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 질서 주도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쇠퇴의 진짜 이유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O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 공화당원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있음.
- 그러나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런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 문제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음.
- 민주당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극좌파와 공화당의 주요 실세인 극우파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이 모두 바이든 대통령 탓이라고 비방하며 외국의 영향력을 부정하고 있음.
- 지금은 미국이 경제적, 군사적 지배력을 통해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가 쇠퇴하고 있으며, 그 이유를 파악할 필요가 있음.
-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미국이 영향력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이후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았음.
-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지정학적 경쟁국들과 달리 강력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미국의 경제 지배력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임. 많은 전문가 역시 중국의 GDP를 달러로 환산했을 경우 결코 미국을 추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음. 중국 경제가 구매력 측면에서 이미 미국보다 크지만, 이는 글로벌 영향력과는 관련이 적음.
- 미국 달러 역시 탈달러화(de-dollarization)에 대한 이야기가 확산되고 있는 속에서도 세계 경제에서 중요도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
- 또한 세계 경제가 변화하면서 미국이 새로운 방법으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음. 국제 관계 전문가인 헨리 패럴(Henry Farrell)과 아브라함 뉴먼(Abraham Newman)은 '지하 제국: 미국이 세계 경제를 무기화한 방법(Underground Empire: How America Weaponized the World Economy)'이라는 최근 저서를 통해 전통적인 국제 무역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상호의존성을 창출하는 현대의 세계화가 어떻게 미국을 "감시와 통제의 국제적 그물망의 중심에 놓이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음.
-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가진 힘을 사용하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여 러시아의 야욕을 좌절시키고 있으며, 이스라엘에도 신속하게 지원을 약속함.
-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기술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중국 기술 산업의 많은 부분을 적극적으로 제재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음.
- 혹자는 “이제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아마도 예전처럼 미국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임.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 때문이 아니라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 때문임.
- 이달 초 바이든 대통령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공화당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화당 출신 케빈 매카시(Kevin McCarthy) 하원의장을 해임시키면서 미국 하원은 현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 상대적으로 덜 극단적인 공화당 의원들 역시 초당적 협력을 거부하고 있음.
- 현재 미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초강대국임. 또한 미국 하원은 의장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미국 동맹국에 원조를 제공하기 위한 법안 등을 통과시킬 수 없음. 이런 상황에서 차기 하원의장은 공화당 강경 우파들의 눈치를 보느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음.
- 미국의 이러한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다른 국가가 미국의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신뢰하기는 어려움.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국가들이 미국 내에 자신들처럼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를 경멸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미국을 크게 두려워할 리가 없음. 팍스 아메리카나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미국 내부의 적 때문임.
출처: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