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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 곳곳에 놓인 세간살이를 통해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한다’고 직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모던한 분위기 속에 소품을 넣고 빼고, 공간의 여백을 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스타일링 컴퍼니 도나홈 오동은 대표의 프렌치 스타일 집 꾸밈.
1_오동은 대표가 재택근무를 할 때 사용할 공간으로 꾸몄던 작업실 겸 서재. 지금은 아들 어진이의 동화책들이 꼽히면서 아이의 럭셔리한 서재로 탈바꿈되었다고. “서재 분위기가 참 따뜻하다”고 감상평을 건넸더니 “베네치아 장인이 만든 40와트 조명을 달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웃어 보인다. 조명은 지인의 도움을 얻어 이탈리아에 특별 주문을 넣어 3개월 만에 받은 작품이고, 소파는 그림 그리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인조 악어가죽을 덧입힌 오동은 대표의 작품.
2_집 안 곳곳 장식된 쿠션과 커튼은 대부분 그녀가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작업실 한편에 패브릭 샘플들이 놓여 있다. 곧 센스 넘치는 패브릭 소품으로 구성된 인터넷 숍 도나홈(www.donahome.com)도 리뉴얼 오픈한다.
회화학도 시절, 패션 잡지 기자의 권유로 세트 스타일링을 시작했다는 오동은 대표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 서양화를 전공한 아티스트, 청주대학교 디자인 마케팅 전공 교수, 패브릭을 중심으로 공간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는 도나홈 대표 등 몇 가지 직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오늘은 촬영 때문에 다 쉬기로 했어요. 최근엔 제가 해오던 일을 덜어 직원들에게 주고 집과 가족들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늘렸어요. 회사 갈 준비하면서 엉망인 아이의 머리칼을 빗겨주고, 옷을 입히고 신발짝을 맞춰주느라 정신없던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졌어요.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집에 꼭 있으려고 해요.”
지난 10년간 오동은 대표는 정해진 퇴근 시간은커녕 주말도 없었다. 일하는 시간과 사적인 삶의 시간이 겹쳐지면서 내 남편, 내 가족에 연관된 문제는 언제나 두 번째 해결해야 할 일로 순위가 밀렸다. 2년 전, 아들 친구네 집에 방문했다 보았던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하면서 삶의 순위를 바꾸기로 맘먹었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 스타일링을 맡으면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야기가 길어지면 예정된 시간만큼만 일할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아이가 학교 다녀오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이 집에 이사를 오면서 거실은 미팅 룸으로, 서재는 작업실로 꾸몄어요.”
거실에 놓인 오렌지 컬러 티 테이블은 프랑스 가구 회사 무아쏘니에의 제품으로 오래된 빈티지 가구에 컬러를 입혔다. 탤런트 김남주가 자신의 책을 통해 밝히기도 했던, 6개월을 기다렸다 받았다는 침대와 같은 브랜드다. 요즘은 논현동 가구거리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정면 소파는 결혼 생활 내내 사용해 빈티지가 된 가죽 소파고, 왼쪽 소파는 2년 전 이 집에 이사를 올 때 베이지색 원단을 골라 제작했다.
몇 년 전 베트남에서 스타일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현지에서 골라두었던 소품과 패브릭 샘플들. 도장함은 동물의 뿔을 이용해 만든 수공예품이다.
취향을 바꿔 꽃을 사다 아침부터 꽃시장에 다녀왔다는 오동은 대표의 집 거실에는 화사하게 피어난 흰색 리시안 한 다발이 화병에 꽂혀 있었다. “예전엔 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정원에서 자작나무의 잎사귀가 돋고 이름 모를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 생화의 매력을 알았죠.”
그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는 설명도 더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은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 잡고 책을 읽거나 다음 끼니는 뭘 해 먹을까 궁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 10년 넘게 남의 집만 꾸며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정작 제 집은 다듬고 꾸며놓을 여력이 없었던 거죠. 집에선 일 관련 전화 받는 일을 제외하곤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살림을 포함한 집안일에 집중하고 있어요(웃음).”
오동은 대표는 오랜 시간 머물게 된 집 속에서 다른 의미의 도전에 직면했다. 자신의 맘에 드는 물건을 제작해 제자리에 놓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 “집 꾸밀 때 지나치게 유행에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객관적인 시선이 우선이에요. 저도 남의 집을 꾸밀 때는 뺄 것 빼고 더할 것 더하는 플러스 마이너스 스타일링이 가능했는데, 제 집 꾸밀 때는 O, X 표시를 못하겠더군요. 이것도 저것도 너무 예쁜 것들이 많으니까요.” 오동은 대표는 우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품을 먼저 골랐다. 거실 한 공간이 휑하니 썰렁해 보여도 맘에 드는 물건을 찾을 때까지 비워두었다. 해외에 주문을 넣고 기다리기도 했고, 한 10년쯤 쓰던 물건은 색다른 패브릭을 입혀 분위기를 바꿨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오동은 대표의 집은 192㎡(58평)이지만 방은 안방, 아이 방, 서재 3개뿐. 방마다 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우선 컴퓨터, 스피커 등 각종 전자 기기에 심취해 있는 남편이 쉬는 날 거실과 동떨어진 공간에만 머무는 것도 맘이 쓰였다. 그래서 그녀는 거실을 분리해 남편의 방을 만들었다.
공간에도 놓일 나만의 라이징 스타 오동은 대표는 일전에 잠시 일했던 회사의 대표를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그 멘토가 고객에게 빈티지 가구를 놓아주며 “불편하더라도 한번 써보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를 꺼내며 집 안 곳곳에 놓인 가구를 보여준다. 침실 양면에 놓인 중국식 옷장은 10년 전 이태원 중국 가구 숍에서 주인이 리폼한 제품을 구입한 것이고 침대 옆 원 체어 소파 역시 오래된 제품. 사진에는 멋스럽지만 실제 사용하기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세월이 앉은 때를 벗겨낼 때까지 열심히 윤을 내야 하고 고장 난 부분을 계속 수리하며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있는 오렌지색 티 테이블도 벗겨진 부분을 칠하기 위해 일산 공장으로 보냈다가 옮겨왔다. “뭐랄까요. 새것이 주는 산뜻함도 좋지만, 손님 초대한 날 집주인으로서 자랑스럽게 내놓고 싶은 물건을 모아두는 일도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손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온기가 더해지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푸근함 같은 게 생기니까요.” 오동은 대표는 맘에 드는 물건이 없다면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린다. 하지만 괜찮은 물건을 발견하면 물건 값만큼 배송료가 든다 할 지라도 꼭 사고 만다. 그래야 물건을 손질하고 아껴서 두고두고 쓰게 되나 보다.
침실에 놓여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빈티지다. 소파, 옷장은 모두 이태원에서 구입한 제품들.
현관과 서재로 향하는 벽에 걸린 그림은 모두 한국 작가들의 작품. 작품은 그녀의 대학 선배인 이주은 작가의 사진
남편의 방 한쪽 구석에 놓아둔 모로코 스타일 거울. 오동은 대표의 집에는 유독 깨끗한 빈티지 소품이 많은데, 이 물건도 그렇다. 공간 스타일링에 관련된 의뢰를 받았을 때 앤티크 소품 숍에서 구입해둔 제품이다.
오동은 대표가 해둔 부엌 테이블 세팅. 스타일링 관련 일을 하면서 모아둔 소품을 집에 가져와 화병으로 사용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모아둔 컵과 그릇에 디저트를 담았다.
프랑스 여자들처럼, 키친에서 다시 시작한 요리 오동은 대표는 스타일링이 발달해 있는 프랑스와 영국 등지로 자주 출장을 간다. 현지 친구들의 도움으로 리옹, 마르세유 등의 가정집을 둘러보기도 하고 숨겨진 맛집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렌치 요리를 맘껏 먹기도 한다. 여행이야말로 아이디어를 얻는 최고의 방법이니까. 10년간 집을 비웠던 주인이 자리를 지키면서 부엌에도 활기가 생겼다.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이동은 대표의 부엌은 요리하고 수다 떨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공간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지난겨울엔 집으로 사람들을 자주 초대했어요. 늘 밖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집은 수면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죠. 손님 초대가 늘면 자연스레 집 안 곳곳이 폼 나게 바뀌게 돼요.” 그간 바쁜 스케줄을 핑계 삼아 요리를 쉬었더니 실력이 처녀 시절보다 더 줄었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이카트리나 뉴욕의 대표이자 백 디자이너인 이연주씨의 요리 솜씨가 제일 부럽다고. “르쿠르제에서 나오는 대형 냄비에 곰국을 끓여 먹었더니 맛있더라고요. 간식으로 배를 채우는 건 참 싫은데… 오늘은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라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뿐이네요.”
얼마 전부터 오동은 대표는 그릇과 커피 잔 등 요리에 관련된 것들도 모으기 시작했다. 요리 실력은 아직 초급이지만 테이블 세팅은 최상급. 음식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다 보니 대화가 늘고 남편과 아이를 위해 챙겨주어야 할 것들이 더 생겨났다. 얼마 전부터 열대어를 키우기 시작한 남편을 위해 예쁜 어항을 구해다 주고 싶고, 아들과 아이스하키를 함께 배우러 다니는 아들 친구들을 불러다 음식 솜씨 좋은 엄마 역할도 해야 할 것 같다.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느니 가족들의 새로운 취향도 눈에 들어왔던 것. 그래서인지 요즘은 요리를 만들어놓고 “식사하세요!” 하며 가족을 부르는 순간이 가장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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