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이상 군복무를 한 대한민국 남자 치고 아마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노랫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가사내용이 몹시 저속해 대놓고 부르기에 민망스러운 노래이다. 하지만 비속어가 통용(?)되는 군대라는 특수집단 내에선 6·25 이후 군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불린 「애창곡」이었다. 군인들은 「우스개 말」이 담긴 이 노래를 부르며 피곤한 심신을 잠시 달래기도 했다.
성냥'은 마치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자어. 즉 '석뉴황<石硫黃>'이 음운변화를 거쳐 '성냥'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성냥이 들어온 것은 1880년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 처음이었으나, 일반인에게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한일합방 직후 일제가 인천에 ' 조선인촌(朝鮮燐寸) '이라는 성냥공장을 세우고 대량 생산을 하면서부터였다. "
인천에 성냥공장 "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일제는 이후 수원, 군산, 부산 등 전국 각지에 성냥공장을 잇달아 설립했는데, 우리에게는 제조기술을 숨기고 일본이들끼리만 시장을 독점, 성냥 한 통에 쌀 한 되라는 비싼 값을 받아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매일 성냥을 만들면서도 성냥 하나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조선의 여직공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빼내고자 했던 것도 당연했을 성싶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성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은 소나무 가지에 유황을 찍어서 딱딱하게 말린 "석류황(石硫黃)"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마찰에 의해 불이 붙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화로 속에 집어넣어야 불이 붙는 것이어서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선조들은 성냥에 대한 말의 표현이나마 일본식 표현인 ' 인촌 '대신에 "석류황" 을 고집했고, 바로 이 말이 빨리 발음되다 보니 오늘날의 ' 성냥 '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라이터에 밀려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성냥의 발명은 사실 인류에게 진정한 의미의 불을 가져다 준 셈이다. 성냥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이 일단 꺼지면 부싯돌을 수차례 두드리고 나뭇가지를 힘들게 비벼대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랐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불씨를 꺼뜨리는 며느리를 내쫓기까지 했을까?
가슴 아픈 추억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편리하여도 자연 재해가 오면 우리의 생활은 때론 원시로 돌아갈때도 있어서 세상이 아무리 발달해도 가난하던 시절 생활 도구도 부싯돌 다황 가끔은 생존을위해 필요하고 보존 해야 할것 같습니다. 쌀독에 넣어두면 건조하다하여 그리하기도 하였고 어렴풋이 아궁이에 우리엄마 나무토막을 묻어두어 입으로 훅불어 불 붙이던 생각이 나고 우리 아부지 쑥보풀이와 차돌 쇳조각으로 부딪혀서 불을내어 쑥에 불이 옮겨붙으면 담뱃불 붙이던 걸 보앗답니다. 물자가 넘치는 요즘에도 우린 이런기억으로 마음을 다져 봅니다.
직끔 라이터가 유행이고 금연을 하니 때론 군불이라도 땔랴치면 다황도 귀하고 아주 곤란할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시절엔 다황이 있다고 다 번번히 쓰는게 아니라 불씨를 아궁에에 간직하고 입김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불을 때곤 하였답니다,아끼기위해서 ...... 그런 시절을 견디시며 우릴 키우신 우리의 부모님들은 요즘 세월의 호사를 반도 못 누리셨으니 ㅠ........
첫댓글 저는. .그노래..들어는 봤어도. .
불러본 적은 없다는. .ㅋㅋ
유엔성냥. .오랜만에. .봅니다. .ㅋ
다황을 기내넣고 불을 때 설라므네 쇠죽을끼래서 내래 쇠물통에 퍼대면 내 ㄹ름내 ㄹ 름 쇠가 마싯게 먹드레요.ㅋㅋ
성냥 이전에(?) 한 때 다황으로도 불리웠지요.
오랜만에 추억의 다황을 보드래요.날이가 비가 올라하면 다황이 눅눅해서라므네 탁탁 기래도 불이 아니부트니 ....게우 기래넣고 불을때면 연기는 꾸억꾸억 에구 내사 몰래요.ㅋㅋ
오랫만에 보는것 추억이 새롭습니다. 좋은밤 되십시요
가슴 아픈 추억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편리하여도 자연 재해가 오면
우리의 생활은 때론 원시로 돌아갈때도 있어서
세상이 아무리 발달해도 가난하던 시절 생활 도구도
부싯돌 다황 가끔은 생존을위해 필요하고 보존 해야 할것 같습니다.
쌀독에 넣어두면 건조하다하여 그리하기도 하였고
어렴풋이 아궁이에 우리엄마 나무토막을 묻어두어
입으로 훅불어 불 붙이던 생각이 나고
우리 아부지 쑥보풀이와 차돌 쇳조각으로 부딪혀서
불을내어 쑥에 불이 옮겨붙으면 담뱃불 붙이던 걸 보앗답니다.
물자가 넘치는 요즘에도 우린 이런기억으로 마음을 다져 봅니다.
그랬군요. 정말 인천에 성냥공장이 있었군요. 감추기도 했구요.
직끔 라이터가 유행이고
금연을 하니 때론 군불이라도 땔랴치면
다황도 귀하고 아주 곤란할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시절엔 다황이 있다고 다 번번히 쓰는게 아니라
불씨를 아궁에에 간직하고 입김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불을 때곤 하였답니다,아끼기위해서 ......
그런 시절을 견디시며 우릴 키우신 우리의 부모님들은
요즘 세월의 호사를 반도 못 누리셨으니 ㅠ........
금제님이 '빵' 한번 터트리셨네요..ㅎㅎ
다황!
지기님이 오랜만에 구수한 단어를 들려 주셨구요.
잘 읽었습니다.
눈이 많이 왔죠?
월요일부터 좀 힘든 한 주를 시작하실 거라는 예상입니다.
건강하신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눈에 갖혀서 .......
출석도 못하고 ......
오고 녹고 그렇습니다.
봄눈이라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하우스 농가나 외딴집엔 雪피해 있을까 염려됩니다.
기분 좋은 한주 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