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막내아들 결혼식장에서 / 곽주현
7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막내가 결혼하겠다는 뜻을 전화로 전한다. 곧 내려가서 뵙고 자세히 말하겠다며 끊는다. 지난 설에 집에 왔기에 서른다섯 살이라 이제는 장가가야 한다고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사귀는 여자 친구가 없다며 그렇게 팔팔 뛰더니만, 갑자기 그러니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했다.
‘이제 이별이 넓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학생이 되자 우리 곁을 떠나 20년 가까이 서울 생활을 해 왔으니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학교에 다닐 적에는 여름, 겨울 방학 때, 회사 들어가서는 설, 추석 명절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어렵게 취직해서 1년쯤 다니더니 그만두고 싶다며 내 의향을 물었다. 큰 회사라 전공을 살려 일할 줄 알았는데 막일꾼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며 불만이 크다. 규모가 커서 모든 과정이 분업화되어 전체적인 공정을 파악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덧붙인다. 이러려고 머리 싸매고 공부했나 하는 허탈감이 들어 근무할 의욕이 없단다. 아버지이자 인생 선배로서 이런 저린 일을 겪고 살았지만, 이러면 좋겠다고 단정 지어 답하기 어려웠다. 한참 침묵하다가 내가 그 회사에 다니라고 권하면 그래도 참고 근무하겠냐고 물었다.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더 말할 것이 없다며 대화를 끝냈다.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수는 내려가고 복지도 줄었지만, 오히려 활기는 넘쳤다. 회사가 땅을 매입하는 것에서부터 건축 설계, 시공, 감리, 분양까지의 전체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즐겁게 일한다.
막내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신붓감 만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회사에서 직원 한 명을 뽑으라 했다. 아들 팀에 있을 신입사원이니 알아서 채용하라 한다. 한 명만 필요하다고 광고했는데 26명이나 원서를 냈다. 면접을 보는데 남다르게 똑똑한 사람이 있어 그 여자를 선택했다. 역시나 일도 잘하고 거기다 얼굴도 예뻐서 미혼남들의 시선이 쏠렸다. 업무를 도와주다가 자연스럽게 차도 마시고 밥도 먹게 되었는데 지내다 보니 고향도 해남이어서 더 가까워져 이렇게 저렇게 되었다 한다. 그러면서 다음 달 4월에 식을 올리면 좋겠다고 급한 소리를 한다. 결혼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한 달쯤 더 늦추어 잡자고 하니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아내가 내 옆구리를 꾹 찌르며 그렇게 하자며 겸연쩍게 웃는다. 결혼 서약할 사람이 셋이 될 것 같다고 귀띔한다. 이런, 그래서 이 녀석이 급하게 서둘렀구먼.
서울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했다. 그들 하자는 대로 맡겼다. 이미 형과 누나가 결혼했고 식장도 멀고 해서 친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4촌 이내의 친척만 초대했다. 가서 보니 식장이 뜰이 넓은 가정집 같은 곳이다. 주례나 진행자도 없이 신랑 신부가 식을 이끌었다. 주례사가 없으니 내게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단상에 올랐다. 생동하는 4월의 따스한 햇볕을 받고, 꽃으로 둘러싸인 신랑 신부가 더욱 빛나 보였다. 의례적인 인사말로 부모로서 마지막 의무를 다한 것 같아 섭섭하면서도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신랑이 성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대학 1학년 때 우리 내외가 큰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할머니까지 허리 디스크로 수술하게 되어 난감했다는 이야기로 이어갔다. 그때 마침 막내가 방학 중이어서 20여 일 동안 밤낮으로 병실을 지키면서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호했다고 말하려는데 울컥하고 큰 무엇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러더니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져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내가 아닌 타인 같았다. 훌쩍이면서 겨우 축사를 끝냈다.
가장 기뻐하고 축복해야 할 날에 하객들 앞에서 그런 실수를 했으니 낯을 들 수 없었다. 그때는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캘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축사를 다시 읽어보고 이제야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귀여워하던 막내 손자결혼식에 채우지 못한 어머니의 빈자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막내아들의 아들이 셋이나 생겼다. 혼숫감으로 온 손자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첫댓글 역시 곽 쌤이십니다.
단숨에 들이켰어요.
혼숫감으로 온 손자가 초등학교 1학년, 다복하십니다. 훌륭항 아버지이자 인생 선배십니다.
나도 제어할 수 없이 눈물이 북받치는 느낌, 저도 경험해 봤는데요.
상황이 눈에 보이듯 훤합니다. 결혼식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대학생이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 단단한 마음이 있었기에, 자신의 인생도 잘 개척해 나간 것 같구요. 그날 선생님의 눈물은 다각도로 해석되어 결혼식을 더 빛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생각만 해도 울컥한 존재라서, 채울 수 없는 빈 자리는 눈물이 채웠겠죠.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니까 며느리가 얼굴도 이쁘고 똑똑하다고 지금 자랑하시는 거지요?
하하.
효자 아들이 아버지의 그 마음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습니다.
불과 10분 만에 결혼식이 끝나버리는 요즘에, 선생님의 눈물로 모두에게 훨씬 감동적인 식이 되지 않았을까요?
밝게 잘 웃으시는 선생님이 울었다니 그냥 눈물이 납니다. 눈물을 참느라 애썼을 상황까지 생생하게 그려져 더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