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게 하소서
천둥과 번개 소리가 아니라
영혼과 양심의 소리에 떨게 하시고
메마르고 가문 곳에도 주저없이 내려
그 땅에 꽃과 열매를 풍요로이 맺게 하소서
언제나 생명을 피워내는
봄비처럼 살게 하시고
누구에게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단비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이 세상 떠나는 날
하늘 높이 무지개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 양광모, <비 오는 날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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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폭우로 인한 인명피해 소식이 들려 안타까움 뿐입니다. 뉴스에 보도 되지는 않지만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수많은 작은 생명들도 이번 비의 피해자들입니다. 비 소식은 이번주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부디 더 이상 큰 피해 없기를 기도합니다.
의성에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교회 앞 남대천도 갑자기 물이 불더니 산책로를 덮고 벤치마저 삼켜버렸습니다. 의성에 처음 내려온 해인 2018년의 장마철에 경험한 기록적인 비와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피해가 없도록 주변을 잘 정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 비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로 쓰이는 교회 옥상의 바닥이 그동안 쌓인 먼지로 인해 더러워져 있어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옥상으로 물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은 일인지라 청소를 하더라도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니 물청소를 하는 데에 이만큼 좋은 타이밍이 없었던 것이지요. 비를 맞으며 신나게 교회 옥상을 청소했습니다. 많은 생명의 목숨을 한순간 앗아간 비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더러움을 말끔히 씻겨주니 고맙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처럼 깨끗해진 옥상바닥을 보니 왠지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양가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한 사람만 보아도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도 없지요. 그 둘은 한 사람이 모두 품고 있는 바이나 상황에 따라 발현되는 정도가 다를 뿐이지요.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경험이, 어떤 이에게는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마주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각에 따른 판단은 전혀 다른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지요. 교회 옥상 청소를 하기 위해 비가 땀인지, 땀이 비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양광모 시인의 <비오는 날의 기도>를 저의 고백으로 삼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빨리 지나가게 하소서. 비처럼 누군가에게 스며 꽃과 열매를 풍요로이 맺게 하소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단비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생을 다한 후에는 무지개로 피어나게 하소서”
<2023.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