 강의 기회를 마련했다. 두 번의 강의 경험을 살려 동료 선생님들은 자신감을 찾는 듯 보였다. 강의하기 전 모의강의도 하고, 강의가 끝난 선생님에게는 개별적인 피드백도 했다. 이후 같이 공부하는 교감 선생님이 새로 옮긴 근무지에서 연수를 추진하여 세 번째 기회로 이어가자 두려워만 하던 강의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에도 같이 공부하는 모임에서는 꾸준히 서울이나 경기 지역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공부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난독증 아이를 지도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서울에도 다녀왔다. 학교를 옮긴 이후에도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자료를 개발하려고 자주 만난다. 아울러 학교와 교육지원청에서 문해력 향상 연수 강의 요청이 있으면 협의하고 강의를 나간다. 올해는 전라남도교육연수원에서 1정 자격연수 강의에도 나갔으며 내년에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교감으로 재직하면서 유창성 자료를 만들고, 적용해 본 것이 문해력의 토대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교장이 되어 선생님들과 같이 공부하고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을 열심히 해서 문해력 지도 방법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중 젊은 두 여선생님은 <문해력 지원센터>가 있는 청주교대에 파견 나가 있는데 돌아오면 전남 초기 문해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은 역량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해력이 뒤떨어진 아이들을 지도한다. 나도 1학년 한 명을 매일 아침 지도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읽기 능력이 커 가는 것을 보면 즐겁다. “글자를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도구를 갖는 것이다.”고 한다. 보람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