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손가락의 힘 / 최종호
‘퇴직하면 뭐 하고 지낼 것인가요?’ 많은 지인들이 물었지만 정해진 것이 없어 대답하기 곤란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지라 취미 생활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주말이면 가족과 지내며 가끔 여행도 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교단에 있으면서 익힌 문해력 공부를 썩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주일에 2, 3일 동안 봉사할 곳이 없나?’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다문화 지원 센터’나 노인을 대상으로 ‘한글 문해 교실’을 운영하는 곳을 알아 보면 될 것도 같았다. 급한 것은 아니기에 당분간 놀다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찾아 나설 요량이었다.
퇴직을 10여일 앞둔 8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근무하고 있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김중훈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한글을 발음 중심으로 가르치는 전문가로, ‘문해 교육’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 인천에서 초등 교사로 재직하다 교육과정 평가원에 파견되어서 1학년 한글 해득 수준을 알 수 있는 ‘한글 또박또박’ 프로그램과 지도 자료인 ‘찬찬한글’을 개발했다. 경인지역에서 ‘배움 찬찬이 연구회’를 이끌며 한국 난독증 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ㅎ군에 있는 복지원에서 한글 문해 교육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대면으로 수업해야 하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대상은 여덟 명, 횟수는 주 2회란다. 수당이 적은 데다 너무 멀어서 힘들겠다고 했으나 미리 생각해 둔 바가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가치 있는 일이라서 보람도 클 것 같았다. 바라던 일이 퇴직 후에 바로 이어지다니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담당자로부터 바로 연락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답답해서 전화하니 자기도 궁금했다며 휴가 중이란 말을 듣고 참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에 진단 평가 결과를 보내왔다. 1학년 미도달 4명, 2학년 미도달 2명, 자기 학년 수준에 비해 문해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2명이었다. 아이들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떤 교재로 가르쳐야 할 것인지도 알려 주었다. 전문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복지원 담당자와 셋이서 만날 날이 잡혔다. ‘어떤 곳일까?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 힘들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들어 홈페이지를 검색했으나 속 시원하게 알 수는 없었다.
만나기로 한 날, 송정역에서 그를 태우고 복지원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입구는 허름했고 건물로 둘러싸인 마당도 좁았다. 2층 건물이었는데 페인트를 칠한 지 오래된 듯했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한글 해득 수준과 읽기 능력의 차이 그리고 학년을 고려하여 세 반으로 나누었다. 날짜는 화요일과 목요일, 시간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3시부터 5시 20분까지 지도하기로 했다. 장소는 둥근 책상 하나만이 달랑 놓여 있는 비좁은 상담실로 정했다.
첫 수업은 9월 20일부터 시작했다. 교재는 ‘희망친구 기아대책' 기구에서 보내 준 것으로, 자료는 자석 글자와 작은 화이트보드, 필기구 등 내게 있는 것을 활용할 수 있어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얼마나 내 생각대로 잘 따라 주느냐 하는 점에 달려 있었다.
전직 학교장이라는 직함은 버리고, 복지원에 들어오는 여러 강사 중 한 명일 뿐이라며 마음을 다졌지만 수업을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언제 끝나요?’, ‘오늘은 하기 싫다.’ ‘피곤해요.’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이해는 간다. 학교에서 방과 후 공부까지 마치고 돌아왔는데 또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이 싫은 것이다. 유창하게 읽지 못하는 3학년 아이는 교실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다. 같은 학년인 남학생 두 녀석은 아웅다웅 자주 다투며 작은 일에 상처 받고 토라졌다. 6학년 녀석은 진지하지 못하다. 이래저래 수업이 터덕거리기 일쑤였다.
다행인 것은 공부 태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도 일지를 그에게 보냈더니 아이들이 많이 좋아졌다며 ‘저희 한국어(전공) 선생님들보다 진도가 두 배나 잘 나가는 것 같아요.’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수업이 순조롭지 않아 가끔은 속상하고 화날 때도 있었는데 위안이 되었다. 한편으론 여기까지 따라와 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최근에야 복지원에서 어떻게 문해력 지원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기아대책 기구에서 문해력이 약한 아이들을 지원해 준다는 연락을 받고 신청했단다. 지원받는 대부분의 보육원은 선생님들이 영상으로 전문가인 그에게 방법을 배우고 코치를 받아 학생을 가르치는데 이곳 복지원은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구에서 문해력 지원 봉사를 하는 그가 나한테 연락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그가 ‘기아대책 주관 포럼’에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니 다른 곳에서는 평균 20회기를 실시했다. 아마 나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13회기를 했으니까 이제 7회기가 남았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 횟수이면 아이들이 읽고 쓰는 데 크게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언젠가 읽었던 ‘부처님 손가락’이란 글이 생각난다. 힘겹게 끌고 가던 노인의 수레가 작은 웅덩이에 빠졌다. 안간힘을 썼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을 지켜보던 부처님이 티 나지 않게 손가락 하나의 힘을 보탰다. 노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줄도 모르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수레를 계속 끌고 가더란다. 작은 웅덩이에 빠진 복지원 아이들에게 내 작은 도움의 손길이 꿈을 펼쳐 나가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