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 73.7x92.1cm | 뉴욕 현대미술관
자신의 병을 인정하기 싫었던 고흐이지만, 마음의 상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빠지자 끝까지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1889년 5월 3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생 레미에 있는 요양원에 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입원이 유익하고 현명하다면, 어떤 선입견도 없이 고려하자”고 고흐는 말한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만해도 고흐는 상당히 진전된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지금까지 분수에 맞지 않는 삶”을 추구해왔다고 반성하면서 순교자의 생애와 다르게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인 뒤에야 고흐는 생 레미의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다. 자신이 작업을 하더라도 불안한 마음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고흐는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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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은 이런 고흐의 심정을 거침없이 드러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이 그림은 고흐의 작품세계를 대표하게 되었지만, 그림의 내력은 비극적이다.. 고흐의 입장에서 본다면 [별이 빛나는 밤]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고흐는 “병원에 방이 많아서 30명 정도 화가들이 아틀리에로 쓸 수도 있겠다”는 말을 테오에게 전하고 있다. 여전히 화가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지 목록 | [별이 빛나는 밤] 펜 드로잉 |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요양원의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밤하늘을 그린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풍경을 보면서 그린 것이라기보다, 기억을 되살려서 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 레미로 떠나기 전 아를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론 강에 비치는 별빛 -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에 고흐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삶을 접고 “수도사의 생애”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동생에게 고백했다. 종교에 대한 깊은 갈구를 드러낸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는 이런 정서가 연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소용돌이치는 별빛 아래 우울하게 드리워져 있는 생 레미의 모습이다. 시가지의 모습은 요양원에서 북쪽을 바라본 풍경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풍경은 실제의 생 레미와 다소 다르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의 모습은 약간 변형되어 있고, 왼쪽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이프러스도 고흐가 임의로 그려 넣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 광경은 분명히 생 레미이지만, 현실의 풍경과 같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고흐의 작품세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인상파의 이념에서 한참을 벗어난 것이다.
밤 하늘에 펼쳐진 고흐의 고독한 내면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풍경은 고흐의 내면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기 보다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여서 불안에 떨고 있는 한 영혼의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요양원에 가든지, 군대에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요양원으로 갔다. 군대에 5년간 있으면서 병을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다소 엉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흐가 군대에 가야겠다고 말한 까닭은 그렇게 하면 “더 합리적인 인간이 되어 자기 통제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를을 흐르는 론 강의 풍경 <출처 : Rolf Süssbrich at fr.wikipedia>
이런 진술을 놓고 봤을 때, 고흐는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노력하면 언제든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정신의 병이라는 것은 현대인 모두에 내재한 재난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양원과 군대를 모두 ‘합리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보았다는 점에서 고흐는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별이 빛나는 밤]은 독특한 고흐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합리적이고자 했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합리성을 압도하는 혼돈의 세계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생 레미라는 작은 마을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마을은 이 풍경에서 참으로 사소한 존재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종교적인 평안을 염원한 고흐의 심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고흐는 여전히 고갱의 안부를 테오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고갱에게 편지를 쓰지 않겠다고 언급한다. “종종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고흐는 고갱에 대한 관심을 저버릴 수가 없었고, 파국을 맞이한 관계를 다시 복원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고흐에게 고갱은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 동료였지만, 동시에 잊어버릴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의 편린이기도 했던 셈이다.
첫댓글 제목도 멋지고 다양한 정보 공유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