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하다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山城 山寺 따라』를 읽고
김정옥
YTN 뉴스 채널에서 분노에 찬 앵커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는다. 또 역사 왜곡…. ‘군함도’ 강제 동원 부정하는 일본. 굵은 고딕체로 쓴 헤드라인에 진실을 왜곡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보인다. 일본과 우리나라 간에 왜곡이라는 단어는 빈번히 오르내리고 있다.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위안부 왜곡’을 비롯해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날조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고도 사과 한마디 받아내지 못하는 우리나라. 약소국의 비애다.
이방주 수필가가 2017년에 내놓은 『가림성 사랑나무』를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山城 山寺 찾아』로 새로 단장하여 펴놓았다. 『가림성 사랑나무』의 때를 벗기고 금관을 씌운 책이다. ‘검이불누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백제 문화의 정신을 깨우치는 정과 망치가 되길 바란다고 속삭인다.
‘백제 역사의 진실을 다시 심어 준다.’는 여는 글에서 재조명이라는 글자가 섬광처럼 스친다. 『가림성 사랑나무』가 10년 동안 약 1,400km 이상을 발로 답사하여 고생해서 얻은 만큼의 감동을 얻지 못했나 보다. ‘백제 역사의 진실’과 ‘다시’에는‘왜곡’이라는 행간이 숨어 있었다. 책의 가치를 다시 들춘다.
나는 여태까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을 왜곡하고 폄훼하였다. 패륜을 일삼고 3,000 명의 궁녀들과 허랑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나라를 멸망시킨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진실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었는지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다시 알게 된 역사의 의자왕은 무왕의 아들로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고 효성이 지극해 해동증자의 칭호를 들었다. 집권 초기에는 국력이 부강해 신라를 제압했고 성충, 흥수, 계백과 같은 충신이 있어 선정을 베풀었다. 다만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해 이뤄진 나당 연합군의 정복 전쟁에 대비하지 않은 것은 그의 실책이었다. 의자왕이 망국의 군주였다는 점은 미화될 수 없다. 그러나 황음무도荒淫無道했고 궁녀 3,000명을 끼고 살았다는 식은 역사의 왜곡이다. 기록에 백제가 패망할 당시 수도인 부여는 인구 4만 5,000명 정도에 2,500명의 군대였다는데 3,000명의 궁녀는 사실상 불가능이 아닌가.
주류성, 멸망한 백제 부흥을 위한 임시정부이며 수도이다. 주류성은 도대체 어디일까. 예산에 있는 임존성, 서천 건지산성, 세종시 운주산성, 홍성 학성산성, 홍성 정곡산성, 부안의 우금산성이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확실치 않으니 추정인 것이다. 혹자는 건지산성이 정말 주류성이라 하고, 또는 운주산성이 주류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안에서는 우금산성이 주류성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운주산성 측에서 보면 건지산성이 왜곡이고 건지산성 측에서 보면 우금산성이 왜곡이다. 역사나 사람이나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하고 해석한다. 그러니 하루 빨리 권위 있는 학자들의 확실한 고증이 필요하다. 주류성이 어디인지, 그 진실은 백제 유민과 부흥백제군만이 알 텐데…. 여태 알아내지 못했으니 힘들기는 하겠다.
백제부흥운동을 함께 주도해오던 승려 도침이 왕족 복신과의 반목으로 그에게 도리어 살해당하였다. 복신의 부흥운동은 백제가 아니라 왕족으로서 영화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닌가 싶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도침 대사가 복신을 왜곡한 것 같다. 뜻을 같이 한 줄 알고 있었는데 도리어 그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오직 부흥백제만 생각한 도침 대사가 안쓰럽다. 허나 복신이 도침 대사의 진심을 왜곡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흥백제군 그들의 충절이 더 이상 왜곡되지 않기를, 삼천골에서 3천 명이 불에 타 몰사한 그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패배한 나라의 역사를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나 모두 마찬가지다. 조선의 역사는 또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얼마나 왜곡되었는가. 작금의 세태도 정치적 승자에 의해 얼마나 폄훼되고 왜곡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역사도 문화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강자의 입김에 의해 바뀌고 달라지는 것이 인간사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다.
세상의 어떤 신화, 어떤 전설도 과장과 왜곡은 있기 마련이다. 뉴스를 보면 허위와 날조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우리는 어느 것이 진실이고 왜곡인지 믿기 어려운 세대에 살고 있다. 이후 이 세상 모든 진실이 더 이상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탐욕이 빚어내는 원칙과 질서의 왜곡 현상을 보여주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무색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山城 山寺 찾아』 속에서 백제 역사의 진실과 가치를 깨달았다. 1,500여 년 전 나라를 되찾고자 피 흘리며 항쟁하던 그들의 충절을 알고 나니 가슴이 아리다. 작가가 답사하며 그들의 숨결을 느끼고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준 수고에 백제 유민과 부흥백제군의 한이 조금은 풀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살면서 혹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오해하고 곡해하며 왜곡한 적이 없는지 되돌아 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진심을 다른 사람이 왜곡하지 않기를, 다른 사람의 진심을 내가 왜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2020. 6 )
첫댓글 오랜 역사길을 알리기 위해 바쁜 걸음을 내딛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우리의 역사가 왜곡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순옥선생님, 매번 답글로 격려해줘서 고맙습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 일부는 과장축소로 왜곡되기도 하지요. 백제의 묻혀진 산사와 산성을 찾아 세상에 드러내놓는 이방주 선생님과 독후감을 올려주신 김정옥 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맞습니다. 세상이 왜곡 투성이입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고 적자생존이다.' 그 당시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죠
그래도 그것을 규명하려 10년동안 1,400킬로미터 이상 발품을 팔으신 이방주 작가님과
독후감을 올려주시는 김정옥 작가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왜곡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이영희선생님, 이렇게 읽어 주시고 답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묻혀버린 역사는 부흥백제의 역사와 중국의 일부까지 경영했던 대륙백제의 역사도 묻혀 버렸습니다. 또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환국과 단국의 역사를 단군신화로 하나의 신화로 왜곡하여 우리 역사를 잃었을 뿐 아니라 동북삼성이 분명 우리 땅이고 우리 고대국가였음에도 당의 역사에 헌납해 버리는 바보짓을 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부흥백제 역사는 비암사 부근의 연기지역에 가면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고 있고 천안의 천안전씨 시조 유적지에 가면 그 분들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부흥백제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